─푸드드득!!
찬 밤공기로 얼굴을 식히고 있으려니까 갑자기 하늘에서 부엉이가 내려와서 내 앞에 앉았다. 그 놈은 내 가방의 냄새를 맡은 것인지 고개를 180도 돌리면서 나를 쳐다봤다.
“호옷─? (고기─?)”
나는 그 징그러운 무빙과 커다란 눈동자에 살짝 공포를 느꼈지만, 수의대생의 근성을 발휘해서 닭고기를 꺼냈다.
“홋호호오? (먹을래?)”
“홋홋. (넹.)”
말귀가 통하니까 약간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면서 고기를 던져줬다. 부엉이는 감사인사를 하고 고기를 냠냠쩝쩝 쳐먹었다.
그런 식으로 도시를 돌아다니며 동물들에게 먹이를 줬다.
이것은 모두 일종의 정보통을 얻기 위한 과정이었다.
이번 탐색을 통해서 다시 깨달은 거지만, 동물들과도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꽤 요긴했다. 사람들이 수상하게 여기지 않고 간단한 보수로 잔뜩 부려먹을 수 있으니까.
나는 이걸 알면서도 오늘까지는 사용을 하지 않았다.
그야 씨발 당연한 것 아니냐? 내가 뭐 도시의 정보 같은 걸 모아서 어따 쓸 건데.
탐정처럼 어디 숨어다니는 검은 조직들 앞에 튀어나가서 ‘진실은 단 하나!’ 이 지랄 하다가 목숨도 단 하나라는 걸 깨닫기라도 하게?
그리고 나는 오늘까지 <동물 회화> 마법의 존재를 몰랐으니까, 동물이랑 쎄쎄쎄하는 걸 들켰다가는 이교도 취급 받아서 돌 맞아 뒤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단 말이지.
로마니아에서부터 시작된 이교도 탄압운동은 이세계식 인권 존중론─쓰레기는 사람이 아니니까 죽여도 됨─을 철저하게 따르는 마녀사냥의 스테레오 타입이다.
빨갱이로 몰리는 순간 맞아 뒤지던 옛날 지구랑 똑같다.
안 그래도 신대륙인들은 뭘 믿는지도 잘 모르니까 이교도 아님 이 지랄로 대충 넘어가주고 있는 상황이다. 키타이인들은 이단심문관들에게 한없이 블랙에 가까운 그레이인 것이다.
‘존나 시적이군 시발.’
아무튼 그래서 외지인인 내가 뒷생각 없이 나대다가는 좆 되는 수가 있어요 아주.
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알고 보니 <동물 회화> 마법이라는 멀쩡한 마법이 따로 존재한다지 않은가?
<동물 회화>는 <사역마(Familiar)> 마법처럼 ‘1번 발동하면 반영구적으로 유지되는’ 마법일 듯 했다. 내가 마나를 쓰지 않고 대화를 이어가도 티르시가 이상해하지는 않았으니까.
아마 티르시는 나랑 대화한 산속 동물들을 ‘내가 예전에 테이밍해 둔 놈들’이라고 생각했겠지.
이 마법은 사전에 친밀도 작업이 필요한 모양이기는 한데, 그건 내가 예전에 해 뒀다고 주장하면 될 일이었다.
내가 미리 양념 쳐서 마법을 걸어놨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아마 동물이랑 쌰바쌰바 하는 정도로는 어디 가서 이교도로 몰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부터 시도해 보기로 했다는 말씀.’
도시를 돌면서 동물들한테 떡을 돌린(비유적 표현) 나는 다시 중앙 벤치로 돌아와서 앉았다.
“……하아, 시발.”
오늘 이렇게 밤 늦게 일을 벌인 것에는 이유가 있다.
아까 프랑과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후, 나는 타뷸라의 짐 중 하나였던 어느 종이 문서를 해독했다. 얼음 관에 파묻혀 있던 로브를 뒤적여서 챙겨 놨던 물건이다.
암호로 적혀진 글이었지만 내 번역능력은 그마저도 쉽게 해석을 해냈다.
‘언어’가 아닌 암호조차 해석해버리는 시점에서 번역능력의 구조도 대충 엿보이는 느낌이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어차피 내가 혼자서 암호를 번역해 봤자 그게 사실이라는 증거를 제시할 수 없으니 도움도 안 된다. 고문서를 뒤져서 해석해봤자 그게 진짜라는 증빙자료가 없어서는 논문으로서 가치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보다 진짜 중요한 것은 타뷸라가 들고 있던 문서다.
나는 검은색의 종이의 문서── 아니, ‘지령서’를 펼쳤다.
[추살지정자 리스트.]
이것은 타뷸라의 조직에서 배부한 지령서였다.
적혀있는 것은 이름 분이었지만, 100% 리스트에 적힌 사람들을 찾아내서 죽이라는 내용일 것이었다.
이게 존재하는 이상, 타뷸라가 소속된 검은 조직은 나와 티르시의 과대짐작이 아닌 진짜로 존재하는 조직이겠지. 시발. 도적단 소굴을 무너트리고 뒷처리를 하길 잘 했다.
─화륵.
나는 <타오르는 손길>로 종이에 불을 붙였다. 얼음 관의 안에서도 멀쩡할 정도로 질긴 종이였지만 불길 앞에는 힘을 못 쓰고 재가 되었다.
바람이 재를 가지고 멀리 날아갔다. 거칠어지는 앞머리를 누르며 벤치에 등을 기댔다.
‘……이 시발년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 건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면서 장갑을 벗었다.
논문을 도둑맞은 일에 대한 복수는 내 인생의 목표 중 하나였다. 내 힘만으로는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놈들에게 넘겨줘서는 절대 안 될 일이었다.
100일이 걸리든 200일이든 걸리든, 반드시 이 두 손으로 끝을 보고야 말겠다.
나는 옷깃을 여미면서 프랑이 잠든 여관으로 돌아갔다.
검게 칠해진 지령서는 시뻘건 글씨로 내게 고했다.
현(現) 최우선 추살지정자──
──‘고고학자 예르나 그라시에’라고.
아침이 밝았습니다. 꼴마초 마피아는 눈을 떠주세요.
“칼기상.”
─벌떡!
나는 햇살이 비추기 전의 새벽에 눈을 떴다. 이세계인의 아침은 이렇듯 빠른 것이었다.
“노르. 잘 잤어?”
거울을 보며 빗질을 하던 프랑이 말했다.
벌써 옷도 다 입은 상태였다. 세상에 나보다 일찍 일어났다고? 어째 프랑은 잠도 나보다 늦게 자면서 아침에는 늘 나보다 일찍 일어나는 것 같다.
본인 曰 ‘맨날 노르가 자는 얼굴을 구경하다가 잠든다’고 하는데, 만약 내가 새 나라의 착한 꼴마초가 아니었다면 분명 프랑은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말았을 것이었다.
“나야 늘 잘 자지. 프랑 너랑 같이 잘 때는.”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면서 말했다. 그리 말하자 프랑이 웃으면서 기뻐했다.
“헤헤. 노르는 가끔 그렇게 기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주더라.”
“그런가? 사랑이 넘쳐나서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가 봐.”
몸을 풀고 나서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내가 갑옷을 입는 것을 프랑은 조용히 와서 도와주었다. 마치 자신은 당연히 이래야만 한다는 듯 한 행동이라서 약간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프랑. 나도 혼자 입을 수 있어.”
“하지만 내가 도와주면 더 빠른걸?”
프랑은 이 정도로 뭘 그러냐는 느낌으로다가 말했다. 그야말로 모성애였다. 현모양처라서 저러는 것이 아니라 무슨 아들내미를 보살피는 느낌이다.
아이를 낳으면 남편에게 향할 사람이 자식한테 간다는데,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조금 달라지려나.
근데 그때가 되면 나는 지금까지와의 낙차로 인해 매일 허무함과 자살충동을 느낄 것만 같았다.
─철컥.
옷을 다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식사를 했다. 요즘에는 프랑이 깨워줘서 공짜 아침을 거르지 않게 됐다. 아침밥을 먹으니까 하루가 든든하더라.
“오늘에야말로 브론즈 승급 의뢰를 하자.”
스튜를 저으면서 내가 말했다. 그 시발 맞을 살인강도들 때문에 미뤄졌던 승급전을 재도전할 때가 왔다.
“의뢰를 확인한 다음엔 프랑 네 무기도 새로 사고, 하는 김에 시계도 하나씩 사자.”
“시계?”
“있으면 편리하잖아. 가격대는 봐야 알 것 같지만.”
프랑이 내 말에 눈치를 보길래 얼른 선수를 쳤다.
“무기랑 시계 비용은 내가 낼 테니까 돈 없다는 소리, 나는 괜찮다는 소리 하지 말 것.”
“읏. 어떻게 알았어?”
“한두 번도 아닌데 알지 그럼. 우리 뭐 할 때마다 매번 이러지 말자.”
“노르는 아까 내가 옷 입는 거 도와주려고 할 때 뭐라고 했으면서.”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무기는 내가 부숴먹은 거고, 시계는 필수품이다. 나는 스프에 들어간 고기 갯수를 새면서 말했다.
“밥 다 먹고 빨리 가 보자. 좋은 의뢰 다 뺏기기 전에.”
우리는 모험가 길드에 가서 승급 시험 의뢰를 확인했다.
1. 페르포트 마을의 고블린 퇴치.
2. 헤이스벤트 행 마차 호위 - 행상인 맥피.
3. 헤이스벤트 행 마차 호위 - 대장장이 길드.
4. 헤이스벤트 행──
아니 시발 호위 의뢰 왤케 많어. 호위 의뢰가 아니라 허위 의뢰인가.
“호위 의뢰가 대부분이군요.”
내가 벙쪄서 묻자 접수원은 아침 출근한 직장인답게 일하기 뒤지게 싫다는 오오라를 풍기며 대답했다.
“최근에 흉행을 벌이던 도적단 중 하나가 괴멸했습니다. 그 여파로 도적들이 주춤하고 있는 틈에 상인 분들의 활동이 활발해진 듯 합니다.”
아아. 나랑 티르시가 하룻밤 만에 찾아내서 몰살과 방화로 조져놓으니까 쫄려서 얌전해졌던 거구나.
상인들은 돈 아끼겠다고 아딱이를 고용했다가 좆 되지 않으려고 브딱이들을 고용하는 걸까? 하긴 흑자를 얼마 못 보더라도 악성재고가 쌓이거나 뒤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의뢰는 대부분이 헤이스벤트 행이네.”
까치발을 서서 열심히 탁자 위의 의뢰서를 읽던 프랑이 말했다.
“노르. 마차 호위 의뢰 중에 하나 받는 게 어떨까?”
그리 말하면서 아이 컨택트를 취하는 프랑.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는 쉽게 눈치챘다. 내 논문 얘기다.
“운송 길드는 다들 헤이스벤트를 거쳐가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프랑. 배를 타고 왔던 나랑은 달리 행상인들은 육로로 이동한다. 중간에 보급이나 휴식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사르가디스에서 논문을 맡기나 헤이스벤트에서 맡기나 똑같다.
아니, 거리가 단축되는 만큼 파손이나 분실 위험도 약간은 줄지 않을까.
‘시발. 생각해 보니까 현장직 논문 기간을 반년이나 주는 이유가 이거였구만.’
와! 현장직은 6개월에 정기 보고 1번하면 끝! 이거 존나 개꿀 아니냐?
그렇게 생각했는데 하나도 개꿀이 아니었다.
배송 도중에 트러블이 터져서 논문이 버뮤다 옥천지대에서 이동중-배송중-앗! 니 택배 잃어버렸어요! 엣큥☆ 이 지랄을 하니 6개월이나 여유를 준 것이다. 중간에 잃어버릴 것을 감안해서 말이다.
국내라서 그나마 다행이지 외국에서 활동하는 현장직들은 반년도 짧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존나 내 논문 제대로 배송 갔냐고 물어보는 편지를 주고 받는데도 대략 1개월이다. 논문 배송이 2번 실패하는 순간 좆 되는 거야 시발.
학계에서 니 일 안 하냐며 보낸 경고장이 놀부가 다리를 부러트린 제비처럼 독기를 품고 날아오겠지.
“호위 의뢰라. 그것도 괜찮겠다.”
내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말했다. 논문이 도중에 탈주해버릴 가능성을 줄인다는 점에서는 아주 좋다.
거기다가 이렇게나 호위 붙은 마차가 많으면 도적들도 함부러 못 깝칠 것이었다. 앞에서 영혼의 한타를 시도하는 중인데 뒤에서 다른 마차랑 그 호위가 난입할 테니까.
쪽수만 믿고 사는 새끼들이 쪽수에서 발릴 위험을 감수할 것 같지는 않다. 진짜 빡대가리 새끼들이나 마차를 덮치겠지.
‘그럼 이거 완전 시즌 한정 버닝 이벤트잖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콩밥은 콩을 안 넣고 한 콩밥이다.
같은 논리로 세상에서 제일 좋은 토벌 의뢰는 토벌을 안 하는 토벌 의뢰였다. 마차 호위는 몬스터나 도적 퇴치가 세트로 엮이니 토벌 의뢰로 쳐주는데, 실제로는 꿀을 빨 가능성이 큰 것이었다.
그것도 존나 중요한 승급전을 꽁승으로 챙기면서!
“프랑. 우리 마차 호위로 받자.”
“잘 생각했어. 그럼 다른 하나는 뭘로 할래?”
“응? 지금 2개 다 정하게?”
승급 시험은 3번 도전해서 2번 성공하면 된다. 조급하게 굴 정도로 시간 제한이 딸린 것도 아니니까 나중에 해도 되지 않을까?
“며칠 뒤에는 마차 호위 의뢰가 안 남을 거야. 일정에 맞출 수 있는 것들로 짜 두면 어떨까 해서.”
프랑이 의뢰서를 보여주며 말했다. 며칠 뒤에는 다른 브딱이들이 죄다 호위 의뢰를 휩쓸어가거나 의뢰자가 의뢰를 취소하겠지.
현재 신청이 들어와 있는 마차 호위 의뢰는 6개였다. 그중에서 가장 빨리 출발하는 놈이랑 4, 5일 뒤에 출발하는 의뢰를 고르면 이론 상으로는 2개의 마차 호위를 모두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우리 여친님은 1달 넘게 매일 의뢰를 나갔던 짬이 있으니 이런 계획을 세우는 일에 요령이 있는 모양이다.
‘성수기에 휴가 플랜을 짜는 것 같군.’
괜찮은 제안인 듯 했다. 나는 접수원에게 말했다.
“여기 적힌 의뢰 2개를 같이 받아도 되나요?”
“가능은 합니다만 의뢰에 불참하시면 실패로 간주합니다. 그때는 소정의 위약금을 무실 수도 있고요.”
“정말요? 그럼 관둘래요.”
접수원의 설명을 듣고서 깔끔하게 포기하는 프랑이었다. 내 시선에 프랑이 헤헤 웃었다.
“이틀 이상 여유를 두고 받을 수 없는 의뢰가 없더라. 하루라도 늦었다가는 의뢰 시간에 못 맞출 것 같아.”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나서 복귀가 늦어질 수도 있으니까. 아깝기는 하지만 포기하는 수밖에.”
“응. 그러니까 받을 수 있는 의뢰는 엄선해서 고르자.”
아이들 먹일 음식을 고르는 어머니처럼 눈빛이 진지해지는 프랑이었다. 근데 까치발 상태라서 귀엽기만 하다. 안타깝게.
팔랑─ 팔랑─.
호위 의뢰 성수기를 놓친 우리는 의뢰서를 뒤적거렸다.
‘고블린 퇴치 의뢰도 몇 개 있군.’
이 놈의 이세계 그린 잼민이들은 잠시만 눈을 뗐다 하면 다시 증식해 있다. 하여튼 모기 같은 씹새들이다.
근데 사실 상 얘네가 브딱이들의 주요 밥벌이 수단이라고 할 수도 있으려나.
고블린들은 누군가에게 해충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생계 유지에 보탬이 되는 생물인 것이다. 해충이 없으면 세스코 직원들도 없는 것처럼.
‘그보다 페르포트 마을은 또 어디야?’
가장 오래 방치된 고블린 퇴치 의뢰가 그것이었다.
페르포트, 페르포트. 지명을 지도에서 찾아봤다.
‘여기서 꽤 가깝네?’
도보로 하루 거리다. 헤이스벤트랑 거리 상으로 비슷하다. 억지로 비교하자면 페르포트가 약간 더 먼가.
그래서 걸러졌나 보다. 똑같이 하루 거리에 보수도 비슷한 상황이니까 죄다 마차 호위로 밀렸겠지. 아우둠라 길드의 브딱이들은 대부분이 헤이스벤트로 갔을 거고, 거기서도 일을 하느라 안 돌아오는 새끼들도 있을 테니까.
“앗.”
그때 프랑이 제일 뒤쪽의 의뢰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노르. 이것 봐. 운송 길드에서 낸 호위 의뢰야.”
“걔네들이?”
나도 호기심이 동해서 의뢰서를 확인했다. 내가 구해줬던 그 외팔이 청년이 의뢰서를 낸 건가 했는데, 정답이었다.
[아이 2명 동반(호위 대상). 실버 클래스 호위 1인 있음.]
[고용 대상: 브론즈 클래스 4인. 보수 30쿠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