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자. 제대로 막으세요~. 그렇게 않으면 가여운 아이가 죽어버려요?”
무릎 꿇은 나를 단차 위에서 깔보면서 아나시스는 나이프를 계속 쏘아냈다. 마나를 끌어올릴 때마다 내 움직임은 조잡스러워져갔다.
이대로 가다간 당한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나는 내 감각이 호소하는 느낌에 눈을 부릅떴다.
둔해지는 움직임을 보강하려고 야수회귀에 부은 마나가 거칠게 피어올랐다.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운 다리로 바닥을 딛고 일어섰다.
“에리카, 용서해라!”
─휘익! 나는 사죄의 말을 입에 담으며 품에 안은 소녀를 위로 던졌다. 아나시스의 시선이 높이 내던져진 에리카의 모습을 쫓았다.
“하핫! 역시 당신도 아이보다는 자기 목숨을 소중히──”
─쐐액!! 아나시스의 말이 끝나기 전에 검을 던졌다.
하지만 눈이 에리카의 몸에 못 박혀 있었던 것조차 페이크였는지, 아나시스는 몸통에 날아드는 검을 쉽게 피해냈다.
“──할 리가 없죠! 제가 이따위 조잡한 속임수에 속을 것 같나요!”
“아니. 이미 속였어, 병신아.”
나는 씨익 웃었다. ─쿵쿵쿵! 내 감각이 붙잡았던 발구름 소리가 거세게 들렸다.
─휘이익!!
뒷골목의 지붕 위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날아올랐다.
2미터를 넘는 피에로 모양 꼭두각시 인형이었다. 그 놈의 등에서 도약한 작은 체구의 여성이 에리카를 받아냈다.
절대 잘못 볼 리가 없는 나의 사랑스러운 연인이었다.
“노르! 잡았어!!”
“──뭣?!”
아나시스가 놀라며 나이프를 쏘아냈다. ─쐐애액!! 거칠게 날아드는 나이프는 피에로 꼭두각시의 길고 큰 팔에 모조리 튕겨나갔다.
3인분의 체중을 실은 커다란 꼭두각시가 내 뒤에 무겁게 착지했다. 시발아, 나 다리에 힘 없는데 이러지 말자.
넘어지는 나를 꼭두각시의 팔이 붙잡았다. 그런 꼭두각시의 팔에는 마나의 실이 보였다.
“두구두구두구두!! 짜잔!! 주인공의 정체절명에 눈부시게 등장하는 아리따운 미소녀☆! 라리루라 등장이랍니다♡!”
텐션 높게 외치면서 라리루라가 양팔을 휘둘렀다. ─휘익! 꼭두각시가 내부 기관이 돌아가는 소리를 내면서 입을 벌리자 거기서 장침(長針)이 화살처럼 쏟아졌다.
투두두두두─!!!!
“치잇!”
아나시스는 무릎을 꿇으며 반투명한 실드를 전개했다.
─탱탱탱탱!! 1미터도 안 되는 작은 실드가 장침의 사격을 막아냈다. 라리루라는 화딱지가 난다는 듯이 소리쳤다.
“뭔가요, 딴딴하잖아요?! 노처녀의 히스테리에요?!”
“방향과 범위를 압축한 실드야. 간단히는 못 뚫어.”
내가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해독 포션을 꺼내려 했다. 프랑이 눈치 빠르게 내 파우치에서 포션을 꺼내줬다.
“받아, 노르. 이 손수건 물고 있어. 등의 나이프를 뽑을게. 상처회복 포션도 바를 테니까.”
깊게 박혀있지 않았던 나이프는 몇 개 정도 빠져 있었다. ─푹푹푹! 손재주를 살려서 빠르고 안 아프게 나이프를 뽑아낸 프랑이 옷 아래로 포션을 발랐다.
씨이발 그래도 넘모 아파!! 나는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입에 물었던 손수건을 뱉었다.
“라리루라! 꼭두각시로 몸을 지키면서 <꼭두극>으로 에리카의 몸을 억눌러! 조종당하고 있어!”
“조종이요? 알겠습니다, 일단 안전한 곳에 가둬둘게요!”
─철컥!
라리루라는 꼭두각시의 배를 열어서 에리카를 넣었다. 어린아이 1명쯤은 간단히 들어갈 공간이 있었기에 쉬운 일이었다.
투두두… 두두둑….
내가 해독 포션을 비우고 일어났을 때는 라리루라의 장침 공격도 끝나버렸다. ─콩콩! 나는 아나시스를 경계하면서 2미터를 넘는 커다란 꼭두각시를 두들겼다.
“그나저나 이 친구는 또 누구야? 나 낯가림 있어서 처음 보는 사람 품에 안기는 거 거북한데.”
“링링이 3호에요!! 험한 일 전문인 제 파트너랍니다☆!!”
“그런 챠밍한 이름이 어울리는 와꾸는 아니지 않냐?”
씨발거 꼭두각시 한 번 존나 살벌하게 생겼다. 입은 무슨 괴물처럼 상어 이빨이 위아래로 열리는 구조에, 손바닥은 내 머리보다 크고 옷차림도 미친 광대 같다.
존나 이세계 헐크 조커다. 크기도 소형 골렘 정도였다.
이 안에 어떤 흉기들이 갖춰져 있을지 상상하니까 약간 사이코패스의 품에 안겨 있는 기분이었다.
“노르. 치료 끝났어.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저 사람이 범인 맞지?”
응급처치를 마친 프랑의 눈은 아나시스를 쏘아봤다. 푸른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이유는 내 상처 때문일까, 아니면 납치된 아이들 때문일까.
아무튼 의욕이 넘치는 것은 좋다. 나는 손을 쥐었다 펴며 말했다.
“그래. 뒤쪽에 있는 놈도── 시발, 튀었군.”
로만이 쓰러졌던 곳에는 팔만이 덩그러니 버려져 있었다. 나는 혀를 차면서 팔을 움직였다.
해독 포션이 효과가 있었는지 팔다리는 무난하게 움직였다. 약간 녹슨 느낌이 있지만 이쯤은 애교로 넘어갈 수 있다.
“아주 바글바글 모여서 소란을 피우시는군요. 대낮부터 참 민폐인 분들이십니다.”
아나시스는 공격이 멈추자 실드를 풀었다.
─슈르르륵.
나이프들이 다시 공중에 떴다. 라리루라와 프랑이 긴장으로 몸을 움츠러트렸다. 나는 손목을 돌리면서 그녀들에게 말했다.
“프랑. 라리루라. 너희는 도망친 단장 놈을 쫓아가.”
“뭐? 싫어! 같이 쓰러트리고 쫓아가면 되잖아!”
내가 그리 말하자 두 사람은 한사코 거부했다. 나는 팔을 들어서 프랑의 머리 옆으로 뻗었다.
─쐐액!! 튕겨나가서 바닥에 떨어졌던 나이프가 프랑의 관자놀이 10cm 옆에서 멈췄다. 프랑이 흠칫 놀랐다.
“여긴 나한테 맡기고 먼저 가. 이 녀석은 수단방법을 안 가려. 도망친 단장 놈을 놓쳤다가는 무슨 일이 날지 몰라.”
나이프를 굳게 쥐고 바닥에 내려꽂았다.
뿌드득…! 쾅!!
손잡이까지 깊이 박힌 나이프는 파르르 떨다가 멈췄다.
이렇듯 독이 묻은 나이프가 어디서 날아올지도 몰랐다. 방어력이 낮은 프랑이나 라리루라에게는 너무 위험하다.
“어머, 괜찮으시겠어요?”
아나시스는 입을 가리면서 다소곳이 웃었다. 눈꼬리는 숨기지 않고 비웃음을 드러냈다.
“그렇게 폼 잡았다가 벌레처럼 바닥을 기면서 후회해도 전 몰라요? 당신은 저희 쇼에 출현시켜드릴 마음이 없으니까, 죽여드리게 될 텐데요.”
“프릭쇼 말이냐? 유감인데 나는 팔다리가 멀쩡해서. 너랑 달리 의족이 아니거든.”
내 지적에 아나시스의 웃음이 굳었다.
도발에 걸렸다. 나는 주먹을 쥔 손으로 어깨를 툭툭 치면서 미소지었다.
“너, 왼다리는 무릎 아래로 의족이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발소리가 이상해서 눈치 깠다고. 이 인성 장애인 년아.”
“……당신, 혀를 가볍게 놀린 걸 후회하게 될 겁니다.”
경박한 어조를 싹 지우고 아나시스가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왜? 빡치냐? 그 다리는 어쩌다 잃었길래? 서커스 연습을 하다가 부러지기라도 했나?”
아나시스의 목에 혈관이 돋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의식적으로 낄낄거렸다.
“맞나 보군. 그렇다면 라리루라를 졸졸 쫓아다니며 납치하려고 애쓸 만 하네. 나는 나이도 지긋한 아줌마가 왜 그렇게 재능 넘치는 젊은 후배한테 질척거리나 했지.”
작게 주문을 외워서 두 손에 불꽃을 피웠다. 타오르는 주먹을 허리에 갖췄다.
“품에 숨겨둔 단검만큼 꼴사나운 추태도 묻어 왔나? 쇼에 천천히 걸어나와서 같은 장애를 앓는 사람들을 깔보면서 우월감에라도 젖었나?”
“──닥쳐요.”
부르르르─.
아나시스의 등 뒤에 나이프가 떠올랐다. 아나시스가 팔을 당기자 바닥을 구르던 나이프까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윽. 손짓으로 일행을 물렸다. 저 사이코년의 성격을 생각하면 빡쳤다고 내가 아니라 그녀들을 노릴 수도 있었다.
“제 아무리 비밀을 알아낸 놈들을 죽이고 묻어 봤자 너 자신이 기억하고 있다면 의미가 없지. 지저에 묻힌 유적도 수백 년 뒤에는 태양 아래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나는 끝까지 도발을 내뱉었다.
저 여자가 나를 죽이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걱정 마라. 나는 고고학자다. 네 온몸을 갈갈이 찢어발겨서 추레한 비밀을 모조리 발토해주마.”
─패앵!!!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존보다 훨씬 빨라진 나이프가 날아들었다. ─챙!! 나는 사납게 으르렁대며 그것을 쳐냈다.
“네놈의 죄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죽어라, 짝다리 광대년──!!”
차가운 분노를 터트리면서 나는 움직였다.
몸을? 아니, 머리를 움직였다. 생각해라. 멍청하게 아무런 생각도 없이 달려들어서 죄다 때려잡고 이길 상대냐?
부족한 전투기술을 인텔리한 머리로 보충해라!
‘나이프의 속도를, 위력을 분석해라!’
불에 감싸인 주먹을 당기면서 대쉬했다. 아나시스는 단차의 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나이프를 쏘았다. 내 눈이 그 속도를 가늠했다.
‘내 도발에 걸려서 날린 공격보다 느려!’
─쿵! 라리루라가 물러나는 소리가 들렸다. 프랑이 떠나기 전에 날린 나이프 3개를 아나시스는 초조하게 피했다.
드워프의 완력으로 날아간 나이프가 아나시스의 옷자락을 베었다. 아나시스는 프랑에게 반격을 날리지는 않았다. 물러나는 프랑보다는 나를 경계하는 것이다.
“건방진 놈!!”
─슈슈슛!! 나이프가 매섭게 날아들었다.
여전히 느리다. 갯수는 몇 개지? 5개 이하다.
어째서 한 번에 남은 나이프를 전부 날리지 않지? 잔탄을 아끼기 위해서인가? 설마. 땅에 떨어진 나이프도 조종할 수 있는데 뭣하러 나이프를 아끼겠는가.
나는 입가를 비틀었다.
‘──알았다!’
나이프 공격의 원리가 손에 잡힐 듯이 알았다.
‘<꼭두극>의 출력 문제야!’
<꼭두극> 마법은 원래 강력한 마법이 아니다. 그래서 꼭두각시에 마법의 효과를 강화시키는 구조를 짜넣는다.
아나시스의 나이프도 마찬가지! 저 무기는 타뷸라의 가면처럼 매직 아이템으로 가공한 특수한 전용 도구일 것이었다.
‘아까 전에도 그랬지!’
처음 로만을 기습할 때, 그리고 에리카를 구해냈을 때. 날 죽이기 가장 완벽한 타이밍이었는데도 나한테 날아온 나이프는 고작 8개였다.
그중 4개는 페이크였고, 나머지 4개는 내가 회피 못 할 속도로 날아들어 내 등에 박혔다.
그건 어째서였을까.
만약 아나시스가 남은 나이프를 모조리 날렸다면 나는 에리카를 구하지도 못했을 것이며, 노르드 벌집 삼겹살이 되어서 좆창이 나버리고 말았을 텐데!
하지만 저 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를 살려두고 괴롭히기 위해서였던 것 같지는 않다. 슬럼가라고는 해도 아직 대낮이다! 아나시스는 빠르고 확실하게 나를 죽이고 뒷수습에 들어가야 할 것이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저 나이프는 갯수에 반비례해서 위력이 줄어든다!’
──공격의 위력에 하자가 있다는 것!
단발로는 속도가 느리고 여러 발로는 위력이 부족하기에, 아나시스는 싸우기에 앞서 함정을 파고 칼날에 마비독까지 발라뒀다.
갯수를 줄이면 내가 쉽게 피해버리고, 갯수를 늘리면 살상력에 결함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마 전신갑옷을 입은 것이나 다름없는 나와 싸우는 것은 아나시스에게도 큰 부담이 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날아드는 나이프를 맨손으로 쳐내고 피했다.
나이프에 대한 경계심을 낮췄다. 사람의 손은 2개다.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전부 막거나 피할 수는 없다. 그게 살인과 속임수에 익숙한 광대라면 더욱 그렇고 말이다!
빗나간 나이프가 교활하게 U턴해서 다시 달려들었다. 그 공격은 그냥 몸으로 씹었다.
─푸푸푹!
아까 공격보다 숫자가 줄어 위력이 늘어난 나이프가 내 등에 날아들어 박혔다. 치미는 고통에 나는 이빨을 악물었다.
“개새끼야!! 흉 지면 니가 A/S 해 주냐!!”
씨이발 더럽게 아프다!!
그래도 참을 만 해!! 해독 마법의 포션도 아직 내 몸에 돌고 있다!! 나이프의 위력도 마나 코팅을 뚫고 치명상을 주지는 못한다!!
“<구름 소환>!!”
발을 디뎌 뛰어오르면서 마법을 발동했다. 푸화아아악─!! 점프력에 가속도를 더해서 5미터에 달하는 단차를 한 달음에 올랐다.
─부웅! 아나시스는 불타는 조격(爪擊)을 다급하게 피했다.
백스텝을 밟으면서도 띄워놓은 나이프를 발사한다! 2개! 공중에 뜬 나를 죽이기 위해서 위력을 더욱 높일 셈인가!
“흡!!”
─터텁!!
나는 목과 배에 날아온 나이프를 붙잡았다. 개량을 거쳐서 전투용 마법으로 탈바꿈해 봤자, <꼭두극>은 저위마법이다. 야수회귀로 강화된 속도와 악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나이프에서 빠져나가려는 저항이 느껴지다 사라졌다. 내게 뺏긴 무기에 고집하지 않은 것이다. 저 씨발년은 전투의 베테랑이었다.
“이것도 피해 보시죠!!”
─척척! 아나시스가 새로운 나이프를 겨눴다.
나는 속지 않았다. 저건 페이크다. 진짜 목적은 내 뒤에서 조용히 마나를 집중시키고 있는 나이프!
저 씨발 구라쟁이 년! 내 시선을 끌고 뒤에서 뻑치기를 할 셈이로군!
“하지만 어림도 없지! 나이프살법 받아치기!”
“무슨──?! 꺄아아악!!”
빼앗은 나이프를 던졌다.
설마하니 눈앞의 페이크도, 등 뒤의 뻑치기도 씹고 역으로 공격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아나시스는 피하지 못하고 나이프에 맞았다.
─퍼퍽!! 나이프가 아나시스의 팔에 꽂혀 살과 뼈를 갈랐다. 용케도 팔로 몸을 지켰군. 반사신경 하나는 훌륭하다.
점프의 체공 시간이 끝나서 단차 위에 내려섰다.
히어로 랜딩을 크라우칭 스타트로 전환했다. 청산유수와 같은 대쉬에 아나시스의 대처가 늦었다.
“이이이익─!!”
내가 달려들자 아나시스는 멈춰서서 모든 집중력을 <꼭두극> 마법에 올인했다.
나이프에 갈무리되지 않은 막대한 마나가 담긴다!
방어력의 낮음은 꼭두각시 술사가 공유하는 약점이다! 날 접근시키지 않기 위해서 저 년도 여기서 일척건곤의 승부를 던진 것이다!
─패패패패패패팽!!
마나의 소비를 도외시한 나이프의 세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