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이이이익?!”
나는 간이 떨어지는 줄 알고 전투태세를 갖췄는데, 그 광대 인형 옆에서 잠을 자고 있던 여자애가 놀라면서 일어났다.
저 사이키델릭한 삥쿠삥쿠-핑크 머리!
존나 말할 것도 없이 남의 집에서 기르는 라리루라였다.
아니 시발 님은 왜 여기 있어요.
“서, 서, 선배? 앗? 어? 저 혹시 잠들었었나요?”
“아마 그런 것 같은데.”
“부, 부끄럽네요! 못 본 걸로 해 주시기에요?”
침을 흘렸는지 확인한 라리루라가 엉덩이를 털며 말했다. 우리 서커스 걸께서는 광대 복장 그대로인 상태로 복도에서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모습에 설마 싶어서 물었다.
“너 우리한테 인사하려고 문 앞에서 계속 기다린 거야?”
왜 그러냐 부담되게. 걍 노크 때리고 들어와서 쎄굿빠 하고 가 버려도 됐는데.
하지만 내 물음에 라리루라는 밝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게 있죠☆? 저, 어제 단장님한테 혼나고 서커스단에서 쫓겨났답니다!”
“──뭐어?!”
쫓겨났다고? 서커스단에서? 나는 그 놀라운 발언에 아직 프랑이 자고 있다는 것도 깜빡하고 입을 떡 벌렸다.
그런데도 라리루라는 태평하게 웃어댔다.
“아핫♡! ‘철이 들 때까지 혼자서 음유시인이라도 해 보다 로마니아로 돌아오렴’이라시던데요! 덕분에 링링이 3호랑 모아둔 돈, 그리고 옷만 가지고 길거리에 나앉았어요☆!”
“그, 그, 그래? 그거 참 안 됐구나.”
하긴 하지 말라는 것만 존나 골라서 해댔으니까 고용주가 해고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뭣보다 라리루라는 어지간한 브딱이 모험가보다 잘 먹고 살, 솜씨 있는 녀석이니까.
‘그런데 존나 씨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우리랑 같이 나쁜 짓을 하다가 멀쩡한 애의 경력에 흠집을 내고 호적을 파게 만든 듯한 느낌적인 느낌.
라리루라는 내 그런 죄책감을 아는지 모르는지 몸을 배배 꼬면서 물었다.
“그래서, 선배~♥? 저 말이에요? 당분간은 두 분한테 신세 좀 져도 될까요?”
“……무슨 신세?”
“에이. 거창한 건 아니구요♡? 제가 혼자서 자취를 해 본 경험이 없어서, 프랑 언니랑 선배한테 종종 도움을 받고 싶은데요~. 앗☆! 물론 제대로 은혜는 갚을게요~? 기브 앤드 테이크라는 걸로 어때요♥?”
라리루라는 손가락을 뺨에 가져다대며 애교를 부렸다.
나는 떨떠름하기는 했지만 여기서 응 좆까 해버릴 만큼 인성파탄자는 되지 못했다.
우리한테도 책임이랄 것은 어느 정도 있을 것이고, 까놓고 말해서 라리루라는 유능한 녀석이다. 친해져서 손해볼 것은 없다고 해도 좋았다.
“하아…… 알았어.”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따로 잘난 사람들은 못 된다만, 알려줄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알려줄게. 그런데 우리도 얼마 안 있으면 사르가디스로 돌아갈 걸? 그때도 따라올 수 있냐?”
“네에~♡! 만세에~!! 저, 서커스단 사람들 외의 다른 친구는 처음 사귀어봤어요☆!!”
아이고, 텐션이 상큼발랄해서 뒤져버리시겠다. 나는 골치가 아파졌다.
아무튼 얘가 매콤한 배경사정에 비해서 기운이 넘쳐서 다행이다. 우울해 하는 것보다는 저러는 편이 낫다. 억지로 기운 넘치는 척 하면서 연기하는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걱정 마세요♥! 저는 후회하고 있지 않답니다☆!”
나의 그런 시선을 눈치챘는지 라리루라가 말했다.
“선배도 그렇잖아요? 선배도 만약 에리카나 다른 아이들을 구하느라고 손해를 봤더라도 아무렇지 않았을 거죠?”
“아니, 나였으면 100% 후회했을걸.”
“네에?!”
진짜 못 들은 소리를 들었다는 것처럼 라리루라는 깜짝 놀랐다. 제자리에서 1미터는 뛰었다. 존나 뿅뿅콩콩 얌전히를 못 있는 녀석이로군.
라리루라는 눈물이 고인 눈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럴 수가! 선배, 실망이에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아니, 기분은 이해하지만! 저도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그래두 말로는 ‘나도 그럴 거야~’ 해 주실 수 있잖아요?”
“미안한데 저어는 양심에 찔리는 거짓말은 되도록 안 하는 주의라서 말이죠.”
나는 팔짱을 끼고 벽에 등을 기댔다.
납치된 아이들을 구한 대가로 라리루라처럼 자기가 투자한 직종에서 고꾸라졌다면 어땠을까.
내 경우에는 아마 석사 학위를 일시정지 당한 정도의 데미지일려나.
생각만 해도 위장이 쓰렸다. 저건 140% 후회한다. 존나게 매일 밤마다 프랑을 끌어안고 오열하다가 잠들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후회했겠지. 엄청 후회하고 찡찡 짰을 거야. 내가 도대체 왜 그랬나 하고 매일매일 눈물을 흘리면서 통곡했을 거야. ……하지만.”
만약 정말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 분노했던 부조리에 맞서 싸운 대가가 그것이었다면.
나는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서 손해만 본 셈이 되겠지만.
“하지만 그래도 분명 웃을 수 있었을 거야.”
프랑에게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자랑할 수 있다면.
나는 틀림없이 후회하면서도 웃을 수 있었을 것이었다.
“아하하☆! 그런 뜻이었어요~? 정말이지! 뭔가요, 선배도 참! 평소에는 바보 푼수떼기처럼 굴더니, 가끔씩은 괜찮은 말씀도 하시잖아요~♡”
라리루라는 내 말을 듣고 신이 나서는 방방 뛰었다.
존나 놀리는 건가? 놀리는 거지? 한 대 때릴까? 알렉산드라 씨가 발행해 준 폭력허가권도 아직 유효기간 남았을 것 같은데.
“그나저나 그 선배 운운하는 건 언제까지 할 거냐?”
“제가 질릴 때까지요! 다시 말해서 선배에서 노르드 씨로 강등당하는 날이 제 안에서의 호감도가 낮아졌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아니 첨부터 이름으로 불러 이 년아.”
“뭐 어때요♡! 노르드라는 이름도 본명이 아니시면서~!”
“이쪽에선 노르드 맞는데. 강북호라고 부르려면 오히려 더 힘들 거 아냐. 꼬우면 니도 본명 까든가.”
내가 그리 말하자 라리루라는 건방진 표정을 지었다.
“네에♥? 설마 선배, 제 이름이 알고 싶어서 은근슬쩍 수작을 부리시는 거였어요~? 쿡쿡쿡. 그렇게 알고 싶으셨던 거면 말씀을 하시지★! 그럼 얼마든지 알려드렸을 텐데~.”
“벡터-참교──”
“아앗!! 말할게요!! 말할 테니까 그거 하지 마세요!!”
라리루라는 옆구리에 철벽을 치고 말했다.
“프리실라! 프리실라에요! 제 본명! 성은 모르고요!”
“프리실라?”
내가 그 이름을 읊조리자 라리루라는 볼을 부풀렸다.
“네에~. 다 안다구요? 안 어울린다고 하실 거죠? 왜요? 제 인상이랑 안 맞게 잘난 척 젠 체 하는 느낌이죠? 다소곳한 아가씨한테나 어울릴 것 같은 이름이라고 생각하시는 거 다 알거든요~?”
“왜. 좋은 이름인데 뭘.”
노골적으로 삐진 티를 내는 라리루라에게 나는 거짓 하나 없는 본심으로 말했다.
“프리실라(Priscilla)의 어원은 로마니아 어의 Priscus야. Priscus는 ‘덕망 있는 사람’이나 ‘오래 되다’는 뜻의 단어고.”
“흐응. 그게 왜요?”
“사람 이름으로 쓰이는 프리실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으면서 오래 살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쓰여”
나는 단언했다. 내 번역능력에 들리는 뉘앙스가 부드럽고 애틋한 느낌이 들 정도니까 이 어원은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그러므로.
“프리실라. 너는 부모님께 축복 받으면서 태어난 거야.”
태어난 아이에게 붙일 이름으로써, 프리실라는 어떤 뜻으로 지어준 것인지 확연한 이름인 것이다.
프리실라, 아니 라리루라는 나의 그 말에 벙쪄버린 것처럼 멍청하게 굳어졌다. ─샤샥!! 그러고는 갑자기 손으로 목을 가렸다.
“엑? 어, 아으? 뭐, 뭐죠? 뭐에요? 이 기분은?”
눈을 굴리며 말을 더듬는 라리루라. 목덜미에 피가 쏠려서 얼굴의 피부가 불판에 던져진 숯처럼 익어갔다.
“서, 선배! 저 기분이 이상해요! 막 몸이 간질간질하고 팔다리를 주체할 수가 없는데요?! 이거 왜 이러는 건가요?!”
“너 임마. 니가 물어봐 놓고 오글거리는다곤 하지 마라.”
“오, 오글거린다? 이걸 오글거린다고 하는 건가요?”
“않이 모레는 거냐 씨불장세기가.”
얘가 하지 말라니까 노빠꾸로 박아버리네. 내가 인상을 써도 라리루라는 쥐뿔도 신경쓰지 않고 자기 뺨을 위아래로 주물러댔다.
“오글거린다! 신기한 느낌이네요! 방금 하신 말씀을 떠올리니까 얼굴이 꼭 반죽을 잘못한 빵처럼 펑 터질 것 같아요!”
“그럼…… 떠올리지 말자…….”
시발. 생각하니까 갑자기 존나 부끄럽네. 이세계식 갬성에 어느샌가 나도 물들어버렸나. 저딴 말을 어떻게 그렇게 진지하게 한 건지 모르겠다.
‘이 시발. 왠지 흑역사가 하나 더 늘어난 것 같은데.’
나까지 얼굴이 뜨겁다. 이럴 때는 어떡해야 되지?
내 엘리트한 벡터-석사 대뇌야. 정답을 알려줘.
(뇌: 쮸인님 얼른 자살을!!)
야발련아.
나는 혀를 차고서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앞으로 뭐 할 지는 생각해 봤어?”
“잘 모르겠어요☆! 선배들이 모험가니까 테이크를 기브할 때는 저도 그쪽 일을 돕게 되려나요?”
테이크를 기브하다. 존나 신박한 표현이로군.
이 새끼 본명이 프리실라 셰익스피어인가. 존나 간지 쩌는 이름이다. 보스몹일 것 같다.
“글쎄다. 일단 당분간은 쉴 생각이야. 급한 일이 생긴다면 또 모를까, 요즘 휴식 없이 너무 굴렀거든.”
내가 대답했다. 나도 프랑도 요 며칠 동안 휴일 없이 너무 굴렀다. 이제 브론즈 클래스도 달겠다, 운 좋게 모인 돈으로 며칠 정도는 휴가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호외요!!! 호외!!!!”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우리는 창밖에서 들리는 커다란 고함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존나 당연한 말인데, 15쿠퍼 짜리 여관은 15골드 짜리 토지에 있다.
샤넬 명품백 상점 옆에 하나로마트가 있는 것 봤는가? 자고로 제대로 된 가게라면 손님층에게 걸맞는 지리적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 고함소리는 범상치가 않았다.
이 부자 동네에까지 소식이 퍼질 정도의 초 거대 스캔들이 터졌다는 뜻이니까.
─메다닥!
나와 라리루라는 창문 쪽으로 달려갔다.
창밖의 거리에서 신문팔이인지 뭔지 모를 빵모자 아재가 목소리를 높여 외치고 있었다.
“──골렘떼가 사르가디스를 급습했다는 소식이오!!!”
골렘떼가. 사르가디스를. 급습?
나는 그 말을 곱씹어 봤다. 골렘떼는 골렘이 떼를 지었단 뜻이겠고, 사르가디스는 내가 홈으로 삼은 도시고, 급습이란 말은 존나 4드론 저글링 러시를 가리킬 때 쓰는 단어가 아니던가?
“흠.”
그렇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뒤에, 나는 뇌리에 떠오른 단어를 날것 고대로 주댕이에 실어서 뇌까렸다.
“아잇~ C8!”
나 좀 쉬자, 개새끼들아.
아침을 먹고 장비를 착용한 우리는 길드로 갔다.
헤이스벤트에 있는 우리의 좆소, 아우둠라 길드는 끽 해야 20평이 될까 말까 한 작은 건물이었다. 하이고 시발. 지하철 없는 시골마을 인력 사무소도 이것보단 크겠다.
“여기가 모험가 길드군요☆! 직접 오는 건 처음이에요♡!”
라리루라가 텐션 높게 외쳤다. 모험가 일에는 따로 관심이 없다는데, 골렘떼 습격이라는 소식은 신경이 쓰인다며 따라온 것이었다.
“아핫♡! 사람이 엄청 많아서 저는 못 들어가겠네요!”
그 말대로 좁다란 좆소둠라의 건물은 콩나물 시루가 되어 있었다.
소식을 듣고 이 좁은 건물에 모여든 아우둠라 길드 소속의 모험가들이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말하는 라리루라에게도 모험가들의 주목이 잔뜩 끌렸다. 도시의 유명한 서커스단의 에이스가 분명하고 돌아다니니까 그럴 만도 했다.
─끼이익. 쿵.
아니면 저 이세계 헐크 조커 때문일 수도 있고.
“야. 그 친구는 집 보기 하고 있는 편이 낫겠는데. 이목이 좀 많이 끌리는 것 같지 않냐?”
“아앗! 죄송해요~? 그치만 이 아이 몸값이 비싸서요. 어디 맡기자니 저도 아직 여관을 안 잡아서요!”
내 말에 마나의 실을 팽팽하게 당기는 라리루라.
링링이 3호도 라리루라의 조작을 따라서 상처받은 것처럼 몸을 웅크렸다. 근데 시발 생긴 게 너무 무서워서 좆도 불쌍하질 않았다.
프랑이 그런 링링이 3호를 보며 말했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확실히 비싸 보이긴 해.”
“그렇다구요? 이 링링이 3호는 단장님한테 전별 선물로 받은 아이인데, 원래 서커스단에서 무력진압이 필요할 때에 쓰려고 돈을 모아서 제조했다는 편력이 있답니다!”
“전투용 꼭두각시란 뜻이냐? 우리 중에서 몸값으로는 제일 나갈지도 모르겠구만.”
내가 말했다. 저 이세계 헐크 조커 놈, 20노르드까지는 안 가도 10~15노르드는 찍을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제조비도 꽤 깨졌을 물건을 간단히 선물하다니. 알렉산드라나 서커스단원들은 아닌 척 하면서도 라리루라의 신변을 상당히 걱정하고 있는 것이겠지.
딸내미를 자아 찾기 여행을 보내는 느낌일까? 그거야 걱정이 될 만 했다.
서커스단원들의 걱정을 라리루라도 당연히 느꼈는지 링링이 3호를 보는 눈빛에는 따스함이 가득했다.
아무튼 그렇게 이목이 끌렸지만 좁은 건물로 들어갈 공간은 어디에도 안 보였다. 것보다 지금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어서 자리가 나질 않았다.
“애매한 타이밍에 왔나 봐.”
프랑이 말했다. 존나 동감이다. 어디어디 주가 좋다는 소식을 듣고 개미들이 몰려든 주식시장 같은 느낌이다.
시발 몰려들었다는 게 골렘이 아니라 개미떼였나. 개미떼가 눈에 보일 정도면 그 주식에서는 손 떼라고 하던데.
“으윽!! 크아아악!! 여, 여러분!! 잠시 비켜주십시오!”
그때 콩나물 시루 길드에서 낑낑 거리며 힘겹게 빠져나오는 접수원이 한 사람.
“주, 주목!! 아우둠라 길드의 모험가 여러분!! 주목해 주십시오!!”
마치 치루환자의 숙변처럼 고통 끝의 출산을 이뤄낸 그는 싸움을 멈춰달라고 외치는 듯한 결연함으로 말했다. 뭐지? 우리 길드가 드디어 상장폐지를 당했나? 아우둠라 길드 서비스 종료의 날인가?
“엊그제 보고된 사르가디스 골렘 습격에 대한 안내사항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를 알아보기 위해서 방문하신 모험가 분들은 제게 주목해 주십시오!!”
개꿀이다. 저 인파를 뚫고 들어가지 않아도 소식을 들을 수 있다니. ─와글와글! 모여 있던 모험가들도 그 말에 시선을 모았다.
“여보쇼!!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이나 들읍시다!!”
“그렇소!! 골렘떼가 습격했다면서!! 사르가디스는 어떻게 된 거요?!”
“여러분들, 안심하십시오!! 사르가디스는 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