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1화 (111/1,009)

작게 웃는 프랑의 뺨에 키스를 해 주고 나는 옷을 입었다.

오늘의 예정도 하루 종일 골렘 사냥이다.

앞으로 골렘을 수십 마리만 더 잡으면, 룬을 하나 더 습득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이 여관에 묵으면서 생기는 최고 단점은 하나다.

가면을 써야 해서 식당을 이용 못 한다는 거.

‘존나 맛있어 보이는데.’

프랑이랑 1층으로 내려오자 우아한 아침 식사를 즐기는 손님들이 보았다. 하루 15만원 값의 호텔에서 묵는 사람들이라 입은 옷에서부터 귀티가 난다.

─소근소근.

그런데 그 귀티 나는 사람들이 어째선지 우리를 주목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것이 전직 대학원생 나부랭이가 이런 곳에서 기어오다니 염치도 없구만~ 하는 욕인 줄로만 알았는데, 귀를 기울여보니 그런 얘기가 아니었다.

“저 사람들이 소문으로 듣던 그……?”

“아마 맞을 거요. 경비병들이 기다리고 있잖소.”

“세상에나. 왕가에서 나온 사람들일까요?”

“모르겠소만 조심하는 것이 낫겠소. 우리 대화도 저들에게 들리는 중일 수도 있으니.”

─움찔. 상인 같은 남자의 말에 약간 정곡을 찔린 나였다.

‘알게 모르게 소문이 퍼졌나?’

다른 도시에까지 알려졌던 납치 사건을 해결한 거다. 우리 신변은 익명으로 부탁했어도 소문 정도는 퍼졌던 모양이다.

‘인상 미채’로 신분을 숨기고 다니길 잘 했다. 귀찮은 일은 피하는 게 좋으니까 말이다.

엿듣기를 관두고 일을 하려 나가려는데, 여관 정문 앞에서 경비병으로 보이는 남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보고 화색이 되었다.

“아아! 웨인 씨! 오셨군요!”

“예.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또 무슨 일로?”

“그것이…… 저번 일의 계산이 일단락되었다고 대장님이 웨인 씨를 모셔오라며 보내셨습니다.”

계산이라고 할 만한 건 그것밖에 없겠지. 크림소스 서커스단의 재산 분배가 대충 정리된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빨랐군요.”

“서커스 용품은 어떻게 처분하기도 곤란한 물건이라서, 가지고 있던 화폐와 문서 등만 처분하면 됐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대장님께 들으시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동료도 같이 가는 편이 좋을 텐데, 잠시 들렀다 가도 되겠습니까?”

“아, 라리루라 씨라면 제 동료가 갔으니 걱정 마십시오.”

따로 사람을 보냈나 보다. 먼 길 돌아갈 필요 없다고 하니 우리는 시키는대로 경비병을 따라갔다.

‘보수를 받으면 골렘 잡지 말고 사르가디스로 갈까?’

골렘은 여기보다는 사르가디스 근처에 더 많을 것이었다. 무리에서 낙오된 골렘을 잡는 것보다는 토벌대에 참여하는 게 더 효율이 좋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경비대로 갔다.

일단 내가 일행의 대표로서 경비대장을 만났다.

“이게 즉시 처분이 가능했던 재산의 절반입니다.”

─촤르륵!

경비대장은 작은 주머니를 테이블에 올려놨다.

상당히 가벼운 소리가 나는군. 아무래도 동전의 양이 적은 모양이었다. 은화인가?

“전부 해서 3골드 13실버입니다.”

“………………예?”

“정확히는 3골드 12실버 89쿠퍼였습니다만, 11쿠퍼는 반올림해서 넣었습니다. 들고 다니기 편하시도록요.”

경비대장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가면 밑으로 입을 떡 벌리느라고 대답을 하질 못했다.

어, 얼마라고? 3골드? 금화 3개?

3골드 13실버면 313실버고 313실버면 31300쿠퍼다.

다시 말해서 노르드 환율법에 따른 원화 환산 가치는──

‘3억…… 1300만원?’

나는 그 금액을 실감할 수가 없어서 머리가 띵해졌다.

3억! 그게 어디 뉘집 개 이름이던가?

길다가 1만원만 주워도 개꿀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3억 1300만원이면 그걸 3만번 반복하고도 1300번을 더 주워야만 하는 금액인 것이다!

‘3억이면 시발 천원으로 바꿔도 작은 단칸방 쯤은 빼곡하게 채우겠다.’

존나 유능한 며느리는 3억을 천원짜리로 바꿔서 방 안을 가득 채웠어요! 대감님은 그 재력에 바지적삼을 적시면서 아드님과 결혼해 달라며 애걸했답니다!

물론 물가의 인플레이션이 미쳐 돌아가는 21세기 한국에서는 그렇게까지 큰 금액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었다.

집값이 억으로 2자릿수인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을 생각하면 특히나 그러하다.

하지만 그래도 3억이다.

한 달에 100만원씩 저축해도 300개월, 25년이 걸리는 금액이라는 말이다!!

“서커스단의 재산은 대부분이 동물들이라서 정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모양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노예들과 동물들의 판매가 끝나면 그 판매금의 절반도 정산 받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씨발! 심지어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걸로 짐작하기로는 오히려 3골드는 재산의 일부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정의는 존나 돈이 되는구나.’

저스티스 이즈 머니.

이래서 벡터맨들도 지구용사로서 힘 쓰며 싸워왔던 걸까? 생명수당은 안 나와도 한탕 크게 칠 수 있으니 정의의 영웅도 할 만한 짓이 맞는 것 같다.

“동물들의 판매가 끝나려면 최소 1달은 걸릴 듯 합니다.”

내 경악스러운 기분이 매지컬-마스크에 감춰진 탓일까. 우리 친절한 경비대장님은 나의 놀람을 짐작하지 못하고 계속 말했다.

“헌데 웨인 씨처럼 다망하신 분을 1달이나 붙잡아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정말 죄송하지만 남은 금액은 다음에 다시 방문하셔서 수령해 가 주심이 어떠실까요?”

“어어…… 제 계좌에 입금해 주셔도 되는데요.”

“괜찮으십니까? 신분이 새어나가실지도 모릅니다.”

경비대장은 걱정스러운 것처럼 말했다. 여기서 내 통장의 명의를 까면 내 신원이 탄로날까봐 저러는 것이었다.

21세기에서도 대포 통장은 못 만들었지 않은가. 내 신분을 몰라서는 은행에다가 돈을 못 넣는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렇다.

“상관 없습니다. 제 계좌는 암호화 처리가 되어 있어서 지정 암호만 부르시면 그쪽으로 입금이 가능해서요.”

“아아! 이거 참, 실례했습니다. 제가 몰라 뵀군요.”

크게 감탄하며 내게 선망의 눈빛을 보내는 경비대장.

그에게는 내가 ‘국가에서 계좌에 암호화를 걸어줄 정도로 대단한 인물’로라도 보이는 걸까.

‘저어는 그런 거 아닌데요…….’

그 실태는 내가 고고학계 차원에서 학자들의 신변 보호를 도맡아 주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경비대장의 부담 되는 눈초리를 받으면서 금액을 챙겼다.

그나저나 동물들의 판매가라…….

“……판매금의 내역이 적힌 영수증을 주시겠습니까? 잠시 동료들과 상담할 안건이 생긴 듯 하군요.”

“예. 얼마든지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는 경비대장의 허락을 맡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프랑과 라리루라에게로 갔다.

“3, 3골드?”

프랑은 내가 말한 금액에 나랑 똑같은 반응을 보였지만, 라리루라는 그다지 놀란 느낌이 아니었다.

“집단이 커지면 돈의 액수도 느는 법이죠☆ 총 재산의 절반이라지만, 6골드 정도여도 상단이나 서커스단으로서는 평균적인 금액이네요☆”

“단체로 보면 그럴지 몰라도, 이거 머릿수로 나누면 인당 1골드야. 한 사람한테 1골드면 존나 큰 돈 아니냐?”

“넷? 네? 저한테도 주시게요?”

라리루라는 깜짝 놀랐다. 얘는 뭘 놀라고 앉은 건지.

“당연한 거 아니냐? 너 없었으면 나 아나시스한테 나이프 쳐맞고 뒤졌을 걸.”

라리루라가 아니었으면 프랑이 왔었어도 우리 둘 다 죽고 말았겠지. 내가 회복하는 동안에 프랑과 에리카가 나이프에 찔려서 벌집이 되어버렸을 것이었다.

“당분간 같이 일할 건데 돈 가지고 정 없게 구는 건 몹쓸 짓이잖냐.”

이것도 이유로서는 꽤 크다.

동료가 내 손에 들어올 1억을 삥땅쳤다고 생각해 봐라. 사람 나름으로는 우발적인 살인까지 일어날 수 있는 금액이다.

그래서 이 녀석한테 1골드를 주면서 아쉬움은 없었다.

미안. 구라다. 존나 아쉽다. 그래도 친한 사이일 수록 돈은 깨끗하게 주고 받는 것이 좋으니까.

“나랑 프랑의 목숨값은 1골드보다 비싸. 걍 얌전히 받아.”

“……고, 고맙습니다.”

움츠러드는 라리루한테 돈을 쥐어주며 우리는 보수를 정확하게 3등분했다.

하지만 내가 상담하러 온 것은 이 안건이 아니었다.

“이건 일단 빠르게 처분 가능한 금액이라더라. 동물들이 다 팔리면 아마 이것보다 큰 돈이 들어올 거야.”

내 조촐한 경제관념으로는 도저히 언더스탠드가 불가능한 일인데, 잘 생각해 보니까 그럭저럭 이해가 갔다.

현실에서도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은 기본 천만원부터 시작했다. 수십 마리의 리빙-애니멀들을 팔아치우면 진짜 억 소리 나는 돈이 굴러들어오고 말 것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그 동물들의 판매금은 피해자들이나 다른 좋은 곳에 쓰고 싶거든. 이것도 3등분할 거지만 너희 의견도 들어보려고.”

“좋은 일?”

“굳이 좋은 일이 아니어도 돼. 아무튼 개인적으로 쓰긴 좀 싫어서. 내가 팔려나간 동물들의 처우까지 커버해줄 여유는 없어도, 그 녀석들을 팔아치운 돈으로 호의호식하는 건 영 내키질 않네.”

이게 내 솔직한 본심이었다.

서커스단에서는 함께 혁명을 펼치며 싸워놓고는 뒤에서 그 친구들을 노예로 팔아치우고 돈을 낼름한다?

그래서야 존나 혁명 끝에 부르주아가 공산당원으로 바뀌었을 뿐인 독재자 엔딩이다.

나는 공산주의의 현실적인 말로를 걸을 생각은 없다.

시발 그건 완전 시뻘갱이잖아. 토사구팽도 양심이 터지는 선에서 해야지, 저것은 나중에 도시락 폭탄을 맞아도 할 말이 없을 개쓰레기짓이었다.

암만 내 이름이 북호(北互)라지만 나는 진짜로 북괴 빨갱이 독재자 돼지새끼가 되기는 싫다, 이 말이다.

이것은 결코 로지컬한 문제가 아니다.

프로-프롤레탈리아로서의 프라이드의 프로블럼인 것이다.

내가 돈을 위해서 동료를 팔아치우는 개새끼가 되는가 아닌가의 갈림길!

여기서 그들의 목숨값을 내 주머니에 넣는다면 그것은 대학원생들을 착취하고 유린하는 교수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그걸 사회복지에 쓴다면?’

사! 회! 복! 지!

부의 평등한 재분배!

아, 이 얼마나 시뻘건 단어란 말인가!

동물농장에서 펼쳐진 자유를 위한 투쟁의 결과가, 똑같은 처지에 놓였던 프롤레타리아들을 위한 복지에 쓰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터내셔널이다.

내가 떠올린 생각이지만 존나 멋진 아이디어였다. 나의 이 제안을 들으면 마르크스와 레닌도 무덤을 찢고 레드-스켈레톤으로 부활하여 공산주의 혁명의 붉은 횃불을 불태울 것임이 분명하리라!!

“저는 찬성이에요☆!”

손까지 들며 내 의견에 동조하는 라리루라.

“에리카네 고아원에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것도 괜찮네요! 크뤼소스 서커스단이 사람들의 고혈을 짜내서 번 돈이니까, 좋은 일에 쓰이면 좋잖아요~♡!”

“나도 상관 없어. 솔직히 노르랑 나랑 해서 2골드만 돼도 어디에 쓰면 좋을지 상상도 안 가는걸.”

그렇게 일행들은 내 생각에 동의했다. 왠지 미안해진다. 이건 내 이기적인 위선이었으니까 자기들 몫은 챙겨도 상관없었는데 말이다.

“그래. 그럼 일단 신분 보호가 되는 내 통장으로 받아놓고 나중에 현찰로 인출해서 분배하자.”

“네~☆! 중간에 빼돌리시면 안 돼요?”

“하하하! 요년이☆”

“아팟?!”

까부는 라리루라를 적당히 쥐어박아주고 경비대장한테로 돌아간 나는, 거기서 나를 기다리던 작은 여자애를 만났다.

<로잔나?>

<앗! 오빠!>

곱추 소녀 로잔나였다. 놀랍게도 저번에 봤을 때보다 허리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있었다.

─슬쩍. 내가 눈길을 주자 고개를 끄덕이는 경비대장. 잠깐 대화하는 시간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오셨다는 얘기를 듣고 왔어요! 저번에는 제대로 감사도 못 드렸으니까…….>

로잔나가 말했다. 그러고 보면 이 애랑은 황급하게 헤어지느라고 인사도 제대로 못 했구나.

<고마워요. 로잔나도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네! 로마니아에서 집행…? 아무튼, 경비대 같은 사람이 오신대요! 그 분들이랑 돌아가면 돼요!>

<정말요? 다행이네요.>

아나시스와 로만의 처형을 맡은 집행관이 이 아이들도 데려가는 모양이다. 로잔나는 희망이 가득찬 눈을 빛냈다.

<저요! 이제 치료받아서 허리도 펴고, 엄마 아빠도 다시 보러 갈 거에요! 그래서 어른이 되면 오빠언니들한테 인사하러 다시 브리타니아에 올 거에요!>

<하하. 그러지 말아요. 저희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이 많으니까, 로잔나가 엄마 아빠 말을 잘 듣고 있으면 다시 만나러 갈게요.>

<정말요?! 몇 밤 정도 기다리면 돼요?>

몇 밤이라. 어린애들다운 표현이었다. 유튜브와 게임으로 인성이 쿠크르삥뽕 터져나가는 21세기 잼민이들에게는 보기 힘든 순수함이군. 존나 감동이 멈추질 않는다.

<으음. 100일 밤 정도?>

<100일이요……? 으으, 네! 저 기다릴게요!>

로잔나는 두손두발을 다 동원해도 세지 못할 커다란 숫자에 시무룩해졌다가 다시 힘을 냈다.

─쓰담쓰담.

나는 그런 로잔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마 나랑 로잔나가 다시 만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 이 아이의 미래는 뭘 해도 고통을 참는 것 외에는 불가능하던 서커스단 시절과는 다르다.

100일 뒤에 내가 찾아가지 않으면 슬퍼하겠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다 보면 어린 시절의 은인 쯤은 기억에서 잊어버려 주겠지.

사람은 다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니까.

로잔나는 내 손길에 울먹거리다가 서투른 브리타니아 어로 말했다.

“……아, 안넝히… 게세요. 오빠.”

<네. 로잔나. 로잔나도 잘 지내세요. 약속이에요?>

<흑…. 으흑, 네에…….>

결국 울음보를 터트린 로잔나를 수녀로 보이는 여성이 데리고 돌아갔다. 경비대장은 생긴 거랑 안 어울리게 두 눈에서 눈물을 쏟더라.

나는 그런 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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