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2화 (112/1,009)

“저 애들을 포함한 로마니아의 애들은 로마니아의 집행관께서 데려가시는 겁니까?”

“크흠, 따흑…. 예에. 가서 부모님과 만나고, 치료를 받을 거라고 합니다.”

“그런가요. 잘 됐군요.”

나는 먼저 의자에 앉아서 경비대장이 앉기를 권했다. 조금 무례한 행동이지만 아서 웨인은 이렇게 굴어도 된다.

“로잔나처럼 몸이 뒤틀린 애들의 치료비는 제가 내죠. 제 명의로 들어오는 동물들의 판매가에서 치료비를 차감할 수 있도록 계약서를 씁시다.”

“그 계약서를 로마니아의 집행관 분에게 주십시오. 절차는 그쪽 분들이 진행해 주실 겁니다.”

“……아, 예!”

경비대장은 당황해서 내게 계약서를 가져왔다.

후원자나 피해자 지원에 사용되는 계약서였다. 나는 존나 부담되는 경비병의 존경 어린 시선에 내심 쭈그러들면서 왼손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필체 봐라 시발. 좆에다가 잉크를 발라서 써도 이것보다는 잘 쓰겠네.

“이걸로 금액에 관련된 절차는 끝났군요.”

“그렇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 여러분이 해 주셨죠 뭘. 그것보다── 제가 부탁드렸던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내가 이번 방문의 주 목적을 언급하자 경비대장도 진지한 분위기가 되었다.

“아, 그거라면 이쪽으로 오십시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끼이익!

경비대 안의 유류품 창고에 내가 찾던 물건이 있었다.

검은색 여성용 가죽 갑옷이다. 내 눈은 거기서부터 은근히 느껴지는 마나를 느꼈다. 저 갑옷은 매직 아이템인 것이다.

“나이프만 담을 수 있도록 기능이 한정된 <아공간 주머니(Portable Subspace)>의 갑옷과, <꼭두극(Puppetry)> 마법이 걸린 나이프 48개.”

─꿀꺽! 경비대장은 내가 아나시스를 쓰러트리고 빼앗은 물건을 보면서 긴장된 것처럼 침을 삼켰다.

“감정 결과, 5성급과 7성급의 매직 아이템입니다.”

“48개라……? 나이프가 하나 더 늘었군요?”

나는 경비대장의 말을 듣고 물었다.

현장에서 내가 챙긴 나이프는 총 47개였다. 50개가 아닌 것은 싸우느라고 몇 개 정도는 때려부숴버렸기 때문이었다.

“예. 전투를 치르신 장소를 조사했더니 하나가 더 발견되었기에 갑옷 안에 넣어두었습니다.”

“아아, 그거 감사합니다. 사용법은 뭐라더랍니까?”

“품 안쪽의 주머니에 길이 20cm 이하의 나이프를 최대 30kg까지 넣을 수 있다고 합니다. 꺼내는 것은 손을 넣거나 <꼭두극>이라는 마법으로 꺼내면 됩니다.”

“훌륭하군요.”

나는 그 성능을 듣고 감탄했다.

진짜로 훌륭했다. <아공간 주머니>는 난이도가 높은 마법이라서 매직 아이템으로 가공하기도 쉽지 않으니까.

‘그래서 기능을 한정해서 제작 난이도를 낮춘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저 갑옷이 싸구려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오히려 금화를 내도 거스름돈을 별로 돌려받지 못할 정도로 비싼 물건일 것이었다.

“소유권 절차는 이전이 됐겠죠?”

“예. 이제는 법적으로도 완벽하게 웨인 씨의 물건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뭘요. 다 여러분들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겸허하게 말하는 주댕이랑은 달리 내 손은 재빠르게 갑옷을 챙겼다. 나이프 48개가 들어간 물건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벼웠다.

‘히히. 프랑 줘야지!’

이건 라리루라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없는 물건이었다. 중간에 도움을 줬지만 아나시스를 조진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잡은 거였으니까.

솔직히 그 미치광이 나이프살법녀를 안 죽고 조질 수 있는 사람은 우리 파티에 나밖에 없었고 말이다.

걱정되는 게 있다면 프랑이 싸이코 아동학대 팔다리 장애년의 물건을 쓰기 싫어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게임에서는 세상을 타노스 해 놓은 싸이코 대악마의 검도 빼앗아서 무기로 쓰는 법이지만, 현실에서는 아동살인마가 쓰던 연장을 기분 좋게 쓰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고마워! 노르!”

그런데 다행히 프랑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경비대장과 작별하고 온 내가 갑옷을 주자 프랑은 순수하게 기뻐했다. 나는 조금 신경이 쓰여서 말했다.

“프랑. 찝찝하면 억지로 안 써도 돼.”

“아니야. 무기에는 잘못이 없는걸. 아나시스랑 똑같은 전법을 쓰기는 싫지만, 나도 나름대로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 볼게.”

“아이고. 우리 프랑 참 착하다. 오구오구.”

“헤헤. 노르한테는 맨날 받기만 하네.”

“어허.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다른 남자들은 백만금을 들여도 못 받는 네 사랑을 매일 공짜로 받잖아. 이딴 매직 아이템은 하루치 이자도 못 돼.”

나는 그렇게 단언했다. 천사 같은 프랑을 안아서 등을 마구 쓰다듬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행태를 짜게 식은 눈으로 구경하는 라리루라.

“저기요~? 저를 두고 두 분이서 애정행각으로 들어가지 말아 주실래요~? 저 완전 해수면에 떠다니는 미역줄기라도 된 느낌인데요~?”

“아아. 그건 「꼴 받는다」는 것이다. 옆구리가 시린 솔로들이나 느끼는 감정이지.”

“아핫. 선배랑 같이 있으면~ 듣도 보도 못한 브리타니아 어를 마아않이~ 배우네요오~?”

“웃을 거면 눈도 웃으렴. 입꼬리만 올리지 말고.”

아무튼 간에 이 매직 아이템 세트는 큰 수확이었다. 우리 프랑에게 ‘궤도가 변하는 나이프’랑, ‘나이프를 보관하는 아이템’은 찰떡궁합이니까.

나는 프랑을 놓아주고 말했다.

“어쨌든 이걸로 헤이스벤트에서 할 일은 끝났어. 오늘부터 사르가디스로 돌아갈 생각인데, 남은 용무 있는 사람?”

“아앗! 그거 말인데요! 저희 오늘은 마차를 타고 돌아가지 않으실래요?!”

“마차?”

“네! 돈도 많이 벌었으니까요☆!”

라리루라는 여봐란 듯이 손가락을 꼽았다.

“게다가 걸어서 돌아가면 저녁에나 도착하잖아요? 그러면 길드에서 이야기를 듣고 정보를 모아서 정리하면 또 하루를 꽁으로 낭비할 걸요? 완전 시간 낭비잖아요♡!”

“니가 링링이 3호를 하루 종일 조종하면서 돌아갈 자신이 없는 게 아니고?”

“그치마안! 저 혼자 돌아가면 쓸쓸한 걸요!”

가짜 눈물인 거 훤히 보이니까 울지 마 색갸. 나는 애교발랄한 라리루라의 우는 시늉에 낄낄댔다.

“까짓거 그렇게 하지 뭐. 얼마 하지도 않을 거고. 아, 너희 로잔나한테 인사하러 갈 거냐?”

“아뇨. 저번에 했으니까 괜찮아요. 또 울리긴 싫어서☆!”

“나도 됐어. 이별은 깔끔한 편이 좋다고 베이냐 씨도 그랬으니까. 그러는 노르는 에리카한테 인사 안 해도 돼?”

“아앗, 맞아요! 에리카가 인사하고 싶어했는데요!”

“사양할련다. 아서 웨인으로 만나자니 어색하고, 노르드로 만나자니 별로 접점도 없잖아.”

가면 쓴 수상한 놈 VS 하루 같이 놀았던 모르는 아저씨.

존나 게이한테 박기 VS 게이한테 박히기 급의 씹쌉 황금 밸런스였다. 내가 가도 ‘고맙습니다’ 다음으로 이어질 대화가 아무 것도 없을 것이었다.

“가 봤자 분위기만 어색해 질 것 같으니까 나는 패스.”

“정말~ 어쩔 수 없네요, 선배는! 그러면 제가 대신 가서 그 말이라도 전해주고 올게요!”

라리루라는 V자 손가락을 눈에 대며 말했다.

“가는 김에 마차도 예약하죠 뭐! 있다가 두 분이 묵는 여관으로 갈 테니까 기다리고 계세요~?”

“나도 마법사 길드에 들렀다 갈 거니까 천천히 와.”

─우다다다! 대답은 잘 해 놓고 달려가는 라리루라였다.

쟨 천천히 가라는 말의 뜻을 모르나? 로마니아 어로 말해 줄 걸 그랬다.

“노르. 부여 마법에 쓸 물건 사러 가는 거지? 같이 가자.”

내 손을 잡으면서 프랑이 말했다. 아아, 스킨쉽의 생활화. 아주 좆군. 나는 프랑의 손에 깍지를 꼈다.

‘그런데 왜 사고뭉치 아들내미 심부름에 따라가 주는 엄마 눈빛이지.’

자기 눈 밖에 난 틈에 또 뭔가 사건을 저지를까봐 저러나. 존나 내가 기숙사 생활 한다고 말했을 때의 우리 어머니랑 눈빛이 똑같은데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은 판타지 이세계에서 모친이 짝수가 되었읍미다…….’

불주먹 에이스 뺨치는 불꽃 효도르 외동아들을 용서하여 주십셔. 머지 않아 꼭 다시 뵈러 갈게요.

나는 언젠가 프랑을 데리고 가족에게 돌아가겠다는 결의를 다시금 굳게 다졌다.

마법사 길드에서 연금 용액을 사 오자 라리루라도 여관에 돌아왔다. 이유는 몰라도 가면을 쓰고 말이다.

“뭐야. 미행이라도 당했냐?”

“훌쩍. 아뇨. 화장이 번졌어요…….”

에리카와 눈물의 이별을 나눴는지 가면을 벗은 라리루라는 화장이 엉망진창이었다.

“에리카가 말이죠? 나중에 꼭 음유시인이 되어서 저희를 만나러 오겠대요…. 그래서 다치지 말고 힘내란 뜻으로 제가 서커스를 할 때 쓰는 나이프도 한 자루 주고 왔어요…….”

“울지 마. 프리실라.”

“후에엥, 프랑 언니……. 본명으로 부르진 말아여어…….”

“그래, 그래.”

프랑에게 안겨서 위로받는 라리루라. 나는 골렘의 코어를 주머니에 넣고 프랑의 망치로 빻으면서 구경했다. 이게 그 민달팽이인가 뭔가 하는 그거구마잉.

─쿵쿵빻빻.

가루가 된 골렘의 코어를 잉크 단지 같은 연금 용액에다가 부었다.

잉크를 다 쓰면 농도 조절이 어렵다. 그래서 같이 산 작은 그릇에 잉크를 붓고 거기에 골렘 코어 가루를 녹였다.

“크흥. 큼. 그래서 프랑 언니. 저 갑옷은 입어 보셨어요?”

“응. 그런데 가슴이 많이 끼더라구. 그래서 마법진 위치를 길드에서 물어보고 가공하는 법도 대충 듣고 왔어.”

“우와…… 정말요? 언니 왕찌찌 너무 부러워요…….”

“와, 왕…?! 저기, 라리루라? 브리타니아 어로 찌찌란 말은 별로 일반적인 표현이 아닌데?”

잉크를 가공하던 나는 그 말에 척추반사로 읊조렸다.

“프랑 찌찌 브리타니아 제일 찌찌…….”

“노르!”

“아, 미안.”

킹치만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더라. 팩트인걸.

나는 살면서 프랑보다 큰 가슴을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런 프랑의 남친인 나는 세계문화유산의 공동 소유자라고 할 수 있겠다.

혼난 내가 눈을 돌리자 프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라리루라에게 물었다.

“라리루라. <꼭두극> 마법에도 요령 같은 거 없을까? 나이프를 조작해 보니까 꽤 어렵더라.”

“죄송해요. 저는 나이프로 <꼭두극>을 쓴다는 발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떤 감각인지 잘 몰라요. <꼭두극> 마법으로 연습하시는 거라면 도와드릴 수 있겠지만요?”

“그건 나중에 부탁할게. 지금은 다른 것부터 집중하려구.”

프랑은 그리 말하면서 나를 쳐다봤다. 마나 각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선배는 뭐 하고 계시는 거에요?”

프랑에게 안긴 라리루라가 물었다.

프랑의 품에서 떨어질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우리 여친님의 모성애 가득한 찌찌는 품에 안긴 사람을 유소년기로 되돌리는 20세기 박물관인 것이다.

“부여 마법으로 매직 아이템으로 만드는 중이야. 그 왜, 너도 봤던 그 책자를 보고 배웠어.”

“크라운 크라운 님의 책 말씀이시죠? 선배~ 나중에 저도 빌려 봐도 돼요~?”

“너도 부여마법 배우게?”

“거기엔 별로 관심 없지만, 팬으로서의 호기심이에요~♥”

빠순이 티 내기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중에 너한테 파마.”

“야호♡! 아, 그런데 지금은 뭐하세요? 잉크에 마나 넣고 계신 건가요~?”

“어. 매직 아이템은 마나를 충전해 놓는 거랑 쓰는 사람의 마나를 사용하는 거로 나뉜다길래, 충전식으로 만들려고.”

아나시스의 나이프는 후자였고 타뷸라의 가면은 전자였다.

‘나는 이제껏 타뷸라의 가면에서 마나를 못 느꼈지만.’

처음에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엘리트한 대갈통을 굴려 보니 금방 눈치를 깔 수 있었다.

‘하긴 은신 아이템인데 마나가 새서 어쩌겠어.’

그래서야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 어쌔신이나 다름 없다.

확인해 보니까 역방향의 ᚲ(Kenaz)는 은신의 부가적인 효과로 마나의 기척도 숨겨주었다. 그래서 마나 충전식이어도 난 거기에 깃든 마나를 감지 못했던 것이었다.

내가 ᚲ(Kenaz)의 룬을 각성한 것도 그걸로 설명이 된다.

가면이 내 마나를 흡수해서 충전하느라고 내 안에서 룬의 마나가 반응한 것이겠지.

“아무튼 이걸로 완성이다.”

나는 그리 말하며 프랑의 가면에 음각(陰刻)한 부분에다 ᚲ(Kenaz)의 룬을 칠했다. 이렇게 안 하면 지워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룬이 내 마나를 흡수하면서 가면 전체가 녹색 마나로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오오…… 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하려다가 말았다.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던 탓이었다. 왤케 오래 걸려 시발. 이러다 저, 할머니가 되어 버려요?

그때 흡수를 마친 가면이 원래 색을 되찾았다. 나는 룬을 만져서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점검하고 프랑에게 주었다.

“프랑. 써 봐.”

프랑은 시키는대로 가면을 썼다. 의식을 집중해서 가면에 흘러들어가는 마나를 차단했다.

─휘익.

그런데도 프랑의 기척은 내가 룬을 썼을 때처럼 흐려졌다. 매직 아이템으로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라리루라가 만세를 하면서 밝게 외쳤다.

“성공했네요☆! 축하드려요!”

“흐흐. 룬 마법은 부여 마법 중에서도 난이도가 낮거든.”

다른 마법은 추가적인 가공이 필요해서 재료도 더 들고 만들기도 힘들다.

하지만 룬 마법은 원래 ‘새겨서’ 발동하는 것!

홉 고블린 새끼조차 천장에 룬을 새기고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을 내가 못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내 말에 프랑은 가면을 벗으면서 웃었다.

“고마워, 노르. 잘 쓸게.”

“그래 주라. 근데 조심하기다? 재료가 싸구려라서 그런지 내가 마나를 꽉 채워도 반나절도 못 가.”

약해빠진 골렘의 코어라서 어쩔 수 없었다.

근데 그렇게 치면 타뷸라의 가면은 대체 얼마나 비싼 재료를 쓴 걸까. 역시 내가 룬 부여 마법을 쓸 수 있게 됐다지만 이 가면은 버리기 아깝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