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만 확실하다면 상관없다.”
그럼 라리루라도 낄 수 있겠네. 칼라일의 대답에 나는 이 토벌대에 우리가 비벼볼 깜냥이 될지 계산을 해 보았다.
‘흑마법사도 숲에서 목격됐다고 하니까, 골렘의 발생지에서 큰 트러블이 일어나지는 않겠지.’
골렘의 발생지는 연합에서도 한 차례 조사해서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니까 아마 괜찮을 것이었다. 설마 흑마법사가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은신처의 위치를 저기로 옮겼겠는가. 연합 사람들도 은신처를 감시할 인원 쯤은 뒀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참여하죠.”
룬의 숙련도를 벌 찬스이기도 하고,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같이 싸우는 모험가들이 1층에도 저렇게 많지 않은가.
냉정한 이야기이기는 한데, 저들이 어그로를 끌어준다면 우리 파티가 몸을 뺄 여유 정도는 있을 것이었다.
아마 저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1층으로 가서 프랑과 라리루라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프랑은 내 설명을 듣고 물었다.
“보수는 어떻게 된대?”
“코어는 각자 사냥한 걸 가져가면 되고, 기본 30쿠퍼에 하루 당 15쿠퍼 추가래.”
“꽤 높네. 당일에 모집하는 의뢰라서 사람이 급한가?”
“그런가 봐.”
설명을 들어보니 접수처에서 ‘오늘 토벌대 의뢰가 있다’고 브론즈 클래스 모험가들에게 매번 알려준 모양이었다.
그래서 저렇게 많은 인원들이 길드에서 대기하는 거였나. 라리루라는 고개를 모로 꼬았다.
“저기요, 선배? 저는요? 저는 모험가가 아니라서 참가 못 하는 건가요?”
“아니. 영주님이랑 연합에서 나온 의뢰라서 사르가디스 시민이면 일반인 참가도 허락된다더라. 대신 다쳐도 자기 책임이라는데?”
“아핫♡! 걱정해 주시는 건가요~? 저번에 싸운 골렘 정도라면 아무런 문제 없답니다~.”
“흐흐. 그래. 까불다가 다치지나 마라.”
그리 웃으며 대답한 나였지만 속으로는 약간 감탄을 하고 있었다.
영주의 명령으로 지원자 제한까지 철폐했을 줄은 몰랐다. 거의 뭐 전쟁 취급이다.
‘이건 흑마법사가 아니라 리치가 와도 양동작전이라고는 생각 못 하고 속겠다.’
귀족인 영주가 모험가들의 작전에 이렇게까지 협력했으니 함정이라고는 절대 예상 못 할 것이었다. 모험가들의 수준이 낮은 것도 골렘의 레벨에 맞춘 거라고 생각하겠지.
“가자. 접수처에서 신청해야지.”
우리는 협의를 끝내고 접수처로 갔다. 라리루라의 신분을 확인받고, 3인 1개조로 토벌대에 지원했다.
“9시까지 북문으로 가시면 됩니다.”
접수원은 토벌대의 참여증이기도 한 작은 종이를 주었다. 우리는 그걸 받고 여관에 들려서 준비를 한 뒤, 북문으로 갔다.
각 길드에서 지원자를 받은 토벌대는 사르가디스의 성문 앞을 가득 채울 정도의 숫자였다. 대충 세 봐도 40명은 넘는 것 같다.
이런 촌구석 동네에 브딱이 모험가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얘네들 평소에는 뭐 해 먹고 사는 거지.
“다음!! 다음 모험가들은 와서 신분증을 제시하시오!!”
경비대원들은 바쁘게 모험가들의 신분을 확인하고 통과 절차를 거쳤다. 토벌대에 꼽사리껴서 빠져나가는 범죄자가 없도록 성문 앞에서 미리 검사를 해 놓는 것이었다.
“아, 이 새끼들 왜 이렇게 많이 모였어? 이러다가 코어 몇 개 못 줍겠네.”
“크크. 죽은 놈들 주머니를 터는 게 빠르지 않겠어?”
“지랄 마라, 누가 세크메트 새끼들 아니랄까봐.”
“싸우지들 마시죠. 저희까지 질이 낮게 여겨지면 어떻게 책임질 생각입니까?”
거기다가 하위 모험가들로 구성해 놨기 때문에 지들끼리도 벌써부터 으르렁대고 있었다.
하긴 시발. 윗물인 대표들도 사이가 안 좋았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가.
“와우☆”
라리루라는 오합지졸에 더없이 가까운 토벌대를 본 감상을 세련되게 표현했다. 존나 시적이고 함축적인 말이로군. 같이 있던 프랑도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잠깐 기다렸다가 경비대에게 신원을 검사받고 검사 완료 인원들과 합류했다.
‘티르시는 없나?’
저번에 얘기한 대로라면 아마 티르시도 여기에 참석했을 듯 한데, 이 사람의 벽과 소음을 뚫고 찾아내지는 못했다. 시발 뭔 시장통도 아니고 말이 끊기는 순간이 없어요.
아무튼 그렇게 10분 정도 대기하자 신원 검사가 끝났다.
“주목!!!”
모여든 모험가들의 인솔을 맡은 골드 클래스 모험가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마차 위에 올라가서 모험가들이 한 눈에 쳐다볼 수 있도록 선 것이었다.
“우리는 이제부터 사르가디스의 평화를 위해 골렘의 발생지로 향한다!! 행선지에서 어떠한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이상, 삿된 말싸움이나 멱살잡이, 도둑질 등의 행위는 일체 금한다!!”
골드 클래스 모험가는 허리에서 검을 뽑아서 햇빛 아래에 내걸었다.
“이는 각 길드장님들께서도 동의하신 바이므로!! 시답잖은 싸움을 벌이거나 사기를 해치는 자는 나와 내 팀이 각 길드장님들의 대신하여 제압하고 처벌하겠다!!”
그러고는 단호한 눈빛으로 좌중을 째려본다. 목덜미가 약간 섬칫했다. 살기인가 뭔가 하는 그거겠지.
“내 검과 복귀 이후의 징벌이 두렵지 않은 자만이 분란을 일으키도록.”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싸잡아서 혼난 나는 살짝 억울했지만, 다행히 토벌대는 그의 말에 얌전해졌다.
대충 보니까 너무 당나라 군대라서 군기를 잡는 것은 포기하고 분위기만 제압한 모양이었다.
저 모험가가 이게 양동작전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는 잘 감이 안 잡혔다. 어쩌면 상부의 기대를 받고 토벌대를 맡겨진 걸로 생각하고 기합이 빡 들어가 있는 걸 수도 있으려나.
골드 클래스 모험가는 조용해진 토벌대를 둘러보고서 다시 검을 내걸며 외쳤다.
“골렘 토벌대!! 현 시간부로 출발한다!!”
─다그닥다그닥!
─우르르르!
오합지졸 토벌대는 시끌벅적한 여정에 나섰다.
이름 뿐인 병신 뭉탱이 주먹밥 브딱이들이 군기 비슷한 흉내를 냈던 것은 초반의 10분 정도였다. 지루한 풍경을 보는 행군이 길어지자 지들끼리 떠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골렘~ 골렘~ 링링이 부품~♡”
근데 그 소음의 일부에 라리루라도 껴 있었다.
존나 행군가도 아니고 뭔 노래를 부르는 거야. 쓸데없이 잘 불러서 더 얼탱이가 없었다. 나는 링링이 3호에 안겨서 다리를 까딱거리는 라리루라에게 물었다.
“꼭두각시에 골렘 코어를 부품으로 쓸 수 있냐?”
“물체에서 마나를 뽑아서 사용하는 구조가 있거든요☆! 제식 골렘의 메인 코어랑 비슷한 건데, 용도가 간단해서 쉽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죠!”
“아아. 비상용 엔진 같은 건가. 아니, 그래도 링링이 3호의 몸통에 그런 게 들어갈 공간은 없지 않냐?”
“제식 골렘이랑 달리 꼭두각시는 어디에 코어를 넣어도 상관이 없으니까요! 아, 위치는 비밀이에요♡?”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함.”
내가 관심을 끊자 프랑이 물었다.
“그건 그렇고, 라리루라. 링링이 3호의 몸통에 있는 빈 공간은 가방으로 쓰려고 만든 거야?”
“아뇨? 저기에는 아직 어렸던 시절의 제가 들어가서 조종하고는 했었어요☆! 어린애였을 때는 좁고 아늑한 공간을 좋아했었거든요!”
“후후. 정말? 실은 나도 그랬어.”
“아핫♥! 프랑 언니랑 또 공통점을 찾았네요! 저 왠지 좀 기뻐져 버렸어요!”
─꺅꺅 꺄르르르! 사이 좋게 떠드는 두 미소녀들.
어린애들이 좁은 장롱이나 옷장 안에 들어가는 것을 즐기는 것은 존나 전세계적 국룰이다. 2명의 얘기를 들어 보니 이세계에서도 그건 똑같은가 보다.
꼭두각시 술사의 약점인 허접한 방어력 문제도 꼭두각시 안에 들어가서 조종할 수 있다면 해결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큰 사이즈를 조종할 마나랑, 꼭두각시의 움직임을 버틸 수 있는 신체능력이 있다면 말이다.
“대열을 벗어나지 마라! 선두는 보폭을 늦춰!”
골드 클래스 모험가가 군마처럼 근-엄하게 생긴 흑마를 타고 일행을 통제했다. 존나 군대 행군이랑 똑같아서 좆 같다.
그렇게 1시간 정도 걸쳐서 행군하니 골렘이 발생한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선발대로 갔던 인원들이 돌아와서 골렘을 찾았다는 말을 했다.
“전방에 골렘 발견!! 전원 전투 준비!!”
네! 선장님! 나는 입 안에서 중얼거리며 전투를 준비했다. 프랑과 라리루라도 임계태세를 갖췄고 말이다.
─쿵. 쿵.
골렘 발생의 근원지는 들판이었다. 황야에 가까운 평지는 존나 아스트랄로 피테쿠스한 비쥬얼을 뽐냈다.
워킹-흙더미들이 땅을 파면서 해맑게 노니는 풍경!
지들의 몸무게도 잊은 것처럼 뛰노는 흙 골렘들한테서는 목가적인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아니, 이런 경우에는 석가적이라고 해야 되나. 왠지 불교 용어 같군.
“쓰벌! 뒤지게 많구만!”
“이거 빈손으로 돌아갈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모험가들은 최소 100마리는 되어 보이는 골렘떼를 보고 돈 생각밖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이런 석가적인 광경에서 돈밖에 보질 못하다니. 붓다 헬이다. 나무아비타불.
“Poooooo…….”
“BOBOBOBOBOBO.”
그때 우리를 발견한 골렘들이 이쪽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속도는 느려터졌지만 숫자는 얕볼 수 없었다.
‘그보다 이 새끼들 말을 하네.’
해석이 안 되는 것을 보면 아무 의미 없는 울음소리겠지. 그래도 우리가 저번에 잡았던 탈주 골렘들보다 레벨은 더 높아 보였다.
“첫빠따는 나야!!”
“꺼져!! 마법으로 태워버린다!!”
“히──햐!!”
“정지!!! 진형을 지켜라!!!!”
모험가 새끼들은 당연한 것처럼 진형을 무너트리면서 달려들려고 했지만, 골드 클래스 모험가가 막았다.
─끼기긱!! 급정지한 모험가들은 월급 봉투를 앞에 두고 설교를 들은 인사부 사원처럼 표정이 곱창나고야 말았다.
“아니, 이보십쇼. 대장 나리. 지금 우리가 저까짓 놈들한테 당하기라도 할 거라는 말입니까?”
“질 것을 걱정해서가 아니다. 나는 길드장들을 대신하여 이 토벌대를 승리로 이끌 의무가 있다.”
“이 씨…… 후우. 무슨 기사님도 아니고 왜 그리 딱딱하십니까? 토벌대에 참여하는 조건에 지시를 따르라는 말은 없지 않았습니까? 뭣보다 코어는 어떡하실 겁니까? 설마 균등분배 같은 말씀은 안 하시겠죠?”
꽤 짬이 많은지 마른 근육의 모험가는 계약 조건을 짚어서 반박했다. 그의 말처럼 저런 조건들은 미리 공언을 해 두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었다.
“으음.”
그 말에는 골드 클래스 모험가도 대답을 하지 못 했다.
힘으로 찍어누르는 것은 간단하겠지만, 골드 클래스 위쪽으로는 대외적 평가도 중요하기 때문일 듯 했다. 경력에 ‘하위 모험가가 말을 안 듣는다고 줘팸’ 같은 게 적히면 플래티넘 승급이 멀어지니까.
“POPO!!”
그리고 당연히 그러는 동안에도 골렘들은 전진 중이었다.
그야 우리는 금속을 잔뜩 가진 모험가 무리 아닌가! 위석을 쳐먹는 공룡보다 더 돌과 철에 환장하는 놈들이 골렘이다! 그런 놈들이 우리를 놓칠 리가 없었다.
“아무튼 이번 전투는 대형을 따라라!! 대형은 전투 이후에 다시 판단하겠다!!”
“하이고. 누가 보면 우리가 입대한 줄 알겠네.”
“어허. 골드 클래스 나리께서 지휘하시는데 어디 우리 같은 브론즈가 반론을 해서 되겠나! 존나 시키는대로만 해야지, 시키는대로만!”
궁시렁대고 비꼬면서 토벌대는 전투에 들어갔다. 선두에서 방패를 든 전사들이 대기하고 무기를 찔러댔다.
“Pooo…….”
진형 중간에서 마법까지 날아다니자 10체를 넘던 골렘은 존나 허무하게 전멸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숫자도 우리가 훨씬 많고 강함도 높으니까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10초도 안 돼서 끝난 전투에 아까 떠들던 브딱이 모험가 한숨을 쉬었다.
“대장 나리? 이제 어쩌실 거요. 저 골렘들의 코어는 누구한테 소유권이 있는지부터 알려주셔야겠수만.”
“……하아.”
그 질문에 한숨을 쉬는 골드 클래스 모험가.
존나 분위기를 잡아대기는 했지만 여긴 군대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조건을 걸었다면 모를까, 우리는 급하게 모인 인원들에 불과한 것이다.
돈이 걸린 문제에서 통제를 따르게 만드는 방법은 없었다. 이 모험가들을 통제할 방법은 나도 전혀 짐작이 안 갔다.
결국 길드장들한테 리더라는 이름의 짬처리를 맞은 골딱이는 궁여지책을 내놓았다.
“멀리 떨어지지 말고 각자의 팀끼리 싸워라! 분쟁을 일으킨 팀은 전리품과 보수 지급을 제한하겠다!!”
“이제 말이 통하는구만!!”
“얘들아!! 모여라!!”
─와르르르! 허가가 떨어지자 모험가들은 파티원들끼리 모여서 산개했다. 제각각인 행동에 진형은 말할 것도 없이 씹창이 나버리고 말았다.
“으와아……. 이걸로 괜찮을까요?”
링링이 3호을 조종하는 라리루라가 걱정스레 말했다. 나는 중학교 급식시간에 버금가는 프리덤함에 멘트를 고민해야만 했다.
“어느 직종이든지 현장은 이런 느낌 아닐까.”
내 경험으로는 그랬다. 보통은 상사나 정부가 빡세게 규제하지 않으면 3D 업계의 현장은 다 이렇게 된다. 안전불감증에 근무태만을 토핑한 개막장 운영이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도 적당히 싸우자. 조심하면 다칠 일도 없어.”
알아서 모여드는 존나 약한 적!
골렘들의 특성과 약해빠짐은 전투를 입구막기에 가까운 양상으로 변모시켰다. 제자리에서 몸을 지키며 덤벼오는 적들을 요격하기만 하면…… 하면…….
“POOOOOOOOOOOO!!!!!”
“BOBOBOBOBOBOBOBO──!!!!”
몰려드는 골렘 떼, 골렘 떼, 골렘 떼!! 나는 우리들에게로 우당탕탕 달려드는 수십 마리의 골렘들을 보고 전율했다!!
“아이에에에?! 골렘? 골렘 왜?!”
“노르!! 멍청하게 서 있지 말구 도망쳐!!!”
“철수도 작전의 하나에욧──!!!”
미친 버팔로 무리를 방불케 하는 골렘들의 돌진! 우리는 그 골렘 사생팬들에게 도망치는 2인조 걸그룹과 그 매니저처럼 도주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POPOPO──!!”
“뽀뽀뽀는 지랄이 뽀뽀뽀야!!!”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다 보니까 알아낸 것이 있었다!!
이 워킹-토우 인형 새끼들, 지금 보니까 우리가 아니라 ‘나’를 쫓고 있다!! 아무 것도 없는 눈구멍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눈빛이다!!
“프랑! 라리루라! 내가 유도할 테니까 뒤에서 수 좀 줄여줘!!”
“노르?! 혼자서 어쩌려고!!”
“선배!! 떨어지면 위험해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레후에욧!!”
나는 파티의 반발을 무시하고 턴 레프트를 하였다.
─우르르르!! 기다렸다는 것처럼 나를 쫓아오는 골렘들!! 곧바로 검을 뽑아서 만해(卍解)를 발동했다.
“<부여(Enchant)>! <얼어붙는 손길(Freezing H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