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1화 (151/1,009)

“프랑 너랑 이 녀석이 같이 갔던 유적 때문에 아우둠라가 연구 팀을 불렀대. 그 녀석들이 돌아가기 전에 흑마법사가 날뛰었던 현장에도 조사를 나갔는데, 거기서 딱 발견을 했던 거지.”

“발견한 연구 팀은 그걸 숨기고 학계에 보고를 때렸는데, 그 사이에 아우둠라에서도 같은 유적을 찾아냈다?”

“그럴 걸. 연구 팀의 낌새를 눈치 챘던 걸지도.”

“아우둠라가? 거 존나 설득력 없는 가설인데.”

우리 좆소 길드에는 그럴 지능이 없어요.

칼라일 새끼의 무능함은 나도 내 눈으로 톡톡히 봤다. 그 가설은 설득력이 많이 딸리는 것이었다.

다나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손을 털었다.

“아~ 됐어. 아무튼 중요한 건 유적의 위치가 퍼지는 것도 시간 문제라는 거야. 나도 얼른 보고를 날리고 왔지만 현장 판단으로 착수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해.”

“음. 듣기만 해도 고민되네. 다나도 골치 아팠겠다.”

“후후. 그렇지? 역시 알아주는 건 프랑밖에 없네.”

“나도 알았는데 말로 안 한 건데요, 아내님아.”

“응~ 쿨한 척 개역겹고~.”

“아니 이 시밤바야.”

내가 울적해하자 티르시는 몰래 웃더니 다나에게 물었다.

“잘 알겠습니다. 다나, 그 유적의 위치나 특징은 어떻게 되나요? 아. 그리고 저도 편하게 티르시면 돼요.”

“고마워요, 티르시. 위치는 여러분도 잘 알 거에요.”

그리 말한 다나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콕 찍었다.

“흑마법사가 숨어 있던 골렘의 발생지. 그 커다란 구덩이 안쪽에서, 고대문명의 탑이 발견됐어요.”

이세계에서 탑은 인기가 없는 건축물이다.

왜냐하면 방어력 면에서 약하기 때문이다. 늘씬하게 뻗은 탑은 대충 벽면에다가 마법을 콰과광 뿌슝뿌슝 해 주면 뎃? 하고 기우뚱 해서 와르르 맨션이 돼 버리는 것이다.

‘건물 자재에 신경을 쓰면 성벽처럼 강고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 탑에 집착할 이유가 어딨겠는가.

나의 진짜 고향 대한민국처럼 좁은 땅에다가 많은 거주 공간을 만들려고 세우는 것이 고층 건물이다. 그런데 그 건물이 무너지기 쉬우니까 당연히 인기가 없을 수밖에.

그래서 이세계에서는 등대나 시계탑을 빼면 큰 탑은 보기 힘들다.

“탑이라고?”

내가 다나의 설명을 듣고 놀란 이유 말이다.

프랑이나 딴 파티원들도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지만 좋은 의미에서의 놀람은 아니다. 보물상자를 찾았는데 그게 자물쇠가 따인 상자였던 것 같은 분위기다.

“그 유적이 탑이라면…… 별로 대단한 유물은 없을 것 같네.”

프랑이 말하기 어려운 것처럼 그리 의견을 내놓았다.

“저번에 노르가 그랬거든. 유적은 현대인인 우리한테나 ‘대단한 건물’이지, 당시 사람들한테는 흔한 건축물이었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탑에 귀중품을 보관해 두는 사람은 고대문명 시대에도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요~?”

라리루라도 어색하게 웃으며 그리 말했다.

말했다시피 탑은 선호되는 건축물이 아니다.

그런 곳에 중요한 물건을 두는 사람은 없다.

=탑의 유적에서 괜찮은 유물을 찾기는 어렵다.

꽤 논리적인 결론이었다. 하지만 나는 엘리트-대갈통의 로지컬함으로 그녀들의 의견에서 오류를 찾아냈다.

“단순한 탑이 아니겠지. 위로 뻗은 탑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발견했을 걸. 고고학계에서도 별로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을 거고.”

암만 구려도 새로 발견된 유적이다. 고고학계 현장직들이 알아서 몰려가서 논문거리를 찾아오겠지.

학계에서는 다른 일이나 하다가 보고만 받으면 된다. 현장직 학자는 그러라고 월급을 주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직접 사람을 파견하고 보고를 받고 있다.

이게 무슨 뜻이겠는가!

“그래. 평범한 탑이 아니야. 말했잖아? ‘구덩이 안에서’ 발견됐다고.”

나의 말에 다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몇 층인지 파악도 안 되는 탑이 땅 아래에 푹 박혀 있어. 그것도 절대 보통 지하유적이 아니야. 탑의 옥상으로 보이는 곳에서 입구를 발견할 수가 없었대.”

“네? 입구가 없어요?”

“──‘출입을 가정하지 않았다’는 거죠.”

티르시가 결론을 말했다. 차가운 미인상의 얼굴이 인상을 썼다. 그 탑의 구조에서 위화감을 느낀 탓일 것이다.

유적 탐사에 있어서 ‘위화감’이란 곧 ‘위험도’를 의미하니까.

“탑의 주인이 지중(地中) 몬스터도 아닐 텐데 입구가 봉쇄됐다는 건 무척 으스스하네요. 지반사고로 파묻힌 걸까요?”

“아뇨. 탑을 발견한 연구 팀에 지리학자가 있어서 조사를 해 봤대요. 사르가디스 주변에서 건물 하나가 통째로 주저앉을 지각변동은 없었다더라고요.”

“그럼 땡이네. 상식적으로 그렇게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었으면 다른 나라 역사에라도 남았겠지.”

“분명 고대문명의 유적이랬지? 기록이 유실된 건 아닐까?”

프랑은 그리 말하고서 떠오른 것처럼 생각에 몰두하다가 질문을 꺼냈다.

“유적의 건축 양식 같은 건 어떻대? 발견은 못 했지만 사실은 출입구가 있을 수도 있어. 니다벨리르처럼 지하에 도시를 세웠다가 탑만 남았다든가?”

“양식도 검사가 끝났어. 오르왈리아의 중기 양식이래.”

“오르왈리아요?”

그 말에 귀를 쫑긋한 것은 의외로 라리루라였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파티에는 브리타니아 인이 없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나와, 다른 일행의 시선이 라리루라에게 꽂혔다.

“아, 아뇨. 말 끊어서 죄송해요. 계속 하세요.”

당연히 말을 꺼낸 라리루라도 당황해서 고개를 저었다.

그냥 맞장구를 쳐 줬을 뿐인가? 중요한 뭔가를 알고 있다면 저 녀석이 얌전히 있을 리가 없으니, 알아도 별 거 아니겠지.

오르왈리아는 브리타니아의 고대문명 국가로 알려져 있다. 로마니아 사람인 라리루라가 알아봤자 얼마나 알겠는가.

“나도 연구를 해 봐서 아는 건데, 오르왈리아가 지하건축물을 세웠다는 기록은 찾기 힘들거든. 뭐 땀시 그런 나라의 탑이 땅속에서 발견된 건지 영문을 모르겠다니까.”

다나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머리를 긁었다.

“하여튼 진짜 섬뜩한 유적이야. 연구 팀이 남아 있는 이유를 알겠어. 유적은 위험할 수록 얻는 것도 커지니까.”

“흐흐. ‘알고 보니까 3층짜리 지하창고가 사고로 파묻힌 거였습니다~’ 하고 끝이면 허무하겠구만.”

분위기를 풀려고 던진 말에 다나는 웃음으로 받아쳤다.

“핫. 그렇게 되도 나는 손해볼 건 없지. 약력에 빈 공간이 또 늘겠지만, 시발 그까짓 거 여기 와서 건진 수확에 비하면 좆도 아니걸랑.”

─톡톡. 그렇게 말하며 내 발등을 가볍게 차는 다나.

그에 나는 기분 좋게 입꼬리를 비틀고 쌉진지하게 반응했다.

“나의 아내 다나여. 오해가 있는 모양이군. 니가 나를 얻은 것이 아니다. 내가 너를 얻은 것이다.”

“푸흐흐. 뭐래 병신이. 그게 그거지.”

“그른가? 그럼 쇼부 봐서 우리가 프랑한테 주워진 걸로.”

“그를까? 그르자.”

응애, 나 애기 척척석사. 프랑 마망 맘마조.

내가 그런 마음의 소리를 내며 프랑에게 달라붙자 프랑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후후. 그래? 그러면 나는 노르 거 할래.”

“아니, 어? 잠만 기다릴래? 프랑 네가 그래 버리면 나는 가정 내 먹이사슬 최약체가 돼 버리는데?”

“쯧쯧. 불쌍한 눈나 같으니. 인심 썼다. 내가 눈나 거 해 줄게.”

“진짜? 그럼 엎드려 썅놈아.”

좋은 대책도 없이 계속 무거워지던 분위기는 우리 가족의 스탠딩 코메디 쇼로 풀어졌다. 무슨 직장이든지 이렇게 완급 조절을 하는 것이 롱런의 비결이다.

그때 라리루라는 손을 번쩍 들면서 말했다.

“저기요, 저기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일이 이렇게 된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잖아요? 별 것 없는 유적이면 유물을 놓쳐도 배가 덜 아플 거고, 위험한 유적이라면 저희끼리 공략하는 것보다 안전할 거라구요?”

그건 또 생각 못 한 발상이었다. 고고학 일을 하다 보면 경쟁자=사람도 죽이는 씹새끼라는 인상을 가지게 되니까.

나랑 다나는 아마추어이기에 가능한 긍정적인 발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싸 하네. 유적을 두고 싸움이 터질 수도 있겠지만, 유적 안에 ‘도굴 방지책’이 있다면 같이 싸울 사람이 많아서 나쁠 건 없지.”

“좋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학계의 답장은 기자재나 다른 연구원들의 도착보다 빨리 올 거라고 보고 있으니까, 그렇게 알아들 두세요.”

다나는 촬영장에서 슬레이트를 치는 것처럼 박수를 쳤다. 이 논의의 결론을 낼 생각인 듯 했다.

“다른 연구원들은 전투요원이 아니니까 어차피 이렇게 5명만으로 탐사를 하게 될 거에요.

개개인의 일정에 따라서 파티 인원은 변경하겠지만, 답장이 오는대로 유적 탐사를 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일정을 맞춰 놓을게요.”

차분함과 발랄함, 100% 정 반대의 대답이었다.

그나저나 분위기를 보니 라리루라도 유적 탐사에 참여하려는 모양이었다. 나랑 눈이 맞은 라리루라는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방금 눈치챈 듯이 입을 오무렸다.

“앗! 그건 그런데, 다나 언니도 싸우실 수 있으세요? 아니면 연구소에서 대기?”

의뢰주의 안전 확보를 위한 질문에 다나는 턱을 괴며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물론 따라갈 건데? 그래도 짐짝이 아니라 파티원이 늘었다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아, 그건 그래. 여기 요 개털머리가 우리 파티에서 가장 절실했던 능력자이기는 함.”

“다나가?”

내 말에 프랑도 관심을 가졌다.

아, 그러고 보니 얘가 뭐 하는 녀석인지는 말을 안 했구나.

─잘근잘근.

나는 개털머리 발언에 대한 대가로 다나에게 발을 밟히며 두 손의 검지를 십자가 모양으로 겹쳤다.

“이 녀석, 힐러거든.”

21세기식 분류법에 따르자면, 힐탱 쯤 되시겠다.

“근데 나 무기가 없음.”

얘기가 끝나고 식사를 하던 중에, 나는 그렇게 말했다.

“무기? 왜? 잃어버리기라도 했냐?”

다나는 말을 하면서 테이블 정중앙에 놓인 고기 요리를 집었다. 사람이 많아서 시킬 수 있었던 메인 요리였다.

“흑마법사쉑 떼국물에 아주 개박살이 났으요. 그래서 새로 주문제작을 하려고 생각 중.”

“그래? 무슨 무기로 쓸 건데?”

“창.”

내 대답에 다나는 맥주를 마시던 손을 멈췄다. 이 녀석은 출근 전에 마시고 저녁에도 마셔대는군.

“창? 너 원래 검 썼잖아.”

“대학에서 유적 탐사 다닐 때? 그걸 썼다고 할 수 있나? 검 뽑은 적보다 단검으로 육포 자른 적이 더 많을 듯.”

대학 시절의 탐험은 말이 탐험이지 뒤에서 짐 들고 나르고 해석하고 튀는 게 고작이었다. 마나를 못 다루던 시절의 나는 파치리스보다 실전성이 없어요.

가져온 고기를 썰다가 다나는 고개를 모로 꼬았다.

“그런데 왜 굳이 창을? 유적 탐사에서 쓰기 힘든 무기라는 건 너도 알 것 아냐.”

“창을 못 쓰는 곳에서는 주먹질이라도 하려고. 그리고 또, 이걸로 무기를 만들려니까 창이 제일 낫겠더라.”

─쿵. 천에 말린 미스릴을 꺼내서 내려놓는 나.

왜 이 쇳덩이를 들고 다니냐고? 도둑 맞으면 3년은 꿈에서 아른 거릴 것 같아서 그렇다.

“실례할게요. 무슨 철인가요?”

어쩌다 미스릴을 놓은 곳이 티르시 물잔 앞이었기에 잔을 치운 티르시가 그 철괴를 만지게 되었다.

“……마나?”

거기서 느껴지는 마나를 깨달은 것인지 티르시는 입을 떡 벌렸다.

“에? 이, 이거 설마 미……?! 헤?!”

“생각하시는 게 맞을 검다.”

“이, 이런 걸 경솔하게 사람 많은 곳에서 꺼내지 마세요……!!”

존나 작게 소리친 티르시는 떨리는 손으로 미스릴을 내게 내밀었다. 얼른 숨기라는 뜻 같길래 받아서 숨겼다.

안도의 한숨을 쉰 티르시는 찬 물을 마셔서 흥분한 가슴을 식혔다. 살짝 나를 노려보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엄청 놀랐잖아요. 대체 그런 건 어디서?”

“저번 일의 보수로. 모 채찍쟁이 레이디한테 받았죠.”

“저는…… 못 받았는데…….”

찰떡처럼 알아먹은 티르시는 세상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역시 그 겨드랑이 여자, 나한테만 주고 갔던 건가.

“조금 나눠 드립니까?”

“후으. 됐어요. 그건 노르드한테 준 거고? 제가 한 일이라곤 해 봤자 마지막에 약간 시간을 벌어드린 게 전부고? 흥, 흥.”

애꿎은 닭고기만 찔러대는 티르시.

그렇게 착하고 대범하던 사람도 미스릴을 놓쳤다고 생각하니까 아쉬운 모양이었다.

도적단 퇴치 때는 보수에 별로 집착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보수의 수준이 미스릴급이 되니까 이런 일도 있구나. 마법사도 미스릴은 좋은 물건이니까 그런가 보다.

‘하긴 나였어도 그랬겠다.’

네페르티티가 흑마법사의 어그로를 끌어주던 골드 모험가 팀한테만 미스릴을 주고 갔으면 존나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 했겠지.

느그 양심은 피라미드에 순장하고 오셨나요? 같은 소릴 했다가 채찍에 맞았을지도 모른다. 찰싹찰싹이 아니라 투콰과광! 하고 말이다.

“노르. 그거, 이거야?”

─톡톡. 프랑이 결혼 반지를 건드리며 말했다.

대장장이 종족이라는 별명은 장식이 아니다. 프랑은 우리 반지가 뭘로 만든 건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낀 반지를 보여주며 대답했다.

“맞아. 검으로 만들기는 양이 부족하대서. 조금 떼 가지고 반지로 세공하고 남은 건 무기로 만들게.”

“잘 생각했어. 앗, 걱정되서 하는 말인데, 내 건 만들면 안 돼? 투척 나이프로 쓰기에는 엄청 아깝구 망치로 쓰기에는 가벼우니까.”

“어어. 물어보니까 그렇다더라.”

미스릴 투척 나이프? 백금으로 만든 면도날도 아니고 그딴 미친 짓은 졸부나 할 짓이었다.

망치로 만들자니 존나 가벼운 금속이라서 위력이 안 나올 것이고 말이다. 양도 적으니까 존나 무거운 뿅망치로 완성될 것이 분명하다.

마스터급이 돼서 오러를 쓸 수 있게 된다면 좀 얘기가 다를라나.

“암튼 그래서 계약서는 작성해 놨어. 창대는 이미 만들어 놨을걸. 나머지는 창날만 완성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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