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2화 (152/1,009)

“후흥~? 그렇다면 다음 탐사는 제 링링이 3.5호와 선배의 새 무기의 피로연이겠네요?”

빵을 잘게 찢어서 스프에 담근 라리루라가 말했다.

사이키델릭한 핑크핑크 머리에 어울리는 4차원 대가리가 또 무슨 생뚱맞은 논리를 내놓은 건지, 그 녀석은 V자를 만들며 외쳤다.

“좋아요. 누구의 무기가 더 좋은 성과를 내는지 승부하죠♡! 이긴 사람이 진 사람에게 뭐든지 한 가지 부탁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거에요☆!”

“네 부탁이 ‘부여마법 책 내놔’만 아니면 받음.”

“……히잉. 선배, 요즘 저한테 차갑지 않아요?”

라리루라는 시무룩해져서는 불평을 쏟아냈다.

“정말, 분위기에 초 치시긴. 내기에서 져서 ‘광대 옷 입지 마라’ 같은 가혹한 명령조차 들을 각오로 한 제안이라구요? 저처럼 사랑스러운 후배의 각오를 뭘로 보시는 건가요?”

“오도방정?”

깨방정?

“아무튼 거 뭐냐, 책이라면 빌려가서 봐도 되는데?”

“그~런~ 게~ 아니라구요! 팬으로서 존경하는 분의 저서를 몽땅 모으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 마음, 모르시겠어요?!”

“내.”

모르겠는데.

나는 그렇게 단언했지만 여성진─정확하게는 다나랑 티르시─께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알지, 알아. 하이로메인 교수님의 수필이라면 나도 개인 짐에 넣고 가져왔어. 분실 사고라도 일어났다간 눈 뜨고 못 볼 일이니까.”

“저도 이해해요. 좋아하는 작가가 생전에 친구랑 주고받은 편지라든가, 옥션에서 매니아한테 엄청 비싸게 팔리잖아요?”

관점이 비슷한 듯한, 다른 듯한, 그런 느낌이다.

똑같이 학자파인 두 여성이지만 성격이나 생각하는 방식은 많이 다른 모양이다. 나는 입에 넣은 고기를 삼켰다.

“그래 뭐, 나는 마법의 요령 부분만 베껴두면 충분하니까. 그 내기 받아줄게. 그만큼 빡세게 굴러라?”

“물론이죠! 아핫♡, 우리 선배는 이래서 좋다니까요~!”

“그 ‘이래서’가 ‘이용해 먹기 쉬워서’는 아니지?”

“…………♡”

대답을 해 시발아.

나는 실없이 웃는 라리루라를 야렸지만 녀석은 눈을 피할 뿐이었다.

됐다 시발. 까짓거 이기면 되지. 근데 내가 얘한테 이긴다고 뭐 얻을 게 있기는 할지 모르겠구만.

그때는 프로포즈에 대한 언급을 금지시키든가 해야겠다.

며칠 뒤, 나는 미스릴 주괴를 들고 클라라의 무기점으로 갔다.

─창날을 미스릴로 만들 거라면 창대도 보통 물건으로는 안 되겠네요.

그게 클라라의 말이었다. 미스릴 무기라고 자부할 수 있는 완성도를 내려면 창대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당연히 그렇다고 해서 창대까지 희귀금속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벤치 프레스 봉처럼 무거워져도 내 힘이라면 들고 다니기는 어렵지 않겠는데, 그럴 돈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창대의 주문제작을 부탁하고 며칠이 지난 오늘에야 나는 클라라를 만나러 간 것이었다.

“미안, 노르. 무겁지?”

프랑은 내가 겨드랑이에 맨 상자를 보며 말했다. 골렘의 코어가 들어간 상자였다.

나는 프랑이 자기 몫의 코어는 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코어로 따로 만들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 내가 대신 들어준 것이었다.

“흐흐. 전혀.”

웃으며 대답하는 나. 진짜로 별로 안 무거웠다.

처음 마법사 길드에서 들고 올 때는 무거웠지만 이번에는 전혀 문제 없었다. 세 조각이 난 덕분일까, 아니면 프랑이 옆에 있기 때문일까.

어쨌든 힘들 건 하나도 없었다. 나는 프랑이랑 손을 잡고 클라라의 무기점을 방문했다.

“어머머? ……후후후후.”

카운터에서 뭔가를 깎던 클라라는 우리를 보고 입에 손을 가져갔다.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대충 눈치깐 모양이다.

반지를 낀 손을 잡고 있으니까 누가 봐도 일목요연하겠지.

“어서 오세요. 저번에 반지를 받아가고 안 오시길래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고 조마조마 했답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제 아내의 넓은 마음과 애정을 다시 느낄 기회가 됐습죠. 제가 부탁한 창대는요?”

“완성했어요. 소재가 있어서 다행이었죠.”

─덜그럭. 클라라는 창대를 가져와서 보여주었다.

나무로 만든 창대였다. 만져만 봐도 얼마나 단단한지 알기 쉬울 정도로 짱짱하다.

길이는 창날의 길이를 감안해서 조금 짧은 편일까? 그래도 내가 쓰던 검보다 길 것 같았다.

“나무 몬스터의 목재로 만든 창대에요. 손님의 손아귀 크기에 딱 맞게 만들었고요. 이젠 창날만 만들면 돼요.”

─하악, 하악.

자기가 말해놓고 흥분이라도 한 걸까. 클라라는 흥분이 묻어나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시발. 댁도 나도 임자 있는 몸이니까 그러지 맙시다. 나는 말 없는 독촉에 미스릴 주괴를 내놓았다.

“왔다!! 보고 싶었어요!!”

출장 나갔다가 돌아온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처럼 기뻐하는 클라라였다. 눈에서 빔이라도 쏠 것 같다.

“아, 아하하하…….”

과연 저 꼴에는 프랑도 약간 입가가 떨렸다. 이해한다. 욕 안 한 것만 해도 장하다, 우리 프랑.

그건 그렇고 이 아줌마 남편은 진짜 뭐 하는 사람일까.

인간형 로봇 같은 건 아니겠지.

“아니, 뭘 그렇게까지…….”

“그렇게까지라뇨?! 이 영롱한 미스릴의 퀼리티를 보세요!! 전 이런 금속을 주무르기 위해서 대장장이가 된 거라구욧!!”

“그럼 지금까지 인생 절반 손해 보셨겠네요.”

나는 이 영양가 없는 대화를 스킵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의뢰비와 계약서를 꺼내서 테이블에 뒀다.

“제작비 가져왔습니다. 저번에 짠 설계도대로 완성해 주세요. 그리고 여기, 제 아내도 의뢰를 하고 싶대서요.”

“네! 말씀하세요!”

“어, 그게요……? 골렘 코어랑 저번에 사 갔던 투척 나이프를 가공하고 싶어서요.”

프랑은 <아공간 주머니(Portable Subspace)> 마법이 걸린 갑옷에서 나이프를 꺼냈다.

그…… 시발거 이름을 까먹었네. 아무튼 짝다리 광대년이 드랍한 나이프 말고, 여기서 산 투척 나이프였다.

서커스의 저글링 나이프는 크기가 꽤 크다. 고기 써는 식칼 정도.

그리고 여기서 산 나이프는 포크 정도였다.

“어떤 가공인가요?”

“제가 골렘 제작 마법을 배우고 있는데요. 이 나이프에다 골렘의 코어 기능을 부여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골렘 코어 겸 투척 나이프로 쓰시고 싶으시단 거군요?”

프랑의 긍정에 클라라는 팔짱을 끼며 견적을 잡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해요. 그래도 전부 사용하는 건 추천드리지 않아요. 그 돌멩이는 골렘을 잡아서 얻은 코어시죠?”

“아, 네. 맞아요.”

“그러면 반은 남겨 놓으세요. 가공한 시점에서 골렘 제작 마법의 재료에서 약간 벗어나니까요.”

“그렇게 할게요. 골렘을 주력으로 쓰지는 않을 거라서요.”

골렘의 코어를 절반 내려놓는 프랑.

내가 프랑에게 골렘 제작 마법을 준 이유는 하나다.

‘자물쇠 해체 등에 쓰라고 준 거지.’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금고나 보물상자에 보물을 숨겨놓은 놈들은 도둑질을 당하지 않으려고 별의별 함정을 다 깔아놓는다. 자물쇠 안에서 튀어나오는 독침, 무너지는 바닥, 독가스, 아무튼 존나 많다.

그걸 해체하는 것이 모험가 도적의 주 임무이고 말이다.

‘우리 프랑한테 그런 3D 업무를 시킬 수는 없으니까.’

이런 점에 있어서 골렘은 좋다.

프랑의 손재주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앵간한 자물쇠는 골렘을 조종해서 대신 따버리면 되거든. 함정에 걸려서 부숴진다? 인스턴트 골렘이 뒤져봤자 나나 프랑은 눈도 깜짝 안 할 것이었다.

코어가 박살나면 아깝긴 하다. 근데 그게 다였다.

목숨과 돈 중 하나를 고르라면 병신이 아니고서야 목숨을 골라야지 않겠는가?

그리고 모험가는 자기 목숨을 챙기면서 돈도 노리는 직업이었다.

“완성되면 여관에 쪽지를 보낼게요! 밤을 새서라도 완벽한 물건으로 완성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그런 말을 작별인사로 우리는 클라라의 무기점을 나왔다.

‘이제 준비할 건 더 없군.’

나는 이번에 받은 창대를 휘두르고 <번개의 화살>을 계속 연습하면 된다.

‘티르시한테 들은 대로 마법사 길드의 연습장을 빌리자.’

실내 연습장이라면 여관 우물가처럼 누가 오지 않을까 속 졸이지 않고 편하게 훈련이 가능할 것이었다. 티르시 말로는 연습장은 남들이 못 보는 개인실이라고 하니까.

마법사는 자기 연구를 남한테 보여주기 싫어하니까.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 동안 맡은 바 일에 매진했다.

나는 창술 연습과 마법 연습.

프랑은 <꼭두극> 나이프의 훈련과 골렘 제작 마법의 독학.

다나는 연구소의 기반을 다지느라 바쁘고 티르시도 연금술 학파의 일정을 조정 중.

라리루라는 링링이 3.5호의 조정과 시운전에, 개인시간에 내가 프로포즈에 썼던 술식 결합 마법을 습득. 얘만 또 붕 떠 있구만요.

아무튼 각자 유적 탐사를 위해서 연습과 준비를 하며 그 유적에 먼저 들어간 모험가들의 소식을 탐문했다.

그리고 들었다.

─자네, 들었나? 그 지저의 탑의 소름 끼치는 얘기.

─그래. 별 듣도 보도 못한 끔찍한 몬스터들이 기어나온다지?

이번 일도 절대로── 순탄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를 말이다.

내가 다나와 첫날밤을 치룬지 10일이 지났다.

고고학계로부터 답장이 온 것은 그때의 일이었다.

“개소리 쌉소리 미사여구 빼고 요약하면, 가서 탐사하랜다.”

다나는 고고학계에서 날아온 편지를 나한테도 보여줬다. 내 눈에도 내용은 다나가 한 말처럼 보였다.

─연구원들이 가도 탐색에는 도움이 안 될 것이니 대기할 필요 없음.

─현장에서 협력자를 구해서 진입하도록.

그런 내용이었다.

“허가는 떨어졌군. 일주일이면 궁뎅이 무거운 학계 노인들 치고는 빨랐어.”

나는 편지를 접고 다나한테 돌려줬다. 파티원은 모두 모인 상태였다. 다나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거 존나 동감. 아무튼 당장 오늘부터 출발하고 싶은데, 여러분들은요?”

“잘 됐군요. 더 이상 일정을 비워놓는 것도 눈치가 보여서.”

티르시의 그런 말에 라리루라도 머리를 마구 끄덕였다.

“정말 동감이에요. 습하고 우중충한 날씨는 싫네요~. 요즘 매일 비만 내리잖아요. 거기 유적 안은 좀 상쾌하려나요☆?”

“흐흐. 지하인데 바라는 것도 많다.”

“아니, 생각보다 덜 습할지도 모르지. 입이 바짝바짝 마를 것 같더라고.”

다나는 호기롭게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그 유적, 이계의 생물들이 바글거린다며?”

“그렇다고는 하는데, 니 왜 즐거워 보이냐?”

얼스터의 방계답게 얘한테도 전투민족의 피가 흐르나.

나중에 섹스에 익숙해진 다나가 나를 깔아뭉개서 덮치면 어쩌지. 안 돼, 아내한테 전투섹스를 당해버렷!

……뭐 농담은 어쨌든 간에, 그 반지하 탑에서도 몬스터가 나온다는 소식은 들었다.

유적 치고는 존나 많은 편이라고도.

내가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고대문명의 유적에서 몬스터를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게 땅밑에서 출토된 유적이다? 그럼 얘기 끝이지.’

존나 수백 년 넘게 방치된 유적 아닌가. 몬스터든 뭐든 밥 굶고는 못 산다. 100년 넘게 지하유적에서 살아 돌아다니는 생물이 있으면 시발 튀어야지 뭐해.

‘보통은 저런 법인데, 가끔 예외도 있으니까.’

유적에서 몬스터랑 만나는 것은 크게 나눠서 3가지였다.

1. 생물이 아니거나.

2. 먼저 발견해서 둥지로 삼았거나.

3. 함정을 만들어놨거나.

첫 번째는 골렘, 언데드처럼 밥 안 멕여도 되는 놈들이 유적에 갇혀버렸을 때에 일어난다.

언데드는 스켈레톤처럼 썩지 않는 녀석밖에 못 살아남고, 골렘도 마나가 동나면 멈추겠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생략. 야수회귀의 유적이나 홉 고블린 주술사가 그랬던 것처럼 유적에 먼저 침입해서 지들 나와바리로 삼은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침입자를 대비해서 함정을 깔아놓은 경우였다.

“골렘 제작이랑 목적은 같죠.”

완드에 로브까지 풀 무장을 갖추고 온 티르시가 말했다.

“주인에게 복종하는 하인을 소환해서 침입자를 공격한다. 그걸 위해서 마법진이나 매직 아이템을 배치해 놓는 거에요.”

“그게 이번에는 이계의 소환수고요?”

“그래요, 프랑 씨.”

프랑은 신음을 흘렸다. 유적의 몬스터들이 존나 혐오스럽게 생겼다는 소식을 프랑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프랑과는 다르게 약간 흥분이 됐다.

소환 마법으로 불러낸 이계의 생물이라지 않은가!

‘어쩌면…….’

어쩌면 내가 찾는 차원이동 방법의 단서도 발견되는 게 아닐까?

고대문명의 황금시대에는 공간이동이 그렇게 꿈 속의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전략적으로 운용되는 기술이었기에 문서를 찾아도 해석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거라도 어디인가!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내 삶의 목적의 단서를 찾아낸 기분이라서 사실 굉장히 두근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기는 해. 들어오는 걸 상정하지 않은 탑인데, 정작 그 안에는 침입자를 조져놓으려는 함정이 깔려 있는 거잖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