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돌아갈 수 있겠어요.”
셀레나의 말에 안색이 펴지는 탐사원들. 장소가 안전한 곳이기만 했어도 만세 삼창을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긴장 풀지 마세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스트람, 비요스. 당신들에게 정찰을 맡기겠어요. 할 수 있겠죠?”
“물론이죠.”
파티 리더의 카리스마로 분위기를 다잡은 셀레나가 도적 같이 생긴 두 남자를 픽업했다.
“라리루라.”
나는 라리루라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한숨이 대답 대신 날아왔다. 다녀오라는 뜻이었다.
“갔다 올 테니까 몸 조심해라.”
“누가 누구한테 조심하라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선배야말로 조심하시기에요? 저, 선배가 안 돌아오시면 여기에 남아서 죽어버릴 거니까요?”
“뭐래. 내가 훅 가도 너는 돌아가서 프랑이랑 다나한테 혼나야지.”
“아핫♡? 그게 싫어서 죽겠다는 건데요?”
새끼, 책임 회피능력이 뛰어나군. 존나 21세기 지구인의 자질이 있다.
“그냥 정찰만 하고 올 건데 뭐. 얌전히 기다려.”
“네에~.”
기운 빠지는 대답을 들으며 셀레나에게로 가는 나.
내가 가까이 가자 셀레나는 고개를 모로 꼬았다.
“노르드 씨. 무슨 일이신가요?”
설마 정찰에 참가할 생각입니까? 하는, 놀라움과 의문이 담긴 눈빛이었다.
하긴 누가 봐도 나는 은밀 활동에 어울리지 않았다. 전신갑옷은 아니지만 갑옷을 입었고 창까지 든 놈 아닌가! 존나 나도 그 의견에 십분 동의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물었다.
“혹시 가면 남는 것 있습니까?”
“가면이요? <망원(Telephoto)> 마법이 걸린 가면이라면 있지만…….”
내 질문에 망원경 비슷한 가면을 받아온 셀레나는 이걸 왜 찾느냐는 것처럼 말끝을 흐렸다.
근데 나도 나대로 그 가면의 형태에 좀 실망을 했다. 셀레나가 가져온 가면이 존나 나비 가면이었던 것이다.
‘근육질인 내가 이걸 쓰면 씹게이 같지 않을까.’
콧수염을 길게 기르고 허리를 흔들며 오~ 무쵸~ 이 지랄을 하는 트루 쌉 후로게이의 편파적인 이미지가 머리를 스쳤다.
‘시발, 어쩌겠냐.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야?’
여기서 남들이 갔다온 정찰만 듣고 이동했다가 조지면 어떡할 것이란 말인가!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퀴어축제 참가자 코스프레 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아니, 미안. 구라다.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닌데 참을 만은 했다.
─휘리릭!
역방향 ᚲ(Kenaz)의 룬이 은신 효과를 발휘했다. 하관실종 가면이라서 가면 취급을 안 해 주면 어쩌지 했는데, 나비 가면도 가면으로 쳐 주는가 보다.
“그것도 룬 마법인가요!”
셀레나가 입을 벌리고 물었다. ᚲ 같은 좆만한 글자를 좀 적었다고 탐지부터 은신까지 마법 돌려막기를 해대니 놀라운 모양이었다.
“예. 은신에 도움이 되죠. 방해만 안 된다면 정찰조와 같이 다녀오겠습니다.”
“방해라니요! 제 쪽에서도 부탁드릴게요. 도적들은 싸움이 벌어지면 후퇴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서요.”
장소가 장소만 아니었으면 목청껏 소리쳤을 것처럼 그리 말하는 셀레나였다.
전투가 터지면 도적들은 죽고 역으로 위치를 발각당해서 기습당할 수도 있다. 전투력이 높은 내가 정찰조에 거기 껴서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었다.
허락이 떨어졌기에 나는 가면을 쓰고 준비를 끝냈다.
“저희야말로.”
나는 도적 2명과 간단하게 인사하고 소환진의 마나가 느껴지는 곳으로 이동했다.
도적들은 프로답게 발소리도 거의 안 났다. 아니, 이 숲에 풀이 거의 없어서 그런가? 아무튼 잠입에는 유리했다.
손짓을 해서 방향을 지시하는 나. 거기에 따라오는 도적들. 300미터의 거리는 조심해서 나아가려니까 변비 환자의 1달 묵은 숙변처럼 뒤지게 거북하고 길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이다.
우리는 벌레굴처럼 생긴 곳을 발견하고 정지했다.
벌레굴, 이라는 표현이 진짜 적합했다. 징그럽게 솟은 저 바위산과 사람도 묻을 수 있게 생긴 구멍들은 자이언트 워킹 벌레들의 집이 분명했다.
소환진은 그 벌레굴의 중앙에 있었다.
그래서 속으로 욕을 했냐고? 아니, 그렇지 않다. 보스룸에 던전 탈출구가 있는 것은 국룰이니까 좆도 이상할 것 없다.
내가 씨발씨발을 연호한 것은 그 소환진 앞에서 벌어지는 다른 일 때문이었다.
“KKK! KRKKKK!!”
나랑 라리루라를 여기로 데려온 커다란 벌레 새끼! 하필 그 새끼가 소환진이 있는 장소에서 뭔가 공양의식 같은 것을 하는 중이었다.
인간형 벌레 같은 놈들이 의식을 치룬다는 게 존나 우습긴 했는데, 공양의식이라는 워딩에는 딱히 오류가 없을 것 같았다.
제단으로 보이는 풀떼기에는 유적에서 봤던 모험가들의 시체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전부 머리를 파먹혀서 죽어 있었다.
‘우욱 씹.’
불쑥 프랑이 탐지를 하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발소리를 내는 새끼가 뭔가를 씹고 있다고 했던가? 이 씨발 벌레 새끼들은 고수레도 아니고 한 입씩 쳐먹고 남은 걸 제물이랍시고 바치는가 보다.
“K, KK── K!”
끝도 없이 인종차별적인 울음소리! 거대 벌레는 혼자서 그 의식을 치루며 날개를 왱왱댔다.
그때 모험가의 시체를 뜯어서 소환진에 던지는 거대 벌레. 존나 스너프 영화 같은 모습이었지만 소환진은 빛을 발하며 시체를 전이시켰다. 이건 중요한 정보다.
그냥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 걸까? 그렇다면 다행이다. 뭐, 어려운 방식이었으면 벌레 새끼들도 응용 못 했겠지.
‘다른 놈들은 없나?’
일단 소환진 주변에는 저 거대 벌레 뿐이었다. 아무래도 대표가 혼자 날개를 울리며 의식을 벌이는 방식인 모양이다.
물론 벌레 새끼들의 제사 문화는 좆도 관심이 안 간다.
하지만 그 새끼가 의식을 벌이고 있는 대상까지 신경을 안 쓸 수는 없는 법이었다. 나는 모험가들의 시체가 바쳐진 제단을 주의 깊게 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
‘석상?’
웅크린 애벌레처럼 생긴 석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 순간이지만 저게 진짜 보스고 벌레 제사장 새끼는 중간 보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무리 봐도 봉인된 괴물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풍화되서 만들어진 석상 같았다.
마나도 안 느껴지며 생김새도 뒤지게 어설픈 것이 딱 그랬다. 바람이 안 부는 이계에서 풍화(風化)라고 하는 것도 이상한 느낌이지만 말이다.
‘저 새끼들의 원시 종교인가.’
만약 과거에 저 소환진에서 고대문명 시대의 침입자들이 나타났었고, 그걸 기억한 벌레들이 문화를 전파해 왔다면?
그럼 저 소환진과 그 옆에 놓인 바위상을 숭배하는 문화가 생길 법도 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번개를 신격화했으니 호모 털게벌레가 이계의 생물을 소환하는 마법진을 신격화하는 건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후퇴 사인을 주고 받으며 물러났다. 이건 누가 봐도 상의가 필요한 난이도의 토벌이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서 보고를 때리자 셀레나는 짧은 신음을 흘렸다.
“이계의 몬스터들이 사는 둥지로군요. 노르드 씨, 퇴치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불을 질러버리고 싶은데, 마법진이 부숴질 수 있고 마땅히 불을 붙일 방법도 없군요.”
내가 작전을 생각하며 대답했다.
여기 말고도 다른 소환진이 있기는 할 것이었다. 탑의 1~4층에서 나타났던 벌레 새끼들은 이계의 여러 곳에서 소환된 것이 아니겠는가!
‘근데 시발 그게 어디 있는 줄 알고 찾아.’
우리는 아마 4층 어딘가의 소환진을 타고 여기에 왔을 것이다.
셀레나 파티는 실수로, 그리고 나랑 라리루라는 저 새끼의 손에 끌려가서 말이다.
‘우리가 사용한 소환진과 연동된 마법진은 저것 뿐이야.’
다른 소환진은 브리타니아-아즈테카 정도의 거리를 두고 먼 곳에 설치됐을 가능성도 크다. 많은 벌레 몬스터들을 소환하려면 소환진 간에 거리를 두는 게 효율적이니까.
그러니까 저 벌레굴을 돌파하지 않으면 우리가 굶어뒤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면돌파는 불가능합니다. 마법을 못 써서는 물량전을 못 이겨요. 승산도 낮고 메리트도 없는 작전은 좋지 않겠죠.”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신가요?”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죠. 셀레나 씨의 파티에 이런 일에 쓰기 좋은 아이템이 있다면 또 모릅니다만.”
“그렇게 편리한 아이템은 없어요. 매직 아이템도 조금씩만 작동하다가 멈춰버리는걸요.”
“후. 그럼 어쩐다…….”
나랑 셀레나는 파티 대표로 의견을 나누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물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잠시 동안의 회의는 조별과제처럼 의미 없이 끝났다. 나는 ‘모든 일의 답은 처음 내린 결론이 제일 낫다’는 결론을 몸으로 배웠다. 이런 사실 알고 싶지 않았던 레후.
“어쩔 수 없죠. 편법으로 갑시다.”
“편법이라시면?”
“저희는 몬스터 퇴치를 위해서 온 게 아닙니다. 소환진의 위까지 올라가기만 하면 승리죠. 쫓아오는 놈들이야 나중에 해치워도 됩니다.”
나는 존나 세상에서 제일 쪽팔린 대사를 읊어야 하는 AV 여배우처럼 똥 씹은 표정으로 말했다.
“여러분? 단거리 경주 좋아하십니까?”
몇 명이 숨어 있는지도 모를 적진을 정면에서 돌파하기!
제정신 박힌 지휘자라면 죽빵을 갈겨서라도 말려야 할 작전이다.
어느 개또라이 새끼가 자살하면 가족들 연금 못 줄까봐 부하들한테 총을 맞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아니고서는 이딴 걸 작전이랍시고 짜 오지는 않을 것이었다.
‘킹치만 이게 가장 나은 방법인걸 어떡함.’
이건 굳이 예를 들자면 전쟁이 아니라 대(對) 테러작전에 가깝다. 소환진은 반드시 구해야 되는 인질이다.
그것도 그냥 인질이 아니라, 미 대통령보다 중요한 인질!
그렇기에 기발한 발상으로 작전을 세우는 것보다는 빠르게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더 나은 전략이었다.
‘소환진까지만 이동하면 돼.’
<공간이동>의 범위에 올라가기만 하면 우리의 승리였다.
소환진에 남은 마나가 부족하다? 채우면 된다. 밥값을 못 하던 마법사들이 마나를 낭비할 때가 온 것이었다.
“저희들 전원이 한 번에 전이해 왔으니 <공간이동>의 낙오자를 걱정할 건 없어요. 전원이 발동 당시에 마법진 안에만 들어가면 됩니다.”
내 작전을 들은 셀레나의 말이었다.
그녀도 지금 우리가 존나 막막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벌레 새끼들의 완전 퇴치는 전투력, 위험도 면을 생각하면 실현하기 어려웠다.
“어서 실행하죠. 보스를 제외한 나머지 몬스터들이 지중에 들어가 있는 상황은 다시 없을지도 몰라요.”
“그럽시다.”
우리는 소리가 날 만한 장비를 벗어서 버려버렸다.
만일의 사태에 몸을 지켜줄 방어구였지만 지금은 필요가 없었다. 벌레 새끼들은 원거리 공격을 하지 못 했으며, 가까이 붙어서 싸우게 됐을 때는 이미 포위당해서 죽음만 기다리는 상황일 테니 말이다.
1미터라도 소환진에서 가까운 지점까지 조용히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철 갑옷 같은 걸 입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전위의 전사들이 갑옷을 벗었다. 셀레나도 건틀릿을 풀었다.
나는 크게 소리가 나는 장비가 없었기에─그리고 무엇보다 룬을 쓸 거라서─ 풀 무장 상태 그대로다.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벌레굴을 향해서 전진 앞으로.
아까보다 몇십 배는 더 숨이 막히는 초조감을 견디며 벌레굴에 도착하자, 벌레 대장 놈은 계속해서 의식을 벌이는 중이었다.
모험가들의 시체는 벌써 원형도 못 알아볼 지경이다. 존나 내가 왔다가는 중에도 계속 시체를 뜯어서 소환진에 던졌던 걸까?
‘꼭 애벌레가 먹기 좋게 뜯어주는 것 같군.’
그 먹이라는 게 인간만 아니었으면 나도 이세계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는 기분으로 관람할 수 있었겠지.
─더 앞으로?
그때 셀레나가 수신호를 보냈다. 미리 상의했던 내용이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손을 움직였다.
─안 됨. 들킬 듯.
─……돌격?
─돌격.
내 대답에 셀레나의 뺨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심호흡을 하기도 어려웠다. 숨소리를 듣고 저기 있는 대장 벌레 새끼가 눈치를 깔 가능성도 있었으니 말이다.
셀레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가 내렸다.
돌격의 사인이었다.
─사사삭! 파티는 풀을 밟는 소리도 내지 않고 그림자에서 빠져나와 대쉬했다. 전원이 모험가로 치면 실버는 달 레벨의 전사였기에 가능한 기예였다.
온 힘을 다해서 뛰면서도 발소리를 최대한 죽였다. 50미터 넘게 떨어진 곳에 소환진이 있다. 대장 벌레 새끼는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의식에 열중 중이었다.
‘할 수 있나?’
이대로 20미터만 더 가면 다른 벌레 새끼들이 나타나도 큰 무리 없이 도착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코로오오오오오오옷──!!!”
“코오오오오오오──!!!”
─퍼서석! 굴의 구멍에서 빠져나오는 벌레 몬스터들!
“역시 들켰네요!!”
마치 산성용액이라도 부어진 것처럼 부루스를 추며 굴에서 나오는 잡몹들의 엔트리에 라리루라가 꺅꺅댔다.
그래도 사람들의 안색에 경악이나 망설임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사전에 내가 말을 해 뒀던 덕분이다.
─벌레굴이 지하로 이어져 있다면 저희가 땅을 밟는 소리에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절대 놀라지 말고, 파티원들을 챙겨가며 뛰십시오.
애1미. 내가 말해놓고도 안 맞기를 바랬는데.
역시 안 좋은 예상은 빗나가는 일이 없구나. 시부랄 벌레부랄 새끼들. 양심에도 털이랑 껍데기가 자라났을 놈들답게 남 잘 되는 꼴은 뒤져도 못 보는 것이었다.
“Krrrro! K─KKKK!!”
벌레 대장 새끼도 우리를 보며 성대를 딱딱거렸다.
높은 톤의 벌레 울음 소리는 언제 들어도 좆 같다. 나는 저 새끼의 비웃음을 무시하며 외쳤다.
“싸우지 말고 뛰어요! 발은 우리가 더 빠릅니다!”
“궁수들!! 화살은 전방에 집중하세요!!”
“라리루라!! 너는 <꼭두극>이 닿는 범위에 있는 놈들을 자빠트려!!”
나와 셀레나가 번갈아가며 지시했다. 활을 든 사람들이 닥치는대로 쏴서 몇 마리를 벌레들의 천국인 하수도로 여행을 보내줬다.
라리루라의 실이 움직여서 앞의 놈들을 넘어트리자 후열이 거기에 걸려서 굴렀다.
“코로로로로로로!!!”
근데 염병 씨발,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