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헛웃음을 짓는 이유 말이다.
엘릭서는 현대에도 제법이 남은 포션! 존나 일자상전(一子相傳) 비인부전(非人不傳) 문외불출(門外不出)의 기밀로 여겨지지만 제조법은 제대로 남아 있다.
아마 찾아보면 무형문화재 엘릭서 장인(18대손) 같은 것도 나올 것이었다.
그래서 고고학계에서는 엘릭서를 대단한 업적으로 쳐주지 않았다. 이세계판 코카 콜라 같은 거라서 완성품으로 제법을 추측하는 것도 어렵고 말이다.
‘아니 씹, 절대 나쁜 건 아닌데.’
가격으로 말하자면 이건 같은 무게의 미스릴보다 비싸다.
고치지 못하는 것은 죽음과 암, 마지막으로 탈모 뿐이라는 얘기까지 있는 희대의 포션!
‘근데 기왕이면 제조법 같은 게 있길 바랬는데…….’
그거라면 엘릭서 1000병을 가져와도 못 바꿀 금액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어쩌면 돈에 눈이 멀어서 우리끼리 칼을 뽑게 됐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것도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게다가 우리는 다른 전선기지가 있는 지도도 얻었잖은가!
자금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만족하자.
“엘릭서?! 그, 그거 엘릭서인가요?!”
내가 상자를 들고 나오자 티르시가 비명을 질렀다. 다른 사람들도 그 소리에 눈이 주먹만 해졌다.
“노노, 노르드!! 제가, 제가 좀 봐, 봐도 될까요?!”
뭐에 홀린 것처럼 다가오더니 이상한 소리로 묻는 티르시. 나는 그런 티르시를 믿고 포션병을 내밀었다.
“4병 있는데, 이거 하나면 되나요?”
“충분해요! <응집 탐지(Detect Coagulation)>!”
─휘이잉. 티르시가 주문을 외자 빛이 포션병을 감쌌다. 저 마법은 골렘을 잡을 때도 썼던 것 같은데.
─덜더덜덜덜더더덜덜.
그 빛을 뚫어져라 쳐다본 티르시는 갑자기 수전증을 발병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깜짝 놀라서 포션을 빼앗듯이 들었다.
“티르시. 왜 그래요?”
“왜, 왜라뇨?! 이건 침전물도 없고 마나도 균등하게 섞여든 최고급의 엘릭서에요! 4병이면 거의 저택을 세울 거라고요!”
어째서 놀라지 않느냐는 것처럼 묻는 티르시였다.
아니, 그, 단위가 너무 커지면 실감이 안 가는 레후에요. 뭐 대충 로또에 맞았다고 보면 될까? 내가 미심쩍게 엘릭서를 보고 있자 셀레나가 부채를 펼쳤다.
“아-핫핫핫!! 저, 태어나서 가장 크게 놀랐어요! 눈이 굴러떨어질 것 같답니다!!”
좆도 안 놀란 톤으로 그렇게 말한 셀레나가 내게 말했다.
“노르드 씨!! 축하드려요!! 저도 엘릭서를 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랍니다!! 아버님은 가지고 계셨지만 보여주지는 않으셨거든요!!”
“그, 그렇습니까?”
“예!! 이거 자존심을 세운 것이 빨리도 후회되네요!! 하지만 내뱉은 말과 저문 태양은 되돌릴 수 없는 법!! 저희는 노르드 씨의 엘릭서에 지분을 요청하진 않겠어요!!”
그건 듣던 중 고마운 말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돌아가는 길에 뒤통수에 칼 맞는 일 없게 조심해야지.
그렇게 셀레나가 깔깔대자 우리는 당연하게 네이슨을 보게 되었는데, 그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2차 계약 조건은 습득품을 3등분 하기였죠? 셀레나 양이 자기 몫을 양보했으니까 저희는 1병 반이면 됩니다── 만.”
네이슨은 그렇게 말을 끊더니 자기 파티원들과 속닥거렸다.
설마 이걸 통수 각을 본다고? 나는 포션 상자를 내려놨지만 네이슨은 참 애석하다는 것처럼 말했다.
“응급용으로 딱 반 병만 받겠습니다. 찾은 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여러분들이고, 저번에 도움을 받기도 했잖습니까?”
“그러시겠습니까? 저는 호의를 사양하지 않는데요.”
“하하하. 돈을 벌려고 온 것은 아니니까요. 좋은 동업자를 만났다는 걸로 합시다. 팀 비리디언은 언제나 의뢰를 환영한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아아. 명심해 두겠습니다. 흐흐흐.”
어색하게 말하는 네이슨에게 나는 엘릭서를 따라서 나눠주었다. 그러면서 몰래 웃었다.
‘자기들이 큰 도움이 안 됐다는 건 아는군.’
물론 저들이 양심이 찔려서 저럴 리가 없는 법!자기가 아무 일도 못 했어도 정해진 보수는 가져가는 인종이 모험가다.
그치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심해층 아딱~실딱 사이에나 적용되는 말이었다.
‘이미지 관리인가. 나름 현명하네.’
로마니아의 큰 상인 길드의 딸내미, 고고학계의 박사이자 연구소장,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으로 나까지.
이런 많은 사람에게 ‘날먹충’이라는 인상이 박히는 것은 고위 모험가가 가장 피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골딱이쯤 되면 체면에도 신경을 쓰게 되지.’
어떤 사람이 돈에 양심을 팔아먹을 모험가 팀을 신용해 주겠는가!
미스릴보다 올라가면 얘기가 다르지만, 골딱이들은 비슷한 수준의 동업자가 많다.
대체재가 잔뜩 있기에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못 쓰면 짬처리된 의뢰나 하며 살기 싫으면 처신 잘 해야지. 암. 암.
“이것보다 더 나은 보상은 찾기 힘들겠죠. 이 탑은 전부 돌파했다고 보고해도 되겠습니다.”
씁쓸하게 엘릭서 반 병을 챙긴 네이슨이 말했다.
그 말에 뭐라고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몇 개 안 되는 전리품을 챙겨서 유적을 올라가기로 했다.
참고로 크라운 크라운의 책은 ‘내용이 별 것 없다’는 이유로 원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기에, 순전히 라리루라의 차지가 되었다.
“아하하핫♡ 에헤헤헷♡”
만에 하나라도 찢어질까 무서운지 책자를 품에 안고 웃는 라리루라.
나도 논문거리를 찾으면 저런 반응일까. 어떤 내용인지도 궁금하니까 다음에 물어보도록 하자.
‘이번 탐사 보고에는 다나가 내 명의도 추가해 주겠지.’
─현장직 석사 노르드의 조력을 받아서 탐사를 성공함.
아마 그런 식의 보고가 되겠지.
조별과제에 이름을 넣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고고학자로서의 약력을 하나 더 늘린 셈이다. 지도의 유적을 찾아내면 석사 동장을 탈출하는 것도 머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지나온 길을 되짚어서 탑을 올라갔다.
“코로로로로──!!”
벌레 몬스터는 내 생각대로 이계의 여러 곳에서 소환하는 것인지 길을 막았지만, 일약 소대급의 실딱골딱 클래스 앞을 막은 대가로 전부 벌레 목숨이 되었다.
“거의 3일만의 태양이에요!!”
그렇게 지상에 도착하자마자 셀레나는 기운 넘치게 소리를 쳤다.
나는 회중시계를 확인했다. 1시 20분이다. 시발, 저 탑에 들어간지도 벌써 3일이나 지난 것이었다.
“베르베이아 연구소장님. 이쪽 의뢰서에 싸인을…….”
“아아, 네.”
골딱이 팀은 올라오면서 작성한 서류에 다나의 싸인을 받고 우리에게 인사했다.
“그러면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저희는 쉬다가 실전 훈련을 계속할 생각이니, 언젠가 다시 뵙겠습니다.”
“예. 안녕히 들어가십쇼. 조심하시고요.”
─끄덕. 수긍한 네이슨과 친구들은 자기 텐트로 가버렸다.
네페르티티도 그렇고, 이별에 산뜻하게 대처하는 능력도 베테랑 모험가의 소양인가 보다.
“디스뮤크!! 저희도 헤이스벤트로 돌아갈 준비를!! 전원!! 복귀할 준비를 하세요!!”
“사망자의 장례와 조의금은…… 돌아가서 마저 말하죠.”
검을 검집에 넣은 셀레나의 표정에 잠깐 그늘이 드리웠다.
그 수심 깊은 표정은 우리를 돌아봤을 때는 깨끗하게 사라졌기에, 나는 못 본 척 넘어가기로 했다. 내가 뭐라고 하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노르드 씨.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이렇게 살아서 헤어지게 되어서 기쁩니다. 말씀드린대로 로마니아에 돌아가면 저로부터 감사패를 보내드리겠어요.”
“잘 보관해 뒀다가 손님들한테 자랑하겠습니다. 제가 이런 미래의 대부호님과 안면이 있다고 말이죠.”
“아─핫핫핫핫!! 듣기 좋은 말씀을 해 주시는군요!!”
적당한 아부에 좋게 반응해 주는 셀레나였다. 상인 씩이나 되가지고 내 아부에 넘어온 건 아닐 거고, 적당히 리액션을 취해주는 걸까.
눈물이 나도록 웃은 셀레나는 나랑 악수를 하며 말했다.
“인연이란 좋은 것이죠. 때로는 인맥이 목숨이나 재산을 지켜주는 경우도 있답니다. 이번에 그랬듯이요.”
“제가 살던 곳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목숨을 걸고 같이 싸운 저희는 보통 인연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부디 그렇게 되길 바라겠어요. 그런 의미에서도 감사패에 동봉해서 초대장을 보내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초대장이라 하시면?”
뭐 저택에 놀라오라든가, 그런 거? 좀 거북한데.
내가 싫어하는 게 티가 났던 걸까. 셀레나는 부채를 펼치며 깔깔댔다.
“옥션의 초대장이랍니다! 매년 봄, 푸르른 생명이 피어나는 로마니아의 수도에서 열리는 옥─ 션!!”
아아, 그런 초대장인가. 엘릭서를 사 줄 사람에 짐작이 안 가는 상황이기는 했다.
‘보내만 준다면 개꿀이지.’
경매라면 보통 때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것이었다. ‘고대문명의 전설적인 엘릭서(마법사 길드의 정품 인증 첨부)’ 같은 거에 환장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니까.
“감사합니다. 좋은 보답이 되겠어요.”
“별 말씀을!! 좋은 물건을 그에 걸맞는 가격에 팔기 위해, 저와의 인연을 유효활용하시기를!!
……앗. 그런데 수수료가 약간 제 앞으로 온다는 것도 알아두세요?”
“푸흐흐흐. 그거야 초대장을 받았으니까 감수하겠습니다.”
─탁! 셀레나는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부채를 접었다.
“역시 호방하시군요!! 영웅의 풍모가 보여요!! 다시 만나는 날에는 저도 한층 뛰어난 부호가 되어 있겠어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게 인삿말이었던 걸까. 셀레나는 홍소를 울리며 텐트로 돌아갔다.
영웅의 풍모는 나보단 댁의 웃음소리에 더 있는 것 같애요.
“쓰읍. 이제야 다 끝났구만. 누구 덕분에 가슴 졸였다가, 기뻤다가 해서 피곤해 죽겠어 아주.”
우리끼리만 남자 다나는 상스럽게 팔을 돌리며 풀어댔다.
왜 저게 상스럽냐면 우리 눈나의 겨드랑이가 존나 야해서 그렇다. 좋은 구경을 하던 나는 다나의 잽에 어깨를 맞았다.
“다 끝났지? 집에 가자. 씻고 싶어서 죽겠어. 말도 빌려서 왔으니까 금방이야.”
“아, 그거 말인데요. 죄송하지만 저는 먼저 돌아가 봐도 되나요?”
티르시가 거수하며 말했다. 마나로 신체 강화를 못 하기 때문에 우리 중에서 제일 지친 분위기였다.
“당일치기 탐사라고 들어서 일정을 그렇게 조정했거든요. 내일도 일이 있으니 빨리 돌아가서 씻고 자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아. 그런 일이라면 저희는 신경 쓰지 마세요. 티르시도 정말 고마웠습니다. 나중에 엘릭서 값도 나눠 드릴게요.”
“상부상조 하는 건데요 뭘. 그래도 고생한 답례로 감사를 들으니까 기분은 좋네요.”
피곤한 얼굴로 웃는 티르시. 프랑도 고개를 끄덕였다.
“노르, 힘들지? 여기서 기다려. 가서 말들을 데려올게.”
“말? 말까지 빌려왔어?”
“응. 급했으니까. 사람들도 고용해서 맡겨놨어.”
“돈 많이 썼겠네. 미안해서 어쩌냐.”
“돈이 문제야? 우리 남편님이 안 뒤졌으니까 됐지.”
그리 말한 다나는 손사레를 치며 프랑과 티르시를 데리고 말을 이끌러 갔다.
나는 황야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시발거 이 놈의 서부영화 세트장 같은 곳에서는 맨날 고생만 하다가 가는군.
내가 혀를 차고 있자 라리루라도 옆에 앉았다. 나는 딱히 신경쓰지 않고 푸른 하늘을 구경했다.
밤하늘에는 프랑이랑 같이 생긴 추억이 많은 나다. 하지만 어두운 이계에만 있다가 와서일까? 이런 대낮의 하늘도 나쁘지 않았다.
“파랗고 밝아서 좋구만.”
“정말로요.”
무심결에 나온 말에 라리루라가 대답했다.
그 녀석은 모래바닥에 앉아서 무릎을 안고서는 데면데면한 분위기로 중얼거렸다.
“……저기요, 선배. 이래저래 고마웠어요.”
“뭐가? 이번에 얻은 책이라면 나도 빌려 볼 건데?”
“아, 진짜. 눈치 없게 굴지 마세요. 머리도 좋으면서.”
─툭툭. 삐진 것처럼 내 어깨를 치는 라리루라. 나는 히죽 웃고서 바닥에 엎드렸다.
“고맙기는 뭐가. 하나하나 감사하다 보면 입 아프다.”
“네에, 네에~. 서로 쌤쌤인 걸로 하죠. 하여튼, 선배랑 만나고 나서는 매일이 파란만장해서 질릴 틈이 없다니까요?”
“내가 그런 체질이라 그래. 그리고 쉴 틈이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그러게요. 이번에도 저 없었으면 큰일날 뻔 했죠?”
모자를 벗은 라리루라는 부르튼 입술로 호선을 그렸다.
“저 있잖아요, 저번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됐던 만큼은 일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선배 생각은 어때요?”
“흑마법사 때 얘기냐? 그렇네. 그때 일을 잊어버릴 만큼 잘 싸워줬어.”
“아핫♡! 그렇게 말해주실 줄 알았어요. 선배는 목숨이 여러 개 있는 것처럼 사시니까, 저처럼 믿음직스러운 후배가 있어서 나쁠 건 없죠?”
“흐흐. 그건 그렇지. 근데, 그렇다고 해서 네가 억지로 도와줄 건 없다? 프랑이랑 다나도 있으니까.”
“흐응……. 저도 무지 노력했는데. 그래도 역시 가족이 제일 믿음직스럽긴 하겠죠?”
라리루라는 드물게도 낮은 소리를 내며 코를 울렸다.
“……아내, 앞으로 몇 명이나 더 늘리실 거에요?”
“내가 무슨 왕족도 아니고 아내를 열 명씩 들이진 않겠지. 그래도 대충 4~5명은 될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라면 평민 중에서도 탑티어로 잘 나가는 남자들은 가능한 숫자였다.
가난뱅이 귀족이랑은 비교도 불가능할 정도로 재산이나 능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내 목표는 그것보다 더 어려운 난관이다.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었다.
“그런가요. 2~3명인가.”
……벌떡!
중얼거린 라리루라는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나한테서 엉덩이를 돌리며 바지의 먼지를 털고 기운 차게 웃었다.
“내년 봄이 기대되네요☆! 선배, 로마니아에 가실 때는 꼭 저도 데려가 주시기에요? 단장님이랑 서커스단의 동료들도 보고 싶으니까요!”
“그래. 까짓거 그러지 뭐.”
나는 웃으며 대답하고 눈을 감았다.
내년이라.
내가 이세계에 온지 4년째 되는 날도, 앞으로 얼마 안 남은 셈이었다.
나는 피곤한 몸으로 목욕탕에 갈 때면, 어릴 적에 다니던 태권도장이 떠오른다.
그 태권도장의 관장님은 중증의 목욕성애자였다.
유치원 교사의 변이종이었던 우리 관장님은 떡잎 누런 코찔찔이들의 체력을 탕진시켜서 매일밤 부모님들의 숙면을 보장한 대가로 소액의 돈을 받고, 그 돈으로 실전근육을 단련하는 생계형 헬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