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5화 (175/1,009)

“그거 티르시가 쓸 줄 알어. 다음에 물어보고 배워올게.”

“그 사람이? 아, 포션 연금술사랬지. 그럴 만 하네.”

“엥. 포션이랑 정화 마법이 도당체 무슨 상관이죠.”

“존나 요 빡대가리 여보야. 포션에 이물질 들어가면 뚜껑 막아서 밀폐해도 좆 되니까 소독하려고 배우는 거겠지? 내가 우리 남편 바보짓 할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

“가슴이 아픈데 왜 쳐 쪼개는 것이지. 신전에 가렴.”

“생리 안 오면.”

“시발 이걸 그렇게 받아치네. 그땐 존나 나도 데려가요.”

생각해 보니까 우리 눈나는 셀프-힐링이 가능한 여자라서 병원 갈 일은 없겠다.

청소도구를 정리하고 우리는 가구를 사러 갔다.

“노르. 방은 많으니까 일단 각방 쓸 거지?”

“각방? 키타이에서는 부부는 같은 방 쓰는데.”

“뭐? 셋이서 자자고? 난 매일 아침마다 바닥에서 깨겠네.”

“듣고 보니 그릏네. 침대가 넓어도 일 나가는 시간도 전부 달랐지 참.”

프랑이나 다나도 쓰는 물건이 많으니 개인실이 필요하겠지.

그래서 우리는 돈을 털어서 침대부터 샀다. 여자들 쇼핑에 따라다니는 남자는 이 세상의 모든 지루함을 견뎌야 한다는 걸 다시 배우고 나자 3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아내들이 침대를 골라오자─안방에 놓을 침대는 킹 사이즈 수준이었다─ 직원이 그걸 포장해서 집으로 보냈다.

다나는 마차에 실리는 침대를 보며 말했다.

“큰 침대는 안방에 두고, 그 방은 노르 니가 써라. 어차피 우린 심심할 때마다 거기 가서 잘 거니까.”

“그래. 그보다 나는 아직도 2층집에 방이 6개나 된다는 게 존나 신기하더라.”

우리가 산 집은 약간 미국 농가 집 같은 곳이었다.

나쁘게 말하면 귀신 씌인 인형 같은 게 나올 법한 곳이다. 귀신 같은 게 나와도 내가 룬 마법으로 대가리 터트려 주면 되겠지. 니가 왔던 심연으로 돌아가라.

“2층에 있는 건 애들 방 아니냐? 크기는 꽤 크다만.”

“아, 그런가.”

2층에 있는 방이 4개나 되던 건 그래서였나.

이세계인들은 흥부처럼 애를 잔뜩 낳아서 노동력으로 쓰고 성인이 되면 돈을 쥐어주며 독립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우리 집의 옛날 주인도 일단 낳고 보는 사람이었나 보다.

존나 옛날 한반도 사람 같다. 자는 낳고 생각하면 되는데스.

“1층 안방 옆에 있는 작은 방은?”

“아, 그건 갓난아기 방일 거야. 울거나 하면 엄마아빠가 얼른 가서 달래줘야 하니까.”

“아하. 건축가들은 다 계획이 있구나.”

프랑의 말에 손바닥을 치는 나였다.

근데 나는 존나 자식 계획이고 뭐고 일단 프랑이랑 다나랑 결혼식부터 올려야 하는데.

시발, 이것도 존나 고민된다. 암만 그래도 양손에 아내들을 끼고 결혼할 수는 없잖아. 한 명씩 결혼식을 하면 나는 신랑 옷을 뭐로 하지?

같은 옷을 재탕하는 건 존나 오바겠고, 다나한테는 결혼식 때 반지를 주면 되려나? 결혼식장은 어딜 빌려야 되지?

‘존나 결국 또 돈이 문제구만.’

빨리 봄이 와서 엘릭서가 팔리든지 해야 되는데, 왜 아직도 가을이고 지랄이지.

브리타니아에 대출 제도가 없는 게 한이다.

“야, 프랑. 이거 봐. 이 새끼 또 이상한 생각 한다.”

다나가 내 뺨을 찌르며 말했다. 시발 어떻게 알았지.

“쿡쿡. 정말이다. 맨날 이런다니까.”

“새끼. 옆에 아내가 둘이나 있는데 딴 생각을 왜 해? 존나 건방지네. 정신 붙들어 매라?”

프랑은 내 팔에 팔짱을 끼자 다나도 짖궂은 웃음을 지으며 흉내를 냈다. 이게 양손의 꽃인가 뭔가 하는 그거구마잉.

“내가 딴 생각 하는 건 다 너희 기쁘게 해 줄려고 그러는 거야. 알어?”

“아는데? 그야 나도 그러는걸.”

“잘 아니까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우리만 봐. 얼른 다른 가구나 보러 가게.”

그렇게 웃음이 그치지를 않는 아내들에게 연행되어서 나는 사르가디스의 가구 상점을 전부 돌아보는 처지가 되었다.

다른 남자 쉐끼들의 질투 어린 시선만이 유일하게 즐거운 요소였다.

나한테 집들이 파티라는 건 털 숭숭 난 덥숙머리 너드 새끼들이 몰려와서 깽판을 지는 짓이라는 인상이 컸다.

시팔럼들이 선물이라면서 지들이 먹어보고 싶었던 양주를 들고 온 것만도 어이가 폭발사산하겠는데, 그딴 병신짓을 하는 새끼가 둘이나 있었다는 게 내 인간관계를 돌아볼 기회를 주곤 했었지.

하지만 그런 20대 초반의 똘기 어린 집들이를 이세계에서 재현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강아지 강 씨댁의 강북호가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서 우리 신혼집이 드디어 사람 새끼 사는 곳으로 보일 정도로 정돈이 됐을 때, 나는 우리 파티원들만 집들이에 부르기로 했다.

‘하객의 라인업이 조금 엉망진창이 되니까.’

최근 들어서 성장세가 미쳐버린 내 인맥은 폭이 좀 컸다.

상위권으로는─대충 얼굴 도장만 찍어놓은 정도지만─ 영주의 축하연에 참여할 정도의 인물들도 있는데 밑으로는 도르카 클라라 같은 일반 서민까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아는 사람들을 다 부르면 존나 아수라장이 될 것이었다.

적어도 크롬웰 라인은 찾아와 줄 것 같은데, 그 인간들 기준으로 파티를 열면 밑에 사람들이 붕 뜬다.

밑을 기준으로 맞추면? 치킨 피자만 시켜놓고 아는 사장님들을 집에 불러놓는 격이었다.

‘그럴 바에는 걍 우리끼리 비싼 거 차려놓고 놀고 말지.’

그러면 왜 날 안 불렀냐 하는 불평은 말 못 할 것이었다.

안 그래도 내가 티르시랑 라리루라한테 한 턱 쏠 예정도 있었다.

우리 다섯이서 모여가지고 먹고 놀면 파티끼리 사이도 돈독해지고 좋지 않겠는가. 집들이는 호화로운 파티일 필요가 없었다. 내가 뭐 저택에 사는 대부호도 아니고 말이다.

이건 절대 내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내 통장에 잔액이 5실버 1쿠퍼 남은 것과 이 일은 완전히 무관함을 미리 말해두겠다.

“이제 남은 문제는 요리군. 내가 알아본 레스토랑에 포장 서비스가 있다니까 메인 몇 개는 거기서 포장해 오고, 남은 건 성의 없어 보이지 않게 우리가 요리해서 만들자.”

“난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샌드위치밖에 없는데.”

“누나한테 요리 같은 과분한 능력은 바라지도 않음.”

“씹놈이 젠틀하게 좆 같네.”

괴멸적 가사능력을 자랑하는 우리(나&다나)였기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건 비밀이다.

이 많은 요리를 프랑한테 혼자서 파티의 요리를 다 맡겼다가는 우리 프랑이 새벽부터 일어나서 요리해야 할 것이니까.

“선배~! 집들이 선물로 수건이랑 수면 랜턴을 사 왔어요! 그리고 이 집의 첫 손님 자리는 제가 받아가겠습니다☆!”

한가한 미성년자 라리루라도 아침부터 찾아와서 도왔다. 얜 자기가 하객이라는 자각이 없는 모양이다.

단, 이 녀석도 가사능력은 없음.

‘프랑 마망과 간 보는 아이들’ 그룹의 완성이다.

“야. 우리도 재료 써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거든?”

“저도 가끔씩 그 사실을 깨닫고 놀라곤 한답니다…….”

“선배? 스파게티 끝에 불 붙었는데 어떡해요?”

“와우 리을리?”

“시발 뭐지. 요리에 치즈 올렸는데 왜 안 녹아?”

“치즈 덩이가 누나 머리통보다 크기 때문이 아닐까요.”

“얘들아……. 미안한데 노르 빼고 다 나가줄래……?”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서 프랑은 열심히 주방에서 일하며 찬거리를 깔았다.

적어도 상식은 있는 나였기에 프랑의 요리 조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나도 프랑의 앞치마를 보고 알몸 앞치마는 남자의 로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물 양 조절해 실패하기는 했다.

“후으, 끝났다…….”

프랑이 준비를 끝내자 티르시도 도착했다. 일을 끝내고 온 건지 사복 차림이었다.

“어서 오세요, 티르시.”

“후후. 오늘은 불러줘서 고마워요. 이건 찻잔 세트인데, 혹시 이미 샀으면 다른 선물로 바꿔 올게요.”

“찻잔이요? 고맙습니다. 손님들 오실 때마다 잘 쓸게요.”

그렇게 파티원들은 프랑이 심혈을 기울여서 고른 테이블에 사이 좋게 앉았다. 이 집의 가장 겸 파티장인 나는 술잔을 들고 헛기침을 했다.

“초대한 손님보다 가족 수가 더 많으니 뭐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네요. 그래도 얼렁뚱땅 맺어진 파티였으니 이렇게 제대로 잘 부탁드린다는 자리를 만들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내가 말했다. 라리루라도 티르시도 제대로 인사하고 잘 보내자는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었다.

생각과는 다른 형태였지만 집들이가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자.

“이러쿵저러쿵 해도 오래 볼 사이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려요, 여러분~♡”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쨍! 우리는 술잔을 섞고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누가 뭐 말한 것도 아닌데 프랑에게 주목을 모았다.

“……매, 맥주 정도로는 안 취해요!”

프랑은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깜빡이다가, 조금 늦게 소리를 쳤다.

“어? 아, 그, 그렇지? 난 당연히 알고 있었어. 안 그러냐, 남편님아?”

“그렇고 말고. 나는 프랑의 주량을 믿었음.”

“둘 다 너무해!”

빼액 화를 내는 프랑 덕분에 잠깐 웃음이 올랐다. 그렇게 분위기가 풀어진 자리에서 우리는 요리를 즐겼다.

“와아…….”

베이컨 야채 말이를 입에 넣은 티르시는 한 입 씹자마자 놀란 것처럼 입을 가렸다.

“이 베이컨 요리, 굉장히 맛있네요. 이게 레스토랑에서 주문했다는 요리인가요?

“그건 프랑이 한 겁니다. 저는 재료만 썰었고요.”

“네? 이게요? 프랑 씨, 솜씨가 대단하시네요.”

“헤헤. 감사해요. 맛있게 드셔 주시니 기뻐요.”

칭찬을 받은 프랑은 도수 낮은 와인을 물처럼 마셔댔다. 조금 취하면 저따 물 타 줘야지. 아마 눈치 못 챌 테고.

라리루라는 자기가 불에 태워서 살해했던 스파게티─프랑이 죽은 자의 소생을 걸어서 부활시켰다─를 먹다가 눈을 빛냈다.

“어디어디? ……흠흠흠. 과연☆! 일류 광대인 저는 알 수 있다구요~? 이 오리 요리에 담긴 프랑 언니의 사랑을요!”

“걔는 사온 건데.”

“주방장이 니한테 반한듯.”

“내 죄가 크다.”

“둘 다 그만 놀려. 라리루라 울겠다.”

그렇게 단란한 식사를 마치고 당연한 결과처럼 프랑이 물 탄 와인에 넉다운되자 분위기가 풀어졌다.

“햐~☆! 이렇게 배 터지게 먹은 거 처음이에요! 내일 쇼를 걱정 안 하고 밥을 먹어도 된다니! 인생 손해봤어요!”

“라리루라. 먹고 바로 누우면 소 된다.”

“그렇게 되면 선배가 길러 주시기에요? 물론 애완용으로!”

“프랑이 정원에 채소밭을 만들지 고민 중이던데, 취직할 곳 찾은 거 아니냐?”

티르시는 내가 라리루라가 누운 소파를 흔들어서 음메 하고 울음소리를 내게 하자 빵 터져버렸다. 품위를 지키려고 열심히 웃음을 참던 티르시가 말했다.

“후후후. 좋은 집이네요. 아늑하고.”

“다나랑 프랑이 인테리어에 힘 좀 썼죠. 덕분에 저도 좋은 집을 샀다고 생각 중입니다. 야, 라리루라. 자고 갈 거면 방 내 줄까? 침대도 이불도 없는데.”

“후이으……. 프랑 언니 침대에서 자고 갈래요…….”

“잠버릇 나빠서 쫓겨나면 소파에서 자라.”

“네에. 안녕히 주무세요……. 와인 대신 사 주신 쥬스 맛있었어요…….”

라리루라는 그리 말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다나가 프랑을 재우러 간 방으로 말이다.

나는 집주인이 앉는 작은 소파에 몸을 뉘였다.

티르시는 식후의 차를 마시며 촛불의 불빛을 즐겼다. 그렇게 찻잔을 감싸고 있던 티르시가 불쑥 말했다.

“편지를 받고 아우둠라 길드에 갔었는데, 저도 저번 의뢰 2개에서 활약했던 덕분에 실버 클래스로 승급할 자격을 얻었다고 하더라고요.”

“정말입니까? 하긴, 그럴 법 하군요. 제가 흑마법사 놈을 잡았던 건 티르시의 활약 덕분이었으니까요.”

네페르티티가 증언을 해 주고 갔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 알았겠지. 티르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말인데요. 기억 나시나요? 예전에 제가 하수도에서 했던 말이요.”

“이 화제에서 이어질 얘기라면── 마법사 길드원은 모험가 등급을 올리기 어렵다는 말씀 말이시겠죠?”

“노르드와 대화할 때는 이야기가 빨라서 정말 편하네요. 네. 그 얘기에요.”

─달칵. 찻잔을 두고 티르시는 천장을 봤다.

그러더니 말했다.

“저는 마법사로도 모험가로도 경력에 스크래치가 남아서는 안 돼요. 실패를 트집잡는 사람은 저에게 바닷가의 자갈처럼 당연한 거고, 제 실수는 그런 사람들의 손에 화살을 쥐어주는 꼴이 되고 말거든요.”

“진지한 이야기입니까?”

“그럼요. 조금 많이, 진지한 이야기에요.”

테이블의 촛불에 등을 돌린 티르시는 간곡하게 말했다.

“노르드. 저랑 같이 승급 시험을 치뤄 주세요.”

시험을 같이 쳐 달라고?

나는 그런 티르시의 말을 듣자 당황하고 말았는데, 그건 이 전직 귀족 아가씨가 나한테 부탁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같이 시험에 응시하더라도 파티를 분류하는 건 길드가 임의로 나누는 것 아니었습니까?”

당황한 이유는 이거다.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게 맞다면 실버 클래스 승급 시험은 길드에서 파티를 짜 주는 것이었다. 나랑 티르시가 같은 시즌에 시험에 도전해도 같은 팀이 될 확률은 낮지 않을까?

그러자 티르시는 고개를 저었다.

“편법이 있어요. 응시하고 나면 취소할 수 없고 일정 탓에 파티 분류가 처음부터 순차적으로 이뤄지죠. 그래서 저희가 같은 팀이 되려면 접수 마감 직전에 동시에 응시하면 돼요.”

“아아. 응시 마감 이후에 파티를 분류하는 방식이 아니었나 보군요.”

그렇다면 비벼볼 만 하겠다.

마감 1분 전에 동시에 응시를 한다면 인원이 모자란 파티에 원쁠원으로 박아줄지도 몰랐다.

하지만 운이 존나 나쁘다면 생판 다른 파티에 꽂힐 가능성도 있을 듯 한데.

“인원이 모자라서 저희끼리만 시험을 치게 되거나, 다른 3~4인 파티에 따로따로 꽂힐지도 모르는데요?”

“인원이 적어진다면 그만큼 사냥해야 하는 오크의 숫자도 줄어드니까 그 점은 괜찮아요. 뭣하면 응시 이후에 포기하셔도 되고요. 다른 파티가 되는 케이스는 어쩔 수 없고, 그때 가서 파티끼리 협업해도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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