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베로니카의 말에 약간 거북해졌다. 대단한 이유는 아니고 그냥 내가 그 ‘저주’를 푸는 방법에 확신을 갖고 있지 않아서였다.
‘나보다는 얘가 더 확신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베로니카는 내가 신들의 저주를 풀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아마 인간이 쓸 수 없는 오리지널 룬 마법을 사용한 게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것은 전기 자동차를 보고 비행기나 항공모함까지 전기로 굴리겠다는 생각에 가깝다. 그만큼 허황된 망상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꼬았던 다리를 다시 폈다. 말하기 힘든 얘기를 해야 했기에 공손한 태도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 베로니카. 저번에는 시간에 쫓겨서 제대로 말을 못 했지만은, 난 내가 바이콘의 저주를 풀 수 있다고는 한 마디도 안 했다?”
【어째서 도전하기도 전에 포기하느냐.】
─탁탁. 작은 망아지의 꼬리가 등을 털었다.
【그대여. 그대에게는 그저 ‘못 한다’는 말만 가지고 간단히 끝맺음낼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기분이다. 실낱 같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게 뭐든지 간에 시도하기를 망설이지 않을 만큼 말이다.】
텔레파시 같은 룬 마법으로 뇌에 직접 들리는 베로니카의 말이었다. 망아지로 폼 체인지한 상태여도 절실함은 그대로인가 보다.
과연. 베로니카도 100%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구나.
그렇다면 나도 마음 놓고 상대해 줄 수 있겠다. 저렇게까지 부탁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마초답지 못했다. 나한테 손해를 입히는 게 아니라면 상대해 주는 것 정도는 해도 되겠지.
베로니카는 바닥에 앉으며 말했다.
【하물며 그대에게는 벌써 몇 개나 되는 저주를 해소했다는 업적이 있지 않으냐. 지푸라기 따위에 빗대기에는 미안할 정도니라.】
“아, 그런 거야? 미안. 나는 니들이 말이니까 짚을 높게 쳐 주는 줄 알았지.”
【바보 같은 소리. 나는 짚 따위 입에도 대 본 적이 없다.】
내 말에 약간 울컥한 듯한 베로니카였다.
신마의 후손이어도 본체는 인간형이라서 말처럼 짚단을 우물거리지는 않는 걸까?
하긴 내가 여자가 된다고 남자 찌찌에 자궁이 큥큥하지는 않을 테니까. 자아 정체성이 인간이라면 식성도 인간이랑 비슷하겠지.
트루-코리안인 나는 건어물도 나물도 잘 먹으니까, 망아지 반 신족 반인 베로니카가 짚을 먹는다고 해도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러시아인들은 조선인들이 고사리를 말려서 먹는 것을 보고 경악을 했다는데, 짚도 말린 풀이라는 점에서는 고사리랑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저주를 푸는 방법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얘기를 나눈다 치고, 그보다 너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왔냐? 여관 주인이 못 들어오게 막지 않았어?”
【룬 마법의 ᚴ(Kaunan)으로 몸을 숨겼다. 인상 미채, 라고 하면 알아듣겠느냐?】
“아, 그건가. 비슷한 거라면 나도 쓸 수 있어.”
나는 ᚴ(Kenaz)의 룬을 공중에 그렸다. 이 룬 문자는 참된 뜻을 깨닫지 못했기에 매개체가 없어서 사라져버렸다.
‘룬의 변형어인가. 헤이스벤트를 빠져나갈 때도 저걸 썼던 거겠지.’
룬 어도 다른 언어들처럼 시대와 지역에 맞춰서 변화를 겪었다.
그래서 몬스터가 쓰는 것과 바이콘이 쓰는 것, 인간들이 쓰는 것은 모두 비슷하거나 다르거나 했다. 지구의 언어처럼 곂치는 내용이 있으면, 입맛이나 발음체계에 맞게 바뀌거나 한 것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ᚲ(Kenaz)와 ᚴ(Kaunan)은 ‘육시(戮屍)를 할 놈’과 ‘육시럴 놈’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보면 되겠다.
쉽게 말해서, 대충 발음 차이라는 뜻이다.
베로니카는 무등에 탄 고양이를 바닥에 눕히며 말했다.
【그래. 유래는 같지만 신의 저주를 받은 인간들이 쓰는 것보다는 훨씬 더 효과적이지. 물론 그대라면 언젠가 비슷한 수준으로 쓸 수 있겠지만 말이야.】
“금칠은 됐어. 그래서 해주 작업 말인데, 너 타이밍이 안 조금 좋을 때 왔다.”
【왜 그러지? 무언가 큰 일라도 났느냐?】
“글쎄. 이 마을은 생각하기 나름으로는 큰일이라면 큰일인데, 우리랑은 크게 상관 없으니 넘어가고.”
몬스터가 서식하는 숲에서 반나절 거리에 세운 마을이다. 여기서 태어난 아이에게 잘못은 없어도 이 마을 사람들은 다 위험한 걸 알고 사는 것이겠지.
그 왜,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삼팔선 근처의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나쁘게 말하면 안전불감증인데, 이 사람들한테도 사정은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리 생각하며 말했다.
“내일이면 우리도 사르가디스로 돌아가게 될 것 같거든. 해주 작업을 시도하기엔 밤도 늦었고 돌아가는데 이틀은 걸려. 그래서 너도 조금 기다려야 할 걸.”
【내가 따라가는 건 곤란한가 보구나.】
“파티원들한테 설명하기 어렵기는 하지. 이번에 같이 온 일행들은 프랑이랑 라리루라가 아니거든.”
【나는 부탁하는 입장이니 그대의 사정에 따르마. 며칠의 유예 쯤은 감내하겠다.】
갑을관계가 확실하기 때문인지 베로니카는 내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얘기가 빨라서 좋군.
그런데 베로니카는 약간 아까운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내일 아침에 출발인가. 좋은 장소에서 마주쳤다 싶었거늘, 나는 답례를 주는 일에서조차 그대를 번거롭게 만들겠구나.】
“번거롭게 만들어? 그건 또 뭔 소리?”
【여기 오기 전에 그대에게 빚진 목숨값을 갚을 준비를 해 왔느니라. 성수의 숲에서 이동마법진을 타고 그대에게 줄 룬 스톤(Runsten)이 있는 땅으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대가 여기를 떠날 생각이라면 다음에 다시 데려와야 하겠지.】
“성수의 숲에, 이동마법진에, 룬 스톤에, 뭔 소린지 하나도 이해가 안 가는데.”
그야 단어만 놓고 보면 대충 짐작이 가는데, 이건 낫 놓고 기역자만 아는 거랑 똑같았다. 나는 팔짱을 꼈다.
“그니까 뭐시냐, 저번에 도와준 답례로 나한테 룬 스톤을 주려고 했다고? 아그로스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성수의 숲이 있고, 거기에 이동마법진이라는 것도 있단 얘기?”
【……말해주기도 전인데 귀신 같이 알아듣는구나.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은 어쨌느냐?】
전개가 뻔해서 그렇지 뭐.
잠깐 그리 생각한 나였지만 이건 놀라워 해야 할 일이었다. 베로니카가 태연하게 말해서 나도 놀랄 각이 안 나왔을 뿐이었으니까.
“야. 이동마법진이라는 게 설마 <공간이동(Teleport)>의 마법진이라는 소리는 아니지?”
【이동마법진이랄 게 <공간이동> 외에 달리 있겠느냐? 나 역시 그 마법진을 타고 먼 곳으로 떠났다가, 그대의 꿈에서 저주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온 참이니라.】
“그…… 말씀하신 ‘먼 곳’이라는 곳은 정확하게 어디신지?”
【인간들이 말하는 콰르트고니아의 버려진 터전이다. 우리 바이콘들의 일부는 그곳의 성수의 숲에서 살고 있다.】
“아니 씨발.”
이게 왜 진짜이고 지랄이지.
나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정보가 퍼즐처럼 맞춰져서 나온 결론이 상당히 규격을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저기요, 미친 말 씨. 네 말대로라면 브리타니아랑 외국을 잇는 <공간이동> 마법진이 이 촌구석 코앞에 설치돼 있단 소리 아니에요?”
【미친 말……?! 큭……! 그게 뭐 어쨌다고 그러느냐.】
내 모욕적인 언사에 베로니카는 이를 갈며 화를 참았다.
근데 나도 할 말은 있었다. 베로니카의 설명을 듣고 나니까 저런 과격한 말을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보세요. 전(前) 신족이신 바이콘 님들한테는 어떠실지 모르겠는데요, 저희 같은 인간한테 국가 간을 연결하는 이동마법진이 있다는 얘기는 존나 입이 딱 벌어질 소리거든요?”
골치가 아파지는 말에 나는 이마를 잡고 혀를 찼다.
잘 모르는 사람은 내 반응을 보고 뭘 이제와서 놀라냐고 할 수도 있다. 지저에 탑에서도 <공간이동> 마법진은 봤었으니까 말이다.
‘근데 시팔, 어딘지 모를 이계로 이어진 마법진이랑, 바다 건너 대륙으로 이어진 마법진이 같냐고!’
잘 이해가 안 간다면, 북한에서 일본까지 원큐로 날아가는 텔레포트진이 있다고 생각해 보길 바란다.
이 씨발, 말로 표현만 해도 까마득하네. 이걸 가지고 어떤 분쟁이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존나 무덤까지 들고 가고 싶어지는 정보였다.
‘거기다가 그 염병할 마법진이랑 연결된 장소도 문제 아녀.’
콰르트고니아.
그것은 고대문명 시기에 로마니아와 적대하던 국가의 이름이었다.
지금은 멸망했지만 전성기에는 인신공양이 성행하던 나라였다고 전해진다.
학계에서는 이 정보에 승자인 로마니아의 선동과 날조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보는데, 아무튼 고대문명 시기의 로마니아는 콰르트고니아의 토지를 싹 갈아엎고 문화를 말소해버렸다나 뭐라나.
그래서 현대 이세계에서는 나르메르-나일로 이어지는 육로가 깔린 해안곶이 유명한 곳이다.
말하자면 로마니아 종교쟁이들한테는 아우슈비츠에 가까운 PTSD 스위치!
‘근데 애1미 씨발이. 하필이면 이교도 일부 종파의 마음의 고향으로 직결된 <공간이동> 마법진이라구여???’
그게 존나 ‘짜잔! 일본군 자위대가 21세기의 평화로운 진주만에 핵 잠수함을 잠복시켜 놨답니다!’랑 뭐가 다른 것이지.
나는 뭉크의 절규처럼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존나 이딴 사실 알고 싶지 않았던 레후!!”
정정. 소리 있는 아우성이었다.
물론 그 마법진이라면 <공간이동> 연구에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기는 한데, 지저의 탑에서도 별로 대단한 정보는 얻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빨갱이로 의심받을 가능성이 높은 곳에다가 내 남은 인생을 배팅하라구요? 존나 시발 무슨 북괴 코인 같은 거 타시는 분이세요?
【그대여. 삿된 염려는 불요(不要)하니라. 성수의 숲은 숲 깊은 곳에 결계로 감춰져 있다. 이 결계 안에는 구신의 마나를 가진 자밖에 진입하지 못한다.】
내가 어질어질해 하자 베로니카도 내 걱정을 눈치깐 것처럼 추가 설명을 해 주었다.
【콰르트고니아의 이동마법진은 우리의 시조이신 신마(神馬)께서 구천세계를 미끄러지며 남긴 6개의 편자 자욱, 그중 하나이다. 구신의 마나와 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으면 쓸 수 없는 것은 그것 때문이니라.】
신이 나서 열심히 설명하는 베로니카. 존나 무슨 젊은 애들이 대화하는데 아는 얘기가 나와서 신난 틀딱처럼 흥분한 모습이었다.
생긴 게 망아지라서 몰라 뵀는데, 이 아줌망아지, 연배가 HOXY……?
【뭔가 말했느냐?】
“암말도안했는대요.”
나이를 신경 쓰는 여성에게 나이 언급은 금구이다.
우리 눈나는 나에게 참 많은 가르침을 주었구나. 나는 약간 골치 아픔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그러면 그 뭐냐. 인간은 이동마법진을 못 쓴다는 거지?”
【……다, 단언은 못 하겠구나.】
“않이 저기요 씨발럼 씨.”
【이, 이야기를 들어보아라!】
내 눈초리가 매서워지자 베로니카는 고개를 막 저어댔다. 망아지 모습이라서 귀여워 보여야 맞는데, 좆도 큐트하지 않게 느껴졌다.
【인간도 룬 사용 금지의 저주를 받았다고 했잖느냐! 당연히 그대의 혈맥에도 저주를 내리신 신들의 마나가 조금은 남았을 것이다! 단언하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이니라! 전승과는 여건이 달라졌잖으냐!】
급하게 설명하는 베로니카. 혈맥이라니. 저주가 DNA에 걸리기라도 한 건가?
대대손손 저주의 효과가 이어지니까 대충 비슷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대처럼 변이현상을 신체의 일부에 일으킬 만큼 구신의 마나를 많이 가졌다면 거의 확실히 조건을 충족하겠지! 단지 나도 다른 인간들을 성수의 숲에 데려간 적은 없기에 모를 수 밖에 없다!】
“가능하면 단언을 해 줬으면 했는데── 어? 잠깐만. 너는 내가 변이현상을 일으킨 건 어떻게 알았냐?”
나의 토종 살무사가 이세계 쥬지드라로 초특급 진화를 완수했다는 사실은 우리 아내들이랑 티르시밖에 몰랐다.
어스레이트? 모르는 이름이군.
‘그런데 이 좆랑말 쉑은 내가 변이현상을 일으켰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 것이지?’
【아, 아아. 변이현상은 저주가 퍼진 이후로 구신의 마나를 가진 인간들에게 공통적으로 발현한 증상이니 말이다. 그대 정도의 축적량이라면 발현하고도 남았을 거라고 짐작했을 뿐이다.】
베로니카는 내 관심이 다른 쪽으로 이동한 것을 눈치까자 망아지 꼴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안심을 했다.
왜 저러나 했는데, 아마 첫 만남 때부터 내가 날선 반응을 보인 것 때문인가 보다.
어쩌면 꿈에서 만났을 때도 트라우마급의 악몽 같은 짓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침착하게 옛날 일을 떠올리자 걱정도 사라져가는 것 같았다.
‘그래, 시발거 어차피 내일이면 떠날 마을인데 뭐.’
나는 침대에 손을 짚으며 쓸데없는 걱정을 때려치우기로 했다.
룬 마법의 달인+구신의 마나 소유자라는 조건이 된다면 온 세상을 다 뒤져도 조건을 충족하는 인간은 얼마 없을 것이었다.
나를 빼면 타뷸라나 그 새끼의 조직 정도일까?
그것들이 바이콘들의 성역(聖域)을 찾아서 이동마법진을 타고 나쁜 짓을 벌일 킹능성을 걱정하는 건 너무 심력 낭비인 것 같았다.
【아무튼 그런 일이니 그대가 마음이 내킬 때는 언제든지 내게 말을 걸어다오. 저주의 해주이든, 룬 스톤을 가지러 가는 일이든, 나는 그대의 바람에 맞춰서 움직이마.】
그렇게 내가 진정한 듯이 보이자 베로니카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너도 사르가디스로 가 있어. 우리 집 위치는 설명하면 알겠냐?”
【헤매긴 하겠지만 도착할 순 있겠지.】
“헤맬 것 같으면 그냥 근처 숲에서 대기 타고 있어. 내가 데리러 갈게. 그 고양이 녀석도 같이.”
나는 우리 대화를 씹고 잠에 든 고양이를 가리켰다.
이 놈, 길냥이 시절에 비해서 털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인간 폼의 베로니카가 빗질이라도 해 준 걸까?
─움찔. 베로니카는 어째서인지 그 말에 몸을 떨었다.
【……흐, 흐음. 오늘따라 그대가 왠지 굉장히 신사적인 것처럼 느껴진다만, 내 착각이더냐?】
“나는 원래 기본적으로 존나 젠틀하거든? 이전까지의 만남은 죄다 특수한 상황이어서 그랬던 거라고.”
【……그건 기쁜 소식이구나. 나도 친절한 인간과 대화를 나눠본 것은 로지나에 이어서 그대가 두 번째다.】
바이콘 베로니카는 눈을 낮추며 그리 말했다.
로지나. 내가 구해줬던 곱추 소녀인가. 잡무 담당이라서 베로니카의 돌보미 역할이었다는 얘기가 기억이 났다.
아마 베로니카도 살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던 모양이지. 나랑 처음 만났을 때부터가 서커스단에 붙잡혀 있었으니까 그럴 만도 했다. 만나는 인간이 전부 보물 고블린을 발견한 것처럼 달려들었을지도.
‘그나저나, 룬 스톤이라.’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물건인데. 그 돌멩이가 나한테 도움은 될랑가 모르겠네.
무엇보다 베로니카의 저주를 풀 수 있게 되면 또 다른 바이콘들이 우르르 몰려오게 되지 않을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베로니카에게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을 때였다.
“오, 오우거다!!!!”
“도망쳐!! 오우거가 나타났다──!!!!”
밑에 층에서 커다란 고함소리가 들린 것은 말이다.
【오우거라고?!】
─벌떡! 갑작스러운 비명에 베로니카가 일어섰다. 잠을 자던 고양이도 꼬리를 바짝 세웠다.
“씨발. 안 가니까 지가 쳐 오고 지랄이네.”
육두문자를 발사하며 나는 갑옷을 입었다. 능숙하게 무장을 마치고 창을 들자 베로니카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그대여! 싸울 셈인가?!】
“싸우든 튀든 나가보기는 해야지!”
【도우마! 그대가 위험해지는 것을 방관할 수는 없느니라! 저번처럼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고 약속하겠다!】
양뿔 사이로 마나를 모으며 베로니카는 전의를 불태웠다. 목숨의 은인이기도 하고, 저주를 풀 단서이기도 한 내가 뒤져서는 곤란한 거겠지.
의리와 실리! 두 가지 면에서 베로니카에겐 싸울 이유가 있었다.
“──저 오우거는 룬 마법을 쓸지도 몰라! 조심해라!”
그리 외친 나는 대답을 듣지 않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벌컥! 옆방에서 티르시도 뛰쳐나왔다. 우리는 아이컨택을 나누며 의견을 교환하고 여관을 나섰다. 티르시가 나를 뒤쫓아오는 베로니카를 보고 놀랐다.
“노르드! 뒤에 저 바이콘은 뭔가요?!”
“동물 프렌즈입니다! 제가 발이 좀 넓어서!”
대충 대답하고 길가로 나왔다. 해가 저물어서 불빛도 없는 시골 마을은 존나게 어두웠다.
“<수사의 랜턴(Friar's Lantern)>!”
티르시가 완드를 세우며 마법을 발동했다.
익숙한 마법의 빛이 몰아쳐서 도로를 밝혔는데, 마을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도망가는 곳의 반대편에서 오우거가 1마리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