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3화 (183/1,009)

‘새끼. 내 좆 만하네.’

오크한테 들은 대로, 팔이 4개인 기골장대한 오우거!

그 새끼는 옷을 차려입고 어깨에서 자라난 4개의 팔 중에 2개에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대포처럼 뻗은 손은 사람의 머리를 산채로 뽑을 것처럼 우악스러웠다.

“피난소로!! 촌장의 집으로 가!!”

“꺄아아아아악!!!”

“자, 자경대!! 그 밥버러지 새끼들은 어딨어!!”

사람을 잡아먹는 몬스터의 출현에 마을 사람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다.

취객들조차 공포에 술기운이 날아갔는지 발이 좆도 꼬이지 않았는데, 정작 그 오우거 새끼는 도망치는 마을 사람들을 쫓는 것이 아니었다.

쿠웅……. 쿠웅…….

앞을 달리는 사냥감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느긋하게 걷는 그 모습은 산책을 나온 폭군 같기도 했다.

나는 몬스터 주제에 그딴 여유 넘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몹시 아니꼬웠는데, 그렇게 집중해서 관찰했기 때문에 눈치를 깔 수 있었다.

‘……저 새끼, 나를 보고 있나?’

설마하니 나를 쫓아온 건가?

마을로 돌아오는 중에도 나는 ‘인상미채’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오크 부락에서 옷에 밴 피 냄새는 남았을 것이었다.

오우거라면 자기가 죽인 상대의 피를 알아차려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뭣하러 나를 쫓아왔다는 말인가?

아니지, 이유는 좆도 상관없었다. 뭐 몬스터가 언제는 이유가 있어야만 사람을 습격한던가? 겨울잠 자기 전에 열량을 얻어두려고 나타난 걸 수도 있었다.

오우거에게 완드를 겨눈 티르시가 입술을 깨물었다.

“사람들이 대피하지 않으면 마법을 쓸 수가……”

그리 말하던 티르시는 말을 멈춰야만 했다.

오우거가 어깨 위로 자라난 빈손을 우리에게 겨눴기 때문이었다.

“ᚺ(Hagalaz).”

오우거가 주문을 외우자 그 새끼의 손에 농구공 정도 크기의 불구슬이 생성되었다.

그 새끼는 불구슬을 야구공처럼 쥐고는 다짜고짜 우리에게 발사했다!

“ᚦ(Thurisaz)!!”

다음으로 외친 것은 베로니카였다.

텔레파시가 아닌 육성으로 외친 영창에, 베로니카의 양뿔처럼 생긴 뿔 사이로 룬 문자가 떠올랐다. 언젠가 타뷸라도 사용했던 마법 내성 강화의 룬! 그것이 반투명한 실드가 되어서 불꽃의 구슬을 막으려고 했다.

오우거는 그것을 좌시하지 않았다.

“ᛁ(Isaz).”

속사포 같은 영창이 뒤를 이어서 작렬했다. 그것은 얼음의 파도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몰아쳐서 베로니카의 룬 마법을 박살내버렸다.

【──술식 파훼?!】

경악하는 베로니카. 그것은 베로니카에 손패에 오우거의 마법을 받아칠 기술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노를 젓는 것처럼 창을 돌리고 불구슬을 향해서 뛰쳐나갔다. 사람들 때문에 공격 마법을 못 쓰는 티르시가 완드를 내 등에 겨누었다.

“<산들바람 걸음(Breeze Walk)>!”

─휘이이잉!

예전에 한 번 받은 적이 있던 이속 버프였다.

“감사합니다! 티르시!”

나는 빨라진 속도에 요령있게 적응하며 라크로스를 하는 것처럼 불구슬을 베어갈랐다. ─서걱! 미스릴의 창날이 구슬을 잘라 폭발을 일으켰다.

휘말리지 않고 폭발의 범위에서 몸을 피했다. 목표를 놓친 불꽃은 허망하게 마을의 목재만을 태웠다.

화르르르르…….

불꽃이 타들어가며 어둠을 몰아냈다. 티르시는 마나를 아끼려는 것인지 <수사의 랜턴>을 해제했다.

광량을 갑자기 높여서 서포트 용도로도 쓸 수 있는 <수사의 랜턴>이어도 지금은 쓸모가 없었다. 눈이 먼 오우거가 마법을 난사해대면 곤란하기만 할 것이었다.

나는 창술 교본에서 읽은대로 자세를 취했다.

‘시발. 오우거 새끼 주제에 뭐 이렇게 마법을 잘 써?’

오우거라고 하면 자고로 병신 빡대가리 새끼 아닌가? 약간 화가 뻗칠 정도였다.

저 새끼는 존나 대가리가 2개라서 일반 오우거의 2배의 아이큐를 가진 것도 아니지 않은가! 몸뚱이로 날뛰기만 하는 놈이라면 발을 묶고 티르시랑 베로니카가 마법만 쏴 대도 잡을 것인데 말이다.

“──호오.”

그때였다. 오우거는 우리랑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적당한 놈이 둘이나 있나. 이거 행운이로군.”

“……뭔 씹?”

뭐지 시발?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며 눈을 크게 떴다.

약간 옛스러운 어법이기는 했지만 완벽한 인간의 말이었다!

왜 몬스터나 동물들이 내가 말을 걸 때마다 깜짝 놀라는지 알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존나 상상도 못 한 상대가 우리의 말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나 경악스러웠다니!

오우거는 우리가 놀랄 줄 알았다는 것처럼 즉발 마법을 쏘아냈다. 아니 이 새끼가?!

“말을 걸어서 스턴을 노려?! 풍둔 주둥아리술은 지구인의 전유물이다!!”

나는 그렇게 외치며 티르시를 업고 옆으로 뛰었다.

내 <번개의 화살(Lightning Missile)>과는 비교도 안 되는 초고속의 날벼락! 우리가 비킨 자리에 초고속의 벼락이 내려와서 꽂혔다.

다행히 베로니카는 룬 마법의 달인이기에 내가 돕지 않아도 오우거의 마법으러부터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치잇! 낡아빠진 응용이로구나!】

번개는 ‘예기치 못한 재앙’을 상징하는 대표격의 상징이었다. ᚺ(Hagalaz)로 적을 공격할 때는 번개가 제일 가는 상투구라고도 할 수 있었다.

“정전기 나잖아 씹새야!!”

티르시를 내려놓고 외쳤지만 거리를 파고들 수가 없었다.

내가 티르시의 곁에서 떨어지면 저 번개 마법이 티르시를 태워버릴 것이었다.

‘이 새끼, 그 잠깐 사이에 우리 팀의 전력 밸런스를 파악했다고?’

인간의 말로 블러프를 건 시점에서 범상한 놈이 아니라는 건 나도 눈치를 깠다. 마치 몬스터가 아니고 사람하고 싸우는 느낌이었다.

‘좆까. 그렇다면 인간하고 싸우는 생각으로 조지면 되지.’

불꽃쇼가 화려했기에 마을 사람들도 이제 다 튀어버렸다. 나는 베로니카에게 물었다.

“베로니카. 저 새끼, 마법으로는 못 죽일 것 같아?”

【……면목 없다. 나는 기습을 노리지 않으면 힘들 것 같구나.】

내가 육성으로 말을 건 것과는 다르게 베로니카는 텔레파시로 대답했다. 이거라면 오우거 새끼도 우리 작전을 듣지는 못 할 것이었다.

【ᛁ(Isaz)의 룬은 ‘구조를 파악한 술식’을 얼려붙여서 파훼하는 마법이다. 저 자의 마법 능력은 나와 비등한 수준이고, 같은 룬 술사이기까지 하다. 적이 내 마법의 술식을 훤히 꿰고 있으니 기습이 아니면 파훼당하고 말 것이다.】

“너는 저거 못 쓰냐?”

【……저렇게 빠르게는 못 하느니라. 나는 저 자에게 계속해서 마법을 퍼부어 마나를 낭비시키겠다. 술식 파훼에도 마나는 소모되니까.】

“맡긴다.”

집중을 방해하고 마나를 소모시키는 것만 잘 해 줘도 존나 도움이 된다. 공격의 성공률과 적의 전투력을 깎는 것이니까 말이다.

나는 오우거를 노려보며 티르시에게 로마니아 어로 말했다.

<티르시. 저 놈은 알고 있는 마법을 파훼할 수 있댑니다. 제가 막을 테니까, 저 놈이 모를 법한 마법으로 공격을 시도해 주세요.>

<예. 노르드, 비상시에는 제 걱정은 말고 피하세요.>

<그 비상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작전을 짜는 동안에도 오우거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뭐야 씨발, 불안하게. 이세계인 빌런들 치고 작전 타임 주는 새끼가 없던데.’

내 그런 생각은 정확하게 맞아들었다.

룬 마법에는 영창이 따로 없지만 집중과 마나 컨트롤은 필요하다. 우리가 떠드는 것을 무시하며 오우거는 은밀하게 지 마법을 준비 중이었던 것이다.

“ᛃ(Jēra)──!!”

오우거가 처음으로 고함치는 것처럼 룬 마법을 발동했다. 그 새끼의 빈손이 대뜸 빛을 뿜더니 굉장한 속도로 바람이 손바닥으로 빨려들어갔다!

아니, 바람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느꼈을 뿐, 이것은 물리적인 에너지를 일으키는 마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모공이라는 모공에서 피가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에 몸을 휘청였다.

“애, 미……!!”

【ᚺ(Hagalaz)!!】

나랑 똑같이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베로니카는 마법을 발사했다. 하늘에서 바위가 생겨나며 오우거의 머리통을 깨부수려 들었다.

오우거는 코웃음을 치더니 후퇴해서 바위 세례를 피해버렸다. 덩치가 무색하게 발이 존나 재빨랐다.

베로니카는 뿔에 마나를 모으며 소리쳤다.

【요격해라!! 이건 마나 흡수의 룬이다!! 공격해서 멈추게 하는 것 말고는 대처법이 없다!!】

쓰벌!! 저딴 게 무슨 오우거야!! 마나 흡수 패턴까지 있고 지랄이네!!

나랑 티르시는 마나를 빼앗겨가며 주문을 외웠다.

“천공을 흐르는 번개의 마나여! 일곱 가닥의 손톱이 되어 꿰뚫어라! <번개의 화살>!!”

주문이 짧은 내가 먼저 마법을 완성했다. 하지만 오우거 새끼는 이번에는 관심도 주지 않았다. 놈의 몸에 닿자마자 내 마법은 허무하게 흩어져버렸다.

“이 새끼도 ᚦ(Thurs)의 룬인가!”

내 마법으로는 화력이 부족했다. 타뷸라도 그렇고, 육탄계 룬 술사는 공격마법 내성을 높이는 악세서리가 필수템이라도 되는 건가?

하지만 하프 인간이었던 타뷸라와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이 놈은 100% 오우거가 맞았다.

야성을 갖춘 인간이 아닌, 이성을 갖춘 야수!

짐승과 인간 사이를 오가는 괴물들을 질리도록 봐 온 나였기에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부패신에게 바치는 공물. 파도바람의 온기. 흰 옷의 야양. 비파나무. 나, 작은 만의 예(禮)를 잇는 자. 한 자루의 작살로, 신을 묶는 묘표를 세우리!!”

내 마법의 효과를 보고 티르시는 주문을 바꾸었다. 가방에 넣은 손이 작은 병을 꺼냈다. 액상의 마비독이 든 병이었다.

마비의 사슬이 오우거를 감아서 멈추었다.

마나 흡수의 룬이 꺼진 것인지 팔다리에 힘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열등종 치고는 머리가 굴러가는군.”

나는 티르시가 적을 멈춰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대쉬했는데, 오우거는 생각보다 제법이라는 것처럼 입가를 비틀었다.

“허나 짐은 벌써 네놈들을 향한 관심이 사라졌노라.”

─불끈! 오우거는 자기 몽둥이를 든 손에 핏줄이 돋을 정도로 힘을 불어넣었다. 마비가 안 통한 건가?

나는 저걸로 나를 후려갈길 줄 알고 접근하는 중에도 경계를 끌어올렸는데, 놈이 취한 선택지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짐의 철퇴로써 개선의 깃발을 올리마.”

오우거는 몽둥이를 땅바닥에 내려쳤다. ─콰아아앙! 뭔가 수작을 부린 것인지 절대 보통이 아닌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갑자기 시야가 막히자 나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는 창을 겨누고 오감을 끌어올렸다.

저 새끼가 흙먼지를 뚫고 돌격해 온다면 그걸 받아칠 작정이었다. 당당하게 굴던 것 치고는 졸렬한 공격이었지만 몬스터 새끼한테 명예를 따지는 것도 우스웠으니까.

──하지만 그것부터가 어설픈 판단이었다.

“노르드! 함정이에요! <얼음의 화살(Ice Missile)>!”

빨리 발동할 수 있는 무영창의 <얼음의 화살>로 티르시는 흙먼지를 걷어냈다. 냉기가 폭발하며 흙먼지를 쫓아냈다.

그렇게 흙먼지가 사라진 자리에는── 오우거의 그림자도 남아 있지 않았다.

─타닥타닥. 냉기에 맞아서 식어가는 불꽃이 방금 전의 전투가 백일몽이 아니었다는 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얼척이 없어서 중얼거렸다.

“머임???”

이걸 이렇게 튄다고?

인간 고기 마시쩡을 외치는 식인 몬스터가 마을을 덮치고 사람 한 명 안 죽이며 도망쳤다는 초유의 사태에 우리는 존나 당황스러워지고 말았다.

‘진짜 뭐하러 온 거야?’

불꽃으로 밝아진 마을을 둘러봐도 시체는 없었다.

마을 사람을 죽여대지도 않고 일직선으로 우리한테 와서, 마법이나 쏴대다가 갑자기 바꿔치기의 술법을 써서 빤스런을 쳐 버리다니?

【물러난 모양이군. 전투가 계속됐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였다.】

베로니카가 그리 말했다. 자신의 룬 마법이 정면에서 파훼됐던 게 충격이 컸던 모양인지 기운이 없었다.

아니── 기운이 없는 건 마나를 빨려서인가? 나도 잠을 잘 못 잔 날의 아침처럼 몸이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걱정이 되서 마나통을 체크했다.

“……이 씨발?”

그 결과, 나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깨달았다.

ᛃ(Jēra)의 룬인가 하는 것 때문에 내 마나통은 절반 넘게 줄어들어 있었는데, 이건 아무래도 좋았다. 최대 MP는 그대로였으니까 냅두면 회복을 할 것이었다.

문제는 다른 것이었다. 내 안색은 이건 현실이 아니라며 푸르죽죽해지고 말았다.

사라졌다.

내가 모아둔 룬의 마나가── 전부 사라졌다!!!!

“갸아아아악!! 마나 도둑이야!!!”

나는 마치 혹한기 훈련 중에 핫팩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허전함에 괴성을 지르고 말았다!

“ᚲ(Kenaz)!! ᚨ(Ansuz)!!!”

마치 절벽에 떨어진 연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룬들의 이름을 외치며 발동해 봤지만, 나의 든든한 2차 전직 스킬들은 아무런 답장도 해 주지 않았다.

읽씹이 아니다.

내 룬이 흑발 녹색 피부 태닝 양아치에게 납치를 당해버린 것이었다!

씨발!! 남의 스킬을 훔쳐가다니 이게 말이 돼?! 나는 마음의 쿠퍼액을 쏟으며 무릎을 꿇었다.

“따흐흐흑……. 마나를 갖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나쁘더니만…….”

마치 부랄 한짝을 소매치기 당한 듯한 절망감! 절망하는 나에게 베로니카가 혀를 차며 설명했다.

【구신의 마나를 앗아갔는가. 나도 하나 빼앗겼구나. 평범한 ᛃ(Jēra)로는 불가능한 일이로다. 고대문명의 유물일 것이다.】

“씨발 그게 머가 중요해…….”

룬의 마나가 구신의 마나였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는데 좆도 놀랍지가 않았다.

금태양에게 여친을 뺏기고 나서 여친 집안이 어디인지 알아봤자 어따 쓰겠는가!

그래도 염병.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긴 하네.

게르마니아 신들을 구신이라고 부르는 거니까, 오딘이 만든 룬 마법의 마나도 당연히 구신의 마나의 일종이겠지.

‘……흐으. 하지만 그런 거면 타뷸라 새끼는 나한테서 뭐를 보고 구신의 마나 어쩌구 하는 소리를 한 거지?’

오랜만에 느끼는 초월적인 절망감에 생각이 잘 정돈되지 않았다. 그리 눈물을 짜는 나에게 베로니카가 말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