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후퇴하지 않으면 10분 뒤에 격돌하겠군.】
바다 위라서 그런지 기습을 당해도 시간에 여유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르실라는 나한테 질문했다.
【노르드. 어쩔 거지? 배의 마법을 써서 속도 차이로 따돌려도 된다. 암초 뒤에 제대로 숨어 있지도 못하던 놈들이다. 싸워도 승산은 커.】
【싸움을 피해서 생기는 이점과 단점은요?】
나는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했다. 해상 전투의 전문가한테 의견을 물어야지 않겠는가. 존나 내가 대굴빡 굴릴 것 없이 옆에 마녀라고 불리는 고인물이 계시는데.
【이점은 안전한 항해가 가능하다는 거? 단점은 내가 해적 놈들한테서 도망친 적이 없다 보니 해적 놈들 사이에서 이번 항해에 대한 소문이 돌지도 모른단 거지. 만약 쫓아오면 귀찮아질 거고.】
【연합해서 몰려올 가능성도 있군요. 잠시만요.】
나는 파티원들이랑 1분 정도 상의하고 말했다.
【여기서 치워버리죠. 선단을 꾸려서 쫓아오면 곤랍합니다.】
호랑이가 몸을 피하면 여우들은 그 놈이 병이 들었거나 뭔 약점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저 해적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행님아한테 꼰질러도 귀찮다.
【떼로 몰려와도 골데네 시프라면 빠져나갈 수 있지만, 네 말도 일리가 있군. 목적지인 해역에 머물려면 귀찮은 치어(穉魚)는 떨쳐내야지.】
【승산은 어느 정도입니까?】
─쿵! 내가 그리 묻자 우르실라는 검집에 꽂은 칼을 갑판에 두었다.
【보고만 있어.】
당당하게 읊조린 우르실라는 물 찬 제비처럼 갑판 위의 조타석에 점프했다. ─촤아아악! 그녀가 조타기를 돌리자 골데네 시프는 21세기 지구의 배처럼 90도로 선회했다.
‘용골에 걸린 마법이군.’
항해의 편의성을 돕는 마도구였다.
엔진처럼 저장해 둔 마나 배터리로 배를 운용하는 기술! 이 세상에서도 보통은 기계가 사람보다 낫다. 내가 쥬지 검진을 받았던 매지컬 MRI도 그랬으니까.
‘일부 초인은 예외지만.’
부등호로 표시하면 보통 사람<마도구<초인이다.
이렇듯 이세계의 마법은 지구인도 군침이 돌 것들 뿐이었다. 내가 쓸 수 있는 <정화(Clean)> 마법도 그렇지 않은가.
굳이 트집을 잡자면, 이런 편리한 마법과 2번에 걸친 문명 좆망 사건 때문에 이세계의 기술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거기도 하지만 말이다.
물살을 가르며 접근하는 골데네 시프. 해적들은 갑판에서 보일 만큼 당황하다가 길쭉한 나무 보트 같은 것을 쏘아냈다.
뚜껑이 닫힌 나무 보트가 후미에서 불꽃을 뿜어내자 무척 빠르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씨발 뭐지? 어뢰인가?
“뭐, 뭔가 위험해 보이는 게 와요!!”
【가만히 있어! 싸우고 싶으면 있다가 해!】
라리루라가 기겁하며 매직 미사일을 쏘려하자 우르실라가 고함을 쳤다. 말이 안 통하는 그녀들이라도 눈치로 대충 뜻은 통한 듯 했다.
【측면으로 선회한다! 우현 실드 전개!!】
【우현 실드 전개!!】
나랑 싸울 때도 썼던 <그물의 방패>가 발동했다.
선박의 우현을 비눗방울처럼 덮은 실드 마법! 어뢰 보트는 그것에 격돌해서 접근을 저지당했다. 쇄빙선처럼 끝에 강철을 덧댔지만 실드를 부수기엔 역부족이었다.
실드에 막힌 보트의 뚜껑이 열렸다. 보트 하나에 2~3명씩 해적이 들어 있었다! 나는 기함하여 소리쳤다.
“어뢰에 사람을 태웠어!!”
이 무슨 인명경시란 말인가!
역시 해적 새끼들은 생각이란 것도 없고 양심이라는 것도 없구나. 현실은 때때로 소설보다 개연성이 병신이라던데, 어떤 미친놈이 어뢰에 사람을 태운단 말인가?
그딴 건 전투기를 배에 꼴박하는 전술 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존나 내가 생각하고도 어이 없는 비유였다. 세상에 그런 병신들이 있을 리가 없지.
【갈고리 걸어!! 뒤지기 전에 얼른!!】
가정교육을 관광객 지갑 쌔비는 법으로 배웠을 해적 새끼들은 갈고리를 던져서 배에 걸려고 들었다. 하지만 골데네 시프의 선원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쿠화아아악! 배의 측면에서 대포처럼 뿜어진 화염방사가 어뢰 보트를 쓸었다.
【끄히야아아아아악!!】
순식간에 화끈해진 해적 친구들. 그물 모양의 실드는 불꽃을 방해하지 않았기에 보트 피플들은 삼천궁녀의 거짓 설화처럼 바다에 몸을 던졌다.
해적선은 선박의 레벨 차이로 닷지해도 소용이 없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진 것을 믿고 실드를 켠 해적선이 대쉬해 왔다.
‘달라붙어서 이쪽 갑판에 넘어올 생각인가?’
전략으로는 괜찮았다. 배가 새삥이라서 착각했는데, 신참이 아니라 딴 나라 해역에서 노략질을 하다가 유학을 온 중견 해적일 듯 했다.
조타기를 회전시키며 우르실라가 호령했다.
【격돌한다!! 충격에 대비하면서 백병전 준비!!】
【백병전 준비!!】
골데네 시프가 거친 파도에 출렁거렸다. 실드 덕분에 배에 부딪힌 건 아니었는데, 급정지한 여파로 파도가 일어난 것이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못생긴 년들은 죽여!! 예쁜 년들도 세거나 저항이 심하면 족쳐버려!!】
배 사이에 판자를 던지고 그걸 타서 달려오는 해적떼! 저저 씹새들 말하는 꼬라지 봐라.
‘……실드로는 갑판 위를 덮지 못하는 건가?’
연비, 기술력 문제, 방어력 문제 등등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겠지.
아무튼 이로써 백병전의 막이 올랐는데, 해적 새끼들한테 슬픈 소식이 하나.
“무대에 난입하는 손님은 사절이에요~♡!”
“ᚺ(Hagalaz)!”
안 그래도 골데네 시프는 고인물 파티인데 오늘은 추가로 모험가 파티까지 타 있다. 광범위 매직 미사일 연사에 낙석 세례에 골통이 깨져나가는 해적들.
【씨이이발!!!! 조타수!!!! 실드 높여어어어어억!!!!!】
정신을 못 차리던 해적이 그리 소리치자 해적선의 조타수가 실드의 범위를 넓혔다. 우르실라는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골데네 시프의 공격 마법을 쏘았다.
해적선의 선저 하부에 수습이 불가능한 큰 구멍이 생겼다. 사람도 지나갈 것 같은 구멍이다. 냅두고 갈 곳 가도 알아서 침몰하겠다.
‘아아. 이래서 실드는 배 아래에만 까는 거군.’
갑판은 공격을 당해도 손쓸 방법이 있지만 배에 구멍이 뚫려버리면 전멸 확정 아닌가. 실드를 배 몸체에만 덮는 건 그래서였나 보다.
실드는 범위를 넓히면 강도가 약해지니까.
【으갹.】
망연자실해 하는 조타수 머리에 프랑의 나이프가 꽂혔다. 거리가 10미터도 안 돼서일까. 크리티컬 헤드 샷에 즉사하는 해적선 조타수.
나는 천국으로 여행을 떠난 그를 보면서 나한테 덤벼드는 해적을 창으로 찔렀다.
【끄학!! 꺼어어어억!!】
“야. 자이언트 스윙이라고 아냐?”
【억, 어어어억!! 크아아아아아악!!】
─투퍽!! 나는 꼬챙이로 만든 해적을 친구들한테 망치처럼 때려박아주었다.
사이좋게 바다로 스노클링을 떠나는 친구들. 산소통을 깜빡한 모양이지만 해적은 분류하자면 바다 생물 아닌가. 아마 괜찮을 것이었다.
【으으으…….】
우리쪽 갑판에 시체가 쌓이자 해적들은 감히 접근할 엄두를 못 냈다.
가끔 모험가로 치면 실버 클래스는 달 놈들도 있었는데, 뭐 넘어오는 족족 뒤져나가니 어쩌겠는가.
실력도 밀리면서 다굴까지 당하는 상황! 목숨 살살 녹는닷!
‘근데 가만히 있어 봤자 뒤질 텐데.’
실드도 꺼졌고 배도 가라앉을 운명이다.
공격 마법도 안 쏘는 걸 보면 아마 쟤네는 마법사가 없는 듯 했다. 화살을 쏘는 놈들도 프랑이 최우선으로 사살했으니 쫄아서 칼을 뽑은 처지였다.
【망할 계집년들!! 북해의 마녀라더니 허명이 아니로군!!】
잠깐 전황이 고착되자 두목으로 보이는 놈이 빼액거렸다. 냉장고 문짝만큼 두껍고 큰 도끼를 맨 남자였다. 조타석에서 우르실라는 담배를 부츠로 밟아서 껐다.
【유언이 있다면 들을게. 별 일 없으면 오늘까지는 기억할 거야.】
【크하하하! 내 목소리가 듣고 싶다면 침대에서 얼마든지 들려주마! 발랑까진 년이 도도한 척 살랑대는 게 아주 꼴리는 년이로군!】
【꺼져. 나는 아직 상(喪)을 치르는 중이니까. 남편의 넋을 기리기 전까지는 재혼하지 않겠다고 맹세했거든.】
【흐흐. 재혼이라! 미텔미어에서 이름을 날리던 이 몰토 님의 아내가 되겠다고? 꿈도 크구나. 네년과 네년의 부하들은 끽 해야 성노예다!!】
대화하다 말고 몰토인지 놀토인지 하는 해적단 선장이 지 도끼를 던졌다.
자동차도 폐차 가능하게 생긴 거대한 도끼가 회전하며 우르실라를 노렸다. 성노예고 지랄이고 저거 맞으면 뒤지겄다. 나는 도끼가 갑판 위까지 날아오기 전에 도약했다.
─파츠츠츳!!
버프 풀 세팅까지 이번에도 3초컷이다.
손을 움켜쥐었다가 펴며 창으로 도끼를 후려쳤다. 무거운 투사체나 마법을 받아치는 기술! 【게르튀르】의 반격기 제 3품새였다.
“분위기 전환──!!”
─투콰아앙!!
개씹 무거운 도끼는 극한의 언리미티드 빠와를 담은 나의 반격기에 튕겨나갔다.
─풍덩!! 몸치의 라켓에 맞은 셔틀콕처럼 배와 배 사이의 바다로 쳐박히는 도끼.
수면에 대포를 쏜 것처럼 물기둥이 솟았다. 우르실라가 휘파람을 불었다.
【멋지군. 하지만 조타석에도 실드는 있으니까 네 동료부터 챙겨.】
구해줬는데 한다는 말이 그거냐. 몰토가 손을 뻗자 마나의 사슬이 도끼에서 뻗어나왔다. 저 도끼도 매직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몰토는 사슬을 당겨서 도끼를 회수하고 송충이 일자 눈썹을 부라렸다.
【땅개놈의 사내 새끼가 해적의 사냥을 방해하지 마라!!】
【병신쉑 지랄 자제.】
【흥!! 물고기 먹이로 만들어주마!!】
빡친 해적 새끼가 도끼를 던졌다. 나는 이번에도 받아치고 투창으로 숨통을 끊어주려 했는데, 그 새끼는 나한테 성질을 내는 척 하다가 이번에도 우르실라를 노리는 것이 아닌가?
【애미 씨팔!! 치졸한 미망인 살인마 새끼!!】
【싸움에 비겁이고 나발이고 없다!!】
우르실라가 꼴리니 뭐니 입을 털더니만, 저 새끼는 조타수를 해치우고 배를 빼앗을 생각밖에 없었다! 너무 멍청하게 생겨먹어서 그런 당연한 판단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대처를 못 한 나 대신에 프랑이 질주했다.
골렘의 코어를 가공한 나이프를 쥐고 영창하자 프랑의 손에 프랑 몸통만큼 두툼한 흙 골렘의 손이 생겨났다.
─콱!! 30kg을 넘을 것 같은 손으로 도끼를 캐치하는 프랑.
흙 골렘의 손이 조금 부숴졌지만 어차피 프랑의 진짜 손은 손목 쯤에 있다. 몰토가 사슬을 당겼지만 프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네년은 또 뭐냐? 잡종 드워프인가? 짜리몽땅한 게 아쉽지만 젖가슴이랑 얼굴은 봐 줄 만 하군.】
【……약지에 반지 낀 거 안 보여요?】
【다시는 고향 땅을 밟을 일도 없을 텐데 무슨 상관이지? 흐흐. 가까이서 보면 네년 말고도 좋은 여자가 많은데 그래. 으음? 근데 거기 그 젖이 있으나 마나인 년은 뭐냐?】
【…………하?】
…빠직. 나는 몰토 새끼의 개소리에 다나의 혈관이 솟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사실 나도 아까 전부터 전집중 라마즈의 호흡을 하느라고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와! 저 좆 미개한 해적 색기가 우리 아내들한테 성희롱을 쳐 하고 지랄이네?
‘죽일까, 북호?’
안 돼, 참아. 내 안의 짭 오딘.
나는 분노를 호흡으로 눌러서 구신의 마나로 바꾸었다. 이건 트루-오딘도 인정해 줘야 했다. 패드립에 버금가는 마누라 성희롱을 듣고 빡침을 참은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프랑은 참지 않았다. ─까가각. 골렘의 손에 잡힌 마법의 사슬이 삐걱거렸다.
【흐흐. 걱정하지는 마라. 우리 해적단에는 몸매가 빈약한 년을 좋아하는 변태 새끼도 있다. 어차피 좆이 남아돌면 없는대로 네년한테도오오오오오오오?!!!】
─촤르르르르륵!!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씹소리를 내뱉던 몰토는 낚시대에 걸린 피라미 생선처럼 하늘로 끌려갔다. 프랑이 사슬을 힘껏 잡아당긴 것이었다.
【──내 친구로 역겨운 상상 하지 말아요.】
진심으로 빡쳤는지 뼛속까지 시려워지는 목소리였다. 나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몸으로 실험하려는 병신을 보며 말했다.
“다나. 좆밥이니까 살려두고 심심할 때마다 조지자.”
“역시 우리 남편님이 뭘 좀 안다니까.”
소름돋게 웃은 다나는 도움닫기를 하면서 돛대를 박찼다.
【어어어어어어어억!!!】
【이 씹더러운 새끼가!! 내 몸매가 뭐가 어쩌고 저째?!】
삼각 뛰기를 펼치며 버둥거리는 해적 두목에게 점프하는 다나. 그 건틀렛이 카메라의 플래시처럼 번쩍거리며 마나를 뿜어냈다.
【범죄자 놈이 뭐가 잘났다고 남을 평가해!!!!!】
후려친 주먹이 아구창을 후려갈겼다.
하얀 강냉이가 때 이른 눈송이가 되어서 바다에 쏟아지며 원콤에 반생반사가 된 씹새가 갑판에 추락했다. ─쾅!! 우리 눈나는 거기 위로 착지해서 놈의 척추를 조져놓았다.
【두, 두목이 당했다!!】
【저 발정난 좆부랄 새끼!! 그러게 상선이나 털자니까!!】
남은 해적들은 마지막 보루였던 두목이 뻗자 어미 거미가 터지고 흩어지는 새끼 거미처럼 바빠졌다. 우르실라는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조타석에서 내려왔다.
【인질이나 보물이 있다면 가지고 와. 가져오는 녀석은 내 배에 태워준다. 감옥에 갈 때까지는 밥도 먹여주지.】
【──사, 상품!! 저번에 털고 남은 상품 가져와!!】
【누구한테 명령질이야!! 내가 가져갈 거라고!!】
최후통첩이라는 걸 모를 병신은 없었는지 해적들은 선박에 숨겨둔 보물을 전부 가져왔다. 인질로 잡은 사람은 없었던 모양이다.
저 새끼들한테 잡힌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는 말해봤자 입만 아프겠지.
그리고 그건 우르실라도 같은 생각인 듯 했다.
【수고했다. 여자가 고프면 머메이드라도 만나라.】
─콰앙!! 우르실라가 자기 손으로 발사한 마법이 해적선에 난 구멍을 크게 확장시켰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씨발련아!! 살려준다며!!】
【그걸 믿었어? 멍청한 것들.】
해적 놈들은 지들이 통수를 맞았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이미 배는 떠난 뒤였다.
챙길 걸 알뜰하게 챙긴 우리는 갈 길을 갔고, 5분 뒤에는 해적선은 완전히 가라앉았다.
하여튼 존나 세상 흉흉해서 어디 맘 편하게 바캉스 가겠나 몰라.
─촤악!!
해적선이 가라앉은 뒤, 나는 사슬로 구속한 해적 두목에게 얼음물을 부었다.
【허어어억!!】
꿈나라에서 쫓겨난 해적 두목은 때 아닌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격한 기쁨을 표현했다.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두리번 거리던 새끼가 나를 보고 성을 냈다.
【이, 이 땅개 새끼가!! 내 부하들은, 내 배는 어쨌느냐!!】
【보고 싶어? 못 봐. 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