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2화 (242/1,009)

그러더니 병신처럼 ‘아무 것도 없는’ 천장에 대가리를 박고 다시 땅에 추락했다.

─콰아아앙!! 멍청하게 대가리부터 박는 빡대가리 거인.

물론 나는 좆도 재밌지 않았다. 거인은 머리를 털고 금방 일어나버린 것이었다. 웃기지도 않고 갑분싸나 만드는, 종영 일주일 남은 씹노잼 개그 프로 같은 몸개그였다.

그래도 저 지랄 덕분에 알아낸 것도 있었다. 나는 거인이 천장을 쳐다보는 걸 확인하며 물었다.

“그래. 내 눈에는 거인이 ‘천장에 부딪힌’ 걸로 보였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는가 보다.

저 덩치로 10미터를 원 점프에 뛰어넘는 각력도 존나 공포스럽긴 하지만, 내가 신경쓰는 건 그게 아니었다.

저 거인은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뛰는 것처럼’ 도약했다가 뚝배기가 깨질 뻔 했다.

‘──다시 말해서 저 거인은, 천장의 환영을 못 봤다?’

그걸 못 봤다는 게 무슨 뜻이겠는가.

저 씹새가 얼마나 퍼질러 자고 있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천장이 보였다면’ 병신처럼 거따 머리를 박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결계를 덮은 환상이 보이지 않았다는 건──

“새애끼, 구신의 마나를 갖고 있구만.”

──나 못지 않은 방대한 ‘자격’을 갖고 있다는 소리였다.

물론 그게 뭐 어쨌다는 얘기는 아니다.

구신의 마나는 말하자면 업적 같은 것이었다. 많다고 무조건 세지지는 않는다. 나도 【게르튀르】의 버프를 습득하기 전까지 이 많은 구신의 마나가 순 계륵이었잖은가.

그래도 이 추리로 몇 가지 단서를 손에 쥘 수는 있었다.

익숙한 루틴이다. 한 단계씩 높아지는 퍼즐을 풀어가면서 적의 약점을 찾도록 하자.

─까딱. 고개를 들어서 천장을 체크.

화산을 코팅한 결계는 넓이에 비해서 높이는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었다. 우리도 동굴을 오르고 내리다 보니 고도가 높아졌고 말이다.

아까 전 베로니카의 정찰을 생각하면, 결계는 표고 100미터 정도 위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될 듯 했다.

‘여기는 대충 표고 90미터 쯤 되는 지역…… 그러니까 이 화산의 골짜기 안이야.’

다시 말해서, 화산 분화구 안쪽이다.

소유자를 유혹하는 보물을 버리기 딱 좋겠다.

그런데 덥지는 않다. 바닥도 평범한 화강암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알고 있다. 벌써 우리는 답을 봤으니까.

‘──골짜기에도 환영 결계가 깔려 있었군.’

내 눈에는 푸른 하늘이 그냥 보이지만, 베로니카는 ‘천장이 있다’고 했다.

아마도 베로니카가 날아올라서 정찰한 ‘굳어버린 용암’이란 게 환영 결계일 것이다. 사화산의 용암이 식은 것처럼 보이게 해 두고, 사실은 이 분화구 안의 골짜기를 가린 것이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상대에게 중요한 공간을 들키지 않으려는 선지자의 염려였겠지.

‘그렇다면 제대로 온 거야.’

타오르는 가지인가 뭔가 하는 건 여기 어딘가에 있다.

뭐 때문에 이리 엄중하게 감춰두었겠는가? 여기만 유독 시원한 것 역시 추리의 단서 중 하나로 꼽을 수 있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만히 서 있는 거인을 쏘아봤다.

“그대여. 아마 저 자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이곳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베로니카가 말했다. 당연한 결론이었다. 우리가 여기에 들어온 과정을 역재생하면 나갈 수 있을 것이고, 멍청해 보이긴 해도 그만한 지능은 있을 테니까.

“어. 저 새끼 놓치면 좆 된다. 사람은 물론이고 선박을 공격당하면 큰일이니까, 여기서 족쳐야 돼.”

나가서 파티원들이랑 합류하다가 놓치면 상기한 이유대로 좆 될 것이며, 까놓고 말해서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간다.

‘저 씹새끼가 길막을 쳐 하고 있거든.’

거인은 이 분화구의 유일한 출구에 숨어들어가 있었다.

시발럼이 꾀 부리는 꼬라지 보게. 거인이 움직이기 딱 좋은 넓이라서 내가 따라 들어가면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피할 공간이 앞뒤밖에 없으니까.

“화산의 결계를 나갈 수야 있었겠지. 하지만 섬을 나가진 못 했을 걸.”

방구석 여포도 아무도 없이 혼자서 할 짓은 못 된다.

인터넷 와이파이도 안 터지는 화산 골짜기다. 이런 입지도 구린 시골집에서 얼굴에 돌덩이가 붙을 정도로 천년만년 잠만 쳐 자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가?

“……화산의 결계는 나가도, 섬의 결계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구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곳도 아닐진대.”

중얼거리는 베로니카의 말은 딱 내 생각을 말로 정리한 것이었다.

“표류해서 들어오기라도 했는갑지. 글고 아까부터 저 새끼 우리 존나 꼬라본다. 뒤지게 배고픈가 보네.”

“……섬에 동물이 없는 이유를 알 듯도 하구나.”

소름 끼치는 얘기였다. 프랑 말대로라면 동물의 흔적이 없어진 건 수십 년은 됐을 거랬는데 말이다.

‘대체 얼마나 쳐먹어대야 벌레조차 안 보이냐.’

층간소음도 1년이면 사람을 미치게 하는데, 저딴 혐오스런 얼굴의 스토커 새끼가 섬을 돌아다니면 매일밤 심장 떨리다가 쇠약사해서 뒤졌다고 해도 전혀 놀랄 것 없겠다.

아니면 저 개새끼가 너무 못생겨서 정원섬의 동물들도 손절하고 이사간 걸지도 모르겠다.

동물의 숲에 온 NPC들이 촌장 얼굴을 보고 징그럽다며 이사를 가는 것이다.

그야말로 외모지상주의 역전세계.

그리 생각한 나는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쫄았나? 먼저 덮쳐오진 않네.”

평소에는 나도 가속한 사고로 2~3초만에 판단을 내리지만 이번엔 베로니카랑 대화를 했다.

대충 3분은 지났을 것이었다. 하지만 거인은 먼저 공격해 오지 않는 게 아닌가?

존나 무슨 3분 매너라도 되나?

절세고수의 자비로 3초를 양보한 것도 아닐 텐데, 입구에서 니가와 전법을 고수하는 거인. 출구 안에 몸을 숨기고 우리를 꼬라보는 못 생긴 얼굴이 끔찍하기 이루 말할 데 없었다.

‘경계심? ……아니야.’

놈의 번들거리는 눈깔은 절대 안 놓친다는 듯 우리를 록 온하고 있었다.

그리고 말이 ‘우리’지, 관심순위를 두자면 나랑 베로니카 사이에도 존나 격차가 큰 모양이었다. 내 뒤에서 살짝 이동한 베로니카의 몸을 거인의 눈이 쫓았다.

“야, 베로니카. 너 인기 많다? 쟤 니한테 첫눈에 반했나 봐.”

“진심으로 역겨우니 제발 그만두거라. 저주를 해소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나도 첫 상대를 고를 권리 쯤은 있지 않으냐.”

베로니카는 오만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사마귀도 아닐진대 번롱당하다가 잡아먹히기는 싫구나. 하수도에서 목욕하는 게 낫다.”

그리 말하고 공중 부양하는 기둥을 휘저었다.

그에 따라서 거인의 눈도 이하생략.

“과연. 나도 이 기둥도 저 자에게는 전리품인 모양이로다.”

베로니카는 상황의 긴장감을 날려버리려는 것처럼 농담하듯 말했다.

“주인님이여. 보다시피 저 자는 그대의 소중한 것들을 갈취하려는 듯 하구나. 그렇다면 기실, 그대가 말하는 ‘교수’로 봐도 되지 않겠느냐?”

“니가 생각하는 ‘내 소중한 것’의 리스트 업은 나중에 받는다고 치고…… 뒷부분은 맞는 말이네.”

막 자다 깬 비몽사몽한 대굴빡으로도 뻔뻔하게 남의 물건을 빼앗아가려는 사악하며 무법한 존재.

그야말로 교수의 정의에 딱 들어맞는 생물이었다.

“……Krrrrr.”

내 입에서 짐승 울음이 샜다.

놀라서 입술을 두들겼다. 조용히 해 오딘.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올라오는 분노를 컨트롤했다. 아마 이 정도의 분노로 폭주하지는 않겠지만 유비무환은 언제나 옳은 사자성어니까.

그때 베로니카가 내 등을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나로서는 그대의 심오한 교수박멸론을 도저히 쫓아갈 수 없다만, 저 생물은 교수이기 이전에 요툰(Jǫtunn)의 일종으로 보이는군.”

“저게 요툰이라고?”

내 지식이랑은 많이 다르군. 내가 아는 요툰은 말라깽이 통수쟁이 스머프 의동생 뿐인데. 쟤는 무슨 변종 헐크처럼 생겼잖아. 힘은 비빌만 한데 방어력은 쟤가 더 높아 보였다.

“요툰=상의 피부는 개씨발 튼튼한 데스.”

아무튼 지금 저 새끼의 종족은 문제가 아니었다.

‘저 씹새끼 줄창 입구에서 진 치고 대기만 타는 것 봐라.’

우리가 암만 기다려도 꿈쩍도 않는 거인.

저기 있는 요툰인가 자이언트 요로결석인가 하는 놈은 우릴 놓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존버 타 봤자 우리만 손해야.’

저 거인은 요툰보다는 곰벌레 같은 새끼다.

마나도 안 느껴질 정도로 생명활동을 멈추고 굳어있을 수 있는 놈이랑 시간 싸움을 하자고? 우리는 식량이 바닥나면 굶어 뒤지는데?

목이 터져라 소리쳐도 밖에서 대기 중인 파티원들의 귀에 들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보다 우리가 너무 늦어서 아내들이 동굴로 들어와도 곤란했다.

저런 좁은 구멍에서는 궁극멸살진법인 포위섬멸진을 펼칠 수 없잖은가. 거인한테 각개격파 당하지나 않으면 망정이지.

우리 파티가 1명 씩 저 새끼 주먹에 부침개가 되는 미래는 피해야만 했다.

‘결국 나랑 베로니카 둘이서 어그로를 끌고 족쳐야겠군.’

저 새끼가 우리 파티의 존재를 알고 인질을 잡거나 했다간 큰일이니까.

쓰벌. 어떻게 맨날 보스전은 적은 인원으로 도전하게 되는 건지.

하긴, 팀을 맺었다고 언제나 같이 싸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모험하다 보면 파티 분단은 자주 있는 일이랬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명언에 반론할 생각은 없지만 원하지 않아도 흩어지게 될 때는 있는 것이었다. 마치 지금 같은 상황처럼 말이다.

좆 같지만 뭐 어쩌겠는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싸워야지.

“베로니카. 저 새끼 약점 같은 거 혹시 모르냐?”

“약점은 아니다만, 요툰은 태어날 때부터 몸에 ᚦ(Thurs)의 룬과 동일한 힘을 지닌다. 종족의 특성이지.”

베로니카는 그리 말하며 각오를 다지듯 손바닥을 펼쳤다.

“최대한 공격 마법을 퍼부어서 마나를 깎겠다. 마나가 전부 소진되면 저런 거대한 몸을 움직이게 해 줄 에너지도 사라지느니라. 저 자의 움직임이 느려지면 승산이 높아질 것이다.”

“마나 오링나면 피부 방어력도 낮아져?”

“그 점만큼은 주인님의 힘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겠구나.”

안 낮아진다는 소리군. 뭐, 마나가 끊긴다고 방어력이 곱창나면 몬스터 소재로 방어구를 만들거나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방어구. 방어구라.

‘그러고 보면 나 갑옷도 없네.’

야수회귀 덕분에 다칠 일이 거의 없는 나였기에 딱히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저 씹새끼의 파워를 보면 좀 불안하다.

내 방어를 뚫고 들어오는 공격에 싸구려 갑옷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한테도 위험한 공격을 버텨줄 갑옷은 재료비만 골드 단위로 들 것이었다.

“잠깐?”

그렇다면 저 거인 새끼 가죽은 어떨까?

저 놈 못생긴 얼굴 밑으로 가죽만 홀라당 벗겨갖고 갑옷을 만들면 튼튼하고 좋지 않을까? 색깔도 퍼렇고 까리하니 괜찮을 것 같은데.

거인이라고 하면 인간 가죽을 뒤집어쓰는 것 같아서 조금 기분이 더러워지지만, 저 새끼는 말만 거‘인(人)’이지 와꾸는 그냥 괴물이다.

손발이 2개씩 달린 2족 보행 생물이라고 다 인간인가? 개소리.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지.”

나는 저 새끼의 이름을 모르고, 알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

거인 새끼가 뒤짐으로써 남기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죽 뿐!

“──그렇다면 네놈은 일개 호랑이다.”

이름을 남기지 못하기에, 짐승으로 영락한 하찮은 생명.

파즈즈즈즛─!!

깨달음이 마음을 채웠다.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다가 버티지 못하고 나왔기에 저리도 추한 얼굴이 된 것인가.

그렇다면 저 거인과 내가 만나게 된 것은, 호환마마와 숙적으로 살아가는 우리 한반도인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놈의 가죽을 벗겨서 갑옷을 만들고 그로써 네놈의 목숨을 기리겠노라.

“호랑이가 내가 된다.”

──드랍템을 내놓고 죽어라, 못생긴 새끼여.

─파팟!! 나는 창을 들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Gsssssssuqqq!!!”

생물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르며 거인이 앞발을 휘둘렀다. 역시 머리는 나름 굴러간다. 통로에 피할 공간을 없애는 공격이었으니까.

‘근데 그래서 예상하기도 쉽지.’

날이 안 달린 창끝으로 앞차기의 중앙을 찔렀다.

【게르튀르】의 반격기 제 4품새. 덮쳐오는 덤프 트럭 충돌 같은 질량을 사지로 억눌렀다.

─키잉!!

금속이 부딪히는 것만 같은 효과음! 제대로 성공했을 때의 소리였다.

손에서 충격이 가지고 거인이 멈춰섰다. 마나를 다루는 기술의 작용으로 운동 에너지가 서로 상쇄된 것이었다.

나는 그대로 오리지널 연계기의 시동을 걸었다.

“──무무역역무(武無亦力無).”

──반격기 제 4품새로부터 공격기 제 2품새로의 연계기.

운동 에너지가 0이 된 거인의 다리를 창대로 후려친다. 딱 여기까지가 반격기 제 4품새였다. 이 다음으로는 찌르기로 급소를 꿰뚫으면 마무리다.

거인의 피부는 생긴대로 딱딱해서 창날이 박히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어디 눈깔도 튼튼한가 보자 씹새야.

“──휘휘공음(揮輝孔陰)!!”

─푸슛!!

거인의 눈깔을 노리고 미스릴 창을 뻗었다.

회회난만(回懷爛漫)과는 작은 차이밖에 없기에 기술 이름도 비슷하게 지었다. 베기와 찌르기, 공격기와 반격기의 차이다. 공격이야말로 최고의 방어 아니겠는가!

“GsS, Gwww!!”

그런데 놈은 표정근을 혐오스럽게 일그러트리더니 바닥을 박찼다.

머리를 노린 창을 백 덤블링으로 피하며 그대로 다시 점프!

후퇴하려는 생각일까? 아주 좋다. 전투양상이 내가 생각한대로만 굴러가는군.

나는 찌르기 자세 그대로 마나를 끌어올렸다.

이대로 <구름 소환(Summon Cloud)>의 압축분사를 창대에 실어서 투창할 생각이었다. 찌르기에서 갑자기 투창으로 변화구가 일어나면 막을 수 없을 것이었다.

─끼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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