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3화 (243/1,009)

그런데 그리 생각했던 나는 눈을 크게 뜨며 기술을 멈췄다.

내 투창이 실행되기 0.3초 쯤 전, 거인은 두 팔을 자기 앞으로 모았다.

마치 날아오는 뭔가를 잡으려는 것처럼.

촤아악─!

내가 투창을 않자 거인이 미끄러지며 착지했다.

그렇게 거리를 두는 나와 거인. 거인의 이상하게 발달한 표정근이 소름 끼치게 두드러지는 걸 보며 나는 위화감에 인상을 썼다.

시발련이 어케 내 기술을 읽은 거지?

방금 내 자세는 어딜 어떻게 봐도 찌르기였다. 머리가 좋은 생물이라면 오히려 속아야 맞았다. 그런데 저 거인은 전부 다 안다는 것처럼 투창에 대비하는 것이 아닌가?

내 뉴런을 몇 가지 가능성이 스쳐지나갔다.

독심술, 예지능력과 같은 가능성 없는 가설부터 하나하나 점검하며 나는 직감했다.

“너 이 새끼 설마…… 【게르튀르】 쓰는 사람이랑 싸워본 적 있냐?”

수천 년도 전에 생겨난 신화시대의 창술과 겨뤄본 거인이라니?

나는 내가 말해 놓고도 믿겨지지가 않았다.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내가 싸우고 있는 저 새끼는 도대체 몇 살이나 처먹은 노인네라는 말인가?

아니, 수명이라는 제한이 없다고 쳐도 그런 놈이 왜 바이콘 족의 선지자가 세운 섬에서 조각상 놀이를 하고 있던 걸까.

물론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거인이 내 기술을 예측했다는 건 빼박 팩트였다.

그대로 창을 던졌다면 내 창은 이번에도 병신 같은 주인을 욕하면서 허리가 뚝 끊어졌을 것이고, 나는 맨손으로 저 걸어다니는 혐짤 테러와 맞다이를 떠야 했겠지.

‘……좀 더 지켜볼까.’

나는 기술을 읽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머리에 박아두고 창끝에 부여마법을 걸었다.

화륵─!

이제는 숨 쉬듯 가능한 <타오르는 손길(Burning Hand)>의 마법 부여였다. 창끝에 금태양(金太陽)의 호흡으로 피어난 황금의 불꽃! 거인에게 경계하는 기색은 없었다.

“Gvvvv.”

그보다는 빨리 나를 족치고 베로니카한테 손을 대려는 듯 했다.

개새끼가 허리에 뭘 두르고 있지도 않아서 기둥 같은 좆이 덜렁거렸다. 씨발, 영화나 만화에서는 이래서 거인들이 다 고자로 나오는구나. 위를 봐도 아래를 봐도 혐짤의 연속이었다.

“죽어라 안면장애인!!!”

“SsW!!”

뜻도 없는 괴성을 내뱉으며 손을 휘두르는 거인.

간격을 파악하면서 그 팔에 풀 버프로 공격을 감행했다. 구정물처럼 더러운 피가 튀면서 피부가 갈라졌다. 상처를 입히는데 성공했지만 나는 혀를 찼다.

상처가 너무 얕았다. 이 새끼 직업은 딜러가 아니라 탱커인지, 공격력에 비해서 방어력이 훨씬 높았던 것이다.

치이익…….

또 하나 간파해낸 사실이 있다. 나는 유독한 피의 증기를 풍차 회전으로 날려버리며 눈쌀을 찌푸렸다.

‘상처가 안 익어!’

풀 버프 상태에서는 용접토치나 다름이 없는 ᚨ(Ansuz) 강화 불꽃을 맨살로 받아놓고도, 거인의 상처는 피가 증발하는 것에 그쳤다.

‘몸이 튼튼한데다 불에도 내성이 있나!’

그래서 이런 뜨거운 섬에서 오래 버틸 수 있던 걸까. 보통 요툰은 얼음 타입 아닌가? 아니, 요툰이 아닐지도 모르니까 생각해봤자 쓸데 없었다.

“베로니카!! 불 마법은 안 통할 것 같다!!”

“알고 있느니라!! 10초만 버티거라!!”

베로니카의 대답을 한 귀로 흘렸다. 아, 그런가. 오리할콘 기둥의 반응으로 저 새끼가 불꽃의 마나를 많이 가진 놈이란 걸 알아차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주먹의 러쉬를 회피하면서 각을 잡고 반격기 제 4품새를 펼쳤다.

펀치에 충격을 완화하는 창끝을 찔러넣는다. 거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목을 꺾어서 창을 낚아채려 했다.

“남의 것에 손을 대면 도둑놈!!”

─짜악!! 나는 창대를 회초리처럼 쳤다. 거인의 손등에 검은 멍이 새겨졌다. 피가 까매서 그런지 멍 색깔도 검군 그래.

‘날붙이보다 타격이 더 잘 통하나?’

정보를 분석하면서 창끝에 불을 껐다. 열에 내성이 있다면 삐까삐까 전기 공격도 마나 낭비일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내가 공격 패턴이 별로 많은 편은 아니군.

열이 안 통한다면 냉기다. 내 입술이 주문을 중얼거렸다.

마나를 운용하자 창에 냉기가 깃들었다.

냉기를 보고 거인의 표정근이 어떻게 움직이기는 했는데, 쳐다보기도 좆 같은데다 봐 봤자 어떤 감정인지 분석도 안 되서 그냥 때려쳐 버렸다.

도발도 어려웠다. 언어체계가 없는지 말이 해석도 안 된다.

고블린이나 짐승한테도 있는 언어가 요툰에게 없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저 새끼가 소리만 지르지 사실은 과묵하던가, 요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싸움이다. 오직 싸움만이 있을 뿐!

─피피피핑!!

공격기 1품새의 찌르기 러쉬를 퍼부었다. 단순한 기술이라 알아봤자 막지는 못할 것이었는데, 키 차이가 있기에 투창이 아니면 가슴까지밖에 창이 닿지 않았다.

창이 찔린 가죽은 서리가 조금 꼈는데, 이번에도 치명상이랑은 거리가 멀어 보였다.

“Gpll── llrrrrrrl!!”

거인은 자기 방어력을 확신했는지 팔을 세우며 나를 깔아뭉개려 들었다. 통로를 뒤덮은 커다란 몸은 좆 같이 생긴 얼굴 덕분에 존나 위압적이었지만, 나는 코웃음을 치며 후퇴했다

10초는 벌써 지났다.

【테이와즈는 이끄는 별. 존귀한 자들과의 맹약을 지킨다(Tir biþ tacna sum, healdeð trywa wel).】.

차가운 분화구로 빠져나오자 거인은 쫓아오려다가 멈췄다.

나는 당연히 주문을 외우는 베로키나를 발견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어째서인지 거인은 베로니카보다 먼저 하늘을 경계했다.

【그는 밤안개를 넘어 항로에 서서(wiþ æþelingas; a biþ on færylde) 결코 실패하지 않으리(ofer nihta genipu, næfre swiceþ).】

“──Gqeeee!!!”

표정근을 검게 물들이며 거인은 살기를 뿜었다. 머뭇거리던 발이 분화구로 뛰쳐나왔지만, 그때는 벌써 주문이 외워진 뒤였다.

베로니카는 손가락으로 거인을 찍어누르듯 눌렀다.

【별의 누름돌(Stjǫrnunnar Steinn).】

파란 거인의 등을 보이지 않는 무게가 짓눌렀다. 달려오던 거인이 무릎을 꿇었다.

머리를 밟힌 벌레처럼 웅크리는 거인. 하지만 우리는 둘 다 안도감보다 놀라움이 더 컸다. 나는 당혹스러워져서 베로니카에게 물었다.

“이거, 공격 마법 아냐?”

“중력을 통한 공격 마법이다. ᚦ(Thurs)의 룬에도 막혀야 할 텐데──”

베로니카도 불길한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

마법은 저 새끼의 마나를 깎기 위한 수단이다. 요툰은 종족 패시브 스킬로 마법 내성이 있다. 아까 작전 타임에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G, ww……!!”

그래야 하는데, 거인은 피부에서 피를 뿜으며 머리를 박고 있었다.

‘마법 내성을 발동시킬 마나가 없나?’

아니, 그랬으면 저런 큰 몸을 못 움직였겠지. 베로니카도 마법을 유지하며 말했다.

“얼음의 마나를 뿜어내는 거인이기에 요툰의 변종이라 생각했다만, 내 짐작이 잘못 됐던 걸지도 모르겠구나.”

“……상관 없겠지. 무슨 몬스터든 간에 족치면 돼.”

의문은 굳이 해소하지 않아도 됐다. 독 같은 건 없는 모양이니까, 저대로 기운을 빼고 모가지를 썰어주면 될 것이다.

그렇게 전의를 다잡은 내가 창을 들었을 때였다.

거인이 오른손 주먹을 바닥에 찧었다. 무게 때문에 혈관이 터졌는지 팔에서 피가 쏟아졌지만, 그 주먹이 두들긴 곳에서 액체질소 통이 터진 것처럼 냉기가 터져나왔다.

─꽈지직!

거인의 오른손이 얼음 덩어리에 감싸였다.

놈은 계속해서 자기 팔다리를 바닥에 두들기며 몸을 냉기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오한을 느끼며 소리쳤다.

“베로니카! 마법 꺼! 저 새끼 버프 건다!!”

“──치잇!!”

중력이 사라지자 나는 대뜸 창을 던지고 따라서 뛰었다.

─퍼어억! 빛살처럼 날아간 창이 안구를 망쳤다. 거인이 그 창을 뽑아버리기 전에 창에 부여한 마법으로 회수했다.

“Gbvvvvvv!!!!”

눈을 잃은 거인이 중력에서 해방되며 비명을 질렀다.

─철컥!!

방어를 위해서일까. 팔다리에 걸친 얼음 갑옷처럼 얼굴에도 불투명한 얼음 가면을 투구처럼 쓰는 거인.

그렇게 원시적으로 무장한 거인에게는 대전사의 풍격조차 느껴졌다.

씨발, 라틴어로 된 웅장한 배경음악 같은 게 깔리면 판타지 게임 보스로 존나 잘 어울리겠네. 얼굴에 자체 모자이크를 걸어준 건 고맙지만, 이어서 만들어진 얼음 도끼와 방패는 좆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Quuuuuuuuuuuuuu!!”

부우우우웅─!!

위에서 내 뚝배기를 깨려드는 얼음 도끼! 무거운 투사체나 공격을 받아치는 반격기 제 3품새로 튕겨냈다. 하지만 얼음 도끼는 생각보다 훨씬 물렀다.

받아치자마자 박살난 얼음 도끼가 무거운 파편을 뿌렸다.

자루와 조금만 남은 날이 내 몸통을 베고 지나갔다!

아악 씨발!! 존나 아파!! 암만 물러도 무게와 힘이 있으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살을 깊이 베인 건 아니지만 가슴에서 피가 흘렸다.

보다 민첩해진 움직임으로 방패 배쉬를 갈기는 거인.

기술은 그렇다 쳐도 신체 스펙이 올랐다! 나는 이 거인이 아까까지 힘을 아끼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우리를 먹고서 힘을 비축하려던 게, 자기가 뒤질 위기인 걸 깨닫고 남은 마나를 소모해서라도 죽이기로 결정한 듯 했다.

이 새끼는 계속 탈출할 날만을 관망하며 이 화산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나도 이대로 맞아줄 수는 없었다. 장대뛰기를 하는 선수처럼 창을 바닥에 찍고 두 다리를 방패가 부딪히는 타이밍에 맞게 당겼다가 폈다.

신체조율로 초인이 된 몸놀림이 기예를 성공시켜 주었다.

─쐐애액!! 나는 캐터펄트에서 발사된 대포알처럼 방패의 기세를 발로 밟고 하늘로 날아갔다. 날려보내진 건 좆 같지만 저 무게에 얻어맞는 것보다는 낫다!

“GuGuu!!”

얼음 갑옷을 입은 거인은 베로니카를 먼저 죽이려는지 반토막난 얼음 도끼를 투척했다. 나는 날려보내지면서도 또다시 창을 던져서 투척 도끼를 꿰뚫었다.

─퍽!! 새처럼 날아가던 도끼가 꿰뚫려서 멈췄다. 안심하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도끼를 던지고 바로 달려간 거인이 뒤로 물러서는 베로니키를 쫓고 있었으니까.

천장의 결계에 착지한 나는 중력에 붙잡혀 추락하기 전에 결계를 박차고 바닥으로 점프했다.

목적지는 베로니카의 앞. 타이밍이 맞다면 거인의 몸에 드롭킥 정도는 맞춰줄 수 있을 것이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듣고 거인이 내가 날아가는 쪽에 방패를 휘둘렀다.

공중에서 피할 방법은 몇 가지 있었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몸을 비틀었다.

“방패충 컷!!!”

발차기를 날리며 마나를 펑펑 썼다.

<구름 소환>의 압축 증기가 발차기에 추진력을 더했다.

간단한 저위 마법이지만 위력까지 간단하지는 않았다.

─퍼엉!!!

수류탄이 터진 듯한 가속도와 풀 버프 상태의 방어력을 믿고 방패의 정중앙에 킥을 꽂았다. K-MMORPG의 딜로 찍어누르기 전법이다.

팔을 X자로 만들어서 얼굴을 지켰다. 방패를 부수고 들어가 거인의 모가지에 발끝을 쑤셔박았다.

“G, aa!!!!”

목울대를 박살내 주려고 했는데 이 새끼는 목에 근육밖에 없는지 바닥에 내려 꽂힐 정도로 세게 얻어맞아도 뭐 부숴진 감촉이 없다.

날파리를 잡는 듯한 손아귀를 피해서 착지 창은 얼마나 깊게 꽂혔는지 불러도 오질 않는다. 바닥에서 뽑히는데 시간이 좀 걸릴 듯 했다.

“Gq……!!”

켁켁대던 거인이 손으로 바닥을 휩쓸었다.

채찍처럼 좌우를 휩쓰는 냉기의 파도! 얼음 기둥조차 한 순간에 만들어낸 냉기의 무차별 방사였다.

이건 맞으면 진짜 좆 된다!! 냉동육 80kg 즉시 발주 완료 씹가능이다!!!

품에 넣은 ᚦ(Thurs)의 룬의 아이템을 발동시키면서 베로니카의 앞을 지켰다.

“그대여!!”

“가만히나 있어!!”

내 안의 마초이즘이 고기 방패를 자처했다. 마나를 낭비해서 창을 빠르게 호출했다. 회복한지 얼마나 됐다고 남은 마나가 절반 정도가 된 느낌이었다.

반격기 제 2품새로 풍차를 돌리며 냉기를 파훼했다.

창대의 특수 효과가 벼락 같은 소리를 내며 냉기에 깃든 마나를 튕겨냈다.

존나 믿음직스럽지만 한계는 있었다. 내 팔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씨발, 더웠다가 추웠다가 아주 지랄을 하는군.

‘씨이이이이발!!! 손가락 존나 시려!!!’

나는 초조함을 감추고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냉기의 분사를 받아쳤다. 이런 페이스라면 5분도 못 가서 마나통이 고갈될 것이다. 풀 버프 상태는 마나의 소비가 격심했다.

품에 있는 옥새로 회복하면 되긴 한데, 저 놈이랑 마나통 겨루기를 해도 내 일방적인 손해였다. 나는 쳐맞고만 있으니 냉동빔의 데미지가 조금씩 몸에 쌓이고 있거든.

그러니까 더욱 태연하게 굴어야 했다.

마나가 아까운 것은 저 거인이 더할 것이었다. 체질에 안 맞는 열대섬에 갇혀서 가사상태로 죽어가던 새끼다. 우리를 족쳐봤자 마나가 동나면 죽음이 가까워질 뿐이다.

거인의 망설임이 냉기로 화이트 아웃 된 시야에 엿보였다.

체력을 회복시켜줄 동물도 다 쳐먹든가 도망쳤으니, 우릴 죽이면서도 마나는 아끼고 싶겠지.

─후욱. 냉기의 방사가 멈췄다.

분사가 그쳐도 차가워진 공기는 남았다. 내가 닥치는대로 분사한 증기가 사라지지 않고 남을 정도였다. 시원하던 분화구의 기온이 냉동창고처럼 가라앉았다.

“큿……!!”

눈물이 고인 베로니카가 허둥지둥 내 등에 손을 댔다.

오리할콘 기둥이 빛나면서 내 체온을 뎁혔다. 아마 피부를 덮은 냉기, 다시 말해서 물의 마나를 몰아내고 있는 듯 했다. 거인은 접근하지 않고 워 크라이를 내질렀다.

“GAGAGAGAGAGAAAAAAA!!!”

“뭘 빡치고 앉았어 씹새야.”

맞다이 뜨던 상대가 여자한테 힐을 받으니 배알이 꼴릴 만 했다.

아니, 오리할콘 기둥을 쓰는 걸 보고 화를 내고 있는 건가?

신화시대의 창술을 아는 듯 하던 움직임도 그렇고, 과거의 오리할콘을 아는 것도 그렇고, 상당히 장수한 틀딱 거인인 듯 했다.

‘섬에 갇혀 있던 걸 생각하면 거의 죽어가던 수준일 텐데, 그러고도 이 정도인가.’

대체 전성기에는 어떤 괴물이었을까. 지금 스펙을 매겨도 최소 미스릴 클래스는 찍고 넘어가겠는데?

놀러와서 만날 보스 몹이 아니잖아 씨발. 존나 히든 지역 DLC 보스 같은 새끼였다.

─휘리리릭! 쿵!

거인은 목을 누르며 부서지다 남은 방패를 출구에 던졌다.

존나 치졸한 새끼. 목에 킥을 맞췄을 때 척추를 부러트려 놔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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