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거의 뭐, HB 연필을 들고 닌자 수리검 놀이를 하는 잼민이랑 진짜 연필로 사람을 죽여본 프로 킬러 정도의 차이였다. 시발 얼음 고자는 어디 억울해서 살겠나.
있는 기술을 조합해서 흉내라도 내 볼까. 나는 바닥에 진각을 밟으며 룬 마법의 만다라를 펼쳤다.
“술식 전개, 나위살·나침.”
바닥에 펼쳐지는 만다라 마법진. 동그란 고리 안에 ᚨ(Ansuz)의 룬이 떠 있는 녹색의 마법진이었다.
애1미. 벌써부터 실패했다는 느낌이 드는군.
마법진에 속성이 들어가면 색깔이 거기에 맞춰서 바뀌어야 하는데, 내 마나색 그대로네. 시발.
한숨을 쉰 나는 손가락 끝에 냉기를 응축해서 또 해수면을 겨눴다. 샌드백 어서 오고.
“석사냉동빔.”
아까랑 똑같이 분사되는 압축 증기였다. 역시 실패인가.
ᚨ(Ansuz)의 룬의 마법 버프 효과를 <얼어붙는 손길>에다 가미해 볼 생각이었는데,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내가 써 왔던 유사 술식 결합처럼 잘 되길 원했는데.
아깝군. 나는 혀를 찼지만 빠르게 실망감을 털어냈다.
‘공장에서 납땜 좀 해 봤다고 진짜 용접공이랑 비빌 수는 없으니까.’
같은 장르라도 끕이 하늘과 땅 정도로 달랐다. 이건 뭐 매일 수련하는 수밖에 없겠군. 나는 얼음 마법에 그렇게 높은 적성은 없는가 보다.
‘그래도 <얼어붙는 손길>은 확실히 마스터를 해야 돼.’
구체적으로는 무영창이 가능해질 정도로 수준이 높아져야 했다.
그래야만 거인을 족쳤을 때 썼던 그 마법, 절대천공영역을 제현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갑판에 딴 사람들이 없는지 확인했다.
항해 중인 갑판에는 해상을 감시하는 인원 정도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뒤쪽에는 일을 맡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었는데, 저기까지 여파가 가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리 생각한 나는 두 손에 마법을 발동했다.
쩌저저적…!
오른손에는 열기, 왼손에는 냉기.
이걸 동시에 한다.
‘그리고 추가로 <구름 소환(Summon Cloud)>.’
손에서 뿜어지는 냉기와 열기에 증기가 더해졌다.
이제부터가 진짜 어렵다.
마법의 원리는 간단하다. 증기의 압력으로 물리법칙의 대류현상을, 열기와 냉기로 마나작용의 대류현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다니까.
물리와 마법!
그 두 개의 법칙을 동시에 조종해서 재현하는 것이 절대천공영역이라는 기상 변화 마법인 것이다.
내 착각이 아니라면 기술명은 어느 아스가르드 궁예년이 관심법으로 지켜보다가 지어준 느낌이었는데, 어감이나 뜻에서 전해지는 중2 갬성은 어쨌든 ‘영역’이라는 말은 잘 붙였다고 생각한다.
휘오오오오…!
출력을 낮췄는데도 폭풍이 강하게 불었다.
이 마법은 내 마력으로 자연현상을 재현하는 거라서 마나 가성비도 존나게 높았다.
3000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면 나도 육전 부침개가 되겠지만, 그 높이에서 날 밀쳐서 떨어트리는데 그만한 힘이 필요하지는 않잖은가.
아무튼 그래서 나도 마법의 시동을 거는 것까지는 쉽다.
근데 여기서 액셀을 밟는 게 진짜 뒤지도록 어렵다.
─휘와아악!! 퍽!!
나는 회전을 넣은 바람한테 뺨을 후려맞고 넘어졌다. 빡집중을 하던 중이라서 낙법을 취하지도 못하고 반대편 뺨도 바닥에 찧었다.
큰 대자로 엎어져서 하늘을 향하여 1초간 욕을 발사.
‘<구름 소환>의 출력이 너무 쓰레기야.’
쓰레기여도 진짜 시발 너무 쓰레기였다.
마법의 필터를 통해서 불의 마나, 물의 마나로 전환된 내 양손의 열기 냉기.
이것들은 가만 두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짝짜꿍을 맞춘다.
자석의 N극이랑 S극이 일아서 붙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도 그랬다.
거인 새끼가 뿌려둔 물의 마나에 섬에 흐르던 불의 마나가 반응했을 때, 따로 누가 조작을 가한 것도 아닌데 개쩌는 돌풍이 불어치지 않았던가.
불의 마나를 담은 구름과 물의 마나를 담은 구름을 섞는 건 객관적으로 봐도 좋은 발상이었다.
망령도시의 유적을 생각해 봐도 그렇잖은가. 빛의 마나와 어둠의 마나의 인력을 이용한 마나 발전기. 나는 그것을 저장하지 않고 그대로 공격에 사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근데 그럴 출력이 <구름 소환>에 없단 말이지.’
<구름 소환> 마법은 마법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구름을 소환하는 마법이다.
이 마법에 소환한 구름을 빠르게 움직이는 출력은 없다.
하지만 폭풍을 만들고 조작하려면 발정난 암수 동물처럼 달라붙으려는 열증기와 냉증기를 분리해서 회전시켜야 했다.
추가로 대류현상을 위한 압력도 만들어야 하고 말이다.
자기 꼬리를 쫓는 멍멍이처럼 뜨거운 구름과 차가운 구름이 내 주위를 공전해야 절대천공영역이 완성된다. 지금은 그게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래서는 좆 빠지게 피운 불에다가 찬물을 붓는 것밖에 안 되잖아.’
마나끼리 결합해서 ± 0C˚가 되는 걸 못 막겠다. 불과 얼음의 노래(절망편)이다.
코인 노래방에서 물고 빠는 커플을 지켜봐야만 하는 40대 모쏠 아다 노래방 사장님 같은 기분.
N극과 S극으로 자기부상열차를 만들었는데, 그걸 정해진 방향으로 전진시킬 에너지가 없는 거라고 말하면 알아듣기 쉬울까.
거인이랑 싸울 때는 나 혼자 두 마나를 분리하질 못 해서 베로니카가 중력으로 원심력을 넣어준 것이었고 말이다.
‘존나 새 마법을 배우든가 해야지.’
라리루라한테 입을 털었던 변신 마법보다 이쪽이 급하다.
나는 브레이크 댄서처럼 현란한 춤사위를 펼치며 기상했다.
티르시 말로는 겨울 시즌에는 얼음 마법으로 싸우기 힘들어진다고 한다. 이 한가한 시간에 마법도 창술도 연습해 둬야 나중에 편할 것이었다.
‘【게르튀르】도 수련할까.’
기술 형태는 전부 외웠는데, 거기에다 마나를 담는 건 좀 서툴렀다.
내가 쓴 기술이 다 1~4품새의 응용기였던 것이 왜겠는가. 시발 다 못 배웠으니까 그렇지.
자세는 완벽한데 공만 찼다 하면 똥볼인 조기축구 아저씨 같군.
─부웅!! 붕붕붕!!
그렇게 나는 니다벨리르에 도착할 때까지 단련에 열중했다.
심심해 하던 라리루라가 옆에 붙어서 서커스에 쓸 마법을 연습하거나, 같이 기예 쑈를 하면서 선원들에게 공연을 하는 날도 있었다. 감이 무뎌질 것 같아서 그렇댄다.
그리하여 평화로운 자주단련의 여행길이 끝났을 때.
우리는 드워프 왕국 니다벨리르의 항구에 착항(着港)했다.
만약 누가 나한테 니다벨리르의 첫인상이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새벽 2시의 홍대 골목이라고 말이다.
“우욱……. 술 냄새 나요…….”
“그러게나 말이다.”
시발, 무슨 항구에서 바다 냄새보다 술 냄새가 더 나냐. 난 라리루라한테 손수건을 주며 항구를 관찰했다.
“맥주 시음이라매!! 왜 돈을 내놓으라는겨!!”
“나무통 반 개를 비웠으니까 그렇지, 꽐라 새끼야!!”
“브리타니아~ 맥~ 주~ 있어요~!”
“윽. 이게 브리타니아 맥주? 쓰벌, 오줌 아녀?”
하하. 개판이네.
맥주 축제가 열리고 있어서인지 항구에는 취객과 호객꾼,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진 종족들로 가득했다. 대낮부터 기절해 있는 사람들 중에 드워프가 없다는 건 별로 놀랄 사실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우리는 배를 지킬 인원을 남기고 판매처를 찾으러 갈 거야.】
우르실라가 말했다. 정박한 배를 노리고 숨어드는 도둑을 대비해서 배에 사람이 남아야 한다는데, 우리 베로니카는 이 인원에 들어갔다.
‘아직 저주가 덜 풀렸으니까.’
첫 경험인데 배에서 건드리는 건 조금 아니었기에 아직도 아다들 사이를 걸어가지 못하는 베로니카였다.
【저희도 바로 대장장이 길드를 찾아볼 생각입니다.】
【그래. 잘 풀리길 기도할게.】
우르실라는 손을 저으며 선원들이랑 사라졌다.
그렇게 나도 프랑과 라리루라를 데리고, 술 냄새가 풍기는 니다벨리르의 항구로 첫 발을 내디뎠다.
이세계의 길드는 상인들의 이권단체였다.
그런 길드 중에서도 대장장이 길드는 파이가 크고 영향력도 높았다.
인간의 세력권에도 몬스터가 나올 만큼 위험이 조따게 많은 세상 아닌가. 대장간의 업무가 군수업체와도 닮게 성장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존나게 쎈 무기는 이세계에서 초인만큼 중요하다.
마법이 걸린 칼이 아메리칸 항공모함처럼 고가이며 우대받는 세상이 이곳 이세계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장장이가 다 갑부일 리는 없지.’
클라라만 해도 실력은 좋았는데 그토록 가난하지 않던가.
유망하고 진입장벽이 낮은 직업답게 가수나 배우처럼 같은 직업에서도 수입 편차가 쌉애지는 직업이 대장장이였다.
내가 밥도 못 먹고 굶는 대장장이한테 보이지 않는 손 이론 따위를 알려주면 개소리 말라며 내 대갈통을 망치로 깨부수려고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니다벨리르의 항만도시 흐레마르는 대장장이들이 머리가 좋고 장사 수완이 좋은 모양이었다.
대장장이 길드의 층수만 20층은 되는 걸 보면 말이다.
“시발거 조따 크네.”
나는 청순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세계에서는 보기 힘든 고층 건물이다. 평지도 많은 새끼들이 뭐 땜시 이렇게 높은 건물을 세웠대냐.
건물의 그림자에 가려진 옆 건물만 불쌍하다. 히히. 일조권은 똥이야. 그늘 발싸!
잠깐 그렇게 감탄한 나는 파티원들이랑 길드로 들어갔다. 촌놈처럼 입을 벌리고 서 있다가 비웃음을 사는 것도 쪽팔린 일이니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어떤 용무로 오셨는지요?】
옷을 잘 빼입은 안내원이 입구컷을 했다. 나는 모험가 신분증을 내밀었다.
【가죽 갑옷 주문제작 때문에 왔습니다.】
【예. 아우둠라 길드의 모험가 노르드 님이시군요.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험가로서는 조금 급이 되는 실버 클래스였기에 입구컷을 넘어서 통과하는 우리.
석사 신분증이 손님 대우는 더 잘 받겠지만, 신분을 숨기는 데 좋은 고고학자 브로치는 아껴둘 생각이었다. 외국에서는 언제나 조심 또 조심해야 하니까.
‘근데 왜 인간족이 안내원을 하고 있는 것이지’?
잠깐 그런 걸 궁금해 하던 나는 대충 눈치를 깠다.
교역도시니까 딴 종족도 많이 오지 않겠는가. 순혈 드워프는 진짜 쬐끄매서 대화하다가 목에 담이 오는 수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도 대장장이 길드가 장사 수완이 좋다는 게 잘 느껴졌다.
“아핫♡! 선배, 선배~. 이거 보세요, 이거!”
라리루라는 시착이 허락된 가면을 골라서 얼굴에 썼다. 뭔 알록달록한 나무 가면이었는데, 마법이 걸려 있는지 마나가 느껴졌다.
“생긴 거 무지 웃기지 않아요? 모험가 분들은 외형보다 성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지만, 이런 걸 쓰고 있으면 의뢰하기 힘들 것 같은데요?”
“그거 아마 아즈테카 식인종 사제들의 가면일걸.”
“히이이이익?!”
내 설명에 기함하는 라리루라. 떨어질 뻔한 가면을 받아서 원래 장소에 돌려놨다. 라리루라는 질색을 하면서 뺨을 비벼댔다.
“왜, 왜 그런 걸 가게에서 파는 거에요?!”
“낸들 아냐. 뭐 유물이나 노획물이겠지.”
그쪽에서 식인종 사제들이랑 싸워서 주워온 드랍템일지도 모른다. 이런 걸 시내 매장에서 팔다니 존나 굉장하다.
아니, 착용하라고 판 게 아닌가? 마법 연구 재료일 수도 있겠다.
【자꾸 이따구로 굴 거면 집어치워!!】
그렇게 내가 기분 나쁜 가면을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웬 남자가 카운터에서 매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친 것은 말이다.
소리를 친 건 건달처럼 난폭해 보이는 드워프 남자였는데, 복장은 양아치 같은 얼굴이랑 달리 질이 좋인 듯이 느껴졌다.
마나로 강화된 곰의 눈이 그 남자의 손에 생긴 물집을 간파했다. 전업 전사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싸움을 겪어본 사람의 손이었다.
【염료 값이 3 세르페에 1실버라고?! 가격이 그러면 어떻게 납품을 하라는 거야!!】
【손님. 진정하세요. 계속 소란을 피우시면 경비원을 부르겠습니다.】
진상 손님의 클레임을 대하듯 평범하게 대답하는 직원. 드워프 직원과 손님의 갑론을박이었다. 매장의 어그로를 잔뜩 끌어가며 손님이 고함쳤다.
【지금 나랑 장난쳐?! 자꾸 다른 업체에 손을 가게 만들면서 공급하는 염료 값을 그따구로 책정하면 우리더러 굶어 죽으라는 소리밖에 더 돼?!】
【중간 유통업자나 상품에 불만이 있으시다면 부디 저쪽의 창구에서──】
【이 시발!! 내가 그 클레임 뺑뺑이도 작작하라고 했지!!】
성을 내면서 얼굴이 붉어진 드워프는 허리춤에서 손도끼를 꺼냈다.
법률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손에서 일을 시마이 치려는 마인드인가. 아주 훌륭합니다. 시발 미친 새끼 아냐 저거.
【대가리 딱 대!! 반으로 쪼개서 니 피로 염색하고 만다!!】
【허어억!!】
급발진을 밟는 드워프의 도끼쑈! 냉정하게 대처하던 직원도 쫄아서 주저앉고 말았다.
법은 멀고 도끼는 가깝다. 좆 같은 업무 시간을 더욱 좆 같게 만들어주는 진상에게 태도가 냉랭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기는 한데, 그 쿨한 대응이 날붙이를 든 상대한테도 계속되기는 힘든 것이었다.
아무튼 그런 급발진엔 도끼 드워프 손님의 일행으로 보이는 드워프도 기겁을 했다. 도끼를 든 사람의 허리를 용감하게도 붙드는 그.
【이, 이 친구야!! 자네 미쳤는가?!】
【이거 놔!! 놓으라고!!】
【겨, 경비!! 경비 불러!!】
순식간에 난장판이 벌어졌다. 눈치 빠른 손님들은 불똥이 튈까 봐 입구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우리도 저 트러블에 관여할 이유는 없을 것이었다. 흐음. 좆 됐나 보군요. 하지만 저희가 알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 생각한 나는 잠시 동안 물러나갔다가 다음에 오려는 마음을 먹었다. 1시간 쯤 있다가 오면 뭐 어떻게 돼 있던가 하겠지. 굿바이 레이 펜버.
“얘들아, 우리──”
【──거기 손님. 그쯤 하시지.】
사정도 모르는 싸움에 끼어들기 싫었던 나는 입을 열려고 했는데, 우리 뒤에서 가오를 잡으며 난입하는 금발 태닝 양아치가 한 사람.
짙은 눈썹을 가진 갈색 피부의 금발 남자였다. 키는 조금 작았지만 인간족이다. 나는 눈을 껌뻑거렸다.
이 남자가 접근해 오는 건 눈치채고 있었다. 딱히 살기도 없었고 해서 그냥 행인인갑다 하고 넘어갔었지만 말이다.
‘근데 존나 왜 갑자기 끼어들고 지랄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