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확!! 나는 손끝에서 냉동빔을 쏘아냈다.
야수회귀와 <얼어붙는 손길>과 <구름 소환>의 3중 결합!
다칠 위험을 생각하면 이 방법이 제일 스마트하다.
도발을 날리던 터번남은 추하게 바닥을 굴렀다. 빗나간 냉기가 풀밭을 얼려버리자 터번남의 몸이 굳었다. 맞으면 뒤질 거라는 걸 직감한 것이었다.
【이, 이놈!! 정정당당하게 싸워라!】
【증증등등흐기 쓰으르~.】
놈의 발음을 놀려대며 세로를 연발했다.
─푸화화화화확!!
1초에 2발씩 날아오는 냉기포! 회피에 전념하던 터번남의 숨이 벅차졌다.
마나통이 어지간한 마법사들 못지 않은 내가 가성비 좋은 냉동빔을 연발로 쓰고 있는 것이다. 피하기에 급급해서 체력 소모도 격렬하겠지.
【이 빌어쳐먹을!!】
터번남은 화를 내더니 검을 아무 것도 없는 곳에 휘둘렀다.
“워르르르르르!!!”
그 동작에 웅크려 있던 어미곰이 날뛰기 시작했다.
왼손의 검은 매직 아이템이었던 모양인데, 곰은 우리의 싸움에 끼어드는 게 아니고 라리루라한테로 달려갔다.
【뭐, 뭐?! 멍청한 짐승 놈!! 이쪽을 도와서──】
─쩌엉!! 집중이 깨진 터번남은 냉동빔(물리)에 쳐맞았다.
【카학!!】
가스의 압력에 몸통이 푹 파이면서 혈액이 얼어붙은 분말이 튀었다. 화분을 걷어찬 것처럼 피얼음을 뿌려대던 터번남은 바닥에 쓰러졌다.
프랑이 주문을 외며 골렘을 소환했다. 곰보다 커다란 흙 골렘이 달려들었다.
“미안해. 잠시만 얌전히 있어줘.”
“워어어어억──!!!”
─쿵! 링링이 3.5호와 힘 싸움을 하던 어미곰이 땅에 제압당해서 구속됐다. 저쪽도 내가 도와줄 것 없이 끝난 것이었다.
‘하긴 우리가 곰 1~2마리에 쩔쩔맬 시기는 지났지.’
라리루라도 새끼곰을 걱정하지 않았으면 혼자서 해치울 수 있었겠지. 아마 어미곰이 저쪽으로 달려간 것도 새끼곰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나는 어미곰을 파티원들에게 맡기고 터번남을 쳐다봤다.
【허억, 허억, 허억……!!】
저온의 가스 분사에 맞은 가슴팍은 냉동 창고에 걸린 도축 전의 돼지 고기처럼 돼 있었다. 천장에 갈고리로 매달아 놓는 그거 말이다.
【이거 살기는 글렀구만. 방어력에도 투자 좀 하지.】
나는 그 새끼를 발로 밀어서 자빠트렸다.
【야. 너도 외국인이지? 이제 어쩔래? 외노자의 정으로 좀 배려해 줘도 되는데. 솔직하게 묻는대로 대답하면 안 아프게 보내줄게.】
【……헛소리하지 마라! 죽더라도 정보를 불 쏘냐!】
【아, 그래.】
내 그럴 줄 알았지.
【죽이렴! 그런 나쁜 놈은 죽어버려야 해!!】
아무래도 상관 없었던 내가 창을 들려고 했을 때였다.
의뢰 중에 전투가 일어난 경험이 있었는지 가만히 우리한테 맡기고 있던 헬라 씨가 성을 내며 소리를 쳤다. 그녀는 콧김을 씩씩거리며 발을 굴렀다.
【그 놈, 틀림없이 투스타스 상회에서 보낸 양아치일 거야! 염료 시장을 장악하려고 손을 쓴 걸 거라고!】
【뭐,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염료 시장은 연금술, 대장장이, 재봉과 같이 여러 분야에서 손을 쓸어담을 수 있는 시장이었다.
21세기에서도 비싼 염료는 뒤지게 비쌌다. 대량 생산이 어려운 이세계에서는 말하면 입만 아프다.
이 새끼들은 워르 풀 등의 염료를 없애고 시장을 장악한 자기들 염료로 폭리를 취할 생각인 것이다.
【……흥.】
터번남은 뒤져가면서도 침묵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런 묵비권은 설득력을 더할 뿐이었다.
‘일부러 야생동물을 쓴 것도 그래서겠지.’
동물이 밭을 망쳤다고 입을 털면 누가 의심하겠는가.
어미곰을 조종해서 자연 상태의 염료를 축출해 놓고, 염료 시장을 독점한 뒤에 가격을 높일 생각이 아닐까.
한국에서도 이동통신사나 공기업 전기회사 등은 독과점의 무서움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와이파이가 들어오기 전, 휴대전화 한가운데에 붙어 있던 인터넷 접속 버튼의 두려움은 그 시절 사람들이 모두 공유하던 것이었다. 1분 접속하면 막 몇천원 씩 나왔지 시발.
터번남은 뒤져가면서도── 아니, 자기가 뒤질 거라는 걸 알았기에 더 허세를 부리며 떠들었다.
【네놈들이 뭐라고 해도 내 입을 열 수는 없을 것이다. 고문하든 말든 마음대로 해라.】
【어. 그럴라고.】
─투콱!! 나는 놈의 정수리를 후려쳐서 박살냈다. 그러고서 룬의 만다라를 전개했다. 바닥에 ᚨ(Ansuz)를 펼치고 손으로는 ᚦ(Thurs)를 사용했다.
‘매번 땅바닥에 룬을 쓰지 않아도 되서 편하긴 하군.’
선지자의 분신한테 받은 응용기술도 꽤 도움이 됐다. 터번남의 몸에서 빠져나오던 영혼은 눈을 부릅떴다.
─이, 이럴 수가!
영혼은 ᚦ(Thurs)의 룬에 맞아서 눈이 흐리멍텅해졌다.
자백제를 맞은 것처럼 비몽사몽해졌으니 질문에도 솔직히 대답할 것이었다. 저번에 오우거를 심문할 때보다 편하겠지.
나는 창을 어깨에 매면서 촌지를 요구하던 7~80년대 교사처럼 말했다.
【느이 보스 뭐하시노?】
요요 좆 같은 항구도시의 조직폭력배 새끼들.
어디 뭐하는 놈들인지 들어나 보자.
나는 대답 자판기가 된 터번남─이름은 살가르랜다─에게 정보를 뜯어내고 파티원한테로 갔다.
“프랑. 놓으렴. 저 놈들 머리통을 깨부숴버릴 거야.”
“헤, 헬라 씨! 답지 않게 왜 이러세요! 흥분하지 마세요!”
호신용으로 들고 오신 모닝 스타를 꼬나쥐는 헬라 씨.
프랑은 그런 헬라 씨를 말리고 있었는데, 내가 끼어들기는 조금 그랬다. 헬라 씨의 분노도 프랑의 만류도 정당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나는 프랑에게 맡기고 라리루라한테 갔다. 힘 싸움이라면 프랑이 헬라 씨한테 질 리는 없지 않은가.
“아, 선배!”
울상을 짓고 있던 라리루라는 나를 보고 화색이 되었다.
“왜 울상이야?”
그리 물어본 나는 상황을 살피고 눈치챘다. 우리 후배는 링링이 3.5호로 잡은 새끼곰을 어미곰한테 보여주는 중이었다.
“뺘우오오오……. (엄마아아…….)”
“크르르르르……!!”
하지만 어미곰은 자기 새끼도 못 알아보고 충혈된 눈으로 송곳니를 드러냈다.
프랑의 골렘이 머리만 내놓고 제압하지 않았으면 자기 자식을 물어죽였을지도 모른다. 라리루라는 발만 동동 굴리다가 나한테 부탁했다.
“선배. 얘랑 얘기 좀 해 주세요. 왜 이러는 거에요?”
“안 물어봐도 돼. 흥분제를 먹였대. 조종하기 쉽게 하려고.”
나는 터번남한테 뺏은 약 봉다리를 보여줬다.
거무튀튀한 푸른색의 분말이 들어있는 가죽 주머니였다. 양아치 새끼들은 이걸 먹여서 곰을 흥분시키고 이성을 뺏은 것이었다.
“지들 이름이 그림자의 송곳니라는데, 뭐 어디 이름만 번지르르한 음지 집단이래. 하청 받아서 하는 일이라서 저 놈은 윗선에 의뢰한 놈이 누군지도 모른다더라.”
터반남 스스로도 일을 하면서 아마 염료 시장 문제겠거니 하는 예측은 했던 모양이지만 말이다.
참고로 그 새끼는 벌써 성불시켰다. 지옥이 있다면 거기로 가겠지.
남긴 건 돈 조금이랑 약 봉다리 뿐이다.
쌍검은 가져가서 팔면 추적당할 거니까 포기했다.
“그, 그러면 약이나 치료 마법으로 고쳐지는 건가요?”
“아니, 보통 약으로는 못 고쳐. 대충 보기에도 중독성 물질이라서 이 약물 전용의 해독제나 마법을 만들어야 할 걸.”
치료마법이나 포션도 만능은 아니었다.
약이랑 치료로 모든 병이 낫는다면 신전이 무슨 수로 존립하겠는가. 치료비로 삥 뜯는 것도 한계가 있을 텐데.
“못 고친다니……. 그러면 이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잖아요.”
라리루라는 새끼곰에게 감정이입을 했는지 눈물이 고였다.
남 일처럼 말했지만 곰 일가족을 덮친 비극에 가엾음을 느끼는 건 나도 똑같았다.
수의대생으로서 사람 > 짐승이라는 사실을 머리에 늘 박고 다니기는 해도, 다른 생물을 가엾이 여기는 측은지심은 생물이라면 다 가진 본능이니까.
“백신처럼 전문으로 연구한다면 모를까, 시판되는 물건이나 흔한 치료 마법으로는──”
그렇게 말했던 나는 번갯불처럼 뉴런을 스치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중독성 물질이라도 정신에 개입하는 약물이라면 마법적인 뭐시기가 포함돼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ᚦ(Thurs)의 룬으로 치료해 볼 수 있지 않나?’
ᚦ(Thurs)는 안녕과 방호의 룬이다.
예전에 베로니카가 내 꿈에 휩쓸릴 때를 대비해서 썼던 룬도 ᚦ(Thurs)였다. 이 룬은 정신 방호의 효과도 가지는 것이었다.
애초에 적을 잠재우는 강제 수면 효과나 자백 효과도 꿈에 관련된 효과에서 파생된 것이니까.
‘해 볼까.’
시험해 봐서 손해는 없을 듯 했다. 그리 생각한 나는 아까 전처럼 손바닥에 ᚦ(Thurs)의 만다라를 띄우고 어미곰을 겨누었다.
어미곰의 정신이 3D 맵처럼 뇌리에 떠오르는 듯 했다. 나는 그 안을 드론을 날리듯이 정찰하다가 한 가지 위화감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그 정신의 내면세계 안에, 내가 폭주할 때 보았던 것과 쏙 빼닮은 무언가가 타오르고 있었다.
구신의 마나의 태양에 떠올랐던, 그 흑점이 말이다.
“……하.”
나는 직감적으로 무언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수많은 트러블에 휘말리면서 손에 넣은 영감 비슷한 거였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돌아가서는 안 되는 톱니바퀴가 맞물려버린 느낌이었다.
‘일단 응급처치부터 해 볼까.’
입술을 핥아서 기분을 진정시키고 룬의 만다라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어미곰의 내면세계에 늘러붙어 있던 흑점은 내 마나에 불타오르는 것처럼 녹아내렸다. 분노로 가득 찼던 어미곰의 눈에 힘이 빠졌다.
“뺘우오! (엄마!)”
“우르르르르…….”
야생의 감일까? 새끼곰은 어미의 정신이 돌아왔다는 것을 눈치챈 듯이 그 머리에 달라붙었다.
골렘에 깔려서 머리만 자유롭던 어미곰은 자기 새끼를 혀로 핥아주었다. 그러고서 나한테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풀어달라는 뜻이겠지.
“프랑. 이 녀석 제정신으로 돌아왔어.”
“아, 응!”
헬라 씨를 진정시킨 프랑이 골렘을 구성하는 마나를 해제시켰다.
─우르르르! 흙더미가 무너지자 어미곰은 일어나서 새끼를 안았다. 나는 착잡한 기분으로 말했다.
“와우우. 워르우 으루르르르아우 카오오. (가라. 앞으로는 인간을 만나도 되도록 습격하지 말고.)”
“우우우…….”
어미곰은 감사하는 눈빛을 보내면서 새끼곰의 목덜미를 살짝 물었다.
고양이처럼 자기 자식을 문 곰은 수풀을 헤치며 산으로 돌아갔다. 라리루라가 안심한 듯, 기쁜 듯 웃고 있는 게 어딘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들을 배웅하고 양아치 한 명을 깨웠다.
룬의 마나를 거두면서 <번개의 화살(Lightning Missile)>을 흘린 창대를 목에 가져다댔다.
【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잠에서 깨어난 놈은 전기 찜질에 비명을 질렀다. 잠이 싹 달아나고 정신이 바짝 들었을 것이었다.
전류에 마비돼서 근육이 굳는 게 보였다. 깨어났어도 삿된 짓은 불가능하겠지.
【뭐, 뭐, 뭐야! 머야! 뭔데?!】
─콱!!
떠드는 놈의 코앞에 창을 박았다. 놈은 입을 싸물었다. 폭력으로 먹고 사는 놈답게 그걸로 상황파악이 된 모양이었다.
【눈은 뜨였나? 네 친구들은 전부 꿈나라에 갔거나 죽었다. 네가 따르던 놈도 정보를 죄다 불고 도망쳤고. 설명이 더 필요한가?】
【──거, 거짓말! 살가르 님이 도망쳤을 리가 없어!】
터번남의 시체가 안 보인다는 걸 확인했기에 구라를 까자 가면을 쓴 양아치는 기함했다.
【조직의 이름은 그림자의 송곳니. 너는 조직의 말단이고 살가르란 놈은 간부 후보.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따라서 워르 풀의 자생지를 망치는 작업을 벌이던 중이고, 이 산의 자생지까지 망치면 5개째. 맞나?】
가면에서 엿보이는 양아치의 눈이 떨렸다. 전부 사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암만 입이 무거운 새끼라도 자백제 먹으면 꼼짝 못하거든.
【15명이나 데려왔더군. 쫄래쫄래 수고가 많았다.】
─파즈즈즈. 창날에 전류를 흘리자 양아치가 침을 삼켰다. 놈은 방금 전에 전기 쇼크를 맞은 직후였다. 공포감이 치솟은 거겠지.
【네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다음 놈을 깨운다. 그 놈도 도움이 안 되면 그 다음 놈. 너를 대신해서 질문에 대답해줄 놈들은 아직 열 넷이나 남았군. 이해가 가나?】
【예!! 뭐든지 물어보십쇼!!】
정신력이 약한 양아치는 백기를 들었다.
이 새끼도 자기가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건 알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폭력배라면 고문이라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는 배웠을 것 아니겠는가. 거기다 전기 찜질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고의 고통 중 하나라고 하니까.
【우선 얼굴부터 볼까.】
나는 흘러가는 말인 것처럼 말하며 창을 휘둘렀다.
말로는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말했는데, 본론은 이쪽이었다. 말단 새끼한테 들을 건 없었기에 이 놈을 어디서 봤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뛰어난 간격 조절로 가면만 베어냈다. 나는 그 아래에 있던 얼굴을 보고 인상을 썼다.
【대장장이 길드의 경비원?】
조이드였나 뭐였나 했던 남자를 뒤따라서 드워프 도끼남을 데려간 경비원들!
이 녀석은 그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대장장이 길드가 너희 조직이나 의뢰주와 무슨 관계지?】
【아, 아무런 관계도 아닙니다! 저는 범죄 기록이 없어서 그 길드에 스파이로 잠입해 있던 겁니다! 경비원은 능력만 되면 받기 때문입니다!】
【스파이라. 그거 거창하시군. 그것도 의뢰였나? 너 말고 또 누가 잠입해 있지?】
【저 뿐입니다! 제가 잠입한 것도 조직의 의사였습니다!】
나는 눈쌀을 찌푸렸다. 이실직고하는 건 좋은데, 내용이 영 부실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