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 놈 뿐이든 말든 자기를 빼면 아무도 없다고 찔러나 보지 않겠는가.
음지조직은 법률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의리나 신의를 목숨보다 중요시하는 법이었다.
【저, 정말입니다! 신원을 칼 같이 따지기 때문에 저 외에 다른 조직원들은 서류에서 떨어졌습니다!】
양아치는 목숨이 걸린 만큼 내 반응을 귀신같이 캐치했다. 신의보다 자기 안위를 중시하는 자세였다. 아주 훌륭하다.
【대장장이 길드의 경비원은 전원 신분이나 범죄 기록이 깨끗한 놈들입니다! 아! 하, 하지만 경비 부대장! 경비 부대장인 조이드 투스타스만 조금 다릅니다!】
【……투스타스?】
그건 우리 사이에서 한창 용의자로 올랐던 상회 이름인데.
【그렇습니다! 조이드 투스타스는 현 투스타스 상회장의 이복동생입니다!】
【조이드 투스타스도 하프였나? 아니면 상회장이 인간?】
【둘 다 하프의 하프입니다!!】
【하프의 하프? 아아. 쿼터라고.】
난 또 뭔 개소리인가 했네.
아마 조이드의 할애비나 할매가 드워프였던 거겠지. 어째 인간족처럼 생겨먹은 것 치고는 키가 좀 작더라. 나는 질문을 계속했다.
【그래서? 그 놈이 뭐가 다른데?】
【조이드는 자기 형인 투스타스 상회장과 의절하고 도시를 나갔다가 10년 뒤에나 돌아왔다고 합니다!】
【성실하다는 거냐? 아니라는 거냐?】
【의견은 분분합니다! 믿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으면 투스타스 상회에서 뇌물이나 스파이로 꽂은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흐레마르의 장인들에게 투스타스 상회의 이미지가 개판인 건 헬라 씨의 반응만 보더라도 확실했다.
‘의절하고 나갔다고 해도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지.’
상회를 위해서 10년 동안 밖에 나가 있다가 돌아왔을지도 모르잖은가. 속내에 무슨 생각을 감추고 있는지는 까보지 못하면 모를 것이었다.
【하지만 스파이를 자칭할 만한 정보는 아닌데. 다른 건 또 뭐 없나?】
【그, 그게…….】
【없는 모양이군.】
나는 시체의 옷감을 찢어서 그 놈의 안면에 얹었다.
─쏴아아. 야영에 쓰는 식기에 그 검푸른 가루를 붓고 <물 생성(Water Creation)>으로 만든 물에 탔다. 얼굴이 가려진 양아치가 공포에 떨었다.
【서, 선생님? 뭘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내가 왜 니 센세야 씨발아.】
이 놈이랑은 볼장 다 봤다. 나는 어미곰을 날뛰게 만들 가루를 물에 타서 그 놈의 얼굴을 덮은 천에 뿌렸다.
【으으으읍?!】
【우리 친구, 잠깐 약 좀 먹어보자. 이게 사람한테도 효과 있는지 궁금하거든.】
궁금하다기보단 꼭 알아야 하는 문제였다.
그렇게 그 양아치 놈을 임상실험 대상으로 삼아놓았다. 저 상태로 내버려 두면 코와 입으로 가루가 흡수돼서 효과를 보여주겠지.
나는 손을 털고 헬라 씨에게 다가갔다.
“헬라 씨.”
“아…… 미안해, 프랑 남편씨. 내가 요즘 마감이랑 수면 부족으로 계속 신경질적이야.”
헬라 씨는 내가 뭐라고 하려는 줄 알았는지 사과부터 했다. 하지만 내 용건은 그게 아니었다.
“아뇨. 이유는 그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 뭐가?”
“이 가루를 좀 봐 주십시오. 성분이 뭔지 아시겠습니까?”
“가루? 나, 독 같은 건 잘 모르는데…….”
약 봉다리를 받아든 헬라 씨는 인상을 썼다. 검푸른 가루가 뭔지 알아보지 못한 듯 했다.
“후우우우우.”
그래도 자기 능력이 되는대로 알아볼 생각이었는지, 헬라 씨는 가루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손을 비비거나 후후 불어서 굵기와 무게 차이로 푸른 가루를 날려버렸다.
“……엇?”
그렇게 검은색 가루만 남은 약재를 보고 눈이 크게 뜨여진 헬라 씨. 그녀는 깜짝 놀라서는 나에게 물었다.
“그, 그릇! 그릇이랑 물 없니?”
“이걸로 괜찮다면 쓰시죠.”
미리 준비한 그릇과 물을 내밀자 헬라 씨는 아주 조금의 물만 남기고 거기에 검은 가루를 부었다.
─휘적휘적.
손가락으로 휘젓자 그 가루는 물감처럼 물에 녹아내렸다. 가루 자체가 수용성이었던 것이다.
“……틀림없어.”
재봉 길드원인 헬라 씨는 그 색감을 보더니 안색이 파랗게 질려서 소리쳤다.
“이거, 가마 상수리나무 숯 가루야!”
“……역시 그렇습니까.“
맞췄다고 기뻐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이 숯은 흡입한 생물로부터 분노조절능력을 빼앗는 물질이었는가 보군요.”
니다벨리르에서 값싼 염료로 사용된다는 숯 가루!
그 가루는 체내에 쌓이면 그 생물에게 분노를 유발시키는 유독물질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였나.’
대장장이 길드에서 급발진을 밟으며 도끼를 던졌던 드워프.
흥분해서 과일을 몇 개나 깎다가 드워프답지 않게 손가락을 베이기까지 했던 헬라 씨.
그들을 그런 꼴로 만든 것은 이 가루였다.
도끼 드워프는 워르 풀 염료가 비싸서 구하지 못한 듯이 굴었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검은색으로 물건을 염색할 때는 이 가마 상수리나무 숯을 썼다는 뜻이다.
헬라 씨는 말할 것도 없다. 자기가 자주 쓰고 있다고 말을 하기까지 했으니까.
‘이 가루의 부작용은 야수회귀의 부작용이랑 비슷해.’
자신의 분노를 감당할 수 없게 되는 정신 이상!
그건 내가 겪고 있는 증세랑 쏙 빼닮았다.
‘마나로 인한 증상이라는 것까지 똑같지.’
만약 이게 화학적으로 뇌를 건드리는 마약 같은 거였다면 나는 어미곰을 치료하지 못했을 것이다. ᚦ(Thurs)의 룬은 화학 물질의 치료에는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만큼 이 가루의 효과는 저주로 분류해도 될 듯 했다.
“자, 잠깐만요 선배. 그럼 뭐에요? 그 상회는 부작용을 다 알고도 숯 가루를 염료로 팔았다는 거에요?”
“부작용이 아냐. 원래 이런 효과를 가진 숯을 염료로 쓸 수 있다고 속여서 판 거지.”
시뻘건 광대버섯을 갈아서 빨간색이 나온다고 그걸 물감에 판 것과 다름이 없었다.
염료를 직접 만지는 사람은 당연하고, 이 숯으로 염색한 옷이나 가구를 쓰는 사람들에게도 악영향이 갔겠지.
“……20년이야.”
헬라 씨는 믿기지 않는다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이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사람들은 이 숯을 썼었어. 투스타스 상회는 적어도 20년이 넘게 니다벨리르 사람들을 속여왔던 거라고!!”
“헬라 씨. 가만히 계세요.”
분개하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ᚦ(Thurs)의 룬을 전개했다.
헬라 씨의 내면세계에도 흑점이 존재했다. 나는 그걸 마나로 불태워버렸지만 그녀의 분노는 가라앉질 않은 듯 보였다.
그럴 수밖에. 저 흑점은 헬라 씨가 품은 분노다.
숯과 야수회귀의 부작용은 그 분노를 조절하기 힘들게 만드는 거지, 없던 분노를 강제로 주입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니다벨리르 사람들도 자기들이 분노하는 것에 위화감을 못 품었겠지. 내가 폭주하기 전까지는 야수회귀의 부작용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암만 그래도 나처럼 오딘 짭 흉내는 불가능하겠지만…….’
어쩌면 드워프들의 성격이 난폭하다는 편견은 저 숯을 쓴 장인들의 히스테리가 원인이 아니었을까.
예술가 기질이 있는 사람들이 분노를 조절할 수도 없게 돼 버린다면?
그야 미쳐버리겠지. 상사나 부하가 좆 같이 굴 때마다 그 불만이 전부 입 밖으로 나오거나, 주먹이 알아서 그 새끼들 면상으로 날아간다고 생각해 봐라.
가루 흡수량이 많은 사람들 중에는 사회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단 그 상회가 악의적으로 사실을 은폐해 온 건 확실해.”
투스타스 상회 외의 용의자는 없다.
그들은 사람을 시켜서 경쟁상대가 될 워르 풀의 자생지를 헤집었다. 거기다가 그 수단으로 숯의 효과를 악용하기까지 했다.
야생동물의 짓으로 보이게 하려고 어미곰에게 숯 가루와 무언가의 푸른 가루─아마 약효를 빨리 나오게 하는 효과겠지─를 섞어서 먹이고 조종한 것은 그래서였다.
【크아아아아아악──!!】
그때 내가 약을 도포한 양아치가 벌떡 일어서서 비명을 질러댔다.
그 놈은 근육이 마비된 것도 분노로 덮어씌운 것처럼 잘만 움직였다.
─타타탓! 얼굴의 천을 던져버리고 도망치는 양아치. 흥분한 놈은 달리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우리에게 손가락 욕을 날려댔다.
【잘 있어라, 좆 같은 새끼들아!! 너희한테는 조직 차원의 보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밤낮을 모르고 배에 칼이 꽂히는 순간을 벌벌 떨면서 기다려라, 씨발놈들아!!】
【누가 보내나 준대?】
어차피 보내줘도 좆밥 하청 단체인 조직폭력배는 위협도 안 되겠지.
그런데 우리가 저 놈을 살려보내줄 이유도 없잖은가. 나는 당연히 프랑이 나이프를 던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선지 프랑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저 사람, 붙잡을게요?”
대신 라리루라가 링링이 3.5호의 입에서 장침을 발사했다.
─푸슈슈슛! 양아치는 다리에 장침이 꽂혀서 넘어졌다.
【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악──!! 개 같은 년이!!!】
【바쁘니까 입 좀 싸물고 있어.】
나는 그를 닥치게 하려고 수면 가스를 뿌렸지만 양아치는 잠들지도 않았다. 눈쌀이 찌푸려졌다.
‘……약효가 생각보다 굉장하군.’
마약성 약물처럼 의식을 또렷하게 하는 걸까? 하지만 설마 수면 마법의 간섭도 버텨낼 줄이야.
숯 가루의 진짜 용도는 저런 것일지도 몰랐다. 싸움 전에 몸을 흥분시키는 도핑제 말이다.
무영창 <번개의 화살>로 양아치를 지져버렸다. 하는 짓을 보면 살 가치도 없는 놈이다. 진짜 위협이 될 투스타스 상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집단의 말단 놈이었다.
‘……그 상회랑 우리가 맞붙을 이유도 없지만 말이야.’
사실이 그랬다.
니다벨리르 사람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우리가 그 기업이랑 맞짱을 뜰 의리는 없지 않겠는가.
물론 영주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고 정보를 알릴 생각은 있었다. 멀쩡한 사람이면 손을 쓰겠지.
도시 밖의 마법사 길드나 대학에도 소식을 뿌릴 생각이다.
이런 사태는 일을 크게 벌려야지 뭐가 되도 제대로 된다.
군대 부조리를 중대장 소대장한테 하소연하는 걸로 해결이 되길 바라는 건 짧은 생각이다. 마찬가지로 전세계에서 투스타스 상회의 죄를 알아야 문제가 해결되든가 하겠지.
그래도 우리한테 그런 과정을 지켜보거나 고삐를 쥘 의무는 없었다.
우리한테 그 염료의 효과는 남의 일이니까.
“……헬라 씨. 그 염료, 저한테도 빌려주세요.”
그때였다. 프랑이 헬라 씨에게서 염료를 녹인 그릇을 받아갔다.
아니, 그건 내가 사랑하는 프랑에게 콩깍지가 쓰여 있었기에 그리 표현한 것이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프랑이 헬라 씨한테서 그릇을 낚아챘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마음에 여유가 없는 움직임이었다.
“──프랑?”
“……잠깐만. 잠깐이면 돼. 냄새가 신경 쓰여서 그래.”
냄새라니. 프랑의 오감이라면 떨어져 있어도 얼마든지 맡을 수 있을 텐데.
그런데도 일부러 손에 찍어가며 향은 확인하려는 건 왜지?
내 머리는 짧은 순간에 답을 내놓았다.
──프랑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나는 어디선가 거대한 톱니바퀴가 맞물리기 시작한 듯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옛날부터 준비돼 있던 물건이 이제야 움직이려 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혹자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냄새야, 노르.”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 프랑이 말했다.
“이 냄새는……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한테서 풍기던 냄새야.”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니다벨리르에 암약하는 어느 상회의 악행은, 내게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뒷처리를 끝낸 우리는 흐레마르로 복귀했다.
그림자의 뭐시기에서 나온 양아치들은 프랑의 흙 골렘으로 묻어버렸다. 워르 풀의 자생지에서 떨어진 곳에 묻었기에 들킬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나는 헬라 씨한테 모험가 길드에 낸 의뢰를 방치해 두라고 전해두었다.
그리고 여관에서 기다리던 아내들과도 합류했다.
그녀들은 우리들의 안색을 보고 또 무슨 일이 터졌다는 걸 눈치챈 듯 자리를 깔았다.
“어떻게 된 일이었냐면──”
나는 우선 다나랑 베로니카에게 숯 가루 얘기를 차분하게 설명했다. 니다벨리르의 염료 사정과 얽힌 투스타스 상회의 비리는 10분 안팎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프랑이 입을 열 차례였다.
“……우리 아버지는 있지. 브리타니아 출신 연금술사셨어.”
파티원들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준비를 마치자, 프랑은 말했다.
“아마 실력은 뛰어나셨을 거라구 생각해. 나는 어려서 몰랐지만,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는 아버지의 둘째 부인이셨거든.”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옛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니, 옛날이라고 할 것도 없다. 반년도 안 된 얘기다.
나랑 프랑이 첫날밤을 겪었던 날이었다. 그녀는 내가 많은 여성을 아내로 들이는 게 목표라는 말에 자기 가정사를 조금 털어놨었었다.
장인어른께서는 연세가 60세를 넘는 연금술사셨고, 장모님께서는 장인어른의 둘째 부인인 드워프셨다고 말이다.
일부다처가 허용된 세상에서도 아내를 여럿 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장인어른께서는 그만한 능력이 있으셨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