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4화 (264/1,009)

단서는 모였다.

행동 방침도 세웠다.

이제는 실행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나는 일행에게 작전과 행동 방침을 충분하게 설명하고서, 10쿠퍼 동전을 장기말을 두듯 테이블에 놓았다.

“당장 오늘밤부터 시행한다. 모두 협력해 줘.”

생체드론의 탐색력은 언제나 위대했다.

축제의 소란에 맞춰서 싸돌아댕기는 길냥이와 스트리트-댕댕이들에게 먹이를 뿌리자, 조이드의 위치는 1시간만에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빨리 그를 찾아낸 원인은 술집을 위주로 찾은 덕분이었는데, 그것 말고도 의외였던 이유가 있었다.

“오우우우우 왕왕! (누군지 알아!)”

주인 없는 개나 고양이들이 그 금발 태닝 양아치의 얼굴을 알았다. 가끔씩 밥을 나눠준다는 모양이다. 고양이들은 말고 오직 개들한테만.

“냐아아아아아!!”

차별대우에 독이 오른 고양이들은 내 눈치를 보며 슬렁슬렁 일했던 댕댕이들이랑 다르게 순식간에 그를 찾아내서 위치를 일러바쳤다.

나한테 먹이를 먹어먹고 조이드랑 의리를 세운 댕댕이와 지들한테 먹을 걸 안 줬단 이유로 팔아넘겨 버리는 고양이.

어느 쪽이 더 축생(畜生)다운 건지는 의견이 갈리겠지만, 그 답을 생각하기도 전에 나는 골목길을 걷는 조이드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에헤라디야~. 얼쑤 좋다~.】

휘청거리면서 혼자 길을 걷는 조이드.

우리 파티는 그런 그를 골목을 구성하는 건물의 옥상에서 내려다보다가, 앞뒤를 점하며 그 앞에 착지했다.

중량이 나가는 링링이 3.5호조차 그 정도의 착지음밖에 없었다. 우리는 전원 마나 사용자다.

베로니카가 룬을 새기고 헬라 씨한테서 받은 천으로 로브를 만들어서 씌운 꼭두각시 인형은 거구의 인간으로 보였는데, 그 위압감은 높이 사줄 만 했다.

취한 것처럼 지칫대던 조이드가 안색을 굳히면서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으니까.

【……주정뱅이들 축제가 언제부터 이렇게 세련된 가장(假裝) 파티가 됐담?】

가면과 로브를 쓴 우리를 보며 침음하는 조이드.

그런 조이드의 손은 허리춤의 검에 올라갔다. 하지만 뽑지는 못했다. 내 생각대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그였기에 우리 실력을 눈치깐 것이었다.

이 좁은 골목에서 마법사를 포함한 5대 1.

아니, 꼭두각시 인형을 포함하면 그에게는 6대 1로 보일까.

전투가 벌어지면 죽는다.

아마도 그는 그리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선, 오밤중에 이러한 형태로 만나뵙게 된 것을 사죄드리겠습니다. 조이드 투스타스 씨.】

오랜만에 아서 웨인의 코스튬을 입은 내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예전에 마법사 길드에 갔을 때나 입었던 옷인데, 가져오길 잘 했다.

여기에 인상미채의 가면까지 있기 때문에 그가 날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었다.

물론 가면을 써도 대략적인 인상은 판별이 가능하기에 창은 두고 왔다. 키 작은 드워프들의 국가에서 창은 보기 힘든 무기다. 들고 다니면 역추적 당하기 쉬워진다.

그래도 별 문제는 없다. 야수회귀의 손톱은 웬만한 검보다 날카롭다.

【얼굴을 숨긴 것은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을 위압하려는 뜻은 없습니다.】

【……아, 됐고. 뭐 땜에 그러시는데?】

【오늘밤에는 당신께 긴히 여쭙고 싶은 바가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리 말하면서 나는 모든 집중력을 눈에 실었다. 이제부터 할 질문에 조이드가 어떤 반응을 할지를 지켜보기 위해서다.

【당신의 형, 제이드 투스타스가 상회를 통해 흐레마르와 니다벨리르에 유독물질을 유통시키고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질문에 얼굴이 굳거나 자리를 벗어나려고 한다면 용의자로 볼 생각이었다. 당황해서 되묻는다면 그 반응의 진위를 살피려고 했다.

조이드의 반응은 어느 쪽도 아니었다. 그는 눈을 반개하며 나를 노려봤다.

【그건 또 상당히 재미없는 농담이구만. 우리 형이 마약이라도 팔았다는 거요?】

【생각하기 나름으로는 그보다 더 악질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보이는군요.】

【헛소리 집어치우쇼. 우리 형제가 돈에 대한 자세는 조금 다를지언정, 형님도 금화 몇 푼에 양심을 팔아치울 양반은 못 되오. 내가 그 사람을 몇 년 봐 왔는데.】

조이드는 성을 내듯 골목길에 침을 뱉었다. 내 눈에는 그게 정말 화를 내는 듯 보였다.

적어도 심적인 여유가 없을 때 소속한 집단의 치부를 지적당한 사람답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을 경계하고 있었다기에도 너무 침착했다.

‘뭣보다 자리를 피하려는 기미가 안 보여.’

켕기는 게 있었다면 탈출할 구멍을 찾으려 했을 것이었다.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동료에게 알려야 하니까.

그런데 조이드는 오히려 짝다리를 짚으면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 말을 듣고 분노했기 때문이다.

─그 개소리, 어디 마저 지껄여보셔.

그런 느낌마저 드는 눈빛이었다.

‘……말을 잘못했군.’

본론을 꺼내기 전에 자리를 바꾸자는 얘기부터 해야 했다.

이 대치상태는 좋지 않았다. 뒷골목이지만 돌아다니는 행인들은 있을 것이다.

우리가 둘러싸고 있는 조이드도 지나가는 길 아니었던가. 누군가에게 발견당하면 일이 복잡해질 게 눈에 선했다.

나는 내 실수를 인정해야만 했다. 나도 무의식적으로는 상당히 분노해 있었던 모양이다.

상회를 쳐부술 방법에만 정신이 팔려서 당장 눈앞의 일에 집중하지를 못했다. 실책이었다. 첫 단추를 잘못 꿰매면 다음 일도 순탄하지 않은 법인데 말이다.

그리고 몇 번인가 말했던 것처럼, 화난 사람을 설득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왜 말이 없으신가? 확실한 근거도 없이 남의 가족을 개새끼처럼 대했던 거요? 우리 형은 그럴 사람이 아니외다. 남들 목숨 갖고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지.】

분노한 조이드가 으르렁댔다. 파티원들은 내게 협상을 일임했기에 말을 아꼈는데, 그 불편한 분위기에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건 감정이 다분히 절제된 목소리였다.

누가 누구인지 다 아는 나한테는 인상미채의 효과가 별로 안 통할 텐데도, 누가 한 말인지 1초 정도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 말이다.

조이드는 질문을 던진 프랑을 쳐다봤다.

【……지금 뭐라셨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느냐고 물었어요.】

프랑은 그게 정말로 궁금하다는 것처럼 막힘없이 물었다.

【10년 넘도록 형님 분과 떨어져서 지내셨다고 들었어요. 물론 흐레마르에 돌아오신 뒤로 안부인사를 나누기는 하셨겠죠.】

【그렇수만. 10년이나 고향 밖을 싸돌아다녀 보니 화해할 마음이 들더군.】

【그럼 어째서 조이드 씨는, 형님 분의 상회가 아니라 대장장이 길드의 경비원을 맡고 계시나요?】

조이드의 동공이 떨렸다. 그건 나도 주의 깊게 보고 있지 않았으면 눈치 못 챌 정도로 작은 동요(動搖)였다.

【……뜻이 안 맞아서 그랬수다. 가족이라고 반드시 같이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잖수? 나도 형님도 이제 나이도 있고, 사내놈이면 자기 앞가림은 알아서 해야지.】

정론이었기에 괜스레 더 핑계처럼 들리는 반론이었다.

프랑은 그 대답에 흠을 잡지는 않았다. 프랑이 묻고 싶은 말은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겠지.

【나그네는 고향이 그대로 있기를 바라죠. 거처가 바뀔 때마다 마음가짐까지 바꾸면 너무 빨리 지쳐버리니까요. 그래서 고향만은 예전처럼 있기를 바라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10년을 나그네로 살던 프랑의 말에는 무게감이 있었다.

어쩌면 그건 우리 파티가 다들 자의든 타의든 고향을 떠나 유랑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남겨진 사람은 달라요. 10년은 사람이 바뀌기엔 충분한 시간이죠. 그래서 여쭤보는 거에요.】

프랑이 질문했다. 예전, 겁 많던 아이언 클래스 모험가였을 때랑 똑같은 분위기로 말이다.

【──정말로 그 사람이, 당신이 기억하던대로의 형이라고 확신하시나요?】

조이드는 입술을 달싹였다.

같은 말을 또다시 반복하게 되겠는데, 화를 내는 사람을 설득하는 건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은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었다.

그토록 매서웠던 조이드의 눈초리가 밑으로 쳐졌으니까.

【……썩을. 어쩐지 오늘은 술이 안 받더라니.】

조이드는 뒷골목의 잘려나간 하늘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따라오슈. 거 무슨 사정인지, 얘기나 들어봅시다.】

【적당한 장소가 있습니까?】

【이쪽 길로 쭉 가서 왼쪽으로 1번, 또 오른쪽으로 1번 꺾으면 여관이 하나 나오지. 부인이 죽고 적적해진 노인네가 사람이 그리워서 하는 여관이요. 거기서 얘기합시다.】

내 물음에 조이드는 노기를 가라앉히면서 대답했다. 나는 일행에게 눈짓을 했다. 프랑과 라리루라가 앞장서서 그 여관으로 향했다.

【당신께 믿음을 강요한 만큼, 장소 선정은 저희가 양보하겠습니다. 하지만 먼저 보낸 일행에게 함정인지 아닌지 정찰을 부탁하는 것 정도는 괜찮겠죠?】

【좋을대로 하슈. 척 보기에 댁들은 외로운 타는 노인네로 인질 잡을 양반들은 아닐 듯 하니까.】

【넓은 이해심에 감사드립니다.】

【쓰벌. 넓기는 개뿔이.】

조이드는 다시 골목에 침을 찍 뱉었다.

그러고서 프랑이 사라진 골목을 보면서 말을 우물거렸다.

【……형씨. 뭣 좀 물어봐도 되겠수?】

【예. 물으시죠.】

【우리 형님에 대해서 물어보려는 건, 원한 때문이요?】

【……형님 분께 여죄를 묻지 않아도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조이드를 돌아보았다.

【이 일에 배후가 있고, 제이드 투스타스에게 죄가 없다면 그렇게 되겠죠.】

조이드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여관 방을 독실로 삼은 우리는 조이드에게 사정을 들었다.

베로니카가 룬 스톤으로 소리를 차단했기에 방음을 걱정할 건 없었다. 조이드는 묵묵하게 일하는 것처럼 과거사를 털어놓았다.

하프 드워프였던 전대 상회장의 두 아들.

제이드는 드워프 어머니에게, 조이드는 인간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고 한다.

【나는 상회장 자리에는 관심이 없었수. 소싯적에는 그냥 한량처럼 지냈지.】

어머니는 다르지만 그들 형제의 사이는 돈독했다고 한다.

당대 투스타스 상회장인 제이드는 상인을 꿈꿨다.

작은 나라인 니다벨리르에선 무기도 옷도 수요보다 공급이 많았다.

아무리 드워프 장인들이 걸출한 물건을 내놓아도 유통이 안 되면 내수시장에서 헛돌다가 창고로 들어가버린다.

드워프 장인들의 나라가 수출 강국이 된 귀결에는 그러한 배경이 있었다.

니다벨리르는 상인의 나라이기도 한 것이었다.

【장인들의 일품을 세상에 자랑하려는 형과, 그런 형을 도우려는 동생. 아버지는 그렇게 알고 돌아가셨수다.】

나이를 먹고 다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실제로 그랬었다고 조이드는 회고했다.

【상회의 운영방침 때문에 거하게 싸웠던 거요. 한량 같이 굴던 내 뜻을 따라주는 상인은 없었수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 10년을 방황하다, 나한테도 잘못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돌아왔지.】

사과하려는 마음으로 형을 찾았다고 한다.

예전처럼은 못 되더라도 10년만에 다시 만나는 가족이니까.

【꺼지라더군. 내 도움은 필요 없다면서.】

형님은 10년 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눈빛만은 동생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그렇게 조이드는 같이 마시려고 사 갔던 고급 술만 내려놓고서 돌아왔다는 모양이다.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대장장이 길드에 들어갔는데, 저 아가씨 말마따나 그 사이에 고향은 많이도 바뀌었더군.】

고향에 돌아와서 정착한 그는 새로 사귄 동료들이나 술집의 친구들에게 그간의 일을 물어보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아니, 형님의 상회는 이제 고향에서 안 좋은 소문밖에 못 듣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형님을 믿었어.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상회를 키우느라고 잡음이 나는 거고, 성장통 같은 평지풍파를 전부 견디고 나면 예전의 형처럼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지.】

그리 믿은 이유는 듣지 않아도 됐다.

‘가족이니까.’

나도 지구로 돌아간 뒤에 가족들에게 그런 매정한 취급을 받으면, 언젠가 예전같은 사이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못했겠지.

조이드도 그랬을 것이다.

【그랬는데…… 20년도 전부터 이런 걸 팔았다고?】

그리 말하며 손으로 얼굴을 덮은 조이드의 앞에는, 내가 준 숯 가루를 먹었다가 광분하기 시작한 들쥐가 있었다.

“찌이익!! 찍찍!!”

내 손아귀에 잡혀서 광분하는 들쥐.

설치류는 심장박동이 빠른 생물이었기에 치즈에 섞인 숯 가루의 효과를 직빵으로 받은 것이다.

나는 조이드를 설득하려고 약을 먹였던 그 놈을 치료해서 테이블에 놓아주었다. ─후다닥! 들쥐는 특유의 멍청함으로 넋이 나가 있다가 쥐구멍으로 도망갔다.

그 겁 많은 모습에, 치즈를 먹겠다고 조이드에게 달려들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20년 전이면 아버지에게 상회를 받은 직후잖아.】

숯 가루를 반죽한 치즈를 내려놓고서 조이드는 탄식했다.

여러 번의 실험으로 그는 숯 가루의 부작용을 믿게 되었다.

니다벨리르에서 일을 하면서 자주 봤던 인내심 없는 사람들이 전부 이 염료랑 관계가 있었던 것도 컸다. 어제도 염료값 가지고 항의하던 드워프 장인에게 도끼를 맞을 뻔 했으니까.

【그럼 이게 무슨 얘기요? 우리 형은 그때부터 벌써 천하의 씹새끼가 됐었다는 거요? 나는 피붙이의 만행도 모르고 속 편하게 쏘다니던 거고?】

【20년 전부터 알았다고는 단언할 수 없죠.】

그때는 모르고 있다가 어느 순간 부작용을 눈치챘던 걸지도 모르잖은가.

만약 진짜로 니다벨리르에 가마 상수리나무 숯 가루를 뿌리려는 뒷배가 존재한다면, 그 놈들이 알려줬던 걸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은 부작용을 알고 있습니다. 알고도 팔아치우고 있죠. 최근에 워르 풀을 기르는 곳에서 일어난 화재에도 관련됐을지 모릅니다.】

【……씨발. 그 눈초리를 보고도 제정신일 거라고 생각한 내가 병신이었지.】

치즈를 테이블에 내려친 조이드는 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형씨. 나한테 이 얘기를 해준 이유는 어째서요?】

조이드의 말에서는 자기가 기대받은 만큼 정보를 알려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뜻이 담겨져 있었다.

나도 그가 망연자실해 하던 걸 봤을 때부터 조이드에게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결국 이 사람은 10년을 따로 살았던 형의 범죄를 이제가 되어서야 알게 된 처지니까.

조금 어떤 표현을 쓸지 고르던 내가 말했다.

【저희는 제이드 투스타스의 비리를 밝히고 그 죗값을 갚게 할 겁니다.】

【……그렇겠지. 그렇게 해야 하고 말고.】

─꽈아악. 주먹을 쥐는 조이드.

나는 그의 대답에 담긴 감정을 분석할 마음은 없었다. 그가 우리 뒤통수를 치려는 게 아니라면, 조이드의 마음을 알든 모르든 결과는 바뀌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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