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0화 (270/1,009)

‘이거 끽 하면 진짜로 뒤지겠는데……!!’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엔리르는 지금 지옥에 있는 토르 나와라 상태였다.

신화시대에 나가 뒤졌다는 이세계판 망치의 신 크리스 햄스워스.

그 새끼가 어쩌다가 애지중지하던 장도리를 범죄자 새끼한테 도난당한 모양이다. 좆 같은 도이치 막노동자 새끼. 위험한 물건은 간수 좀 잘 할 것이지.

아니, 자기가 진품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마법으로 흉내냈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폭주하던 때의 내가 오딘의 지혜를 내려받은 것처럼 저 새끼는 망치를 소환한 걸 수도 있다.

정답이 뭐든 딱 하나만큼은 단언할 수 있었다.

남은 건 마나밖에 없는 내게── 남겨진 승산은 오직 하나 뿐이란 걸 말이다.

【──안 하는 거냐? 못 하는 거냐?】

엔리르가 공격을 멈추고 물었다.

그 놈은 시계탑 위에 앉아서 개미를 쳐다보는 잼민이처럼, 구름 아래를 구경하는 신처럼 나를 꼬라보고 있었다.

마치 흥미진진한 기분이 실망감으로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듯한 눈빛!

저 새끼는 내가 예르나를 줘팰 때처럼 폭주 상태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내가 그런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모르겠지만, 뭔가 자기들만 아는 지식으로 아마 저 놈도 가능하겠지~ 하면서 대충 찍어보는 느낌이었다.

【……이게 벌써 변신한 거야, 새꺄.】

─퉷. 나는 마른 침을 뱉었다.

【내 몸에 초록색 마나 안 보이냐? 변신하면 뭘 어쩌려고 그렇게 재촉해대고 지랄이야.】

【뭐긴, 궁금해서지. 뭉뚱그려서 ‘구신의 마나’라고 말해도 파고들면 많은 차이가 있걸랑.】

엔리르는 빈손으로 공중에 손가락을 휘적거렸다.

【분노를 양식으로 삼는 건 구신의 마나 중에서도 오딘 신의 마나 뿐이다. 네가 쌓은 마나는 그거야. 모른다고는 않겠지? 니 영혼에 있는 천공신의 마나는 오딘의 사제나 3류 에인헤리보다 많다고.】

번갯불을 튀기면서 그 새끼는 내게 말했다.

【그러니까 미쳐날뛰어 봐. 누가 알아? 너도 나처럼 할 수 있을지. 그러면 너는 살아날 가망이 생길 거고, 나는 더 재미있는 싸움이 될 거라고.】

……살아날 가망이라.

그 말에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처럼 이죽댔다.

【니가 시키는대로 하면 어떻게 되는데? 너처럼 번쩍번쩍 거리면서 변신이라도 하냐? 뇌가 빡침에 쩔어버리면 약 잘못 먹은 새끼처럼 눈만 훼까닥 돌아버릴 것 같은데.】

【……그렇군. 폭주인가. 그럴 수 있겠어.】

엔리르는 엄지로 턱을 훔치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말이 안 되는 얘기는 아니지. 발동 조건이 순수한 분노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야. 하지만 그렇다면 그년은 어떻게…… 이크.】

말실수를 한 것처럼 엔리르가 입을 가렸다. 그러던 놈은 자기 얘기를 들은 유일한 인물이 빠삭하게 익은 나 뿐이라는 걸 떠올린 듯 피식 웃었다.

【뭐, 됐다. 그래서 할 거냐, 말 거냐? 기다려 줄 테니까 꼭 시험해 보기를 추천한다. 신의 힘을 휘두르는 게 얼마나 신나는데? 너도 써 보면 알 걸?】

자신에게 불리해지는 일인데도 종용하는 듯한 엔리르. 나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안 해, 병신아.】

짧기에 더 단호한 대답. 내 그런 때꾸에 엔리르는 놀란 기색으로 되물었다.

【뭐? 왜 안 하는데? 이대로 가면 너 100% 뒤진다?】

왜는 왜야 개시발 새꺄. 해 봤자 자충수니까 그렇지. 나는 쓴웃음이 나오려는 걸 숨겼다.

폭주 상태에 들어가는 건 쉬웠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아까 전부터 아랫배에서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누르기 버거울 정도였다.

하긴. 우리 프랑의 가족에게서 행복을 앗아간 씹새끼들을 상대로 빡치지 말라는 게 무리한 주문 아닌가.

‘근데 폭주 상태가 됐다고 일이 잘 풀린다는 보장이 없어.’

내가 예르나를 줫발라버렸을 때는 나한테도 마나가 많았다. 망령도시에 충만한 어둠과 음의 마나를 조종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상회에 자연상태의 마나가 충만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뭣보다 내가 폭주해서 저 놈을 털어버려도 일이 다 끝나는 건 아니다.

뜬금없이 이 상회에도 어둠과 음의 마나가 가득했다거나, 아니면 내 수중의 마법을 조합하는 것만으로 저 놈을 좆발라버릴 수 있다고 치자.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만한 소란이 일어난 상황이니까 상회의 담장 밖에 경비병들이 바글거릴지 모르는데, 그들을 상대로도 내가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딱 봐도 사악해 보이는 시꺼먼 새끼가 도시의 상회를 부숴대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경비병들은 막으려고 들 것이었다.

그럼 그 시꺼먼 새끼── 다시 말해서. 나는?

백이면 백 경비병들을 적으로 보고, 망령도시에서 펼쳤던 좆프 교수 해체쑈를 재현하겠지.

프랑이나 다른 동료들이라면 피눈물을 흘리면서 참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선빵을 갈겨대는 생판 남을 상대로 그럴 자신은 없었다.

게임이나 만화영화처럼 내키는대로, 위험할 때마다 폭주를 해서 상황을 벗어나는 건 우책이다.

TV 화면이나 종이에 비추는 장면에야 멋지다고 생각하면 끝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마나 부족과 수습 불가능한 폭주.

그것이 내가 마음 놓고 폭주할 수 없는 이유였다.

【생각보다 별 것 없으니까 그렇지, 븅딱아.】

──그리고, 내가 생각한 ‘승산’이기도 했다.

【……뭐라고?】

【니 망치질 솜씨 좆밥이라고. 무기 좋은 거 들고 지보다 약한 놈 잡는데 한 세월 걸리는 전기쟁이 새꺄.】

엔리르의 무기가 어떻게 만든 거고, 어떤 원리로 사용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강력한 것은 사실이다.

베로니카가 한참 영창해서 발동하는 고위 마법급 출력을 쉴새없이 뿜어내는데, 저게 약한 거라면 세상의 전사와 마법사들은 9할 9푼이 개좆밥이 될 것이었다.

묠니르는 존나 강력했다.

──묠니르는 말이다.

【니 전법만 봐도 안다. 너는 처음부터 그 망치를 어떻게 써 보겠다고 훈련한 거야. 묠니르를 얻기 전이든 후든, 그걸 기준으로 기술을 세운 거지.】

무기가 없는 맨손인 것은 묠니르를 사용하기 위해.

손에 오라를 감은 것은 묠니르의 손잡이를 잡기 위해.

허리의 룬은 묠니르의 번개를 조종하기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싹 다 최종 빌드를 토르 짝퉁 폼로 잡고 키운 듯한 느낌이다.

21세기 지구에서 게임을 할 때, 스킬 트리나 템 세팅을 전부 만렙 기준으로 맞춰서 키우곤 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더욱 그렇게 보였다.

【그런데도 제대로 못 쓰고 있어.】

저만큼 씹사기이고, 저만큼 강력한데도.

제대로 못 쓰고 있다.

묠니르의 형태가 어렴풋한 번갯불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도, 그 내실이 제대로 채워진 듯 보이지 않는 것도 전부 그래서일 것이다.

100%의 힘에서 고작 5~10% 정도밖에 못 꺼내고 있다.

그것은 왜인가.

【──마나가 부족하니까.】

허무하게도, 그것이 사실이다.

내가 폭주하더라도 승리를 확신하지 못했던 이유와 동일한 논지였다.

단순한 팩트다. 이세계의 기상천외한 기술은 전부 마나를 에너지로 삼지 않던가!

엔리르에게는 묠니르를 제대로 강림시켜서 현세에 묶어둘 마나가 없는 것이다.

나보다 많은 마나를 가지고도 말이다.

‘……강함만 놓고 보면 예르나가 더 셌어.’

입밖에는 못 냈지만 그런 근거도 있었다.

예르나는 자기를 추격해 오는 적들을 격퇴할 만반의 채비를 갖췄었다.

그 좆프년은 교수였던 만큼 머리는 좋았다.

나한테 개박살이 나기는 했지만 그건 나 자신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그 년은 망령도시의 빛의 마나를 전부 수중에 넣고, 묠니르처럼 강력한 무기에 허를 찔려서 죽거나 다치는 일이 없도록 분신을 앞세웠다.

예르나의 설계대로라면 1 예르나 분신 = 2~3 엔리르라는 계산식이 나올 것이다. 그 년은 저런 새끼가 여럿 쫒아와도 이길 수 있겠다는 각을 봤을 것이니까.

【그리고 새꺄, 애초에 말이다.】

나는 엔리르에게 이죽거리는 웃음을 띄웠다.

【내가 니 윗사람이었으면, 능력 있는 놈을 약쟁이 상인의 호위로 붙여놨겠냐?】

【……정말 죽고 싶은가 보군. 좋다. 그렇게 해 주지.】

좋아, 어그로 제대로 끌렸고.

나는 오한을 느끼면서도 입꼬리를 비틀었다.

저 놈에게 내 얼굴을 들켰으니 어그로를 끌어야 했다. 저런 놈이 좆 같은 상대를 눈앞에 두고 후퇴할 리가 없고, 나는 저 새끼가 도망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으니까.

【표정 씹창난 걸 보니까 정곡을 찔렸구만. 토르라고 하면 오딘 다음 가는 존나 쎈 신인데, 그 신의 무기를 들고도 나 하나 못 잡는 게 말이 되냐? 세상 좆밥인 티를 내요, 아주.】

【……그게 나한테 당해서 뒤져가는 놈이 할 소리냐?】

【응~ 안 뒤졌으니까 하는 소리야~. 지루하다 심심하다 별 지랄을 다 하더니만 상사한테는 찍 소리도 못 하고 약쟁이놈 호위나 하고 있고, 대체 느그 회사에서 얼마나 병신 취급을 받으면──】

그렇게 도발을 날리던 나는 마나를 끌어올리는 것도 잊고 피식 웃었다.

【──아, 그렇구만. 그래서 자꾸 나더러 니 흉내를 내 보라면서 찡찡댄 거였어.】

그 말에 빡쳐하던 엔리르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너. 상사한테 제대로 좆 발렸지? 그래서 지루한 일을 시켜도 따른 거고, 언젠가 그 놈인지 년인지를 이겨보겠다고 나더러 오딘의 마나를 다뤄보라고 한 거야.】

나는 아무런 표정도 없어진 엔리르를 보면서 검지로 머리를 두들겼다.

【──니 담당 일진이 오딘의 힘을 끌어다 쓰니까. 맞지?】

─콰르르르르르르르릉!!!!!!!!!

내가 그리 도발을 날렸을 때였다.

하늘에서 내려꽂힌 낙뢰가 엔리르와 하늘을 연결하면서 번개의 기둥을 만들었다. 시계탑의 시침과 초침이 이상할 정도로 회전하면서, 엔리르의 몸은 자력에 떠오르는 것처럼 하늘을 날았다.

【……알겠다. 이렇게 하마.】

상회의 정원에 엔리르의 말이 울렸다.

낮은 성량이었는데도 번개 기둥이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큰 소리였다.

【너를 죽다 만 시체로 만들어놓고, 네 여자들을 데려와 네 앞에서 찢어죽이겠다. 그때 가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는지 보겠다.】

【병신. 혓바닥에서 밀렸다고 빡쳤죠?】

나는 코웃음으로 대꾸했지만 등에 흐르는 식은땀은 지금 상황이 존나 위험하다는 것을 쉴새없이 알렸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발은 필요했다.

싸움을 좋아하는 새끼 치고 자기 실력을 폄하당해서 빡치지 않는 놈은 없다.

승부사 기질이 있는 놈에게 좆밥이라고 놀려댄다?

틀림없이 자기 실력을 100% 보여주겠다고 날뛰겠지.

나는 그 100%를 기다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저 새기가 100%의 힘을 꺼내는데 걸리는 충전 시간이.

나는 엔리르 새끼를 상대로 마나량에서 밀린다.

짬밥으로도 저 놈은 오러 사용자고, 나는 그냥 실딱이 전사.

무기에 이르러서는 저울질하는 것 자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도이치 짝눈 여신의 부랄친구에게 실례였다.

‘없다면 끌어 쓰는 수밖에.’

자연의 마나든 힘이든 없는 형편에서 모아서 비벼보는 게 유일한 승산이었다.

그려려면 충전까지 시간이 필요했고, 나는 그 시간을 저기 저 머리의 핏기 많은 스무살 애새끼를 도발하는 걸로 벌었다.

나잇살 처먹고 꼴사납다? 아무렴 어떤가. 고작 7~8살 차이 아니겠는가.

사회인은 나이가 아니라 실력으로 말하는 법이다.

【<타오르는 손길>. <얼어붙는 손길>──】

나는 계속 끌어올렸던 마나를 주문으로 외웠다. 의식해서 주문을 입에 담았다. 실패하면 우리 아내들의 남편이 통구이 되서 뒤지게 생겼다.

번개 기둥의 볼티지는 하염없이 오르는 중이다.

살려놓고 괴롭힌다더니 용광로 같은 열기에 시계탑이 융해될 정도다. 맞으면 뒤진다. 진짜로 뼛조각도 못 건지겠지.

그러니까 실패해서는 안 된다.

인생 최고의 집중을 짜내서 나는 뇌까렸다.

【──<부여(Enchant)>.】

달궈진 미스릴 창날이 더욱 적열했다.

내 마나를 받아들이는 창대의 끝이 얼어붙었다.

회전이다. 결합하려는 마나를 분리시키고 회전시켜서 전개시키는 것이 이 기술의 요령이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마비가 풀리기 시작한 손으로 창에 풍차 회전을 넣었다.

붕─. 붕─. 붕─! 붕─!!

빠르게. 더 빠르게. 회전이 거세지자 내가 창을 돌리는 속도보다 창이 회전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구름 소환>.】

불의 마나와 얼음의 마나가 꽁무니를 쫓았다. 회전하는 창에서 증기가 폭풍처럼 뿜어져나왔다.

이건 첫 시도다. 내 근력으로 <구름 소환>에 부족한 마나 분리력을 채우려는 시도.

창에 회전을 넣어서, 미스릴 창을 마나 원심분리기로 쓰는 도전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건 미친 짓이었다.

당연히 그렇겠지. 폭풍의 원심 분리를 자기 힘으로 재현하는 것 아닌가. 미친 짓이 아닐래야 아닐 수가 없다.

알아서 회전해대는 창에 내 힘을 더하려면 말도 안 되는 요령과 완력이 있어야 했다.

그래도 가능성은 있었다.

베로니카의 중력 마법은 두 마나를 분리했다. 거인은 그 중력 마법을 견뎌냈고, 나는 그 거인이랑 맞다이가 가능했다.

부등호로 놓고 보자. 중력 마법 = 거인의 힘 = 내 힘이다. 나는 창의 움직임을 손으로 쫓으면서 회전을 가했다.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쿠오오오오오오오──!!!

우리는 번개와 폭풍을 부르면서 대치했다. 자연재해로밖에 보이지 않는 스케일의 싸움이다. 예전에 보았던 미스릴 클래스끼리의 싸움처럼.

──그렇게 해서, 때가 왔다.

창의 가속이 피크에 도달했을 때, 나는 폭풍 그 자체를 엎어 메치는 듯한 저항을 느끼면서 창대를 바닥에 내려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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