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2화 (272/1,009)

이건 뭐 흐레마르의 도시전설에 아즈테카 식인종 전설이 추가될지도 모르겠군.

창문도 없는 창고였기에 잠금장치를 부수고 탈출했다.

나는 오감을 집중해서 소란이 일어나는 방향으로 달렸다. 상회장을 아직 족치지 못한 건지 싸움 소리가 바람에 섞여서 들려왔다.

체력 배분을 주의하면서 대쉬 또 대쉬.

다시 쥐로 변신해서 엔리르를 조졌던 곳을 잠깐 들렀던 나는 혀를 찼다.

‘역시 없군.’

룬을 발동해서 찾아봤지만 엔리르의 영혼은 없었다.

내가 이기려고 죽을 동 살 동 힘을 발휘했던 탓에 마법에 갈려나가서 사라졌든가, 예르나 때처럼 뭔가 수작을 부려서 영혼이 금방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뭐, 됐다.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다행히 조금이지만 알게 된 것도 있었으니까.

‘게다가 마나통도 상당히 늘었고.’

얼마나 되는지는 나중에 각 잡고 확인해야겠지만, 대충 감 잡히는 것만으로도 기존의 2배 가까이 늘어난 느김이었다.

지금까지 마나 계승으로 얻은 마나를 다 합쳐도 오늘 얻은 마나량이 더 많을 듯 했다. 하여간 인간 영약 새끼들 같으니.

나는 지붕에 올라서서 싸움 현장에 도착했다.

전투 중에 위치를 이동했는지 다들 상회 벽을 부수고 바깥으로 나와 있었다. 경비병은 없다. 아내들도 무사했다.

나는 전황을 확인하면서 지붕 밑으로 내려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조이드는 머리를 얻어맞았는지 피를 흘리면서 소리쳤다. 그 함성은 마치 액셀을 풀로 땡긴 8기통 오토바이의 배기음을 방불케 했다.

그대로 쏜살같이 내달려서 검을 내려치는 조이드.

상회장은 조이드의 검을 건틀렛으로 받아냈다.

망치는 어디로 갔는지 상회장은 빈손이었는데, 남아 있는 방패로 막지 않은 이유는 베로니카가 뒤쪽에서 영창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저리 꺼져라, 겁쟁이 놈!!!!!】

【크학!!】

상회장은 우렁찬 고함을 내지르면서 조이드를 날려버렸다.

<지금!!>

그때였다. 라리루라가 링링이의 팔을 휘둘렀다. 꼭두각시가 들고 있던 망치에서 마나의 쇠사슬이 뻗어나가서 상회장의 팔을 휘감았다.

【끄으으으으!!!】

쇠사슬이 방패를 피해서 그 팔을 붙들자 베로니카도 주문을 완성시켰다. 보이지 않는 손에 잡아당겨진 것처럼 상회장의 팔이 좌우로 벌려졌다.

투구에서 안광을 뿜으면서 상회장은 그 힘에 저항했다.

【드베르그의 후예가 힘싸움에서 질 쏘냐!!!】

─삐걱삐걱삐걱!!

상회장의 근력에 움직임이 멈췄던 팔이 좁혀들었다.

우리 파티원 셋에 조이드까지 붙어서 고작 5초도 될 락 말 락한 시간밖에 벌지 못했던 것이었는데, 프랑은 그 5초의 시간 벌이가 목적이었던 것처럼 뛰쳐나갔다.

프랑의 주먹이 바위 골렘의 손으로 뒤덮였다. 땅을 밟을 때마다 그 발자국이 그대로 남을 정도였다.

─콰아아아앙!!!!

움직임을 멈춘 상회장의 명치에 프랑의 주먹이 적중했다. 그 파괴력은 심상치 않아서 갑옷을 박살내고 상회장을 뒤로 날려버릴 뻔 했다.

하지만 상회장은 발을 헛디디면서 버텨냈다.

【하찮다!!!】

거울 방패를 움직여서 마나의 쇠사슬을 무효화 시켜버리고, 베로니카의 마법도 그 거울을 휘둘러서 끊어버렸다.

프랑도 연속 공격에 들어갔다.

부우웅─!!!

골렘 생성 마법으로 만든 주먹이 날아오자 상회장은 마법 반사 방패를 들었는데, 그걸 본 프랑은 골렘을 해제해서 그 흙을 상회장에서 쏟아부었다.

프랑의 손망치가 시야가 막힌 상회장의 측면에서 그 놈의 팔을 후려갈겼다.

─뿌드득!!

검은 갑옷을 입은 팔은 망치질에 맞고 순식간에 역관절이 돼 버렸는데, 상회장은 고통을 못 느끼는 것처럼 프랑에게 박치기를 시도했다.

【어디서 우리 아내한테 마빡 키스질이야?】

물론 그때는 기척을 숨긴 내가 상회장 새끼의 투구에다가 빠다질을 갈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뻐어억!! 머리통에 창을 맞은 상회장은 탱탱볼처럼 튕겨서 날아갔다.

【노르, 그 상처는……!!】

프랑은 여기저기 씹창난 나를 보고 놀랐지만, 한가롭게 말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듯 했다. 가면을 썼는데도 입술을 깨무는 프랑의 침통한 얼굴이 눈에 선했다.

지체없이 날아간 투척 나이프가 발이 멈춘 상회장의 갑옷 틈새를 꿰뚫었다. 앓는 소리도 안 내는 게 은근 섬뜩했다.

【……푸우, 후욱, 후욱.】

상회장은 해적 룰렛의 피해자처럼 변해서는 헉헉댔다.

【그만큼 번개가 쏟아졌는데 네가 살아 있다는 건…… 그 철부지는 죽었나 보군.】

【왜? 자식뻘의 친구가 그리워? 뒤지면 볼 수 있을 거다. 니새끼나 그 새끼나 같은 곳에 갈 테니까.】

【니플헤임인가. 추위를 무서워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 했을 거다.】

지옥에 갈 각오는 했다는 건가? 우습지도 않은 얘기였다. 사후세계가 있는 세상에서도 죄를 저지르는 새끼들은 줄지가 않으니 말이다.

【……형님.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가오.】

명치를 누르면서 켁켁대던 조이드가 말했다. 형님이라는 말에 상회장이 그를 노려봤다.

【네놈은 이제 내 동생이 아니라고 했을 텐데.】

【시끄럽소. 어째서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요? 내가 형님의 죄악은 몰랐을지언정, 과거는 잘 알고 있소. 어릴 적의 형님은 전사도 뭣도 아니었잖소.】

나는 그게 그냥 잡담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베로니카가 은밀하게 마나를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엔리르의 번개 때문에 나랑 베로니카의 심념은 연결이 끊어지고 말았지만, 아마도 베로니카가 조이드에게 시간을 벌어달라는 지시를 내린 것일 듯 했다.

【그때의 형님은 장인의 작품에 감탄하고, 그걸 온세상에 자랑하겠다는 꿈을 가진 평범한 드워프 꼬맹이였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에 그 꿈을 이루겠다고 맹세했잖소!】

【……크흐흐. 크하하! 크하하하하!! 꿈이라고? 맹세라고?】

상회장은 쳐맞다 보니 심경에 변화가 생겼는지 그 대화에 응했다.

【그랬지, 한때는 그랬었지. 아버지의 죽음이 독살이라는 걸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걸 알아낸 대가로 아내와 2살 배기 딸을 잃게 되기 전까지는.】

【……독살? 아버지가?】

조이드는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넋이 나갔다. 상회장은 그런 동생을 오물을 보듯이 대했다.

【그날. 엘프에게 쫓겨서 숲속에서 죽어나가던 날. 나는 내 목숨을 구해준 자들에게 세상의 진실을 들었다. 아버지가 목숨을 잃어야 했던 이유도, 내 몸에 흐르는 저주받은 인간의 피에 대한 이야기도.】

─휘리리리릭!!

그리 말하는 상회장의 가슴에 X자가 떠올랐다.

룬 문자다. 자신에게 맹세를 세우는 ᚷ(Gebō)의 룬이었다.

상회장이 각혈했다. 투구의 턱 밑으로 피가 넘쳐흘렀다. 백이면 백, 타뷸라와 엔리르의 조직에게 강요받아서 맹세한 함구령일 것이었다.

그의 눈은 분노를 눌러 참는 자답게 귀기로 번들거렸다.

【……우리는 고대(古代)를 넘어 신대(神代)에까지 회귀하여야만 한다. 피의 순수성을 되찾고 신조차 흉내내지 못하던 기술을 되찾아야만, 일족의 앞길에 미래가 열릴지니!!】

프랑의 진심 펀치에 개박살난 상회장의 갑옷이 부서졌다.

ᚷ(Gebō)의 룬을 띄운 그 가슴은── 파충류처럼 비늘에 덮여 있었다.

【──드베르그의 후예에 영광 있으라!!】

상회장이 투구를 벗어던졌다.

조이드와 닮은 드워프 노인은 프랑의 나이프에 좆창난 자기 눈을 잡아뽑았다. 그러고서 시신경이 데롱거리면서 뽑혀나온 안구를 하늘에 내걸었다.

【피를 맛보는 자들아, 내가 베르세르크에 대해 묻겠──!】

제이드의 토혈을 방불케 하는 영창은 거기서 끊겼다. 내가 발사한 냉동빔이 그 놈의 손에 적중했기 때문이다.

증기의 압력과 냉기에 노출된 안구는 수분이 모자란 눈뭉치처럼 바스라졌다.

【벌써 본 거야, 새꺄.】

중복은 엄금이다. 나는 손가락에서 초연(硝煙) 같은 연기를 뿜으면서 말했다.

【거대화고 2페이즈고 적당히 좀 해라. 나는 아까까지 니 친구랑 놀아주느라 지쳤다고.】

─파스스. 얼음 가루가 된 눈깔이 바닥에 떨어졌다.

천공에 거하는 위대한 광기라는 놈이 얼마나 자비로운지는 몰라도, 저걸 제물로 받아주지는 않을 것이었다. 짝눈에 대한 리스펙트도 정도가 있다.

부모님이 준 눈깔사탕은 소중히 하도록.

【크, 으으윽……!!】

상회장이 얼어붙은 손을 떨었을 때, 베로니카가 마법을 발동했다.

그녀가 입술을 세로로 내리긋자 ᛁ(Isaz)의 만다라가 상회장의 방패에 떠올랐다. 거울처럼 매끈하던 방패는 거무튀튀하게 변했다.

【──어떻게!!】

【마법 반사도 근본은 룬 마법. 그만큼 구조를 보여주면 파훼하지 못할 이유가 없느니라.】

베로니카가 말했다. 마법을 반사하던 방패가 무효화됐다.

나랑 프랑은 무기를 들고 뛰쳐나갔다. 상회장이 방패를 맨 끈을 풀어서 우리에게 내던졌다.

마지막 발악이로군. 나는 회복한 체력을 끌어모아서 방패를 쳐냈다.

─카아아앙!!

고대문명의 유물은 프리스비처럼 뒤로 날아갔다.

프랑이 내가 만든 공백지대를 대쉬했다. 튼튼하던 갑옷은 벗겨졌다. 프랑의 무기는 나이프로 바뀌었다.

육박하는 프랑. 이대로 찔러넣기만 하면 끝날 상황에 상회장의 부러진 팔이 부풀었다.

【──윽!!】

경계하지 못했던 프랑은 후퇴를 고민하는 듯 했는데, 그때 불현듯 검이 날아와서 상회장의 팔에 꽂혔다.

조이드의 검이다.

팔의 근육이 부풀어 올랐기 때문에 벌어진 갑옷의 틈새에 조이드가 검을 던져서 꿰뚫은 것이었다.

그래서 프랑은 멈추지 않았다.

─번뜩!!

프랑의 팔이 빛살처럼 내질러졌다.

투척 나이프는 두꺼운 비늘과 프랑의 힘 사이에서 버티지 못하고 부러졌다.

하지만 그 역할을 완수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쿨럭.】

노쇠한 상회장은 반으로 동강나면서도 자신의 가슴을 관통한 나이프를 쳐다보았다.

그 나이프를 쥔 프랑은 거침없이── 그렇지만 어딘지 모르게 자비를 담아서 칼날을 뽑았다.

─후두둑. 마개가 뽑힌 심장에서 피가 쏟아졌다.

【가족을 잃은 과거가 지금의 당신을 만들었다면…… 당신은 언제 올지 모를 일족의 미래 같은 것보다, 지금의 삶에 더 충실해야 했어요.】

프랑은 부러진 나이프를 놓아버리면서 말했다.

【행복한 미래는── 오늘을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오는 거니까요.】

【……그것도 너의 남편이 알려준 것이냐?】

【아뇨. 제가 그이를 보면서 배운 거에요.】

프랑의 대답에 상회장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나와 프랑의 얼굴을 비교하듯이 보다가 말했다.

【……세상의 온갖 인간족을 적대하는 세력이 있다. 그들은 인간족도, 그 인간족의 피가 흐르는 혼혈들까지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울컥대는 피로 앞섬을 적셨다. 심장을 잡은 건틀릿은 분수를 억누르는 것처럼 피보라를 튀겨댔다.

가슴의 룬 문자가 발설 금지된 지식을 말한 대가로 심장을 쥐어짜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 보물은 전부 가져가도 좋다. 방치해 둔들 멀쩡한 주인을 찾을 것 같지는 않으니.】

그런 전언을 남긴 상회장은 무릎을 꿇었다.

【동족의 아이야, 황야 밖의 엘프를 조심하거라…….】

그는 마치 자기 잘못을 참회하는 것처럼 프랑의 발치에서 머리를 숙이고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마리나, 조피…… 미안했다.】

마지막으로, 그런 말만을 남기고 말이다.

그건 아마도 조이드도 모를 만큼 아주 잠깐 동안밖에 함께하지 못 했던 상회장의 아내와 딸의 이름이었을 것이다.

프랑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의 장비 몇 점을 벗기고서 자신의 후드를 그 얼굴에 덮어주었다.

【죽음으로도 갚을 수 없는 죄는 있지만…… 시체를 욕보이는 걸로 풀리는 건 내 기분 뿐인걸.】

프랑이 내 의문을 느낀 것처럼 말해 주었다.

벌해야 할 잘못을 전부 벌했다면 그걸로 충분했던 걸까. 그 기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던 나는 프랑의 결정에 가타부타 말하지 않기로 했다.

【……물러나자. 경비병들이 몰려오기 전에.】

【……응.】

프랑은 그렇게 말하고 내 품에 안겨들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경비병들이 몰려드는 것을 피하면서 담을 넘어 반파된 상회를 벗어났다.

복수라기에는 허무하고 천벌이라기에는 감정적이었던 그날 밤의 싸움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나는 그저 그게 프랑에게 있어 하나의 마무리가 되었기를 바랄 뿐이었다.

상회를 빠져나온 우리는 조이드의 집으로 향했다.

여관으로 가지 않는 이유?

조금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도시에 터진 사건이 잠잠해지자마자 걸레짝이 된 사람들이 여관으로 돌아온다니?

내가 여관 주인이면 당장 파출소로 뛰어간다. 시발 우리 손님 중에 테러리스트가 있어요!

아무튼 그렇게 원치 않은 범죄자 노릇을 하면서 골목을 전전하는 우리.

【이 굼벵이들아!! 어서 빨리 움직여!!】

【투스타스 상회다!! 번개로 화재까지 번졌어!! 마법사들은 아직이냐!!】

상회를 빠져나오자 거리의 소란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달려가는 경비병들에, 자다 깨서 무슨 일인가 하고 나왔다가 아연실색하는 시민들!

여기에 만취해서 길에서 자던 취객들까지 섞이자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새벽 3시에 쿠르르쾅쾅휘오오오펑펑크롸롸롸롸 거리면서 지랄을 해 대지 않았는가.

자는 중에는 업어가도 모를 사람이라도 폭풍이 불고 번개가 쏟아지면 깨는 게 당연했다. 우리 파티원들이 도시를 뒤집어 놓은 것이었다.

【쓰벌. 길이 막혔수다. 어떡할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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