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3화 (273/1,009)

조이드가 골목을 훔쳐보고 와서 말했다.

그의 말대로 쓸데없이 유능한 우리 이세계 경비병들은 뒷골목에서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목마다 사람을 배치했다. 이 사태를 벌인 범인이 튀지 못하도록 말이다.

‘근데 우리도 순순히 잡혀줄 수는 없는데스.’

여기 경비병들이랑 인간-보리보리쌀 하다가 붙잡히면 구치소에서 콩밥인지 콩빵인지를 쳐먹는 신세가 될 것이니까 말이다.

‘시발. 생각하니까 좆 같네.’

도시를 위협하는 씹새끼들을 처단해줬는데 이런 대우라니.

법치사회니까 어쩔 수 없는 건 알지만 억울하긴 했다.

아서 웨인으로 살 때마다 느끼는 건데, 다크 히어로는 범죄자를 뚜까패는 것보다 일을 저지르고 나서 안 걸리고 튀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뚫어야죠. 최대한 폭력을 피하는 방법을 써서요.】

나는 그리 대답하면서 마나를 끌어올렸다.

‘엔리르를 족치고 얻은 마나는 이때 써야지.’

최대 MP가 2배 정도로 늘어났기에 우리 매직 키드루이드 노르드는 절호조였다.

창쟁이 노르드는 걸레마냥 근육이 쥐어짜여서 뒤질 것 같지만 말이다.

─푸화아아악!

평범한 안개를 뿌려서 뒷골목을 완전히 장악했다. 연막탄 ON이다.

거의 도시 구획 하나를 통째로 뒤덮는 엄청난 안개!

도시의 일부는 내가 뿜은 안개로 완전히 뒤덮였다. 안개를 덮을 면적이 적었다지만 거의 수백 미터는 되는 범위다.

‘내가 저질러 놓고도 좀 감탄스럽군.’

그냥 수증기라지만 이 정도 농도면 무시할 게 못 되었다.

암만 안개가 자주 끼는 해안도시라도 절대 평범하지 않은 현상! 경비병들은 경계하면서 창을 꼬나쥐었다.

【대, 대비해라! 마법이다, 아마도!!】

【뭉쳐서 등을 맞대! 기습을 막후에에에──】

【재, 잭슨! 갑자기 무야호에에에에──】

나는 시야가 봉쇄된 그들에게 수면 가스를 뿌렸다.

빡긴장을 한 경비병들은 심호흡을 하다가 수면 가스를 마셔버렸다.

똑같은 안개 속에서 수면 가스만 구분하라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마나를 느낄 수 있어도 전부 내 마나로 된 안개라서 똑같이 느껴질 것이었다.

‘이 룬 마법도 어쩌다 보니 배운 것 치고는 뽕을 뽑는군.’

─풀썩. 풀썩.

수면 가스를 마시고 기절하는 경비병들!

가끔씩 의지를 불태우면서 견디는 경비병들도 있었지만, 그 사람들은 어쌔신 모드가 된 프랑이 안개를 틈타서 뒷목에 춉을 날리자 눈을 까뒤집고 말았다.

그렇게 키가 작은 드워프 경비병들은 우리에게 길을 내 주면서 야근 중의 개꿀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좀 미안하네.’

저들이 월급 루팡의 대가를 치루지 않게, 나중에 영주한테 얘기를 잘 전해주든가 해야겠다.

잡졸처럼 뻗는 경비병들을 보면서 조이드는 혀를 내둘렀다.

【……몸 쓰는 것만 봐도 달인인 줄은 알았는데, 마법도 그것 못지 않군. 우리 도시 경비병들도 범죄 조직이랑 맞붙으면서 한가닥 하는 녀석들이 많은데.】

골목길의 경비 배치를 무력화하는 안개가 꽤 공포스럽게 보였던 걸까.

의도치 않은 마마무(魔磨霧)의 대활약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안개 낀 밤의 살인마의 재림이다.

나도 이제 어디 가서 진짜로 마법사를 자칭해도 될 실력을 갖추기 시작한 모양이다.

1~2달 전까지는 마법이랍시고 배운 것들이 다 물리 공격에 버프를 거는 기술 뿐이었는데 말이다.

【이쪽이요. 들어들 가쇼.】

조이드의 집은 1층짜리 작은 셋집이었다.

연립주택이 아닌 덕분에 들어가기는 편했다. 안에 들어간 우리는 간신히 숨을 돌렸다.

조이드는 금고에서 포션을 꺼내서 다친 머리를 치료했다.

【나는 대장장이 길드에 가 봐야겠수다. 도시가 떠나가라 시끄러웠으니 아마 오늘밤 중에는 못 돌아오겄지.】

피를 닦아낸 조이드가 말했다.

그건 사실상의 작별 선언이었다. 그와 우리는 접점이 많은 듯 하면서도 적은 사이였다. 이대로 헤어지면 아마 다시는 얼굴을 볼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에게 해 줄 위로의 말을 찾았다.

상회장은 세상에 내놓으라 할 개새끼였지만 조이드의 가족이기도 했다. 자기 친형이 눈앞에서 심장에 칼빵을 맞고 죽었는데 냉정하게 있을 수 있겠는가.

【떠나기 전에 이 말만 해 두겠소이다. ……고맙소.】

그런데 그런 내 생각과는 정반대로 조이드는 우리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굳이 정확하게 말하자면 프랑에게 말이다.

【나도 한량이긴 해도 염치를 아는 몸이오. 못난 형을 두둔할 생각은 없소. 아가씨의 사정은 모르지만, 아마 나 역시 아가씨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몸이겠지.】

진지한 사과인지 그는 드물게 점잔 빼는 말투로 말했다.

【그래도 감사하는 마음은 진심이오. 정말로 고맙소. 우리 형님이 더 이상 세상에 죄를 짓지 않고 떠날 수 있게 해 주어서.】

【……조이드 씨를 원망하지는 않아요. 저야말로 감사하죠. 가족을 직접 벌하는 것도 굉장히 힘든 결정이셨을 텐데.】

그의 기분을 이해하는지 프랑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우리 프랑의 말에 조이드는 코를 훔쳤다.

【형님은 죗값을 갚아야 했고, 나는 형님이 잘못을 멈춰주기를 원했소. 내가 모르는 곳에서 모든 일이 끝나고 결과만 알게 되는 것보다는 이게 내 마음도 편하오.】

─쿵쿵. 조이드는 자기 가슴을 두들겼다.

【나는 이제부터 우리 형님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알아볼 것이오. 도와달라곤 않겠소. 그냥 내가 평생을 들여서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거니까 말이오.】

【……위험할 겁니다. 엔리르 같은 놈이 목숨을 노리고 찾아올 가능성도 있어요.】

염려하는 나의 말에도 그는 어깨만 으쓱였다.

【나도 알고 있소. 하지만 죽은 뒤에도 형님한테 겁쟁이란 소리를 들을 수는 없잖소? 형님이랑 달리 잃을 가족도 없고. ……나는 형님이 가정을 꾸렸단 것도 몰랐소만.】

조이드의 각오는 단단해 보였다. 아마 내가 말려도 듣지 않겠지. 알겠다고 대답만 해 놓고 따르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아마 말로 설득하는 건 헛수고일 것이었다.

남자가 진심으로 세운 목표를 위험하다는 이유로 꺾는 짓은 꼴마초가 할 일도 아니고 말이다.

나는 상회장의 방패─갖고 돌아오는 동안 원래 기능을 되찾았다─를 가리켰다.

【상회장의 장비라도 가져가시겠습니까?】

【됐수다. 적들이 내 꽁무니를 쫓을 단서밖에 더 되겠소? 그게 아니어도 형님 얼굴이 떠올라서 심란하기만 하오. 형씨들이 전부 갖고 가시오.】

하긴 그렇긴 하다.

드러내고 사용했다간 우리가 상회장을 죽이고서 쌔벼갔다며 엔리르의 조직에 광고하는 셈이 되겠지.

쓰기 전에 겉모양을 바꾸든가 남들 없는 곳에서만 쓰던가 해야 할 것인데, 그런 건 제이드 같은 평범한 전사가 혼자서 시도할 일이 못 됐다.

아무튼 공짜로 준다니까 감사하게 받자. 나는 허리춤의 파우치를 두들겼다.

【알겠습니다. 현찰이라도 얼마 드릴 테니 받아주세요.】

내가 그리 말하자 가면을 써도 웃는 게 티가 났는지 조이드 역시 웃음을 지었다.

【흐흐. 양심껏 금고에 넣고 가쇼. 너무 많아도 출처를 설명하기 곤란하기만 할 거요.】

이거 선제시를 당해버렸군. 제일 금액을 정하기 어려운 방식이었지만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나는 형님의 말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개소리였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사람 보는 안목이 없다는 말은 특히 더 부정하겠수다. 형씨들을 만난 건 나한테 행운이었걸랑.】

검과 갑옷까지 닦아서 깔끔해진 그는 문 손잡이를 잡고서 말했다.

【이만 가 보겠수다. 잘 있으쇼. 수상쩍게 사람 좋은 양반들.】

그렇게 햇볕에 탄 금발의 쿼터 드워프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서 우리와 작별을 나누었다.

우리는 길을 떠나는 조이드의 뒷모습을 떠나보냈다.

잠깐 만난 사람과 금방 헤어지는 일.

몇 번씩 겪어서 이제는 적응한 것도, 적응하지 못한 것도 같은 이상한 체험이다.

그의 앞날에 행운과 좋은 일만이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이 방에 덩그러니 남은 금고에 금괴를 한짝 던져넣었다. 재주껏 알아서 쓰십쇼.

금융치료는 언제나 옳다. 마음의 상처에도 도움은 되겠지.

가족을 잃은 상처에는 연고를 바르는 정도밖에 안 될 것도 같았지만, 나는 그리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튼 그렇게 잠깐의 인연을 떠나보낸 뒤.

“데에에……. 눈나 나 쥬거어어…….”

나는 자리에 힘없이 드러눕고 말았다.

마초이즘에 잠식된 느낌으로 쿨하게 이별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긴장이 풀리자 드디어 뒤지게 무리한 만큼 피로감이 몰려왔던 것이다.

바닥에 뻗으려는 나를 라리루라가 부축했다.

당연히 우리 후배님의 옷에는 진물이나 포션의 자취가 묻었는데, 그녀는 그런 건 알 바 아니라는 듯이 나를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선배, 많이 아파요?”

“막 그렇게 많이는 아니고…… 조금 삭신이 쑤신다. 느그 선배 지금 존나 미디엄 레어임.”

“……선배, 농담 빼고 몸 상태가 진짜 말이 아니신데요? 설마 그 요란한 콰광콰광 번개에 죄다 맞으신 건 아니죠?”

“전부라니. 해 봤자 2, 3발 맞았나? 그거 다 맞았으면 니들 내가 들어갈 관부터 짜야 됐을 거다.”

“좆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얼른 누워. 보니까 어디서 주운 싸구려 포션으로 땜빵치료만 후딱 하고 왔구만.”

─펄럭. 로브를 벗은 다나는 그걸 침대에 깔고서 눈을 부라렸다.

“엘릭서 갖고 온 것도 다 썼잖아. 얼른 처치 안 하면 그거 평생 흉 진다?”

“흉터 생겨도 치료받으면 되지 뭐…….”

기운 빠지게 대답했지만 나는 시키는대로 누웠다. 뭐라더라. 아드레날린? 모르핀? 같은 게 분비되던 게 끊긴 것처럼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다나가 내 옆에 앉고, 베로니카도 앉고, 내친 김에 프랑도 나한테 무릎베개를 해 줬다. 나는 아내들한테 둘러싸여서 좀 거북해졌다.

“……프랑. 내 신경 안 써줘도 돼.”

“싫어. 신경 쓸 거야.”

프랑은 눈을 반개하면서 내 뺨을 찔렀다.

“내 생각 같은 건 하지 말구, 그냥 얌전히나 있어. 노르가 나 때문에 이렇게 다쳐서 괜히 더 심란하기만 하니까.”

“그건 아냐, 프랑. 네 일인데 내가 어떻게 남일처럼 굴어. 내가 다친 건 전부 내가 못나서 그런 거지.”

내가 정색을 빨고 말하자 다나가 치료 마법을 쓰면서 혀를 찼다.

“잘 아네, 병신 새끼. 그렇게 잘 아는 새끼가 앞뒤로 노릇노릇하게 익어서 와? 혼자 못 당할 것 같으면 튀어서 우리랑 합류하든가 했어야지.”

“아니 시밤바. 이 나쁜 여편네야. 눈나가 그 미친 새끼 싸우는 걸 못 봐서 그렇다니까? 막 손에서 오러 뿜고 번개 뿜고 묠니르 휘두르고 장난 아니었어.”

“……묠니르?”

베로니카는 익숙한 듯한 단어에 반응했다가, 대화의 흐름을 끊지 않으려는 듯 말했다.

“나의 그대여. 그대가 이해하거라. 다나는 천둥 소리가 울린지 3초만에 그대를 도와야 한다면서 벽을 부수고 나가려 했느니라. 그러다가 그 자가 던진 망치에 머리가 깨질 뻔 했지.”

“……눈나?”

“……아가리 해. 졸지에 우리 셋 다 자식내미도 없이 과부될까봐 쫄았던 거 뿐이니까.”

다나는 변명하면서 내 뺨을 잡아당겼다. 얼굴이 빨갛구만.

근데 왜 일케 우리 아내들은 남편놈 뺨따구를 자꾸 땡기고 찌르고 그러실까.

“참고로 그 망치는 저랑 링링이 3.5호가 잡았답니다!”

“쓰벌, 여기 우리 아내님 생명의 은인이 계셨네. 프리실라 님 땡큐베리머치합니다. 충성충성충성.”

“후흥. 좀 더 감사해도 된다구요~♡?”

이제는 본명으로 부르지 말라고도 안 하는군. 나는 치료를 받을수록 어째 몸이 무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프랑의 허벅지를 만끽했다.

그러자 라리루라도 심심한 것처럼 내 몸 옆에 붙었다.

침대 끝자락, 내 발치에 혼자 떨어져서 않은 것이었다.

“라리루라야. 포지션 선정이 이상하지 않냐?”

“네? 4인 부부 파티에 눈치없이 꼽사리 껴 있는 저한테 딱 맞는 거리감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와 얘 존나 사람 쓰레기 만드는 실력이 전문가 수준이네.”

그냥 다 내 잘못이다. 내가 백기를 흔들자 우리 파티원들을 잠깐 깔깔대면서 웃었다. 이제야 좀 싸움이 끝났다는 느낌이 드는군 그래.

그렇게 즐겁다는 것처럼 웃던 베로니카는 전기에 튀겨진 내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헌데 그대여. 방금 전에 묠니르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 그거 설명하면 또 존나 길어길 각인데. 내 추측이 절반 이상이고.”

말하다 보면 초반부는 내 무용담 자랑처럼 될 것 같다.

우리 아내들 이해심이 넓은 건 천하가 아는 사실이지만, 남자들이 뻗대면서 말해주는 무용담만큼 여자들이 질색하는 게 없다지 않은가!

“존나 언제는 안 그랬냐? 한 귀로 흘려줄 테니까 말이나 해 봐, 남편 놈아.”

“흑흑. 힘들었다. 오늘 맞짱은.”

“지랄 말고. 어쩌다가 평소보다 곱절은 곱창난 건데?”

“이 눈나 라임 오지네. 남편놈 아픈 걸로 개그나 치고, 니 눈에 마구니가 가득하구나.”

“느금마 니금마.”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라고 아시나요?”

“고소해 보든가. 존나 남편놈한테 위자료 내게 할 거니까.”

에고. 우리 아내님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틱틱대실까.

내 피부 익은 껍데기를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뜯으면서 치료하는 주제에, 입이랑 행동이랑 하나도 안 맞네. 야, 우냐?

“어── 그니까 그 뭐시냐.”

미안한 마음이 든 나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불거리면서 설명했다.

“신이 약골이었어.”

“뭐 임마?”

나는 엔리르와 벌였던 싸움의 흐름을 설명했다.

아내들한테 새삼 무용담을 자랑하는 건 취향이 아니었기에 이야기의 본론은 그 놈이 흥분해서 지껄여댔던 내용을 얘기 쪽이었다.

“……말문이 막히는 내용이로군. 나의 그대여. 용케도 그런 적을 보고서도 넋이 나가지 않고 잘 싸워주었다.”

그렇게 존나 긴 TMI가 끝나자 베로니카는 자신의 뿔을 긁적였다. 우리 시종님께서 심란하실 때의 버릇이다.

“솔직히 싸울 땐 그딴 거 모르겠고 걍 빨리 족쳐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신기하긴 하네.”

나는 그리 말하면서 엔리르의 변신을 떠올렸다.

‘뭐랬더라? 어쩌구 저쩌구 토르?’

그런 소리를 하면서 갑자기 혼자 초 사이어인이 되서는 100만 볼트를 쏴대지 않았던가.

지구용사도 아닐 텐데 감히 변신 흉내를 내다니! 괴수처럼 거대화를 했으면 내가 인정이라도 했다. 크기는 좀 작았어도 타뷸라는 그쪽 계열이었는데.

“<인신(人神Humanum Dei)>이라는 건 무슨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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