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6화 (276/1,009)

내가 생전에 프랑의 부모님들을 찾아뵀다면 십중팔구 얘기 중간에 쫓겨났다가, 다음에 방문했을 때는 찻잔에 차 대신 연금용액이 들어가 있을 법한 회고였다.

【그래서 말이에요? 고향을 나가서 보낸 7년을 다 합한 것보다, 노르랑 같이 있던 반년이 훨씬 놀랍고 바빴지만…… 행복했던 적이 더 많았어요.】

─촤악.

다시 술로 묘비를 적셔드린 프랑은 자기도 새 잔에 1잔을 따라서 마셨다.

긴 얘기 때문에 목이 마르기도 했겠지만, 그것보다는 딸아이가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기도 전에 돌아가셨던 두 분에게 보여드려는 기분이 크겠지.

【물론 웃는 날은 행복한 날보다 더 많았구요. 노르 탓에 슬펐던 날은 하루도 없었어요. 사실, 눈물이 찔끔 났던 적은 종종 있었지만요.】

1잔 만에 헤롱거리고도 남을 독주를 깔끔하게 비우고서도 프랑의 발음은 또렷했다.

말을 조금 정정하자. 또렷했었다.

【……사실, 지금도 엄마아빠 얼굴이 보고 싶어요.】

프랑은 취기는 버텼지만 눈물은 참지 못했다.

【원망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물배만 채우고 여관 방에서 침대의 퀴퀴한 냄새를 맡으면서 잠들었을 때는 두 분이 그렇게 미웠었는데, 지금은 꿈에서라도 좋으니까 엄마아빠가 나한테 힘냈다고, 고생했다고 말해줬으면 해요.】

프랑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아무렇게나 뺨에 흘렸다.

원래 그녀는 눈물이 많았다. 처음 만났던 날에도, 그 다음 만났던 날에도 자기 몫을 해내면서도 줄곧 눈물 고인 눈으로 훌쩍댔었다. 눈물이 적어진 것은 나를 만난 다음부터였다.

【아빠 고향 말도 이렇게 잘 하게 됐는데, 엄마보다 재봉 일도 잘할 자신 있는데, 말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까지 데려왔는데── 칭찬도 꾸지람도 없다니 진짜 최악이에요. 세상에 이런 상견례가 어딨어요?

행복한 가정을 꾸리라니 진짜 무책임해. 딸한테서 제일로 소중했던 가족을 데려간 사람들이면서. 안 좋은 염료나 사다 쓰면서 병 걸리는 줄도 모르고, 자기 건강 간수도 못 하고.】

프랑의 말이 드문드문 끊겼다. 묘비에 뿌린 술방울은 꽃다발에 방울져서 떨어졌다.

【저는요, 세상에서 두 분이 제일 미워요. 우리 노르가 맘에 안 든다고 해 봐. 나 진짜 화낼 거야. 엄마아빠는 우리 그이 욕할 자격도 없어요. 나한테는 7년만에 되찾은 행복한 가족이라구요. 남들한테 자랑할 수 있는 멋진 남편이란 말이에요.】

프랑답지 않은 말은 그래서 더 본심 같았다. 나는 프랑의 어깨를 감쌌다. 프랑은 평소처럼 내 품에 안기는 대신 눈물을 닦아냈다.

【잘 모르는 것도 어설픈 것도 많지만, 이 사람이랑 함께 있으면 언디서든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두 분도 이제 걱정 마세요.】

눈물을 닦아낸 프랑은 빨갛게 부은 눈으로 웃었다.

【엄마아빠네 딸은, 지금 무지무지 행복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프랑의 기분은 정리된 것 같았다.

나를 보면서 눈짓으로 뭔가 할 말 있냐는 듯 묻길래, 나는 프랑의 부모님들께 술을 뿌려드리고 절을 2번 했다.

【많은 말은 삼가겠습니다. 남을 상대할 때마다 기름칠한 세치 혀를 써 온 몸이라, 두 분께 그러는 건 예의가 아닐 듯 합니다.】

대화가 통하는 상대라면 어떤 존재와도 얘기할 수 있는 나였지만, 100번의 말보다 1번의 실천이 더 가치는 법 아니겠는가.

말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미사여구는 죄다 떼내어 버렸다.

나는 진부하리만치 평범한 말과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사윗감으로서── 내가 사랑하는 아내의 부모님들께 인사를 올렸다.

【제가 반드시, 두 분 몫까지 프란체스카를 행복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금지옥엽 같은 딸내미를 훔쳐간 도둑놈은 그 딸의 행복한 미소로 잘못을 청산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었다.

나와 프랑은 남은 술을 나눠 마셔서 비우고 묘지가 있는 언덕에서 내려왔다.

아침 해가 눈부시게 밝은, 어느 초겨울의 일이었다.

프랑의 고향에서 나온 우리는 흐레마르까지 돌아갔다.

까놓고 말해서 마차에서 흔들리기만 한 1주일이었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예 이동 자체가 목적인 여행도 꽤나 즐길 만 했다.

밤이 저물어서 야영 준비를 하면 라리루라가 로마니아에서 펼칠 예정이라는 공연을 미리 선보였다. 자연인인 다나와 엘프 반 드워프 반 같은 프랑이 숲에서 채취 경쟁을 한 날에는 식탁이 이상할 만큼 풍족해지기도 했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느긋하게 돌아다닌 동안에도 흐레마르에서는 혼란이 완전히 진압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국내외로 활동하던 투스타스 상회는 참마를 바른 드래곤이 몸부림치다 간 것처럼 씹창이 난 것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가 내 그림자 분신의 첫 피로연이었다.

오랜만에 외우는 주문을 중얼거리면서 마초이즘 어쌔신은 영주 저택의 천장을 달렸다.

지붕과 천장 사이! 고양이도 들락날락하기 힘들 법한 좁은 틈새도 카부토마루 모드의 나에게는 넓은 공간이었다.

‘드루이드 특) 변신함.’

혹시 블랙 맘바라고 아시는 바 있는 헤즈는 있으실까? 새끼 손가락보다 얇은 쬐끄만 독사다. 지금 나는 딱 그 생물로 변신한 상태다.

내가 변신하면 이상하게 독이 없어지지만 말이다.

좆 같은 혈통빨 DNA 월드 같으니. 수의대 중퇴생의 지식이 싸그리 싹싹 무용지물이다.

【아직도 이유를 찾지 못했나!!】

블랙 드래곤(뱀)이 된 나는 일주일 동안 수련한 스네이크 댄스를 선보이면서 이동하고 있었는데, 지붕 아래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어휴 시발, 목청 큰 것 봐. 이게 다 남의 집의 다락방에 세 들고 사는 사이코 또라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증거다.

니다벨리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민의식을 좀 더 기를 필요가 있다. 나는 천장에 대고 귀를 기울였다.

참고로 보통 뱀들은 귀가 장식이다. 청각이 없다는 소리다.

하지만 내가 어디 보통 뱀인가?

베토벤도 귀가 멀고 나서부터는 자신의 천재성에 의존해야 했거늘, 나는 청각세포가 퇴화했어도 아직 쏘머즈였다. 변신 마법이 완벽하지 않은 게 이럴 때는 도움이 되는 모양.

【시민들 중에 그날밤의 사건을 모르는 놈이 없어! 그만한 사건이 터졌는데 아직도 증거나 경위도 파악이 안 됐다는 게 말이나 되는 핑계인가!!】

【죄, 죄송합니다!!】

【죄송한 줄 알면 당장 튀어가서 조사해!!】

─메다닥! 쿵!

나는 천장에서 꼬리로 바닥을 치면서 영주의 호통 소리를 들었다. 들었던 이야기대로였다.

‘상회장이 증거 인멸을 했다니까.’

책장 뒤에 숨겨놓은 폭약 비슷한 연금용액에 충격을 줘서 불을 질렀다고 한다. 소리도 없이 삽시간에 불이 번져서 전투 장소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상회의 다른 간부 놈들은 사정을 몰랐나 보군.’

그들을 심문해도 얘기가 안 나왔으니 저러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상회장이 탈출구와 장부 창고를 같은 곳에 둔 이유는 아마 그것이었을 것이다.

자기를 파멸시킬 우려가 있는 공범은 절대 늘리지 않으며 유사 시에는 불을 질러서 쫓아올 길을 막고 증거를 인멸하기.

좋은 계획이다. 실패했지만.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나는 그들의 대화를 엿 들으면서 정보를 수집하고서 천장에 난 작은 구멍에 뱀 머리를 박았다.

분신 준비하시고, 쏘세요!

【……음?!】

흐레마르를 관리하는 영주는 깜짝 놀라면서 일어섰다. 자기 집무실에 허연 나즈굴이 나타나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슈와아아아악!

내 마나를 듬뿍 머금고 생겨난 안개 그림자는 유령처럼 방에 떠올랐다. 나는 에코 깔린 목소리로 준비해 온 멘트를 읊었다.

【안녕하신가. 이렇게 뵙는 건 처음이로군, 영주.】

【──반헤임!! 당장 이리 오도록!!】

드워프족 영주는 생각이 짧은 건지 용기가 있는 건지 패기 있게 부하를 불렀다.

근데 당연히 우리도 그 정도는 대비는 했지.

【소용 없소. 이미 결계를 쳐 놓았음이니.】

나는 아까 챙겨온 온 룬 스톤을 천장에 설치했다.

베로니카의 소음 차단 마법이다. 층간소음을 0로 만드는 기적의 아이템! 홈 쇼핑에 올리면 돈이 복사가 되겠군.

연락 방법은 무전기 대신 심념을 연결하는 ᚴ(Kaunan)의 룬을 썼다.

거리가 멀어서 대화는 힘들다. 그래도 내가 연결을 끊으면 결계를 설치해 달라는 상의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룬 마법은 준비가 필요한 대신에 사정거리의 장점이 컸다. 예전에 헤이스벤트에서 프랑한테 룬 가면을 빌려줬을 때도 무지 멀리까지 효과가 닿았지 않은가.

그리고 그때와는 달리 오늘은 경비병들이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걱정도 없었다.

【……어디서 온 첩자더냐. 나를 죽여도 여왕 폐하의 뜻은 반드시 흐레마르의 그림자를 걷어내고야 말 것이다!】

【지레짐작 마시오. 나는 그대를 도우러 온 몸이오.】

【도우러 왔다고?】

우리 영주 아재 표정 관리 안 되는 것 보게. 존나 노숙자 할배가 엄마 친구라고 주장하는 걸 들은 잼민이도 저것보다는 진짠가? 하는 표정을 짓겠네.

【지난 날 투스타스 상회에서 벌어진 일대 사건에 대해서는 입 아프게 설명하지 않겠소. 장부가 소각되어서 곤란하겠지?】

【발표하지 않은 내용이다. 네놈은 어떻게 알아냈지?】

【사소한 문제로군. 그대의 영지 체계의 부실함은 우리가 지적할 일이 아니지. 허나 이번에는 그 실수가 행운이었겠군.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그들로부터 빼돌린 장부를 북문 외곽 벽에 묻어놓았소.】

【뭐라고?!】

장부는 어젯밤에 몰래 나가서 묻었다. 주역은 헤이스벤트에서도 경비병들의 검문을 빠져나간 실적이 있는 우리 말딸 시종님이다.

【당초에는 슬럼가에 묻을까 했으나 꼴이 말이 아니더군. 훔쳐보는 자가 하도 많아서 장소를 바꿨소. 슬럼가의 관리에 고생하는 듯 하오.】

【네놈, 지금 여왕 폐하로부터 하사받은 영지를 우롱하는 것이냐?】

【흥. 대대로 쌓인 적폐를 그대 홀로 몰아내는 것이 어디 용이한 일일까. 그대가 취임하기 전부터 도시를 망치는데 일조하던 관료들 덕에, 흐레마르는 20년 넘게 고국에 맹독을 유출시키는 악의의 산란장이 되었소.】

【……맹독이라고?】

멘트가, 멘트가 곤란하다. 씨발 나도 쪽팔린 거 아니까 인간적으로 되물어 보지는 맙시다.

오글거리는 말투라는 건 안다. 그래도 어조나 말투로 추적당하지 않으려면 일부러라도 이렇게 말해야지 어떡해.

존나 누가 이딴 말투를 듣고 데샤아앗 거리는 키타이 창쟁이를 생각해 내겠는가. 퍼펙트 클로킹이다.

【가마 상수리 나무의 염료 말이오. 투스타스 상회가 로마니아의 특무부대의 손에 파괴된 것은 그것 때문이외다.】

가스라이팅 ON.

나는 구라를 섞어가며 영주에게 진실을 전했다.

로마니아의 어느 씹팔럼이 권력을 등에 지고 니다벨리르의 국력을 깎는 이세계 동북공정을 시도했다고 말이다.

상회장 새끼의 뜻이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가마 상수리 나무의 숯가루는 분노를 일으키는 약물로 평균 장인의 질을 낮추고 국민성을 조져놓았다.

신삥이 영주인 이 양반 잘못은 아니겠지만, 그 숯 염료는 프랑의 삶이 크게 비틀린 원인이다. 반드시 제재해야 할 안건이었다.

‘그니까 아재요. 싸게싸게 이 얘기를 여왕님 어전에 갖다 바치십셔.’

그래야지 로마니아의 행동에 제약이 걸릴 것 아닌가.

존나 니다벨리르 여왕도 타국에게 선빵을 쳐맞고 가만 있을 리는 없겠지. 로마니아가 외교적으로 압박을 받으면 우리의 운신에도 도움이 될 것이었다.

‘로마니아가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으니까 전쟁까지 가지는 못할 거고.’

찌라시는 언제나 위대하다. 남자 반 여자 반인 수의대에서 2년 간 배운 카더라 뉴스에 영주는 혼란스러워 했다.

게다가 나는 참된 진실의 전파자였다.

그렇지 않은가. 로마니아 출신으로 보이는 <편찬대대>가 니다벨리르에 빅엿을 먹여온 건 사실이니까. 받아라, 이간질 빔!

【……증거를 보고 생각하겠다.】

내가 팩트를 전하자 흐레마르 영주는 거의 5할 정도 넘어온 분위기로 그리 말했다.

증거라고 해 봤자 내가 전한 말을 뒷받침하는 연구 기록과 장부다. 당연히 의심하겠지. 적어도 숯 염료는 나라에서 판매 금지 처분을 하겠지.

그거면 됐다. 나는 분신의 몸을 창문으로 이동시켰다.

【내 얘기는 이걸로 끝났소. 취임한지 얼마 안 된 이때에 보고하는 게 좋을 것이오. 지금이라면 ‘유능한 영주로서 빠른 시일에 영지의 부패를 발견했다’고 변명할 수 있으니.】

흐레마르 영주는 이 안건을 덮을 수 없다. 왜냐고? 취임한 기간이 길어질 수록 자기 어깨에 책임이 얹히니까.

킹갓제너럴 이순신 장군님이라면 몰라도, 자기 권력과 목숨을 저울에 달고도 대쪽 같기는 어려운 법이었다.

그렇다면 역으로 빨리 보고하지 못하면 입지가 위태로워지게 만들어 주면 될 일!

‘몰랐으면 무능한 놈으로 처벌, 알고도 방치했으면 국가 반역죄 직행이지.’

사태의 크기를 생각하면 일이 어떻게 굴러가든 일가실각 확정이다.

차라리 취임해서 영지 기록을 뒤져보다가 위화감을 발견한 유능한 영주로 자신을 포장하는 게 낫다. 그거라면 여왕한테 처벌은 커녕 치하를 받을지도 모르지.

우리가 고발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허겁지겁 일을 처리하겠지.

【자, 잠깐! 기다리게!!】

항구도시 영주로 꽂힌 만큼 머리는 굴러가는 걸까. 사태가 이해된 영주는 나를 잡으려 했다.

근데 미안해서 어쩌나. 그거 분신이라서. 나즈굴은 삽시간에 나/즈/굴로 변해서 흩어져버렸고, 영주는 여우에게 홀린 듯이 정신줄을 놔 버렸다. 하티하티 하티호.

【……반헤임!! 반헤임은 있나!!】

내가 뱀의 몸으로 어렵사리 룬 스톤을 주머니에 담고 있자 정신줄을 단디 잡은 영주가 경비대장을 불렀다.

그는 그에게 장부를 회수 시키려다가, 아예 본인의 호위를 임명하고 직접 장부를 조사하러 갔다. 나이도 있는 분이 정력적이셔.

룬 스톤 주머니를 입에 끼운 나는 본체의 완력이 반영된 뱀 몸으로 다락방을 기어내려갔다.

‘애1미 시발, 바닥딸 치면서 돌아댕기는 기분이네.’

닌자 닌자 거렸지만 설마 닌자 딸을 하는 처지가 될 줄이야. 영주 저택 사람들 발작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뱀딸이라니. 이건 존나 미친 짓이 맞다.

나는 궁시렁대며 욕을 하다가 파티원들과 합류했다.

다행히 그러고서부터는 별 일 없었다. 느긋하게 니다벨리르와 염료 업계가 컬쳐 쇼크를 받아들이는 4단계를 밟는 걸 구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에도 필요한 일은 착착 진행되었다.

멀쩡한 염료로 제작이 끝난 거인 가죽 갑옷을 받고.

조이드가 대장장이 길드에서 독립했다는 얘기를 듣고.

헬라 씨에게도 작별인사와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노획한 장비를 팔아치우고 온 우르실라와 파이를 나눴다.

──그렇게 해서 육지에서 10일, 바다에서 10일의 시간이 지났을 때.

우리는 골데네 시프를 타고 브리타니아의 선착장에 내려설 수 있었다.

【우르실라 씨. 태워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배에서 내린 나는 고개를 숙였다.

쿠드세스에서 여기까지 우리를 보내준 그녀에게 감사를 전한 것이었다. 내 말에 우르실라는 담배에 불을 붙이다 말고 손사레를 쳤다.

【감사는 무슨. 뱃사람은 돌아갈 때까지가 일이야. 우리만 집에 돌아가고 너희는 알아서 가셔, 하고 작별할 수야 있나. 잠깐이나마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던 사이인데.】

【흐흐. 역시 바닷사람 분들이 의리가 있으십니다.】

진심을 좀 섞어서 립 서비스 발사. 우르실라는 알아들었단 것처럼 손을 털었다.

【그야 의리를 챙기지. 보수도 받았는데. 네 아내가 준 선물은 고맙게 쓸게.】

【그래 주십쇼. 어디 가서 자랑하셔도 됩니다.】

【당연한 소리. 아무리 시시한 모험이었대도 손에 넣은 보물이 있다면 무용담으로 삼을 수 있는 거라고.】

그리 말하는 우르실라의 손목에는 낯선 팔찌가 있었다.

잔가지를 화관(花冠)처럼 엮어서 만든 매직 아이템! 베로니카가 여관에서 죽치고 있는 동안 타오르는 가지를 가공해서 만들었다는 물건이다.

마나 소비 없이 작은 불을 킬 수가 있고, 마나를 쓰면 물 같은 게 없어도 불을 끌 수도 있다나 뭐라나.

화재가 나면 큰일나는 해상전이나 뱃일 중에 쓸모가 많을 것이었다.

‘베로니카가 지팡이 만들고 남은 걸로 만든 거지만.’

그래도 유용한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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