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서 달리고 있는 말은 평범했다.
말의 등자에는 에메랄드 머리색의 여성이 타고 있었다. 선량해 보이는 얼굴은 중년에 접어드는 듯 눈가에 주름이 파여 있었는데, 그래도 확연한 미인상이었다.
솔직히 거기까지라면 그냥 자주 보일 법한 여행객이다. 멈추면 죽는다는 것처럼 달리고 있는 거랑, 그 팔에서 피를 흘려대고 있다는 걸 빼면 말이다.
문제는 그 뒤를 쫓아가는 생물이었다.
반인반수(半人半獸), 인마일체(人馬一體).
그런 표현이 딱 들어맞는 소름 끼치는 존재였다.
켄타우로스 같은 멋지구리한 놈으로는 안 보였다. 우락부락한 남자의 상반신을 말의 등에 내다꽂은 듯한 와꾸다. 그 두 팔로는 이상하게 커다란 낫을 들고 있었다.
말이랑 인간의 시체를 기워서 만든 듯한 생물은 시커멓게 죽은 근섬유를 빨간 가죽으로 덮었다. 근섬유에 늘러붙은 살가죽은 크기가 모자라서 깃발처럼 뒤로 날렸다.
시발, 저게 착하고 선량한 생물이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씨부랄!! 저건 또 뭡니까?!”
─짜악! 빅투아르도 후방을 확인했는지 급하게 말에게 채찍질을 가했다.
나는 마차의 천장을 잡고 그 위로 냅다 올라갔다.
“……큭?!”
도망치던 여성은 시야가 좁아졌는지 거의 100미터 정도의 거리만 남기고서 우리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서 방향을 틀었다. 아마 우리가 휘말리지 않게 신경을 쓴 것처럼 보였는데, 그 사소한 선택에서 여성의 성격이 대충 손에 잡히는 듯 했다.
하지만 당연히, 죽어라 달리다가 방향 조절을 하면 속도가 늦춰지고 만다.
말과 그녀 사이의 거리가 더욱 줄어들었다.
‘우리도 여기서 도망쳐봤자 금방 따라잡힐 것 같군.’
마차는 속도를 높이면서 달렸지만 짐 마차를 끄는 말이 생사를 놓고 달리는 저들보다 빠르기는 불가능했다. 아까부터 저들과 우리 사이의 거리도 계속 줄어들기만 했다.
저 몬스터가 뭐하는 새끼든, 도망치는 여성이 죽은 다음은 우리를 노릴 것이 불 보듯 뻔한 일!
그렇다면 여기서 멍청하게 보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나무로 된 팔찌를 손에 쥐고 잡아당겼다.
팔찌는 내가 마나를 흘리자 미스릴 창으로 변신했다.
나는 고르갈리아에 오기 전에 남아 있던 거대 골렘의 코어를 투자해서 창에다가 ᛒ(Berkanan)의 룬을 새겨놓았다. 주로 휴대성을 위해서였다.
“피하십쇼!! 저희도 응전하겠습니다!!”
─까드득!!
여성에게 외친 나는 검은 반인반수를 향해 창을 내던졌다.
【게르튀르】의 초식을 펼쳐서 던진 창은 쏜살같이 반인반수에게로 도달했다.
그때였다. 기수의 인간 같은 부분의 목이 올빼미처럼 180도 회전해서는 나를 겨냥했다.
“Ras! Turtsu ha──!!”
괴성을 내지른 반인반마가 급정지를 하면서 후진했다.
─쑤사사사사삿!!
아니, 저걸 후진이라고 해도 될까? 말의 네 다리는 전력질주 중에 관성을 무시하는 것처럼 ‘달리던 속도 그대로’ 방향만 후방으로 물러났던 것이다.
마차와의 상대적 속도 차이 때문에 내 눈에는 거의 적이 2배속으로 뒤로 점프한 듯이 보였다.
당연히 내 창은 빗나가서 땅에 깊숙이 꽂혔고 말이다.
“저저 시발럼이! 모기도 아니고!”
초원의 풀을 가르면서 뒤로 물러났던 기마는 그대로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아까 전부터 저 씹새의 움직임은 마치 빔 프로젝트로 투영한 영상처럼 이상한 느낌이었는데, 이런 놈들이 어디 드문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냉정하게 사고를 할 수 있었다.
“빅투아르! 마차 부수겠습니다!”
“제기랄 씨부랄!! 나도 뒤지긴 싫습니다!! 해 버리십쇼!!”
빅투아르는 위험지대를 오가는 행상인답게 사리분별이 잘 되었다. 나는 냉동빔을 연발해서 반인반마의 접근을 저지하며 외쳤다.
“프랑!!”
─콰앙!! 망치질 평타에 행상인의 마차가 박살나서 초원에 쏟아졌다.
프랑이 휘두른 망치는 투스타스 상회장인 남긴 매직 아이템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망치에서 핵심 파츠인 나무 손잡이를 빼고 철 부분을 새로 붙인 것이다. 미스릴로 만들어진 마법 반사 방패랑은 다르게 망치의 금속 파츠는 마법이 걸려 있지 않았었다.
그래도 귀한 금속인 건 맞았기에 손잡이를 새로 칠하고 철 부분을 클라라에게 부탁해서 다른 형태로 주조했다. 부여된 마법을 남기고 외형만 바꾼 것이다.
─우수수수. 마차의 파편이 바람에 쏟아졌다.
“인생 시팔!!”
빅투아르가 눈물이 고여서 욕을 토해냈다. 프랑은 막힘없이 나이프를 투척했다.
기수는 이번에도 피하려고 했지만 공중에서 궤도를 트는 나이프에 제대로 적중했다.
프랑은 신중하게 표적이 넓은 말의 몸통을 노렸고, 그 덕분인지 나이프는 전부 몸통에 꽂혔다.
“RRRRRRrrrrrrrrrrrrrrrrrras!!!”
상처를 입은 기수는 더욱 거칠게 고함쳤다. 가죽이 뒤집힌 피부는 염증에 시달릴 것만 같은 와꾸가 무색하게도 프랑의 나이프 투척에도 거의 관통되지 않았다.
“라리루라! 탄막!”
내 지시에 라리루라는 들고 있던 인형을 마차 바닥에 내던졌다.
공중제비를 돈 사나운 광대 인형은 익숙한 꼭두각시로 변신했다. 룬 마법으로 소형화 기능을 부가한 링링이 4호였다.
호흡, 심장박동, 오감 등의 처리를 마나로 해소해야 하는 생물의 변신과는 다르게 물체의 변신은 마나 소모가 적다. 변신에 드는 마나를 소모하고 나면 추가로 까이는 게 없거든.
“저한테 예쁨받고 싶으면 옷부터 입고 오세요☆!”
라리루라는 마나의 실을 당겼다. 링링이 4호는 10개의 손가락에서 <마법의 화살(Magic Missile)>을 호우처럼 뿜어냈다.
“SIiiiiiiiiiiiyyy!!!”
초원에 쏟아지는 화살비! 하지만 기수는 경악스러운 회피 기술을 선보였다. 입이 떡 벌어지는 컨트롤로 마법의 탄막을 튕겨내고 피하면서 접근해 오는 것이었다.
우리 선조님들을 괴롭히던 유목민들이 이러하랴 할 정도의 기마술!
아니, 자기 몸을 다루는 기술이니 체술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Ssslsliiiiiiiiiii!!”
반인반마의 기수가 탄막을 튕겨내던 낫을 내걸었다. 뒤에서 상처를 누르던 여성이 소리쳤다.
“조심하세요!! 공격할 생각입니다!!”
“Thiiiiiiinnnnnnnnnnnnnn!!!”
낫에서 넘쳐난 붉은 마나가 반월을 그리면서 날아왔다.
나는 요격하려다가 손을 내렸다. 창이 마차의 속도에 아슬아슬하게 쫓아오고 있어서, 지금 놓치면 회수가 불가능할 것 같았던 것이다.
뭣보다 우리 파티의 탱커는 내가 아니었다.
“개새끼야!! 이 이상 수리비 내게 하지 말라고!!”
마차의 부숴진 천장을 잡고 내가 있는 곳으로 올라온 다나가 실드를 펼쳤다. 붉은 반원은 다나의 실드를 크게 흔들고 멈췄다. 존나 센 원거리 공격이었다.
’하지만 못 버틸 정도는 아니군.’
나는 눈을 반개했다. 실드에는 금이 생겼지만 부수지는 못했다. 그건 적의 실력이 우리 파티랑 비교해서 초월적으로 뛰어나는 않다는 뜻이다.
프랑의 나이프도 아직 꽂혀 있다. 적의 공격력과 방어력은 우리들로도 해치울 수 있는 수준이다!
문제는 기마의 네 다리가 뿜어내는 속도였다.
보통 말을 쫓아가는 것 정도라면 나도 가능하다. 하지만 쫓기고 있는 여성의 말도 보통은 아니다. 대충 봐도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보다 빠를 것 같다.
순간 속도라면 어쨌든 그 속도를 유지하면서 장거리를 질주하는 체력이나, 전후좌우를 관성 없이 무빙하는 질주 능력은 더없이 위협적이었다.
“베로니카! 마법은!”
【──부(富)와 기쁨의 붉은 수호자로다(wyrtrumun underwreþyd, wyn on eþle)!! 준비 됐느니라!!】
“자빠트려버려!!”
─우르르르르! 쿠구궁!
땅에서 솟아난 흙벽이 기수를 가로막았다. 기수가 고개를 돌리자 프랑과 라리루라가 집중했다. 점프해서 뛰어넘는다면 공중에서 쏴서 떨어트릴 생각이겠지.
하지만 나는 저 새끼가 그렇게 멍청할 거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품에서 가면을 꺼냈다. 기수는 낫을 십자 모양으로 2번 휘둘렀다. 흙벽이 분쇄되면서 징그러운 말대가리가 흙먼지에 감싸여서 모습을 감췄다.
“SaaaaaaaAAA── A?”
마차에 다시 기습을 날리려던 기수가 멈칫했다. 마차 위에 있던 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창을 들었다. 나는 놈이 흙먼지에 숨었을 때를 노려서 얼굴에 가면을 대고 마부석으로 뛰어내렸다. 인상 미채가 잠시 동안 효과를 발휘했다. 꼴마초식 호로화다.
마차의 그림자에 숨는 것처럼 뛰어내렸기에 자기 말에 채찍질을 하기 바쁜 빅투아르도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다. 시선이 딴 곳에 가 있던 기수는 절대로 눈치 못 깐다.
나는 그렇게 번 틈을 노려서 마나를 짜올렸다. 아까 전에도 쏘던 냉동빔과 똑같은 술식이다.
‘여기에 ᚨ(Ansuz)의 룬을 더해서 출력을 올린다.’
아쉽지만 술식 결합은 아니다.
진짜 고난이도의 술식 결합은 진짜 뒤지게 어려웠다. 처음으로 중등 수학에서 χ 같은 영문자가 나왔을 하는 때를 떠올리게 하는 좌절감이다.
그래서 나는 편법을 썼다.
미스릴 창날에 새긴 룬에다가 마법을 바르면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효과가 나온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YAaaau──!! Wiiiiiiiiiiiiiid!!”
기수가 나를 눈치챘다. 둔해 터진 새끼로군.
나는 마부석에서 점프하면서 극한의 냉기를 머금은 창날을 내질렀다.
“월아천충.”
압축된 냉증기가 총알처럼 뿜어졌다.
─쩌저저적! 콰직!!
마당에서 실험했다가 프랑을 식겁하게 만들고 다나한테 관절기를 당했던 공격은 반인반마의 기수에게 적중했다. 피할 각이 안 나왔기에 기수는 그대로 동결해 버렸다.
그런데도 기수는 죽지 않았다. 그는 낫을 든 팔부터 인간형 몸과 말의 등을 연결하는 부분까지 얼음 절임으로 변하고도 전의를 불사르는 것처럼 포효했다.
“AAs, Swwwwww…… Tyaaa?!”
발이 느려져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낫을 당기던 기수의 말 대가리를 투창이 꿰뚫었다.
“CC기에 맞았으면 몸을 빼야지, 븅딱아.”
나는 창을 던진 팔을 털면서 코웃음을 쳤다.
달인의 경지에 도달한 나의 투창은 튼튼한 말의 목 근육과 뼈와 맞물려서 놀라운 결과를 냈다. 꼬치구이가 돼 버린 말 대가리가 창에 꽂힌 채로 뽑혀나간 것이다.
“Faaaaaaaaaaaaaaaaaa!!!”
말 머리가 사라지자 발이 꼬인 기수는 초원을 나뒹굴었다.
낙마가 불가능했던 인간형의 몸은 바닥을 구르다가 효수된 죄인처럼 멍청하게 우뚝 섰는데, 그 머리통을 라리루라가 쏜 마법의 화살이 곤죽냈다.
암만 몬스터라도 머리가 2개 다 터지면 뒈지겠지. 나는 창을 회수하면서 뇌까렸다.
“잘 가라. 킬딸충 새끼야.”
“으악, 시발 깜짝아!! 언제 내려왔습니까?!”
내 중얼거림을 들은 빅투아르의 얼빠진 비명이 싸움이 끝났음을 고했다.
씨부랄. 이동하는 길에 몬스터랑 만나는 건 오랜만이었네.
마차를 멈춘 우리는 일단 부상자부터 치료했다.
“가, 감사합니다.”
“……으, 으음. 네.”
다나는 초췌해진 여성을 치료하면서 그녀의 얼굴을 자꾸만 쳐다봤다. 무슨 일이지? 우리 눈나가 동성애에 눈을 떠 버린 것인가?
약간 걱정하면서도 나는 기습을 경계했다. 저 정체를 모를 반인반마 말고도 다른 몬스터가 있을 수 있으니까.
“가라, 핀 판넬!”
연기 분신을 날려서 기마의 생사를 점검했다.
건드려 봤지만 살아날 것 같지는 않다. 여기서 부활하려면 예르나 년이 했던 것 같은 회복 분신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었다.
“선배~. 이 낫은 어쩌실래요~?”
라리루라가 그 놈이 쓰던 낫을 가져왔는데, 도저히 쓸모가 있어 보이는 물건은 아니었다.
피에 찌들어서 녹슨 칼날은 이걸로 베이면 파상풍을 면하지 못할 듯이 끔찍했다. 갑자기 저기서 치료 받는 아줌마가 걱정되는군.
‘뭐, 치료야 다나가 알아서 하겠지.’
전문가한테 훈수 두고 그러는 거 아니다. 특히 아내의 전문 분야를 존중하는 건 완만한 부부생활을 위한 의무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방면의 전문가에게 낫의 진품명품 체크를 토스하기로 했다.
“프랑. 어때?”
“으음……. 잠깐만. 녹부터 벗겨야겠어.”
프랑은 무릎꿇고 앉아서 나이프로 낫을 벗겼다.
─카가각. 까가가각. 듣기 싫은 소리였기에 프랑도 인상을 쓰면서 작업했다. 드러난 금속을 손으로 만져보거나 나이프로 찔러본 프랑은 고개를 갸웃했다.
“엄청 삭아서 확신은 못 하겠는데, 아마 바다 쇠인가 봐.”
“바다 쇠?”
“응. 해수면 아래에서 발견되는 철이야. 구하기가 힘들어서 무지 비싸. 거의 귀금속으로 취급될 걸? 같은 무게의 은보다 더 값을 쳐주는 걸루 기억해.”
“진짭니까?”
떡밥을 문 건 빅투아르였다. 내가 쳐다보자 그는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었다.
“아니 그, 따지고 보면 목숨을 구해주신 거니까 또 뭘 부탁드릴 수야 없습니다만, 그래도 그걸 파는 걸 제가 조금 손을 보태드릴 수는 있어서요. 헤헤헤.”
“흐흐. 생각해 두겠습니다.”
우리는 로마니아로 가기 전에 마차에서 내릴 생각이라서 이 사람한테 팔기는 힘들 것 같지만 말이다.
프랑은 이끼가 낀 나무를 만져보다가 그냥 꺾어버렸다.
“손잡이는 그냥 튼튼한 나무네. 물을 무지 먹어서 어떻게 팔지는 못하겠다.”
빅투아르는 그것도 주워갔다. 상인 근성이 뭔지.
“와아. 땀 뻘뻘 흘리는 것 봐. 덥죠? 물 마실래요?”
“히힝!”
라리루라는 그새 중년 여성의 말한테 물을 먹이고 있었다.
이 추위에 맹렬하게 달려서일까? 말의 몸에서는 수증기가 흘러나왔다. 추운 날에 온수 샤워를 하고 베란다에 나간 사람 같다.
“왈랄랄루야. 또 동물을 홀렸느냐.”
“저는 프리실라거든요?”
“그거 참 상상도 못한 정체로군.”
내가 그렇게 웃고 있자 베로니카가 다가왔다. 그녀는 얼굴에 복면을 쓴 말과 눈싸움으로 신경전을 벌이다가 내게 속삭였다.
“……그대여. 눈치챘느냐?”
“어. 저 새끼 저거, 보통 말은 아니지?”
멀리서는 감이 안 잡혔었는데 가까이 붙으니까 알겠다. 뿔이 없고, 원래 뿔이 있어야 할 부분을 차안대(遮眼帶) 같은 가면으로 덮어 놔서 못 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