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8화 (288/1,009)

그래도 룬의 마나를 가진 말이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베로니카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일족은 아니다. 아마 유니콘이겠지.”

“……나쁜 새끼일 것 같아?”

“모르겠구나. 하지만 적어도 마나를 보는 한, 사악한 마법을 배운 듯이는 안 보이는구나.”

물론 그것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었다. 유니콘 흑마법사처럼 대놓고 개새끼라는 걸 보여주지 않아도 나쁜 짓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그 놈도 경계할 심산으로 쳐다봤다.

그 처녀충 새끼는 라리루라한테 물을 받아먹으면서 우리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저 새끼도 베로니카의 정체를 눈치챈 듯 했다.

뭘 힐끔힐끔 쳐다봐 시발. 후려갈겨 버릴까.

“선배? 이 애, 많이 더워하는 모양이에요. 선배가 수족냉증 마법으로 식혀주면 안 되요?”

“앗! 그, 그러지 마세요! 잘못하면 다치실 수도…… 윽!”

중년 여성은 라리루라의 말에 놀라서 만류하려다가 상처가 쓰라렸는지 신음을 흘렸다.

그럴 만도 했다. 베로니카의 경우를 역으로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후다인 내가 접근하면 뒷발차기를 쳐맞게 생겼다.

“무, 무리하지 마세요! 다친 곳이 팔이고 빨리 치료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지, 자칫 목숨이 좌우될 상처에요! 팔을 못 쓰게 되면 어쩌시려구요!”

다나는 깜짝 놀라서 치료 마법도 멈추고 그녀를 부축했다. 나는 우리 눈나의 깍듯한 태도에 눈을 끔뻑거렸다.

물론 우리 아내님이 저래봬도 동방예의지국의 건아에게 신부로 올 만큼 예의범절이 뛰어나긴 한데, 뭔가 그거랑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아…… 가, 감사합니다. 인사 드리는 게 늦었죠?”

그제야 대화를 할 체력이 돌아왔는지, 눈가의 주름이 인상 깊은 중년 여성은 겸허하게 허리를 숙였다.

“저는 세르잔느 하이로메인. 고고학 박사입니다.”

고고학 박사?

내가 예상 외라면 예상 외인 직책에 불길한 기분을 느꼈을 때였다. 다나는 마치 어릴 적에 용돈을 모아서 앨범을 사던 걸그룹을 만난 여자애처럼 눈을 빛냈다.

“역시! 역시 하이로메인 교수님이셨군요!”

아 이 시팔. 불길한 예감은 틀리질 않는군. 박사라더니 역시 교수였다. 하이로메인은 멋쩍게 뺨을 긁었다.

“교수라뇨. 거의 명예직인걸요. 실제로 대학에서 수업을 한 경험은 손에 꼽을 정도에요. 세미나는 종종 열지만 말이에요.”

“앗, 그러셨구나. 맞다! 제 소개가 늦었죠? 저는 다나 베르베이아에요. 학계에 몸을 둔 후배 박사고, 여기 이 사람들은 제 가족들이랑 친한 친구고요.”

다나가 나를 가리키길래 나는 마지못해 인사했다.

“남편인 노르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네. 아까는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뇨. 그렇게 몇 번씩이나 인사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나는 불쾌하지 않을 정도로만 선을 그었다. 솔직히 교수인 줄 알았으면 내 투창이 하이로메인과 반인반마 중에 누구를 먼저 노렸을지 나도 확언 못 하겠다.

유니콘이랑 친한 여자 고고학 교수라. 나도 종족만 빼면 댁이랑 90%쯤 일치하는 좆프년을 1마리 아는데 말이지.

벌써부터 손이 근질근질하구만. 피에 굶주린 살인귀의 기분을 좀 알겠다.

물론 난 살인귀가 아니라 정의를 위해 싸우는 지구용사다. 상대가 등을 보인다고 다짜고짜 치도리를 날리진 않는다.

‘킹치만 교수라면 살짝 ‘뇌절’ 해버려도 되지 않을까?’

나는 선빵 충동을 느끼면서 창대를 쓰다듬었다.

착하지 착해, 우리 미미쨩(Mithril-Mithril Spear). 교수의 피가 그리운 건 알지만 기다리렴. 다나가 신나서 얘기하고 있는데 ‘기간틱 드릴 스팅거’ 해 버리면 우리 눈나가 나랑 최소 1달은 눈도 안 마주쳐줄 거라고.

“아, 다치신 곳부터 마저 치료할게요.”

“부탁드릴게요. 가진 게 얼마 없어서 치료비로 드릴 것도 별로 없지만…….”

“아뇨아뇨! 치료비 같은 거 신경 안 쓰셔도 되요!”

세상에 시발. 저게 우리 눈나가 맞나? 나는 입을 딱 벌렸다.

존나 저 누나, 내가 마부석으로 뛰어내렸을 때 뭐 이상한 거 주워먹은 건 아닐까? 다나는 상처를 치료하면서 이발비 7000원짜리 미용실의 아주머니처럼 즐겁게 재잘거렸다.

“교수님 저서는 읽어봤어요. <불멸의 섬(Insulam De Aeternum)>은 제 애장도서 랭킹 불변의 1위에요. 물론 학계에 내신 논문도 읽어봤구요. 제가 박사 학위를 딴 논문에 교수님 글이 몇 개나 인용됐는지 아시면 깜짝 놀랄 걸요?”

“아, 아아. 그 책이라면 스스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확실히 호저(好著)로 지어졌다고 자부해요. 집필 중에 에린의 후예 분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거든요.”

다나의 진심이 드러나는 격찬에 그녀는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칭찬이 인색한 다나가 호평의 연속을 표현하자 창대를 쓰다듬는 손이 빨라졌고 말이다.

“쿡쿡. 뭐야, 니 지금 질투하냐?”

그런 나를 발견한 다나는 내가 질투해대는 게 약간 기쁜 것처럼 말했다.

“하이로메인 교수님은 얼스터 연구의 권위가셔. 그 왜, 나 이 분이 쓴 수필도 갖고 다닌다고 했잖아? 너한테 옛~ 날에 읽어보라고 저서도 줬었는데 기억 안 나냐?”

“아니, 누나랑 내가 말하는 옛날이면 3~4년도 전 아냐? 막 랩실에 적응하기도 바쁠 때 읽었던 책의 저자를 어떻게 기억하…… 얼스터?”

나는 고개를 모로 꼬았다.

예전에 말한 적이 있을 텐데, 얼스터의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는 존나 적다. 유물이 없어서 돈이 안 되고 구전되는 문화를 조사하기가 좆 같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얼스터의 연구자. 그것도 박사+교수급의 인사라고?

그럼 학계 전체를 통틀어도 거의 손에 꼽을 텐데.

‘하이로메인. 들어 봤던 것 같기도 해.’

어디였지? 다나 말고도 언급되었던 적이 있던 듯, 아닌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해마의 하드 디스크를 조각 모음해 보았다.

얼스터, 에린, 교수, 논문…… 세미나?

떠올랐다. 그, 누구더라? 티르시에게 성희롱을 하던 노친네 교수였나? 그 새끼가 내 질문에 대답했을 때 얘기했었던 것 같다.

‘야수회귀를 보고 하이로메인 교수의 세미나에서 비슷한 효과의 구전을 들었다고 했었던가.’

아니, 그 주문인 《천공신께 기도하라(yáǵeswō deiwōm dyēus)》도 어느 교수의 세미나에서 들었다고 지껄였었다.

‘아마 그게 이 사람이겠지.’

이거 뭐 씹새끼들이랑 접점이 한두 개가 아닌데.

너무 수상하다. <번개의 화살(Lightning Missile)>로 삐까삐 놀이나 몇 번 해 주면 있는대로 불지 않을까? 사람한테 하는 게 안 좋으면 저기 유니콘 새끼랑 진실의 방에 가는 것도 방법일 것 같은데.

일단 말로 ‘인터뷰’ 해 볼까. 나는 주댕이를 벌렸다.

“아! 하이로메인 교수님! 들어본 적 있습니다. 잠시 못 알아봐서 죄송합니다.”

“아뇨, 뭘요. 이렇게 신세를 져 놓고 그런 걸로 불편해 할 수야 있겠어요?”

착하게 웃는 미소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 성실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예르나 그 좆프년으로 단련된 나의 심안을 깔보지 말라 이거에요.

지금이라면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캐스터 님의 리뷰를 보면서도 존잼과 좆노잼을 구분할 자신이 있었다.

나는 야부리를 털어봤다. 교수는 가면을 벗고 인성을 공개하세욧!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리긴 했지만 심로가 심하셨겠군요. 어쩌다 저런 괴물에게 쫓기게 되셨습니까?”

“모르겠어요. 앨리스── 아, 저기 있는 말이랑 길을 걷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나타나서 공격을 가하더라구요.”

상처를 보면서 말하는 하이로메인.

저 뿔이 꺾인 유니콘의 이름은 앨리스인가. 선빵에 기습당해서 팔을 다쳤던 모양이다.

“멀리 참격을 날리는 공격이 앨리스의 발보다는 느려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벌써 죽고도 남았을 거에요.”

“그러셨군요. 그…… 여쭙기 힘듭니다만, 같이 오신 일행 분들께서는?”

하이로메인은 눈을 깜빡이다가 웃었다.

“아아, 저는 일행이 없어요. 현장직 학자라서 예전부터 저 아이랑 둘이서만 연구 여행을 다녔죠. 저를 교수로 받아줬던 대학도 제가 보기 드문 얼스터 학자라서 특채로 뽑아줬던 걸 거에요.”

“듣던 중 다행이군요. 저는 또 교수님의 일행이 봉변이라도 당했으면 어쩌나 가슴을 졸였습니다.”

내 말을 듣던 다나가 눈을 반개했다. 이 새끼가 쥐약을 쳐 먹었나 하는 표정이다. 내 분노조절장애가 교수 슬레이어로서 발현되는 걸 우리 마누라도 잘 아니까 그렇겠지.

근데 이 시발 누나야. 지금 니 기분이 아까 내 기분이었어.

“그래서, 저 괴물은 뭐였을까요?”

다나의 기분을 알아차렸지만 모른 척 했다.

나는 더 이상 분노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격노의 고삐는 내 손에 있다. 야수회귀를 성장시키는 계기는 어디까지나 내 뜻으로 통제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의심스러운 건 의심스러운 거고, 지금은 내 의심을 숨기며 저 중년 여교수의 본성을 캐내야 했다.

“방금 건 아마 누켈라비일 겁니다.”

행상인 빅투아르가 또 끼어들었다. 이 사람 진짜 말 하는 거 좋아하네.

“누텔라가 뭐 어쨌다고요?”

“누켈라비요, 누켈라비. 이 부근에서는 그…… 민간전승에 가까운 괴담이죠.”

나왔네 시발, 이세계인 종특. 원큐에 설명 안 하고 물어볼 때까지 자기 지식 뽐내는 그거 말이다.

나는 그게 좆 같기도 하고 이미 족친 몬스터 얘기를 들어서 뭣하냐는 생각에 무시하려 했는데, 하이로메인이 떡밥을 물어버렸다.

“아마 맞을 거에요. 누켈라비(Nuckelavee), 크노겔비(Knoggelvi), 뉘쿠르(Nykur). 이름은 많지만 전부 강의 악령 켈피의 일종을 가리키죠.”

“방금 게 켈피라구요? 제가 아는 켈피랑은 좀 다른데요.”

하이로메인의 설명에 다나가 깁스를 매 주면서 물었다.

“아, 고르갈리아에서는 ‘켈피’를 물귀신 전반을 가리키는 악령의 총칭으로 부른답니다. 사실 분류를 정확하게 하면 누켈라비는 바다의 악령이에요.”

“으음. 얼스터가 약간 그런 면이 있죠. 음유시인의 시처럼 중구난방이라서 연구하기도 힘들지 않으세요?”

“익숙하면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서 즐겁답니다. 다나 양은 아마 에린의 후예 분 같은데, 맞나요? 그쪽 문화에서는 사람을 잡아먹는 말 모습의 악령을 가리키죠?”

얼스터 권위가답게 우리 눈나의 인종을 알아차리는 하이로메인이었다. 다나는 익숙한 듯 자기 고향을 소개했다.

“네. 저는 얼스터 인의 방계에요. 제 고향에서 켈피 얘기는 아이들한테나 전해주는 잔혹 동화 같은 거였죠.”

“앗. 그럼 에린의 픽트쪽 출신이시겠네요? 후후후. 저도 거기 분들의 취락에는 잠시 실례했었는데, 벌써 5년도 더 전의 얘기네요. 으음. 아무튼 누켈라비 얘기로 돌아가죠.”

잠깐 삼천포로 빠졌던 하이로메인은 정색하면서 얘기했다.

“전승대로라면 누켈라비는 무척 강력한 악령이에요. 제가 들은 얘기만 해도, 고대 문명 시기에 엄연히 존재하던 진짜 환상종(幻想種)이죠.”

“싱겁게 퇴치해 버렸는데요? 어린 놈이었나?”

나는 뒤져나간 반인반마의 시체를 가리켰다.

무척 강력한 전설적 악령(창에 맞아서 뒤짐)을 말이다.

“아닐 거에요. 전설에 전해지는 누켈라비는 단일 개체로 추정되거든요. 그 누켈라비를 퇴치했다는 전승이 어디에도 없었는데…… 확실히 생각보다 허망한 최후이긴 하네요.”

하이로메인이 이상한 것처럼 누켈라비의 시체를 경계했다. 나는 창대를 어깨에 맸다.

“가짜라든가, 뭐 그런 거겠죠. 모습을 빌리는 악령 같은 건 흔하잖습니까.”

나도 내가 존나게 쎄서 전설적인 악령을 원큐에 조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세계 인류의 전성기였던 고대 문명 시대의 괴물이 현대 이세계까지 전해진다? 그건 그 누켈라비라는 놈이 진짜로 신화적인 악령이라는 뜻이다.

브리타니아가 예나 지금이나 약소국이라지만 고대 인류, 그것도 얼스터 인까지 지식을 구전하게 만든 새끼라지 않은가. 그딴 괴물이 내 투창 원큐에 골로 갈 것 같진 않았다.

아마 저 놈은 어떤 사악한 씹새끼가 전설의 악령을 흉내낸 가짜일 가능성이 컸다.

빅투아르는 질색을 하면서 옷깃을 폈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라. 무척 섬뜩하군요. 저희도 얼른 떠나든가 합시다.”

“예. 시체만 불태우고요. 독이 있을 수 있으니까 다들 멀리 물러나 계십쇼.”

나는 사람들을 물리고 <타오르는 손길(Burning Hand)>을 창에 부여해서 시체에 불을 질렀다. 초원이라서 불이 번지지 않게 흙을 파서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파이어 인 더 홀.”

─호르르륵!

금태양의 호흡으로 시체를 쑤시던 나는 인상을 썼다.

‘거 씹새가 뒤지게 안 타네.’

강인가 바다의 악령이라고 했던가. 그 말대로 몸에 물기가 많아서 불이 잘 안 붙었다.

결국 식용유를 뿌렸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 자주 보이는 잡몹이라면 몰라도 이딴 섬뜩한 시체의 뒤처리를 안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활활활.

불에 탄 켈피를 제대로 확인하고 매장까지 한 나는 마차로 돌아갔다. 일행은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하이로메인 교수님? 교수님께서는 어디로 가십니까?”

“저는 동쪽에 있는 에린의 후예 분들의 취락으로 가요. 그 취락 분들과 안면이 있어서,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고 로마니아의 대학으로 갈 생각이랍니다.”

“아, 저희랑 목적지가 가깝군요.”

이거 시발 이 아줌마랑 같이 가게 될 각인가?

여기서 이제 안뇽이구나 하고 엉덩이를 뻥 차 주고 싶은 기분은 맥시멈이지만, 하도 빠르게 달려서인지 우리가 들를 마을까지 얼마 안 남았다.

플루스미러 삼림.

거기가 다나와 베로니카가 고르갈리아의 성수의 숲이 있는 곳으로 추정한 장소였다. 그 숲과 인접한 플루스미러 마을에 내려서 숙박했다가 바이콘의 성지로 가 볼 생각이다.

파티원들은─다나까지도─ 날 쳐다봤다.

나한테 어쩔 거냐고 묻는 듯 했다. 파티 리더는 나니까.

아마 우리 파티원들은 여기서 내가 교수는 길바닥에서 굶어 뒤지도록! 이럇! 따위의 폭언을 내뱉고 달려가도 아무 말 안 할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인상을 쓸 만큼 고민해야 했다.

‘이 만남은 기회라고 하면 기회야.’

그 아다 흑마법사처럼 뿔이 꺾인 유니콘.

내 야수회귀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을 듯한 교수.

둘 다 존나게 위험천만할 듯이 느껴지는 상대지만, 그만큼 드랍템 혹은 드랍 정보가 쏠쏠할 틀림없었다.

이건 솔직히 거의 천운이라고 해도 좋았다.

베로니카와 쌰바쌰바 쑤컹퓻퓻흐아앙 하면서 오딘 관련 지식은 다분히도 얻었지만, 아직 내 인생에 엮인 미스테리는 오질라게도 남았으니까.

“……저희랑 같이 가시죠. 가는 길이 겹치는 동안은 함께 움직이는 게 편하실 겁니다.”

신중하게 간을 보던 나는 그리 말했다.

예르나 년이랑 마법 지식을 나눌 만큼 긴밀하던 <임모르탈리스>의 흑마법사 유니콘이 어떻게 신족의 모습을 되찾았는지

그리고 야수회귀의 주술을 비석에 새겼던 자는 누구인지.

이 내용만은 짬을 내서 얻을래도 얻을 수 없는 정보였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잠시 저 교수년을 일행에 넣을 가치가 있을 만큼 말이다.

“그렇게까지 폐를 끼쳐도 될까요?”

“물론이죠. 대신 저랑 제 아내의 말벗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저희가 학자와 그 가족이라서 옛날 얘기에는 관심이 많아서요.”

호의를 베푸는 척 밑밥을 깔았다. 기회를 주면 어떤 지식을 얼마나 뱉을 것인가. 최악의 경우에는 교수 슬레이어가 되서 억지로라도 정보를 캐내야지.

내가 몰래 칼을 가는 걸 눈치 채지도 못했는지 하이로메인 교수는 기쁘게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요! 사실 저는 연구 얘기를 나눌 상대도 거의 없어서, 앨리스한테 강의 연습을 다 할 지경이었거든요!”

“하하하. 랩실의 연구원생들은 교수님의 사담(私談)을 싫어하는가 보죠?”

“네? 아뇨. 저는 연구원생이나 개인 랩실이 없어요.”

“아아. 그러셨── 잠시만요. 머라고여?”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연구원생을── 대학원생을 부려먹지 않는 교수라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내 뉴런은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면서 스파크를 튀겼다.

“데에에에?”

모순적인 명제를 입력당한 인공지능이 된 기분이다. 다나가 어느날 아침에 거유가 되서 나타나도 이만큼 놀라지는 않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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