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5화 (295/1,009)

“앨리스 네가 밤마다 나한테 얼굴을 부비던 게 그런 뜻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여행의 동반자가 느닷없는 딸뻘의 여자애(연상, 동성애자)가 돼 버린 하이로메인은 멘탈이 깨진 듯 했지만, 저게 다 사랑으로 길을 잘못 들지 않게 계도하는 성스러운 희생이다.

그리 생각하니 저것도 보기 좋은 광경이군. 부디 좋은 사랑 하세요.

“이방인들. 아침부터 기운 차다.”

그때였다. 소란을 들었는지 스텔라가 털레털레 나타났다.

다행히 옷은 입고 있는 상태였다. 우리가 시끄럽게 굴어도 뭐라 할 생각은 없는지 웃는 낯이었다.

“그리고 노르드? 너는 날 따라와라.”

그녀는 흐뭇하게 우리를 둘러보다가 나를 지목했다.

어제 느닷없는 청혼을 들었던 나는 그만 긴장해 버리고 말았는데, 그녀가 내뱉은 말에는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족장의 지시다. 짐승 빙의의 주술과 오러를 사용하는 법, 내가 알려준다.”

짐승 빙의의 주술과 오러.

짐승 빙의는 무슨 마법인지 긴가민가 하지만 오러는 뭔지 안다. 안 그래도 그거 쓰는 새끼한테 뒤질 뻔 했었는데 까먹으면 제정신 박힌 놈이 아니지.

판타지 국룰이자 무기를 광선검으로 만들어 주는 제다이식 검술!

그 오러를 가르쳐 준다는 말에 나는 스텔라의 뒤를 따랐다.

전력 증강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자마자 이런 기회가 뚝 떨어진 것이다. 이세계인들의 정보폐쇄를 생각하면 기적적인 일이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이거에요.

“어디로 가십니까?”

“널 가르치러.”

“제가 그걸 몰랐네요.”

나는 스텔라에게 로지컬한 설명을 기대하길 포기했다.

오러를 가르친다고 갑자기 사생결단 결투를 걸어오지나 말았으면 좋겠네. 무협 틀딱처럼 때려서 키우는 사교육은 아동학대다.

그렇게 취락에 붙은 절벽으로 간 스텔라는 내게 말했다.

“바로 시작한다. 먼저 짐승 빙의의 주술부터다.”

“그게 그겁니까? 어젯밤 저랑 붙었던 전사 분이 썼던?”

“디로스? 그랬다. 디로스가 썼다고 했지. 흡!!”

17살 먹은 애가 있는 유부녀답지 않은 기합성이다. 얼스터 전사장 클라스 어디 안 가는군.

스텔라의 소은 무슨 범고래가 수면을 뚫고서 올라오는 것 같은 효과음을 일으키며 마나에 감싸였다.

“이게 짐승 빙의다. 사실 알려줄 수는 있지만 네가 쓸 순 없다고 생각한다.”

“네? 왜요?”

적성 문제인가? 하지만 그런 건 시도해 보기 전에는 모를 텐데.

스텔라는 말했다.

“마을의 전사는 이걸 배우려고 뼈가 굳기 전부터 동물 심장을 먹는다. 그렇게 해서 동물의 혼을 몸에 안착시키는 거다. 그거 없이는 절대 못 쓴다.”

“혼이요?”

미신인가, 아니면 마법적 팩트인가.

오컬트와 마법 이론이 공존하는 세상이라서 구분이 잘 안 갔다. 일단 이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 모양이다.

‘다나가 야수회귀를 못 알아본 걸 보면 다른 군락에는 이런 주술이 없겠지.’

나는 그리 생각하고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뭐, 가능할지 불가능할지는 해 봐야 하는 것이다. 가능해도 노 쓸모일 가능성은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러에 대해 가르쳐 주신댔는데, 설마 스텔라 님은…….”

운을 띄워줬는데 고개를 모로 꼬는 아줌마. 아니 씹, 대충 눈치껏 알아듣지 좀.

“오러를 쓸 줄 아십니까?”

“쓰지. 이거 봐라. 내 검.”

스텔라는 철 몽둥이를 두들겨서 판자 모양으로 편 듯한 초대형 대검을 내밀었다. 생긴대로 논다는 실례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티는 안 내는 나.

“오러는 이렇게 쓴다.”

파아아아앗─!!

굵직한 대검이 마나의 빛으로 감싸였다.

쓰벌, 진짜 쓰네.

“오러는 마나다. 무기를 자신의 수족처럼 다룰 수 있어야 그 안에 자신의 마나를 흘릴 수가 있다.”

─부웅. 스텔라는 대검을 휘젓고 말했다.

“말로 하면 쉬운데 실은 어렵다. 무기에 익숙해져도 마나가 모자란 전사는 많다. 마나가 많다고 무기와 하나가 된다는 건 아니다. 둘 다 필요한 조건이다.”

“……설명을 조리있게 잘 하시는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좀 놀랐다. 뭐 대단한 팁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편법이 있다면 오러가 어디 미스릴 클래스의 상징이겠는가.

내 말에 스텔라는 오러를 끄고서 말했다.

“바보는 전사장 못 한다. 약하면 족장 못 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족장님도 전사장님만큼 강합니까?”

“내가 더 강하다. 하지만 내 다음은 족장이지.”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황망해졌다.

망을 보던 타잔맨을 대충 줘패버리고 이것이 너희와 나의 눈높이다 따위의 착각을 하고 있었는데, 3대 야만족 중 최강 라인업인 얼스터의 전사는 제 이름값을 했다.

미스릴 클래스가 어디 동네 똥개 이름인가?

영주가 저택에 초청해도 씹고 지 고향으로 가 버려도 되는 입지의 전사가 미스릴 클래스다.

그런 미스릴 클래스가 이런 시골에 둘 씩이나 있다니!

그리고 씨발 그 둘이 못 잡은 괴물을 우리한테 잡아달라고 하는 거라니!

엔리르도 메가진화를 해서 망치의 신이 되지 않으면 동격의 적 2명을 상대로는 못 이길 텐데, 노말폼 엔리르랑 삐까떴던 나한테 그런 괴물을 잡으라고?

이거 사요나라 각을 재는 게 낫나?

“저, 그 누켈라비는 얼마나 강합니까? 두 분이 나서도 못 쓰러트릴 정도입니까?”

“싸우면 아마 이긴다. 그래도 발이 빨라서 내가 못 쫓았다. 족장도 그렇다. 또 족장은 절대 죽으면 안 되는 법이다.”

아, 그런 거였나.

안심한 나는 짐승빙의의 주술이나 오러의 사용법을 들으며 대충 누켈라비 새끼의 정보를 들어 보았다.

“그 놈은 짐승 빙의를 쓴 나보단 힘이 약하다. 그런데 너무 빨라서 쫓을 수가 없다. 비겁한 놈이다.”

“크기는요?”

“크다. 저 나무 쯤 되나?”

……5미터를 넘는다고?

시발, 그 해마 새끼가 어디 섬나라에서 방사능 좀 쐬다가 왔나. 나는 스텔라가 가리킨 나무의 높이를 보고 아연해졌다.

이거 빡긴장을 하지 않으면 상당히 위험하겠다.

‘무섭다고 튀는 건 이래저래 에바겠지.’

양심을 버려버리고 야반도주를 해도 그 본체 새끼가 우릴 쫓아오면 달밤의 세레나데(잡히면 죽음) 아닌가.

그럴 바에는 미스릴 클래스 대전사님의 힘도 빌릴 수 있는 여기서 족치고 가는 게 맞았다.

그렇게 되서 나는 아침부터 오러 훈련에 몰두했다.

짐승 빙의의 주술은 오러 다음이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오러 훈련을 먼저 하는 게 실망감이 덜 할 것이니 말이다.

“창에 마나를 흘려라. 아침에 일어나서 엉덩이를 긁을 때 손을 움직이는 법을 생각하지 않듯, 편하고 평범하게.”

“끼에에에엑!! 무의식의 극의!!”

“옷을 벗으면 더 집중 가능하다.”

“저는 그런 미신을 믿지 않습니다.”

이달의 풍기문란: 당신.

다른 파티원들이 족장에게 마법 강의를 듣고 있는 동안, 난 땀내나는 꼴마초의 수련을 거듭했다.

아침 식사로는 스텔라가 사슴 심장 드싈? 하고 권해왔다. 배가 부르면 명상에 집중이 안 된다는 핑계로다가 거절했다.

무슨 나루토 선인 모드 수련도 아니고 음식까지 그런 걸로 먹으면서 수련하면 몸 배린다. 에비 지지야 지지.

스텔라는 핏물을 뺀 심장 회를 먹으면서 신기해 했다.

“너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몸을 보면 기초는 돼 있는데 왜 오러를 못 쓰나?”

“기초라는 게 정확히는 어떤 기초죠?”

“마나를 다루는 재주.”

그건 나도 자각하고 있는 문제점이다. 맨날 실패만 해 대는 고위 마법 챌린지만 생각해도 반박 불가능이다.

그 놈의 술식 결합이 뭐라고 시발.

“요령만 깨우치면 쓸 수 있을 거다. 싸움에서 단련한 팔과 다리는 배신하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실례지만, 자꾸 말을 거시면 집중하기가 좀…….”

“말 건다고 못 쓰면 싸우면서 어떻게 쓰나.”

존나게 정론이라서 나는 입맛을 다셨다.

그야 틀린 말은 아니잖은가. 도서관에서 소음 가지고 필요 이상으로 신경질 부리는 사람 치고 시험 잘 치는 사람 적다. 그게 현실인 거에요.

우리 다나도 그렇고, 얼스터 인 종특은 아무렇지 않게 존나 현기 어린 말을 내뱉는 게 아닐까. 존나 문무양도의 인종이다.

그니까 제발 문화에도 신경 좀 써라. 동물 심장은 왜 생으로 씹어먹는데.

한민족의 피가 끓어오른다. 돼지 염통은 순대국밥에 넣어 먹는 게 예의 아닌가?

게다가 야생동물 고기는 먹으면 기생충 위험도 있는데, 그걸 날것으로 먹어? 이 시발, 짐승 빙의의 조건이 회충약 안 먹고 버티기면 어쩌지.

사람도 누울 자리 보고 다리를 뻗는다. 동물도 몸에 기생충 좀 있어야 어따 씨발 여기가 내 둥진갑다 하고 드르렁 하는 걸 수도 있다.

그딴 생각 때문에 집중이 더 안 되는 느낌.

“……오러는 언제든 시간 내서 연습한다고 치고, 짐승 빙의부터 봐 주시겠습니까?”

“그래라.”

허락을 받은 나는 기분 전환이라도 할 생각으로 짐승 빙의 주술을 사용해 봤다.

얼스터 주술이라서 그런지 주문은 없다. 근데 전제조건이 필요한 마법인데 내가 가능할까?

─화악!

그렇게 고민하는 내 손에서는 아주 당연하다는 것처럼 곰 발이 튀어나왔다.

그리즐리가 아닌 그린 베어다. 스텔라가 감탄했다.

“노르드. 너네 고향도 동물 심장 빼먹나?”

내가 구미호냐 시발. 동물 철권 두더지도 아니고 문명인이 심장이나 간을 빼 먹을 일이 어딨어.

진짜 집에 가면 구충제나 사 먹어야 하나.

‘농담은 어쨌든, 이유가 뭘까.’

순대국밥 염통 갖고 발동했을 거라곤 생각 안 한다.

동물 심장을 날 걸로 쳐먹어 본 기억은 암만 그래도 없다.

생각해 본 나는 짐승 빙의의 곰 발 위에다가 야수 회귀를 덮어씌웠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치 가스불이 라이터 불을 집어삼키는 것처럼 야수회귀의 마나 코팅이 곰 발을 덮어씌워버린 것이다.

“그 주술은 뭐지?”

의무감으로 가르치던 스텔라가 처음 호기심을 드러냈다. 난 내 손을 쥐었다 폈다.

“야수회귀라는 마법인데, 못 들어보셨습니까?”

“처음 듣는다.”

“……[브란웬 베르흐 리르]라는 이름은요?”

내가 야수회귀를 겟또한 비석에 글을 남긴 고대문명 시절 사람이다. 잊지 않게 노트에 적어뒀던 이름을 질문해 본 것이었다.

스텔라는 남은 심장 사시미를 입에 털어넣고 말했다.

“그것도 못 들어본 말이다. 하지만 [리르의 피]라면 자주 쓰는 표현이지.”

“리르의 피…… 에린의 후예를 가리키는 말 아닙니까?”

그것도 비석에 적혀 있던 표현이다. 나는 문맥 상 그렇게 추리했었다.

품에서 노트를 꺼내들었다.

─우리는 오랜 벗을 의심하여 배신했으나 우리의 벗은 그리 하지 아니하였다.

─리르의 피가 흐르는 자는 이를 원죄로서 기억하라. 과오를 속죄할 의무를 황혼의 초원에 맹세하라.

─잊혀진 ■■■■의 비술을 이곳에 기록한다.

유적에서 본 비석의 문구다. 스텔라가 설명했다.

“아니다. 후예 중에서도 최고위, [대족장]이다.”

“대족장? 왕이라는 뜻입니까?”

나는 질문을 이으면서도 짐승 빙의의 감촉에 뭔가 희미한 깨달음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이걸 야수회귀나 다른 마법에 어떻게 접목시켜 본다면, 내 전투의 폭을 늘릴 방법이 생길 듯도 한데…….’

마나를 다른 모양으로 변화시키는 버프 마법이다.

뭔가 또 새 스킬을 획득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왕? 아니다. 그러니까, 으음…… 음…….”

스텔라는 브리타니아 어로 적당한 말을 못 찾겠는지 잠깐 버벅거렸다.

“리르는 에린의 신 ‘바다 어미’의 피휘자(避諱字)입니다.”

우리를 찾아온 족장이 그리 말했다. 나는 노트를 넣고 목례했다.

“안녕하십니까, 족장님.”

“네. 좋은 아침입니다, 먼 땅에서 온 손님. 간밤에 잘 주무셨나요?”

“덕분에 말입니다. 그런데 바다 어미라고 하셨나요?”

신의 이름 치고는 쌈마이한 맛이 있다.

누켈라비의 낫은 ‘바다 쇠’던데, 얼스터 인들 작명 센스는 존나 구리군 그래. 족장은 눈을 감고 대답했다.

“맞아요. 그러니까 리르의 후예라는 말은, 여러분들 말로 ‘교황’이나 ‘신의 대리자’ 쯤으로 번역하면 될 듯 하네요.”

“교황…… 대충 알 듯 말 듯 하군요.”

옛날 원시사회에서는 종교와 왕권이 동일했다고 하던가.

내 고향 지구에서도 그랬고 이세계에서도 그랬다. 여기는 신이 있는 세상이니까 당연히 신에게 보살핌을 받는 사제가 인간족의 왕 역할을 했던 것이었다.

리르의 후예라는 건 그런 뜻일까.

‘생각했던 거랑 좀 다른데.’

나는 고개를 모로 꼬았다. 후손에게 전해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까 후임에게 인수인계하는 내용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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