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밤 정도는 새도 된다. 달인이자 초인인 나에게 밤샘 1일차 정도는 문제가 안 된다. 페이스 분배만 하고 다나한테 힐을 쬐끔 받으면 금방 풀피가 되겠지.
창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야수회귀가 뿜어지는 소리가 얼스터 마을의 밤을 장식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개전의 새벽이 밝았다.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숲을 돌파해서 강변에 진을 쳤다.
누켈라비에게 척후를 보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였기에─발견당하면 쫓아와서 죽인댄다─,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빨리 진형부터 갖춘 것이었다.
─힐끗.
회중시계를 보았다. 작전을 시작한지 30분이 넘었다.
이미 스텔라는 엄선한 전사들을 데리고 누켈라비가 있다는 곳을 급습할 것이었다. 누켈라비의 우두머리는 그녀를 피한댔으니까, 이쪽이나 남쪽으로 강하해 오겠지.
‘멍청한 놈은 아닐 테니까 아마 남쪽으로 갈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타잔맨을 포함한 얼스터 전사들이 스텔라가 도착할 때까지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번다는 작전이다.
그러다가 하늘에 신호탄이 쏴지면 우리도 참전해서 사냥을 돕는다. 그때까지는 여기서 대기한다.
만약 이쪽에 오면 여기 있다고 신호탄을 쏘면 된다.
남들이 목숨을 걸고 있는데 우리만 너무 꿀을 빠는 듯 해서 죄책감이 느껴졌다. 우리야 부외자이긴 하지만 말이다.
“남편놈 얼굴 죽상이네. 쫄려서 그런 건 아니지?”
다나가 내 기분을 헤아리고 농담을 건넸다. 나는 시게를 넣으면서 낄낄댔다.
“사실 쫄린 거 맞음. 느그 남편 금속 알러지 있어서 칼침 맞으면 안 된단다.”
“남편, 나랑 얘기할 때도 가끔씩 뇌 쓰자? 기껏 성능 좋은 대굴빡 녹슬라.”
“고장나도 뚜껑 따고 호 불면 나을 것.”
“따면 도로 못 닫는데 누가 책임져 븅딱아.”
도이치 짝눈신도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쳐서 천공신 오딘을 제물 소환했는데, 나도 비슷한 짓 쯤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시험하기엔 내 목숨이 아깝다. 나는 조용하게 창을 들었다.
세태와 야합해서 마누라의 바가지로부터 도망친 건 아니다.
내 귀에도 들릴 만큼 거친 발굽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나보다 먼저 같은 소리를 들었을 프랑은 귀를 세우고 집중하다가 외쳤다.
“발소리가 작아! 아마 얘기로 듣던 큰 녀석은 아니야!”
“잡졸이란 거네요! 벌집으로 만들어 버리죠☆!”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서 링링이 4호의 손가락을 겨누는 라리루라.
나도 무영창으로 <번개의 화살(Lightning Missile)>을 장전했다. 요즘 이 마법 수련을 뜸하게 해서 그런가, 저번보다 숫자는 늘지 않았다.
─다그닥, 다그닥!! 난폭한 발굽 소리를 내면서 수풀을 뚫고 피부가 벗겨진 괴물이 뛰쳐나왔다.
“AAAAaaaaaaaaaaaaa!!!”
오는 길에 몇 대 맞았는지 이미 빈사 상태인 놈이었다. 말 부분이랑 이어진 인간형 몸체의 머리에는 화살까지 꽂힌 게, 딱 봐도 뒤져가는 새끼다.
뿌숭빠슝 대가리에 화살을 기르고도 안 죽는 새끼가 있다?!
나는 방심 않고 장전했던 <화살>로 일제 사격을 가했다.
“가-소롭다 애-송이!!”
쏘아진 번개가 누켈라비의 몸통을 태웠다. 라리루라의 <화살>은 호언한대로 놈의 몸통에 구멍을 송송 냈고, 누켈라비의 몸통에서 인간 부분이 떨어져나갔다.
─쿠당탕!
─두두두두두두!!
이심동체(二心同體)였던 인간 부분을 잃자 누켈라비는 말 몸체만 남아서는 미친 듯 달려오기 시작했다.
안광만 보이는 얼굴로는 말의 표정 따윈 읽을 수도 없다. 하지만 냉정하게 제 2사격을 준비하던 나는 예측보다 거침이 없는 질주에 인상을 썼다.
“선배, 쟤 안 물러나는데요?!”
라리루라가 같은 걸 눈치챈 듯 소리쳤다.
동감이다. 강이 코 앞인데 놈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뭐지? 정보가 잘못됐나?
─풍덩!!
누켈라비의 말 몸체는 견제로 날린 사격을 피하다가 강에 몸을 던졌다.
구전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우리 파티는 진형을 뒤로 미루면서 긴장했다. 저 강에서 튀어나와서 기습할 것을 경계한 것이었는데, 기다려도 놈은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마법을 준비하던 베로니카가 반신반의하듯 중얼거렸다.
“물에 뛰어들어서…… 자진(自盡)한 것이냐?”
“……읏! 아냐! 저것 봐!”
룬의 힘을 빌어서 귀를 세우던 프랑이 고함쳤다.
나는 그쪽을 봤다가 인상을 썼다. 여기서 한참 떨어진 강 하류에서 누켈라비가 헤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첨벙, 첨벙!
살가죽이 벗겨졌던 몸은 강물이 포션이라도 되는 듯 조금씩 치료되고 있었다.
살가죽이 재생된 놈은 하얀 피부와 푸른 눈이 아름다운 말이었는데, 그 눈빛에서 나는 인간을 잡아먹는 사악한 몬스터의 기질을 느낄 수가 있었다.
‘상처가 치료된’ 놈의 머리가 무언가를 두려워하듯 고개를 돌렸다.
우리 쪽이면 이해라도 할 텐데, 그 방향은 놈이 도망쳐 온 곳이었다. 그걸 확인한 다나는 찌푸렸던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중얼거렸다.
“……켈피?”
켈피. 말의 모습을 하고 사람을 잡아먹는 강의 악령.
그 중얼거림을 들었을 때, 나는 눈치챌 수가 있었다.
──작전의 전제조건이 붕괴했다는 걸 말이다.
“……이거 족장이 위험하겠는데.”
마트료시카처럼 켈피로 변신해버린 누켈라비를 보며 다나가 중얼거렸다.
“동감이야.”
혀를 찬 나는 일단 강물을 타고 도망치려는 켈피에게 창을 내던졌다.
쐐애애액─ 퍽!!
빠르게 날아간 창은 켈피의 머리를 뻥 뚫어버렸다. 놓치면 어디서 또 사람을 잡아먹을지 모르는 놈을 그냥 보내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창대에 새긴 마법으로 창을 회수했다.
창끝에는 소름 돋는 푸른 피가 묻어 있었다. 나는 인상을 썼다.
“우리도 움직이자! 예감이 불길해!”
진형의 축을 붕괴시키는 건 멍청한 짓이다. 군대였다면 명령 불복종으로 납탄이랑 두개골 키스를 해야 할 수준의 섣부른 행동일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다행히 족장의 부하가 아니다. 뭣보다 더는 작전의 성공 가능성을 점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나는 파티원들을 데리고 강에 놓인 다리를 달려서 건넜다.
“그대여,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가 가느냐?!”
“아니, 나도 몰라! 그래도 영문은 모르겠지만 저 새끼들이 민물을 건널 수 있다는 건 확실하잖아! 그러면 족장 쪽이 순식간에 뚫려버릴 거야!”
이 작전은 누켈라비가 민물을 두려워한다는 정보를 전제로 짰다. 전력 비율은 족장 쪽이 가장 낮았다.
말하자면 상성 빨만 믿고 롱스톤을 잡기 위해 치코리타를 꺼내든 상황!
거기서 롱스톤이 사실은 불꽃 타입이었다거나 하면, 약점을 찌를 생각에 의기양양하던 치코리타는 순식간에 꽁치 조림의 순무가 돼 버린다!
“우두머리를 토벌할 주요 부대를 빼면 족장 쪽에 붙은 전사들은 별로 뛰어나지 않아!”
주술사인 족장이 전사장 다음 가는 실력자이기 때문에, 그 방향에는 족장 외의 실력자가 없다.
사냥 중에 일어날 사망자를 줄이려면 마을의 주 전력은 추격해서 토벌하는 쪽에 투자하는 게 맞으니까.
하지만 그 당연한 선택 탓에 지금은 족장 쪽의 전력이 좀 많이 낮았다. 누켈라비가 2~3마리만 덤벼들어도 진형의 한쪽이 뻥 뚫린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하이로메인이나 앨리스? 누켈라비에게 쫓겨서 죽을 뻔 하던 그녀들에게 분전을 바라는 것은 사치였다.
다나는 바람에 날리는 머리를 넘기면서 외쳤다.
“민물을 부른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마법이든, 마나를 꽤 많이 쓸 건 자명해! 족장이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가 기습을 당했다간 우두머리를 놓친다!”
“놓치면 초원에서 다시 만날 각오를 해야겠네요☆!”
“쯧, 그렇지! 차라리 진형이 무너지기 전에 총력전을 거는 게 나을 듯 하구나!”
파티의 의견은 강변을 포기하고 습격하자는 결론으로 집약되었다. 나는 숲으로 뛰어들기 전에 지시를 하달했다.
“베로니카! 날아서 정찰할 수 있겠어?! 누켈라비가 5미터 급의 덩치라면 하늘에서도 움직임이 보일 텐데!”
“숲이 너무 넓구나! 내 눈으로는 힘들 것이다!”
아, 젠장. 그렇지. 나는 머리를 헤집었다. 베로니카는 마나를 쓸 순 있어도 본직이 마법사다.
그리고 나는 작은 동물 정도라면 몰라도, 날개 달린 생물로 변신해서 날아다니는 건 힘들었다. 변신 마법의 적성이 낮은 게 한이다.
“베로니카! 나를 태워 줘!”
그때 프랑이 반지를 감싸쥐며 소리쳤다. 베로니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서 등에서 날개를 펼쳤다.
흰색 로마니아 풍 드레스가 벌려지면서 까마귀 같은 검은 날개가 펄럭였다. 베로니카는 프랑을 품에 안고 한 번에 숲의 나무를 뚫고 비상했다.
“뭐 보이는 거 있어?!”
“저 앞에서 나무가 계속 쓰러지는 중이야! 거리가 조금 있는데 싸움 소리도── 읏!”
공중에서 외치던 프랑이 신음했다. 나는 숲의 나뭇잎 사이에서 하늘을 엿보았다. 검은 물보라 같은 마나가 반원을 그리면서 우리 아내들한테 덮쳐들고 있었다.
“노르, 동서쪽! 사람의 기척이야!”
“피하마! 꽉 붙들거라!”
날개짓을 하면서 베로니카는 원거리 참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마법사인 그녀의 기동력을 생각하면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다시 말해서, 프랑이랑 베로니카가 크게 다칠 뻔 했다는 소리였다.
“이 시발, 어떤 새끼야!!”
다나도 빡쳤는지 으르렁대면서 공격이 날아온 곳에 빛을 발사했다.
공격 마법이면 좋겠지만 평범한 랜턴 마법이다. 그래도 그 효과는 톡톡히 보아싿. 나뭇잎의 그림자에 숨어있던 새끼가 환한 빛에 정체를 드러난 것이다.
소름 끼치게 생겨먹은, 피부 뿐인 인간!
누켈라비의 인간형 상반신과 비슷하지만 달랐다. 저기 저 과학실 인체모형 새끼는 두 발로 서 있었다!
“Kiiiiiiiiiiiiiiiiiii──!!”
화이트보드를 커터칼로 긁는 것만 같은 좆 같은 포효!
그 새끼가 바다 쇠로 된 낫을 들었다. 나는 눈을 부릅뜨며 있는 힘껏 살기라는 걸 발사해 보았다.
‘다나나 라리루라가 노려지면 곤란해!’
그녀들은 발이 느리다. 다칠 위험을 생각해서 내가 탱커로 나서는 게 맞다.
거창하게 말해봤자 살기란 것도 따지고 보면 몸 밖으로 흘러넘친 마나 아닌가. 터져나오는 살기에 인간 누켈라비는 누가 더 위험한지 우선 순위를 판가름한 듯 했다.
─슈카가가각!
내가 노렸던대로 참격의 어그로가 나한테 튀었다.
날아오는 참격! 나는 조금의 어려움도 없이 피해냈다. 별로 똑똑한 새끼는 아니었다. 속도가 이만큼 느리면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이점이 없는데 말이다.
“KLlllllllrrrryyyyy──!!”
“지랄 말고 손바닥 대!!”
창을 휘둘렀다. 센트리건처럼 서서 참격을 날릴 줄밖에 모르던 가짜 누켈라비의 팔이 낫을 쥔 채로 잘려나갔다. 나는 착지하면서 지시했다.
“다나! 언데드 퇴치 마법!”
“빛의 검(Claiomh Solais)!!”
다나는 악령에게 이 마법은 통하지 않는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시킨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몸에 새겨둔 마법을 즉시 뿜어내는 다나. 얼스터 드루이드 가문의 비전(秘傳) 마법은 눈 깜짝할 사이에 펼쳐졌다.
축소시켜서 발사한 빛의 검이 적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썩은 포도를 터트리는 것처럼 기이한 피보라!
가짜 누켈라비는 그 마법에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은 것처럼 단말마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다나는 자기가 공격하고도 안 믿기는 것처럼 당황했다.
“뭐야, 이게 왜 통해? 설마 이 새끼 언데드였어?”
“언데드의 뜻이 움직이는 시체라면, 이 새끼도 언데드겠지.”
나는 잠깐 멈춰서 근처의 나뭇가지를 잘라냈다.
죽창 비슷하게 예리한 단면으로 누켈라비의 배를 찔렀다. 내가 마법을 써도 불이 안 붙을 정도로 습한 몸체에서는 물이 흥건하게 묻어나왔다. 나뭇가지는 금방 젖어버렸다.
나는 그 시체를 점검하고서 중얼거렸다.
“……영혼은 남지 않았군. 플래시 골렘 같은 건가.”
영혼이 들어 있는 언데드라면 나랑 접촉했을 때 성불했을 것이니 말이다.
이건 말하자면 움직이는 박제 같은 거였다.
켈피라는 악령에다가 시체를…… 아마도 인간의 익사체를 연결해 붙인 그로테스크한 인형이다.
나는 뉴런을 적시는 불쾌함에 인상을 썼다. 무슨 연쇄살인마가 사람 가죽으로 만든 소파를 감식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건 평범한 동물이 벌일 법한 짓이 아냐.’
동물 중에서도 잔혹한 생물은 많다.
예를 들어서 아델리 펭귄이나 일부 침팬지처럼 지능이 높은 생물은 먹이나 동족에게 우리 인간만큼 잔인한 짓거리를 서슴없이 해댄다.
‘하지만 그런 새끼들도 다른 생물로 자기 모습을 본딴 장난감을 만들거나 하지는 않아.’
고양이는 배고프지 않아도 사냥한다. 그건 순수한 재미를 위해서다.
나는 이 ‘박제 장난감’에서도 그와 비슷한 기척을 느꼈다.
인간의 시체로 자길 흉내낸 장난감을 조립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니. 그게 무슨 뜻이겠는가.
그건 이 장난감의 제조자가 우리 같은 인간들과는 도저히 상종할 수 없을 만큼 사고 방식에 차이가 있단 소리였다.
그야말로 악령이라고 불릴 만큼 말이다.
“……달리자. 이 새끼는 절대 살려두면 안 돼.”
시체를 욕보이는 것도 문제인데 그걸 넘어서 아예 멀쩡히 두 눈 뜨고 살아있는 인간까지 죽이는 놈이다.
‘그렇게 죽은 인간으로 장난이라도 쳤겠지. 좆 같은 새끼.’
그거야말로 마을 사람들이 외지인에게 창까지 들이밀면서 출입을 거부한 이유일 것이다.
얼스터 인들의 마을에서는 추격자를 피하기 바빠서 ‘가지고 놀’ 틈이 없었던 모양인데, 족장이 죽고 마을의 전력이 반감한다면 이 주변을 제 집처럼 쏘다닐 게 분명했다.
우리는 수풀을 헤집으면서 속도를 올렸다.
정갈하게 숨을 들이쉬는 콧잔등에 짠내가 스쳐 지나갔다. 내륙지방까지 불어올 리가 없는 바닷바람의 냄새다. 우리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전투를 준비했다.
그렇게 달리길 잠시. 낮은 절벽에서 굽어보는 위치에 멈춘 우리는 목표로 삼던 상대를 발견했다.
[Uuuuuu…….]
크다.
나는 한숨을 쉴 뻔 했다. 5미터는 무슨. 8미터는 찍겠구만.
거의 2층짜리 하모니마트가 걸어다니는 느낌이다. 그 폭도 높이도 장난이 아니다.
손바닥으로 인간을 집으면 다 큰 어른이 애들 장난감 로봇이라도 갖고 놀듯 비틀고 뜯어낼 수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