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8화 (298/1,009)

모습은 우리가 잡아온 가짜 누켈라비와 거의 같았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살가죽을 벗기다가 말아서 커텐처럼 늘어져 있던 ‘장난감’들이랑은 달리, 그 새끼는 온 몸의 가죽이 다 벗겨진 모습이었다.

나는 그게 저 진짜 누켈라비가 ‘조립’을 하다가 귀찮아져서 작업을 내팽개친 결과물이라는 것을 눈치깠다.

왜냐하면 저 아래에는 10마리는 돼 보이는 박제 장난감이 민물을 건너며 족장 일행을 습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Woooooooooooooooom!!!”

“잔느!! 뒤로 물러나!!”

앨리스가 전사들에게 받아온 방패로 민물을 건넌 언데드를 후려갈겼다.

─퍼서석!

상성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언데드 누켈라비는 댓번에 골로 가버렸다.

“족장님을 지켜라!!”

“방진을 유지해!!”

물론 신성 마법의 달인인 유니콘이라도 팔은 2개다.

앨리스는 아비두스 새끼처럼 결계를 치지는 못하는 건지, 그녀가 막지 못한 언데드 누켈라비를 4인의 전사들이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전황은 안 좋다. 족장과 하이로메인은 숲에 만든 강을 유지하기도 벅찬 건지 역습을 가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만약 가짜들을 상대하겠다고 민물을 치워버리면 저 커다란 덩치의 본체와 맞다이를 떠야 하니까.

시발, 스텔라는 어디서 뭘 하는 거지? 죽은 건 아니겠지?

나는 빠르게 눈알을 굴리면서 심념으로 속삭였다.

【다나. 저 밑에다가 빛의 검을──】

그렇게 속삭였을 때였다. 사람을 한 입에 삼킬 것 같은 누켈라비의 머리통이 이쪽을 향했다. 드러난 갈비뼈가 호흡을 하는 것처럼 벌렁거렸다.

누켈라비의 팔이 찬장의 조미료라도 짚는 것처럼 재빠르게 덮쳐든다!

“조졌다!! 다들 물러나!!”

나는 지시하면서 무영창으로 <번개의 화살>을 즉발했다.

“<부여(Enchant)>!!”

창날의 마법 강화 효과를 실어서 휘둘렀다. 손바닥에 작렬하는 높은 전압의 전류에 누켈라비가 주춤했다. 나는 기겁을 하면서 백 스텝을 연발했다.

─쿠과과과광!!!

몸을 뺄 틈은 벌었지만 경악으로 입이 딱 벌어졌다.

누켈라비의 팔이 암석 절벽을 쥐어뜯어낸 것이다. 존나 무슨 백설기 떡이라도 뜯어먹는 것처럼 간단하게 말이다!

존나 저 손아귀에 잡혀갔다간 설날 송편 빚듯 손바닥으로 살살 굴리기만 해도 인육 눈사람이 돼 버리고 말 것이었다!!

[Haaaa hah haha hhaa HAha!!!]

누켈라비는 인간의 웃음을 흉내내면서 팔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지진이 터진 것처럼 절벽이 흔들리고 발판이 무너졌다.

나는 찰나의 부유감과 그 뒤를 따르는 중력의 인도를 재빠르게 감지하고 안색이 파래졌다.

마나를 짜내려다가 멈췄다. 증기 분출로 뒤로 뛰어볼 생각이었는데, 내게 덮쳐드는 손바닥이 보인 것이다.

“씨이이이발!! 역분사 물로켓!!!”

─푸화아아악!! 나는 증기의 분사 방향을 밑으로 설정했다. 중력 가속도만으로는 피할 각이 안 나왔기에 추락의 충격을 늘리더라도 회피를 우선한 것이었다.

“선배!!”

망치 투척과 <마법의 화살>이 틈을 벌어주었다.

손바닥이 늦어진 틈에 나는 대쉬했다. 붕괴하는 암석들을 밟고 수증기를 뿜어내는 기어 세컨드 상태로 지면으로 달려나갔다.

사실 말이 좋아서 달려나간 거지, 그건 곤두박칠치는 것에 가까웠다.

이대로 가속도까지 붙은 채로 떨어지면 아무리 나라도 몸 성하게는 못 버틴다! 하지만 멈추면 누켈라비의 공격에 맞아 뒤질 것이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이지선다!”

그렇다면 더 생존률이 높은 쪽을 고르는 게 당연했다.

나는 등허리에서 풀 액셀의 증기를 분사했다. 지면이 무슨 8배속 영상처럼 가까워졌다.

이건 최소 복합골절이다! 나는 야수회귀의 방어력을 최대한 짜내며 단호하게 기합을 내질렀다.

“응급실각데샤아아아앗!!!”

─쿠우우우웅!!

나는 유명무실한 낙법을 취하면서 바닥을 굴렀다. 소리는 요란했어도 충격은 적었다.

어쩌면 그만큼 내 몸이 튼튼해져서 그런 걸 수도 있는데, 감회가 새로울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가짜 누켈라비들이 내 주변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Ssyooooooooooooo!!”

“Cuuuuuuuuuuuuuuuuth!!”

윈드밀을 돌면서 일어난 나는 창으로 낫을 받아쳤다.

이럴 때가 아니면 남아도는 힘을 어따 쓰겠는가. 싸움이란 장점을 앞세우는 놈이 이기는 것이었다. 나는 창을 튕겨내며 2획의 一자를 그렸다,

싹둑─!

기다란 창날이 켈피 부분의 말대가리를 동강냈다.

역시나 켈피 쪽이 본체였는지 말의 머리가 날아가자 시체 부분의 움직임은 여실하게 허접해졌다.

그래도 이대로 방치하면 참격을 마구 뿌려댈 것이기에, 난 그 새끼들도 확실하게 사살했다.

“썬더 볼트 템포!!”

창의 룬으로 강화한 <번개의 화살>을 부채꼴로 흩뿌렸다.

물 타입이라서 그런지 전기에 쥐약인 가짜 누켈라비들은 그 위용에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제압한 2마리를 죽이고 뒤로 물러났다.

─서거거거걱!!

후퇴하면서 민물을 넘은 가짜 누켈라비들을 섬멸한다.

넓은 초원에서 달리기 싸움을 한다면 몰라도, 여기는 푸른 초목이 빽빽한 숲이었다. 거동이 제한되는 장소에서 맞붙으면 이까짓 새끼들은 좆도 아니다!

“노르드 님!”

“족장님! 스텔라 씨는요?!”

“북쪽에서 발이 묶인 듯 합니다!!”

뭐가 길막을 하고 있는지는 상상이 간다. 오는 길에 봤던 급조한 누켈라비들! 그 대충 만든 킬링 머신들이 스텔라를 막고 있는 것이겠지.

‘오러는 소모가 커. 조력은 기대하지 말자!’

검에 오러를 씌운다면 저까짓 놈들이야 두부를 썰듯 죄다 족쳐놓을 순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서둘러도 스텔라가 도움이 안 된다. 몸의 마나가 동나면 병신이 되는 건 마법사만이 아니잖은가. 우린 당장 여기 있는 사람들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단 뜻이었다.

“빛의 검!!”

그때 절벽에서 다나가 언데드 퇴치 마법을 발사했다.

으르렁거리면서 쏘아낸 마법은 광범위를 빛으로 감싸면서 민물을 넘으려던 가짜 누켈라비들을 일소했다.

[Suuuuu…….]

숨을 내쉰 누켈라비가 절벽을 노려보았다. 자기가 만든 장난감을 부숴진 것에 분노한 듯 했다.

“미안!! 나 방금 걸로 마나 동났어!!”

“물러나거라, 다나!!”

짧은 교류 끝에 베로니카와 라리루라가 영창을 끝낸 마법을 뿜어냈다.

강력한 마법의 파도가 놈에게 쏟아졌다. 맞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누켈라비는 뒤져나간 시체 중에 멀쩡한 것들을 골라서 그 궤도에 던졌다.

우리 파티의 폭딜이 켈피의 몸통은 터트리면서 소멸했다. 그래도 헛수고는 아니었다. 내가 민물을 건널 시간은 벌어주었으니까 말이다.

“족장님! 이 강, 앞으로 얼마나 유지됩니까!”

“길어봤자 10분이에요! 하이로메인이 독에 당했어요!”

독이라고? 이 시발, 저 새끼 독도 써?

뒤를 돌아보자 마법을 서포트하는 하이로메인이 낯빛이 죽은 사람 같았다.

앨리스는 다나의 마법이 가짜 누켈라비를 치워버린 덕분에 여유가 생겼는지, 방패도 던져버리고 울면서 그녀를 치료했다.

[Huuuck!]

누켈라비의 말대가리가 숨을 삼켰다.

그 새끼는 미간에만 붉은 외눈이 자라나 있었는데, 고래를 닮은 주댕이에서는 유독해 보이는 검은 기체가 일렁거렸다. 나는 이를 악물고 마나를 짜냈다.

─푸화아아아악!!

말대가리가 독 브레스를 뿜었다.

나뭇잎이 삽시간에 시들어버릴 정도로 유독한 가스!

그걸 예측한 나는 절대천공영역의 밑준비를 응용해서 바람 장막을 펼쳤다. 3가지 마법이 걸린 창이 풍차처럼 돌면서 그 브레스를 밀어냈다.

“아니 씹?!”

질병을 일으키는 숨결을 막은 나는 흠칫했다.

누켈라비의 외눈이 안광을 빛내면서 또 시체를 집어들었기 때문이다.

─뿌지직!

내 궁극기의 시전 모션만 보고도 위험성을 눈치깐 지능도 놀라웠지만, 진짜 놀라운 건 그 다음이었다.

놈은 자기가 만든 장난감을 손바다긍로 짓이기면서, 마치 강속구를 노리는 투수처럼 오버 핸드로 치켜들었던 것이다!

[──방어 준비해요! 빨리!!]

나는 얼스터 말로 외치면서 풍차 돌리기를 멈췄다.

저런 무거운 투사체는 이 초식으로 막을 수 없었다. 소름이 돋으면서 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감각에 손끝이 시렸다. 내 두 눈은 투사체를 꿰뚫듯 크게 부릅뜨였다.

바람을 터트리면서 누켈라비가 시체를 흩뿌렸다.

──겪어본 적은 없지만 들은 적이 있다. 사람 주먹만 한 우박은 문명화된 거리조차 갈아버리는 끔찍한 자연재해라는 얘기를 말이다.

누켈라비가 시전한 시체 폭발(물리)도 거기에 준하는 파괴력을 갖고 있었다. 나는 켈피의 시체 조각이 대포알처럼 날아드는 걸 이를 악물고 받아쳤다.

후와아아아악─!!

팔이 타는 듯 뜨거워졌다. 미스릴 창이 연거푸 휘둘러지자 보름달 같은 은색 빛이 피어났다.

초고속 휘두르기 6연발로 시체 포탄을 받아치자 근육통이 온 듯 팔이 저렸다.

무거운 투사체를 받아치는데 특화한 반격기 제 3품새가 아니었다면 절대 멀쩡하진 못했을 것이다. 맨몸으로 받았으면 내장 파열도 일어날 수 있엇다.

실제로 뒤에서 뭐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족장과 두 랩실 시스터즈는 멀쩡하니까, 아마 얼스터 전사들이 채 막지 못하고 절명한 듯 했다.

족장의 표정을 보니까 내 생각이 맞은 듯 했다. ─퉷! 나는 입맛을 씁쓸해 지는 걸 느끼며 침을 뱉었다.

“……개시발럼이, 야구 존나 조까치 하네.”

누켈라비는 주댕이가 남들보다 2배로 많은 주제에 아가릴 싸물었다. 대신 시체를 집으려는지 바닥을 살펴댔다.

좆 같은 일이지만 더 이상 민물은 방패가 되지 않았다.

저 씨발럼이 진심 빡겜 모드가 된 이상, 정면에서 배때기를 쑤셔주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 가만히 있어, 씨발 놈아!! 내가 빠따로 대가리 깨 줄 테니까!!”

나는 창대뛰기처럼 민물을 건너뛰었다. 파티원들이 절벽을 우회해서 내려올 때까지는 내가 시간을 벌어야 했다, 족장이 소리쳤다.

“하이로메인! 싸울 수 없다면 어서 물러나세요! 저도 노르드 님을 지원하겠습니다!”

“후우……! 적어도, 이걸……!!”

내가 달려들자 누켈라비는 다시 독무(毒霧)를 뿜어냈다.

나는 창에 <구름 소환>을 발라서 걷어내려다가, 코앞에서 독무가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지는 걸 보고 자세를 바꿨다.

‘바람막이의 주술인가!’

하이로메인이 마차의 빵꾸를 막았던, 바람을 막는 마법!

분사력이 낮은 입냄새 브레스 정도는 이걸로 막을 수 있을 것이었다. 박사님답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 판단이다. 나는 누켈라비가 브레스를 멈추는 사이에 그 발치로 대쉬했다.

“남들보다 곱절은 많은 다리! 하나 쯤은 사회에 환원해라!”

말의 다리를 노리고 휘둘렀지만 누켈라비는 다리를 들어서 쉽게 피해버렸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개미친 씹팔! 평범한 말이 보여줄 수 없는 유연성이었다!

높이 들린 다리가 내 대굴빡을 깨부수려고 내려찍혔다.

하지만 나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반격기 제 4품새로부터 공격기 제 1품새로의 연계기.

“──위위격라(偉威擊拏)!!”

운동 에너지를 상쇄하고 창을 휘둘렀다. 누켈라비 새끼는 야생마였기에 발바닥에 편자도 없었고, 그 두툼한 바다 말 새끼의 발은 세로로 쩍 갈라졌다.

[Poooooooooooo──!!!]

레고를 밟은 것처럼 포효하는 누켈라비!

킬각이었지만 나는 창을 붙들고 덤블링 회피를 연발했다. 안 그래도 무리를 한 팔로 저 미친 말 새끼의 킥을 상쇄시키자 손에 힘이 안 들어간 탓이었다.

“새끼, 말 새끼답게 킥력 하나는 오지는군.”

어쩌면 저 새끼도 하체충일지 모른다. 인간처럼 상체보다 하체의 힘이 센 것이다.

물론 그래봤자 발바닥이 반갈죽 됐으니까 이젠 의미 없다. 4족보행 생물이 달리기에 유리하다지만 저 발로는 절대로 못 뛴다.

자기도 그걸 알기 때문일까? 누켈라비는 이제 완전히 나만 바라보는 마초 바라기가 되었다.

[Yoooooooooooooooooooouuubbbb!!!]

광분한 누켈라비가 붕쯔붕쯔 펀치의 자세를 펼쳤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누켈라비의 등 뒤쪽 나무에서 소리소문 없이 도약하는 생물을 발견했다. 피하거나 반격하지 않고 <번개의 화살>을 쏜 건 그래서였다.

─파즈즈즈즈즉!!

싸이오닉 스톰이 날뛰는 물 타입 포켓몬을 마비시켰다.

얼스터의 전사장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오러를 감은 대검으로 그 새끼의 팔 한짝을 몸통이랑 빠이빠이 시켜버린 것이다.

[Aoooooooooo!!]

말고기 타타키가 된 팔이 떨어지고 누켈라비가 로데오하는 말처럼 날뛰었다. 그 새끼한테서 거리를 둔 그녀가 외쳤다.

[족장! 무사한가!]

[스텔라!]

가짜 누켈라비들을 뚫고 왔는지 상처가 가득한 스텔라!

그녀는 족장과 후퇴하는 랩실 시스터즈, 그리고 죽은 시체들을 순식간에 눈에 담고 으르렁거렸다.

[대충 상황은 알았다. 이번에는 안 놓친다, 악령!!]

[Aaaaaaa!!]

누켈라비가 앞발로 바닥을 찍었다. 그러자 검은 물보라가 간혈천처럼 쏟아졌다.

나는 독인 줄 알고 피했다가, 바닷바람 같은 냄새를 맡고 섬칫한 예감을 느꼈다. 강의 악령이라는 켈피 새끼가 강가에 들어가자 상처가 회복했던 게 떠올랐던 것이다.

[스텔라 씨! 저 씨발럼 냅두면 회복합니다!!]

[회복? 그건 안 될 소리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