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9화 (299/1,009)

나랑 스텔라는 위험을 감수하고 대쉬했지만 날뛰는 커다란 발굽을 전부 피할 수는 없었다.

뭐 시발 의도를 가지고 노리는 거면 어디로 날아오는지 예측이라도 되지, 아예 무박자 난타를 갈겨대니까 파고들 틈이 없다!

‘좆 됐다! 회복하게 두면 지구력 싸움이 되는데!’

그건 좋지 않았다. 뭐가 좋지 않냐면, 싸우다가 바로 모가지를 쳐 따지 못하면 누켈라비가 뒤도 안 보고 튈 거라는 점이 그랬다.

‘지금은 빡쳤으니까 날 죽이고 튀려 들겠지만, 진짜 뒤질 것 같으면 계속 싸울 리가 없어.’

인간의 전술에서 도망은 36계다. 그만큼 안 좋게 여기는 전략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동물들한테 도망은 좆도 부끄러운 선택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야생에서 상처는 죽음으로 이어지니까.

‘원래 저딴 사악한 새끼들은 남이나 좋다고 괴롭혀대지, 지 몸은 금처럼 여기는 법!!’

저 말대가리 새끼에게 반자이 특공 사무라이 정신을 바랄 수는 없었다.

1번 회복하게 두면 2~3번씩 회복 패턴을 갈기다가 못 이길 것 같으면 독가스를 뿜어대면서 튀어버리고 만다! 스텔라도 그렇게 여러 번 놓쳤다지 않던가!

저 새끼에게 등에서 월광검을 뽑고 검성 누켈라비가 되는 3페이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제가 움직임을 막겠습니다! 스텔라 씨는 말 모가지부터 떨궈주세요!]

[그만둬라! 밟히면 죽는다!]

내가 달려들려고 하자 스텔라가 나를 만류했다.

[독무는 저만 뚫을 수 있습니다! 하이로메인 씨의 주술이 끊기기 전에 해야 돼요!]

[너는 오러를 못 쓴다! 그 신체강화 마법으로 몸은 지킬 수 있어도, 무기가 부러진다! 그러면 죽을 수 밖에 없다!]

역시 이상한 말투에 비해서 의외로 현명한 사람이다. 내가 걱정하던 문제를 바로 찝어내다니, 전사장은 노름으로 딴 게 아니라는 뜻일까.

그래도 나는 그녀의 손을 떼어내면서 웃었다.

[예. 저는 오러를 못 씁니다. 하지만 다른 마법을 쓸 수는 있죠.]

스텔라한테서 배운 기술들을 조합했을 때, 나는 신 기술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야수회귀와 비슷한 짐승 빙의 주술과 오러의 실연! 2개의 지식과 경험이 내 안에서 녹아들면서 하나의 기술로 승화되어갔다.

나는 룬의 마나를 끌어올리며 뇌까렸다.

【──ᛒ(Berkanan).】

야수회귀의 형상이 변화했다.

내 몸을 덮은 녹색 마나 코팅이 창까지 뻗었다.

요령은 타뷸라를 족치고 얻은 마나 손톱이랑 비슷하다. 내 마나를 변화시키는 룬으로, 야수회귀의 강화의 적용 대상을 창으로까지 늘리는 것이다.

나는 야매 드루이드이며, 야매 전사이고, 야매 꼴마초이자, 야매 고고학자였다.

‘그렇다면 내가 도달한 전사의 궁극점, 오러 또한 야매이면 된다.’

──선학께서 이르길,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라고 하셨다.

“오러를 못 쓰면 마나 코팅을 쓰면 되잖아?”

나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던 말을 읊조렸다.

공방력이 강화된 창은 ᚨ(Ansuz)의 룬이 새겨진 창날로부터 강렬한 마나의 빛을 뿜어냈다. 나는 그 광채를 휘두르면서 포효했다.

“횟감으로 만들어주마, 해마-휴먼 새끼야!!”

──오러의 용도란 무엇인가.

만약 누군가가 그렇게 물어보면 코가 높고 허리가 뻣뻣한 달인들은 신묘한 이치가 어쩌니 깨달음이 어쩌니 하는 소리로 뜬구름을 잡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했다.

‘오러라는 건 결국 공격력을 올려주는 버프야.’

내가 엔리르랑 싸웠을 때를 생각하면 된다.

오러 사용자랑 비사용자의 차이는 전사끼리 붙었을 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시발 맞으면 뒤지는데 막아도 뒤진다니? 처음으로 머스킷 총 앞에 말을 타고 달려간 기사들도 이보단 승산이 있었을 것이었다. 걔들은 적어도 접근하면 이겼으니까.

전사들에게 무장의 중요도는 크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지 목숨이 걸린 승부에서 맨손으로 오면 그게 병신이지 뭐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무기의 내구도를 갈아버리는 오러는 존나게 위험하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인 것처럼 오러에는 오러를 부딪혀야지 무기가 버틴다.

미스릴 클래스를 넘는 몬스터랑 붙을 때도 얘기는 다르지 않았다. 강철을 떡처럼 주무르는 새끼들이랑 붙는데 무기의 튼튼함만 믿기에는 좀 불안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건 반대로 생각하면, 무기만 버텨주면 굳이 오러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지.’

솔직히 오러는 유지비용이 크다. 마나가 아무리 많아도 꽤 부담스럽다.

그러니까 굳이 오러가 아니더라도, 상대의 공격을 막고서 방어를 깨부술 버프이기만 하면 상관 없다.

그 폭론에 가까운 3단논법을, 나는 지금 실전에서 증명하려 들고 있었다.

“기간틱 드릴 스팅거!!”

[Kuaaaaaaaaaaa──!!]

미스릴 창이 누켈라비의 발을 관통했다.

무분별한 스톰핑이 내 머리를 깨부수려고 내려쳐졌다. 나는 차분하게 회피했다. 밟히면 죽을지도 모를 위력의 발굽에도 내 마음에 떨림은 없었다.

사지(死地)에 몸을 밀어넣자 신기하게 마음이 침착해지는 듯 했다.

예전에 예르나를 족쳤을 때, 처음으로 【게르튀르】를 성공했던 그 느낌과 비슷했다.

나는 부드럽게 난폭한 발길질을 피하면서 아무래도 피하기 힘든 공격은 창으로 후려쳤다.

─투콰앙!

반인반마와 지구용사의 격돌!

그 상식을 넘은 충격이라면 창대에 무리가 갈 법도 했지만, 내 창은 삐걱거리지조차 않았다. 야수회귀의 방어력을 도맡는 녹색 마나 코팅의 힘이다.

‘칫.’

하지만 나는 아쉬움에 혀를 찼다.

방어력은 믿음직한데 공격력은 이전과 변함이 없었다. 야수회귀의 신체 강화는 창에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긴 사람의 몸을 강화하는 마법이 창에도 걸리길 바라는 게 욕심이긴 하겠지.

됐다. 내구도 상승이면 충분할 것이었다. 【게르튀르】를 배우기 전부터 무식하게 힘에 맡겨서 무기를 휘두르던 나다. 야만한 힘싸움이라면 특기였다.

그리고 부족한 공격력을 야매로 매꾸는 기술도 말이다.

“<부여>.”

창날에 <번개의 화살>을 바르자 기존보다 배는 두꺼워진 전류가 마구잡이로 튀었다. 마치 발전기에 창을 꽂아넣은 듯 난폭한 번개!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구신의 마나를 몸에 흘렸다.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게르튀르】의 공격기 제 4품새를 펼쳤다.

나는 360도 회전하면서 창을 휘둘렀다.

뇌전을 뿜는 창이 누켈라비를 감전시키면서 4개의 다리의 무릎을 싸그리 박살냈다.

잡졸들에게 포위당했을 때, 전방위 360도에 창을 흩뿌리는 회전 공격!

무리한 동작이니만큼 높은 기술 숙련도와 마나를 요구하는 절기였다.

─덜컥!

수비드 해마 새끼는 짜릿하게 전류를 흘려주자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무릎의 연골이 부숴지고 다리가 꺾이자 누켈라비가 오금을 걷어차인 사람처럼 주저앉았다.

나는 증기를 뿜으면서 백 덤블링을 연발하며 깔리지 않게 피해냈다.

[스텔라 씨!!]

[그래, 참수하기 딱 적절한 높이다!]

다리는 박살내 놨다. 숲에서 뿜어지는 간혈천 같은 바닷물로도 완치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스텔라는 대검에 오러를 감고서 말대가리를 향해 대쉬했다.

덜덜 떨리는 주댕이로 말대가리는 독무를 뿜었다. 발버둥일 뿐이지. 나는 그 독무를 겨누고 풍차를 돌렸다.

“닫혀라, 풍혈!!”

쿠화아아악─!!

뿜어지는 증기의 돌풍!

살상력은 없지만 절대천공영역의 원리로 발사된 증기는 그야말로 작은 태풍이었다. 말대가리의 폐활량과는 비교도 안 되는 바람이 독무를 날려버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조력 고맙다!]

틈을 벌어주자 스텔라가 도약했다. 누켈라비의 말 머리가 피하지 못하게 목 아래에 짓쳐든 그녀는 대검을 참마도처럼 휘둘렀다.

[Kuasss!! Hummmmmm!!!]

누켈라비는 어퍼컷이라도 맞은 것처럼 고개를 힘껏 젖혀서 간신히 참수를 피했다.

반으로 쪼개진 목젖에서 피보라가 뿜어졌지만, 저 정도라면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만약 다리를 회복하게 두면 틀림없이 도망쳐버리겠지.

──그렇기에 나 또한 추가타를 가했다.

반인반마 새끼가 스텔라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에, 나는 그 뒤통수에 뛰어오른 뒤였다.

“반마는 반마답게──”

인간형 상반신이 그제야 눈치챈 것처럼 나에게 자이언트-싸대기를 날리려고 했지만, 이미 늦다.

“──땅을 기어라!!”

창날에서 뿜어진 증기가 로켓처럼 추진력을 더했다.

단순무식한 휘두르기다. 하지만 튼튼해진 창을 믿고 버프란 버프는 전부 실어버린 공격은 절대 경시할 게 못 되었다.

손끝에 생생하게 전해지는, 생물의 살에 파고드는 감촉!

내 창은 두꺼운 근육을 뚫고 혈관을 가르다가 기어이 뼈까지도 분쇄하고 반대편으로 빠져나왔다.

잘려나간 두꺼운 말 머리가 최후의 안광을 뿜어냈다.

─처억! 몰아치는 손바닥을 피한 나는 그 머리에 몸을 비틀어가며 착지했다. 이 대갈빡만 해도 나보다 크다. 발판으로는 충분했다.

‘아직 안 죽었어.’

내 눈빛이 차가워졌다. 진짜 누켈라비는 말 모가지를 자른 정도로는 죽지 않았다.

스텔라는 전투 속행이 불가능하다. 오러를 유지하는데 쓴 마나가 너무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할 수밖에 없다.

나는 거인의 머리를 향해 증기 대쉬를 시전했다.

“뭉게뭉게-순보.”

일반인의 30배 각력(추정)과 수류탄 같은 증기의 폭발력이 내 몸을 대포알로 바꾸었다.

나는 거인을 죽이기 적절한 입체기동을 선보였다. 그 놈의 목젖에 킥을 박아넣고, 반동과 창을 이용해서 목덜미에 착지한 것이다.

스파크를 튀기는 뇌창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구축해주마!!”

나는 포효를 내지르면서 목덜미 아랫 부근에 있는 100cm × 10cm의 공간에 뇌창을 꽂았다.

이걸로 끝낸다.

─쿠르르릉!! 콰과과과광!!

격발시킨 번개가 누켈라비의 척추를 관통했다.

엔리르를 족치고 2배로 늘어난 마나량을 물 쓰듯 쓴 최대 화력의 마법이었다.

[AAaaaaaa────!!!!!]

─파지지지지지직!!

피부가 다 벗겨진 얼굴의 칠공(七孔)에서 스파크가 뿜어져나왔다. 나를 짓뭉개려던 손가락도 목석처럼 굳어버리면서 내 몸에 닿지 못하고 멈췄다.

고대로부터 전설로 전해지는 악마가 다 뭐냐. 거창한 칭호로 치면 나도 어디 가서 꿇릴 것 없다.

이름 뿐인 전설이라면 신화 속 뇌신도 족치고 온 몸인데, 이까짓 말 반 인간 반의 악마에게 쫄 이유가 없었다.

신발을 타고 올라오는 찌릿한 스플래시 데미지를 견디면서 나는 씨익 웃었다.

─퍼엉!

증기의 압축분사로 창을 폭발시키면서 뽑았다. 야수회귀의 방어력이 없으면 엄두도 못 냈을 짓이었다.

반발력을 이용해서 도약했다. 내부에서 폭탄이 터진 것처럼 누켈라비의 모가지에 창을 겨누고 기술을 펼쳤다.

무무역역무(武無亦力無).

─투칵!!

나는 절기를 사용해 거인의 모가지를 헤집어서 쪼개버렸다. 인체에 비해서 전기가 훨씬 잘 통하는 몸은 뇌격에 잘 익어서 두부처럼 취약해졌던 것이다.

팽그르르…….

쿠우웅……!!

거대한 사람의 얼굴은 빙글 돌면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허물어지듯 쓰러지는 누켈라비의 몸체 옆에 착지했다.

야수회귀의 마나를 휘감은 창을 굳게 쥐고서 말이다.

‘생각보다 쉬웠군.’

확실하게 족쳤다는 걸 나는 창에서 마나를 거두면서 내심 중얼거렸다.

내 실력이 올라갈수록 싸움의 결착도 빨라지는 것만 같다. 얼핏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는데, 나보다 세거나 필적하는 적을 상대로도 지진부진한 싸움이 되질 않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뛰어난 달인이라면 상대를 반드시 족쳐버릴 필살기 정도는 갖고 있는 법! 그건 1방의 쎈 공격만이 아니고, 그 필살기를 꽂을 때까지의 흐름도 포함한 것이다.

서로가 맞기만 하면 반피는 날아갈 붕권을 들고서 킬각을 노리는 싸움.

그것이 진짜 달인급 전사들의 싸움일지도 모르겠다.

“이긴…… 겁니까?”

─풀썩. 힘이 풀린 것처럼 앉아버린 족장의 말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마나를 남길 수 있었지만, 그건 현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체력이라면 나보다 더할 스텔라도 지친 듯이 보였으니까.

“싸움 다 끝났다. 누켈라비, 안까지 바삭해졌다.”

“남는 사람들 불러서 제대로 매장해 주십셔. 저거 혹시라도 바다에 담궜다가 부활하기라도 하면 큰일납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족장에게 손을 뻗었고,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노르드 님, 당신 덕분이에요.”

“뭐, 제가 열심히 일하긴 했죠.”

민물을 넘어서 지휘관을 족친다는 누켈라비의 시도는 꽤나 위험했다.

우리도 켈피가 강으로 도망치거나 하지 않았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고, 그럼 사상자는 더 늘었겠지. 운이 따라준 건 사실이다.

물론 내가 좆 빠지도록 노력해서 하드캐리를 한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족장은 쑥쓰러워 하듯 웃었다.

“후후. 솔직하시네요.”

“제 미덕이죠.”

내가 시크하게 대답하자 족장은 표정을 다잡았다.

“선조님들께서 말씀하시길, 선행도 악행도 반드시 보답과 대가가 따르는 게 옳습니다. 답례를 생각하겠으니 절대 저희 몰래 떠나지만 말아주시겠어요?”

“선물 씩이나 주신다는데, 뭐 싫어할 게 있나요.”

고맙게 받아두자.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우리 파티원들이 어디쯤 왔나 보려고 했는데, 그때 멀리에서 전투음이 들렸다.

“……스텔라 씨? 휘하 전사 분들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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