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따지자면 오딘도 변신 마법에서는 로키한테 안 됐을 것 같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어디 물건에 부여해서 매직 아이템으로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요.】
성능 좋은 변신 마법이 걸린 아이템은 진짜 희귀하다.
모습을 바꾸는 아이템이라면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바뀐 몸을 유지하고 움직이는 건 결국 당사자 아닌가.
누구든 비행기 조종석에 앉을 순 있다. 하지만 파일럿이나 기장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재능과 노력이 필요하다.
변신 마법도 같다. 만약 내가 베로니카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변신 아이템을 사용해도, 날개를 움직이는 방법까지는 알 수가 없다.
【예. 그런 단점을 극복할 만큼 수준 높은 마법이 되면, 마법을 담을 매체도 보통 물건으로는 아니되옵니다.】
나는 아델라이데의 무난한 대답에 되물었다.
보통 물건으로 안 된다고? 그럼 보통 물건이 아니면 성능 좋은 변신 마법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인가?
【힘들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사옵니다. 현재 인간족에게 어떻게 전해지는지는 모르겠사오나, 마나 흡수력이 높으면서 물질로서 강인한 소재라면 가능한 일이옵니다.】
현명한 바이콘은 바로 내 의아함을 눈치채고 말했다.
【단지, 거듭 말씀드리게 되오나 무척 어렵습니다.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소재는 몬스터나 광물 중에서도 몹시 희귀하기 때문입니다.】
【미스릴 정도로는 안 됩니까?】
【부족하옵니다. 시도해 볼 가치는 있으나, 인간족의 고대 문명의 기술력으로도 한계는 있었습니다. 무척 많은 양의 미스릴과 복잡한 가공 절차가 요구될 것이옵니다.】
【말씀하시는 걸 보면 성공작 자체는 있었나 보죠?】
【예지자일 적에 드워프의 유적에서 흔적을 보았나이다. 휴대할 수 있는 마도구가 아닌, 거대한 장치에 가까웠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스파이들이 작전을 실행하기 전에 특수분장을 하는 기계 쯤 되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한테는 의미가 없는 성공작이다. 그만한 걸 들고 다닐 수야 없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중요한 질문을 했다.
【그럼 오리할콘이라면요?】
【오리할콘…… 말씀이십니까?】
눈이 동그래진 아델라이데는 농담이라고 여겼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후후. 순도와 양에 따릅니다만, 충분히 가능하겠지요.】
【순도는 높다고 치고, 양은 어느 정도여야 하죠?】
【그, 불순물만 없다면 단검 정도의 양만 되어도…… 진심이십니까?】
내가 진지하게 묻자 아델라이데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리고 내가 석판에 넣어둔 오리할콘 목걸이를 가져오자, 아예 멍하니 입을 벌리고 뻐끔거리게 되었다.
【이, 이, 이걸, 이걸 어떻게? 아직도 ‘중간 가지’에 이만한 순도의 오리할콘이 남아 있었사옵니까?】
【여기 오다가 마주친 악마를 한 마리 잡고 에린의 후예들한테 받았습니다.】
【……후, 훌륭하시옵니다. 이토록 가치가 높은 지보를 답례로 받으셨다고 하면, 그 악마라는 존재도 필시 범상치 않은 난적이었을 듯 합니다.】
【베로니카는 그것보다 10배 정도 무거운 오리할콘 기둥도 갖고 있는데요.】
【………………10배, 말씀이십니까?】
아델라이데는 경악하다가 기어이 정색했다. 물론 내 말을 못 믿는 건 아니었다.
‘베로니카 이 녀석, 오리할콘 기둥 얘기는 쏙 뺐었구만.’
이거 미안해서 어쩌냐. 무표정이 되었던 아델라이데는 화사하게 웃었다.
【후계자님. 제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으로 좋으시다면, 부족한 솜씨로나마 이 보배를 가공하여 헌상하고 싶사옵니다. 부디 윤허하여 주시겠나이까?】
【부탁은 제가 해야죠. 오래 걸릴까요?】
【아니옵니다. 제가 비록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마는, 그 건방진 반푼이── 실례했습니다. 베로니카보다 손이 느려서야 제 몸이 흐르는 유희신님의 피가 울 것입니다. 3일 안에 완성해 보이겠나이다.】
아델라이데는 그 말과 겸손한 인사만 남기고 떠나갔다.
쿵…… 쿵…….
왠일로 내 앞에서 발소리까지 내는 걸 보면 화가 좀 많이 난 모양인데, 마법진을 연구하고 있을 우리 시종님한테 불벼락이라도 떨어질 듯 했다.
나는 그녀를 떠나보내며 성호를 그었다.
“미안, 베로니카. 그치만 내 잘못 아님.”
글게 누가 스승님한테 숨기래? 나는 픽 웃어버리고 하던 일로 돌아갔다.
야수회귀의 마나 코팅을 띄우고, 그걸 오딘의 눈으로 본다.
아델라이데랑 얘기하면서 머리의 피로가 좀 가셨지만, 마법 해석 능력을 발동하자마자 뇌가 민트 탄산수에 절어지는 듯 했다.
“구와아아아악……!”
대충 10초 정도 버텼을까. 시력까지 조져지는 착각마저 들어서 그냥 끊어버리고 엎어지는 나였다.
“쓰벌, 더럽게 어렵네.”
그래도 해 볼 가치는 있었다. 야수회귀의 마나가 예전보다 자유롭게 움직여가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거기에는 ᛒ(Berkanan)의 룬도 한 몫 했다.
지난 4일을 투자해서 ᛒ(Berkanan)의 룬도 만다라를 띄울 수 있을 만큼 숙련도를 올려놓았다. 만다라에 호응해서 마나 코팅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벌떡! 눈을 감고 일어난 나는 마나의 이동에 집중했다.
‘야수회귀의 이펙트는 너무 화려해.’
온몸을 두르는 형광색의 마나 코팅!
그 화려함은 ᛒ(Berkanan)의 룬으로 색깔이나 형태를 바꿔봤자 존나게 눈에 띄었다. 로마니아에서 내 신분을 숨기려면 일단 이 과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됐다.
그래서 나는 그 마나 코팅을 【게르튀르】처럼 신체의 안, 피부 아래로 밀어넣어 볼 생각이었다.
‘외골격처럼 몸을 덮는 대신에, 내골격 겸 튼튼한 피부로서 야수회귀의 마나를 체내에 스며들게 한다.’
당연히 이러면 방어력은 낮아진다.
패딩을 와이셔츠 안에 입으려는 거랑 똑같으니까. 두께도 얇아지고 파워도 낮아지겠지.
뭐, 낮아지는 힘이라면 【게르튀르】로 커버치면 되니까 별 문제는 안 된다.
‘방어력이 약해지는 거? 안 맞으면 되지.’
그리고 맞아봤자 거인 가죽 갑옷이 있다.
이걸 찢고 나 다치게 할 정도의 적이 나타나면 위장이고 지랄이고 포기하고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었다. 그런 경우는 걱정해봤자 쓸데가 없다.
‘마나 코팅을 몸에 스며들게 한다……!’
슈와아아악─!
ᛒ(Berkanan)의 룬이 야수회귀의 마나를 체내에 밀어넣었다. 나는 마치 주사기에 풍선 펌프를 넣고 누가 밟아대는 듯한 기분에 인상을 썼다.
이걸 참아내기만 하면 의미가 없다. 괜히 집중력만 깎일 것이다. 출력을 낮추면 버틸 만 해지겠지만, 그러면 방어력이 너무 내려간다.
다행히 나는 이 문제의 해답을 알고 있다. 아니, 남자라면 누구든 알고 있을 것이다.
참다간 터질 것 같다? 그럼 어떡해야겠는가.
‘시원하게 밖으로 뽑아야지.’
나는 당겼던 팔을 뻗었다. 폭발적으로 꿈틀대는 이 마나를 손바닥으로 방출시키고, 그 형태를 유지시켰다.
“메탈 그레이몬 궁극 진화!”
야수회귀의 마나는 손바닥에 응축되어서 두꺼운 오러처럼 솟아났다.
내 능력으로는 힘들었던 술식 결합이 4일 간 높아진 이해력으로 결과물을 빚어낸 것이었다.
몸 안을 감싸는 마나 코팅이 느껴졌다.
이 상태에서는 내 피부 역시 강철로 된 것처럼 적의 공격을 막아내겠지.
솔직히 싸우다 보면 외부 코팅 때보다는 자잘한 생채기가 늘겠지만, 그건 감수할 수밖에 없다. 내 상처를 치료해 주면서 날아올 다나의 손바닥 스매싱이 벌써부터 두려워지는군.
‘조금만 더 손봐 둘까.’
나는 아무도 싸움 방식으로 내 정체를 특정할 수 없도록 ᛒ(Berkanan)으로 마나의 색깔도 바꾸고, <타오르는 손길>까지 발랐다.
그러자 극양지기의 푸른 불꽃이 뿜어졌다.
“뭐냐 이 멋진 모습은…! 마치 정파 영웅처럼 늠름하구나!”
이것이… 나의 새로운 모습!
이 상태로 싸운다면 누구도 나를 실딱이 창쟁이 노르드라곤 상상도 못할 것이었다. 나는 시험 삼아서 빈 공간에 야수의 용력이 깃든 손을 휘둘렀다.
─화아아악!!
불꽃과 손톱이 공기를 잡아 찢으면서 섬뜩한 소리를 냈다.
따로 위력을 시험해 보지 않아도 알았다. 이 손톱이라면 최소한 골드 클래스급 공격력은 나올 것이었다.
아니, 아니다. 이건 이미 손톱을 초월했다. 송곳니다.
“이제부턴 혈수마공(血手魔功)이라고 부르겠다!”
아델라이데가 만들어줄 변신 아이템까지 생각하면, 이걸로 우리 파티원들의 활동 이력이 누군가에게 알려질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건 다시 말해서, <편찬대대> 등으로부터 우리의 신분을 숨기며 티르시를 찾아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며칠 뒤.
우리의 베로니카는 드디어 연구 끝에 <공간이동> 마법을 습득하는데 성공했다.
“나의 그대여! 얼른 가자꾸나! 나는 이제 여기 있기 싫다!”
아마 아델라이데도 도와줬겠지만, 베로니카로서는 안 도와줘도 되니까 옆에서 빼액대는 암컷 바이콘 고든 렘지가 없어지길 바랬던 모양이다.
날 붙들고 서럽게 우는 걸 보면 아마 틀림없다.
【아델라이데 씨, 엘카. 잘 지내세요.】
【예. 보필해 드릴 수 있어 영광이었사옵니다.】
【자, 잘 가!】
허리를 숙이는 아델라이데와 엘카 뒤에 숨어서 손을 흔드는 페어리 앤.
저 녀석은 여기 묵는 동안엔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우리가 간다니까 얼굴을 비췄다. 아마 날 피해다녔던 모양이다.
프랑은 작게 웃고서 말했다.
【세 분 모두 건강하세요. 또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사모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남은 수명은 아껴 써야겠는걸요.】
【죽지도 않을 것 같은 녀석이 무슨…….】
중얼거리는 베로니카의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마법진의 위에 올랐다.
이걸 타면 베로니카가 가 본 적 있다는 로마니아의 국경 근처로 <공간이동>이 가능하다는 듯 했다.
베로니카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아델라이데도 가만히 지켜보는 걸 보면 위험하지는 않겠지.
“다들 준비하거라. 현기증이 일 거다.”
슬레이프니르급 퀄리티는 불가능했는지 베로니카가 그렇게 경고했다.
우리는 빛이 뿜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세 사람의 성지 주민에게 인사를 하고, 그 3초 쯤 뒤에는 낯선 숲에 있었다.
현기증이 없지는 않았는데, 뭐 충분히 버틸 만 했다.
장시간 고속버스에 탔다가 내린 정도다.
“──좋았어! 성공! 성공했다!”
기뻐서 점프하는 베로니카. 바이콘들은 신나면 제자리뛰기라도 하는 종족 특성이 있는 걸까.
자기가 마법을 시전한 주제에 베로니카가 가장 기뻐하는 게 조금 우습긴 했는데, 그래도 우리는 낙오자나 건강에 이상 있는 사람 없이 도시 근처에 올 수 있었다.
라리루라는 숲을 대충 둘러보다가 꽃을 한 송이 꺾었다.
“그런데 언니? 바로 도시 안으로 안 간 이유라도 있어요?”
“그랬다간 밀입국이 되는걸? 입국 절차도 그렇고, 도시에도 입출입 기록이 없으면 안 되잖아.”
“아항♡”
프랑이 그리 설명해주자 라리루라는 손바닥을 쳤다.
어느 나라든 간에 밀입국은 중죄다. 티르시를 찾으려면 양지에서도 조사해야 하는데, 범법적인 후환을 남길 수야 있나.
그렇게 우리는 국경에 진입해서 커다란 문을 넘었다.
“지나가십시오.”
제국의 대도시답게 꽤 빡센 검문이었지만, 고양이로 변신한 바이콘을 빼면 우리가 뭐 찔릴 게 있는 것도 아니다. 간단히 통과해서 도시로 진입하는 우리들.
내 품에 안겨진 고양이 베로니카는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도 애완동물 등록이로군.”
“미안하다. 네 신분증을 만드는 건 좀 많이 힘들어.”
위조신분증을 만들려면 영주 수준의 권력자가 영지민으로 조작해 주거나 해야 한다.
당연히 우리 홈 타운인 사르가디스에서 그런 부탁을 하는 건 힘들다. 자칫하면 헨네시스 영주한테 찍히는 수가 있다.
“으음. 그 건으로 하는 말이다만, 그대여.”
베로니카는 꼬리를 살랑대며 말했다.
“이건 저주가 풀렸으니 유용할 거라면서 아델라이데가 이야기해 준 것인데, 사실 내가 당장 신분증을 마련하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닌 모양이다.”
“뭐? 진짜? 어떤 방법이길래?”
이야기를 한 귀로 듣던 다나까지 놀란 듯 물었다. 그러자 베로니카는 잠깐 머뭇거렸다.
“그…… 엘프로 변신하면 된다더군.”
“……엘프?”
“그, 그래. 엘프 종족도 키타이에 국가를 세웠다지만, 대부분 니다벨리르나 고향 도시에서 태어나는 드워프과는 다르게 그들은 숲에서 나고 자라는 이들도 많잖느냐? 그래서 국가에 귀화하는 절차가 마련돼 있다더구나.”
“아아, 그런 거구만.”
장수종족인 엘프다. 무협지의 은거기인처럼 몇십 년 만에 숲에서 빠져나오는 경우도 있겠지.
그런 이들이 유능함을 어필하면 국민으로 받아준다는 걸까. 납득이 가는 얘기였다.
베로니카는 다급하게 변명을 주워섬겼다.
“이건 로마니아의 법률이라더군. 하, 하지만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니지 않느냐? 만약 이 방법으로 신분증을 땄다간 나는 다른 이들 앞에서는 늘 엘프의 모습을 취해야 한다는 건데, 그랬다간 우리 주인님이 불쾌할 것이 자명하다.”
“응? 아냐, 딱히 그렇진 않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부족해서 우리 아내한테 신분증 하나 못 마련해주는 처지인데 여기서 내 고집을 밀어불일 순 없지 않겠는가.
“내가 엘프한테 편견이 많긴 한데, 네가 엘프처럼 변한다고 싫어하진 않지. 당연한 거 아냐?”
사람이 멀쩡하고 착한데 생긴 게 엘프라고 혐오하면 그건 인종차별이다.
생각해 봐라. 여친이 태닝하고 왔다고 ‘왓더퍽?! 내 여자가 니그로가 됐잖아! 헤어져 시발!’ 하면 그게 무슨 씹새끼인가.
“우리 베로니카가 뿔이 없어지고 귀가 길어진다고 이 예쁜 얼굴이나 성격이 바뀌진 않잖아? 지금 그 얘기는 방법 중에 하나로 생각해 두자.”
“……후, 후흥. 그렇지? 나는 내 생김새가 조금 바뀌어도 우리 주인님께서 날 싫어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느니라!”
“네이, 네이. 그렇고 말고요. 알았으니까 얼른 다시 마법진 깔아. 이동해야지.”
우리는 숲으로 들어가서 다시 일회용 마법진을 설치했다.
사용하고 나면 사라지는 마법진이기에 뒷걱정은 없다.
장소를 정하고, 다시 <공간이동>.
이번 이동지는 헨네시스 영애가 우리더러 가 달라고 부탁한 로마니아의 대도시 근처였다. 베로니카는 타오르는 가지를 내리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