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4화 (314/1,009)

“도착이다. 여기서부터 루크레겐스까지는 2~3시간이면 충분하다.”

“아, 정말요? 엄청 빠르네요!”

고향 나라의 숲이라서일까. 라리루라는 잠시 감회에 젖은 듯 굴다가, 금방 사사로운 감정을 털어내고 앞장섰다.

“그렇다면 오늘의 안내는 제 몫이군요☆! 렛츠 고~ 에요!”

기운찬 라리루라를 따라서 이동하자, 과연 베로니카의 말마따나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오? 꽤 넓구만.”

도시 안의 정경을 본 나는 나름 감탄했다.

과연 유서 깊은 나라다운 호화로움이었다. 건물의 지붕부터 색이 통일되어 있고, 길은 넓다. 고층건물도 자주 보이는데 그게 꼴 보기 싫을 정도로 난립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든 구획이 그런 느낌은 아니다.

신성도시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구획의 일부에는 퇴폐적 느낌이 나는 건물들도 많았다.

왼쪽에는 커다란 교단의 총본산.

오른쪽에는…… 카지노인가?

아예 좌우의 양 극단으로 도시의 분위기가 분단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후후~♡ 어때요? 저희 나라가 자랑하는 대도시는?”

라리루라는 웬일로 애국심을 드러내면서 웃었다. 나는 오른쪽의 도시 중에서 서커스단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건물을 몇 개 발견하고 실소를 흘렸다.

내 웃음에 만족한 듯 라리루라는 팔을 벌렸다.

“어서 오세요! 신앙과 향락, 퇴폐와 순례의 도시 루크레겐스에!”

루크레겐스는 티르시가 마지막 족적을 남긴 장소다.

당연히 우리가 최우선으로 도착한 곳도 이곳이 되었다.

정상적인 탐사 방법이라면 티르시가 처음 도착한 도시에서부터 발품을 팔아가며 이 행적을 찾아내야 하겠는데, 그 역할을 대신해 준 사람이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반갑소.”

나 탐정이오 하는 생김새와 패션의 중년 남성이 내게 작게 고개를 숙였다. 술집의 테이블에 앉아서 그를 기다리던 나도 목례로 답변했다.

─찰랑. 적당히 1잔 시킨 술잔을 흔들어 보이는 나.

“좋은 가게더군요. 단골이십니까?”

“점주가 입이 무거운 게 장점이외다. 물론 입이 가벼운 점주도 상대하기 나름으로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긴 하오.”

손가락으로 동전을 만들며 웃는 중년 탐정. 손님 많은 술집에서라면 뒷돈 좀 주고 손님들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걸까. 댄디한 얼굴처럼 베테랑 같은 느낌이다.

‘하긴, 그러니까 헨네시스 영애가 믿고 조사를 맡겼겠지.’

브리타니아 어가 유창한 것만 봐도 그렇다.

탐정 아재는 테이블에 앉아서 술을 시켰고, 술이 오자마자 품 안에 손을 넣었다. 난 테이블을 둘러싼 마나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정적(Silence)> 마법?”

“장사도구 중 하나요. 탐정과 도둑은 표리일체이니.”

프랑을 생각해 보면 백 번 맞는 말이었다. 나는 헨네시스 영애의 전서를 꺼냈다.

“영애께서 말씀하시길, 실력 있는 분이니 믿어도 좋다고 하시더군요. 납득이 갔습니다.”

“고맙소. 흠. 설명은 내게 맡긴다고 되어 있군.”

“편지로는 정보 유출의 위험이 크니까요.”

“현명한 처사요.”

탐정은 도적이 어쩌고 하던 사람답게 전서의 위조 여부까지 금방 간파하고서, 말문을 열었다.

“자, 그럼 어디서부터 설명할까……. 타겟인 티르시 양께서 몰락 귀족의 장녀라는 건 아시오?”

“간략하게나마.”

“상세하게 전하는 것부터 시작하지. 로마니아의 권력 구조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고 믿겠소. 티르시 양의 조부께서는 그 최정점인 원로원 상원의원의 일각이셨소.”

나는 그 말에 눈을 날카롭게 떴다.

원로원의 상원의원.

귀족 중에서도 지체 높은, 로마니아 최고위의 권력층이다.

황제보다는 못해도 평범한 귀족들은 엄두도 못 낼 극한의 권력자라는 것이다.

‘원로원 자체는 황제의 보좌 및 고문이지만, 귀족계층 중에서도 권력이 높은 기관인 건 맞지.’

쉽게 말하면 원로원에 들어갈 수 있는 건 귀족 중에서도 끕 높은 놈들.

그리고 상원의원은 그 귀족들 사이에서 대표로 선발된 사람들이지만, 가진 권력은 의원이 아니라 왠만한 독재 대통령 이상이다.

‘아니, 반대로 말해야 하나.’

그만한 지지세력, 영지, 기반 등이 없으면 상원의원 자리를 꿰찰 수 없다고 하는 게 맞았다. 당연히 같은 상원의원들끼리도 견제하므로 절대권력이라곤 말 못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존나 시발, 티르시 출신이 그 정도로 천상계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찰랑. 술잔을 든 탐정 아재가 말했다.

“10년 전의 원로원 붕괴 사건을 아시오?”

“예. 8명밖에 없는 상원의원이 3명이나 암살당한 사건이었던가요.”

“해외에서도 유명한가보군. 하긴, 큰 소란이 일었으니.”

씁쓸하게 웃은 그는 말을 멈추고 술로 목을 축였다.

“후우……. 원로원의 상원회의는 최소 5명 이상이 존재하지 않으면 기능하지 못한다오. 4명보다 아래라면 의견의 조율이 의미가 없고, 회의실의 고대 문명의 유물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오.”

“그 내용은 민간에도 유명한 얘기죠.”

원로원의 고대 유물. 나도 들어는 봤다.

당연히 군사기밀이라서 뭐하는 유물인지까지는 모른다.

“그렇소이다. 하지만 당시는 3명의 원로원이 목숨을 잃고 1명이 병석에서 오늘내일하던 시기였소. 원로원의 중심세력이 기능하질 못하니…… 폐하께서 숙청의 칼을 들기 좋았지.”

그리 말한 탐정은 너털웃음을 띄웠다.

“물론 나는 그 일에 아무런 사감(私憾)도 갖고 있지 않소. 이해하시겠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뒷다마 깐 걸로 자길 어떻게 할 생각은 말라는 거겠지. 뭐, 나도 이런 아재랑 정치 싸움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티르시의 조부께서는…….”

“숙청 당시에는 무탈하셨소.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 뒤에, 원로원 붕괴 사건의 흑막으로 지목되셨다고 하오.”

……아니 뭔 시발?

‘그건 거의 국가반역죄 아닌가?’

물론 황제 입장에서는 자기 권력을 드높여줄 찬스를 만들어줬겠지만, 로마니아에서 10년 전의 원로원 붕괴는 이세계 IMF 보릿고개의 단초가 된 사건이다.

그런 사건을 저지른 귀족이라면 손녀인 티르시도 절대로 제 목 간수를 못 했을 건데. 나는 눈을 반개했다.

“누명이었습니까?”

“누명이었소.”

존나 나라 꼴 잘 돌아간다 아주.

나는 원로원의 핵심 세력이 반토막 당하는 꼴을 지켜보며 황제가 기쁨의 개나리 댄스를 췄다는데 우리집 암코양이 테레사의 부랄도 걸 수 있었다.

“하지만 누명이었다면 왜 복직(復職)이 안 됐습니까? 명예 회복 전에 조부께서 사망하셨더라도, 귀족위를 되찾을 순── 아, 그렇군요.”

“설명해 주려고 했는데, 먼저 이해해 버린 모양이군.”

“예. 뭐, 그만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비리 하나 없었을 린 없겠죠.”

각 잡고 털면 뭐라도 나오는 게 사람이다. 진짜 미치도록 청렴결백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영장 들고 쳐들어가서 갈아엎으면 흠 잡을 부분이 있었겠지.

어떻게 뇌물이나 땅 투기 등에 진짜 추호도 관심이 없었겠는가?

오히려 전혀 없었다면 원로원의 원중암투(院中暗鬪)에서 최정상에 서지 못 했을 것이다.

누명이든 뭐든 공공기관이 권력을 밀어붙여서 뒤집었으면 몰락한 가문이 되살아날 방도가 없다. 권력도 돈도 없이 죄만 남았는데 어떻게 살아나겠는가.

‘아니 어쩌면 그 누명도 황제가…….’

시발, 관두자.

이런 민감한 사항을 피하려고 현장직 고고학자가 된 건데, 대국의 황제가 벌인 정치싸움의 진실을 나더러 어떻게 알고 감당하란 말인가.

관심 끄자, 관심.

“대충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게 티르시의 행적을 찾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있고 말고. 사람은 동기 없이는 움직이지 않소.”

“……동기라.”

나는 그 말에 티르시의 행적을 생각해냈다.

저번 오우거 퇴치 때도 생각했던 내용이다. 티르시는 마법사 길드에서 승진하는데 집착하고, 귀족 자리를 되찾길 바라던 여성이었다.

그녀가 직접 말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틀림없다.

티르시는 나와 마주쳤던 모든 의뢰에서 그랬다.

하수도 정찰, 논문 심사 보류, 도난당한 논문 되찾기, 흑마법사 토벌전, 승급 의뢰── 그밖에 전부.

몰락 이후, 티르시의 삶은 귀족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전부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티르시 양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으나, 그녀가 고향 땅에 다시 발을 디딘 이유는 밝혀낼 수 있었소.”

중년 탐정을 그리 말하면서 품에서 편지를 꺼냈다.

“그녀는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고자, 제국에 돌아온 것이오.”

나는 탐정 아재가 꺼낸 편지를 읽었다.

엘렉트라 몽고메리라는 사람이 티르시에게 보낸 편지였다. 티르시가 귀족이었을 무렵, 시녀로 일하던 사람인 듯 했다.

자주 편지를 주고 받던 사이는 아닌지 자신의 신변 상황에 대한 잡담이 많았다.

본론이랄 것도 마지막의 1~2줄이 끝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만나서 말씀드릴게요?’.”

“우리가 이렇게 담소를 나누는 것과 같은 이유였겠지.”

정보 유출을 경계했다는 걸까. 나는 편지를 품에 넣고 질문했다.

“편지를 얻으셨다는 건, 만나보셨겠죠?”

“그렇소. 내심 살해당해 있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활발한 모습이 매력적인 중년 여성이었소이다. 이야기의 내용은──”

탐정은 약간 뜸을 들이고 말했다.

“──아마 ‘귀족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겠지. 그 이상은 알아낼 수 없었소. 내가 성실하게 살아가는 황제 폐하의 신민을 윽박지르고 손가락을 꺾을 수야 없었으니.”

“그 분은 이 일과 무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야기를 들려주자 진심으로 놀라고, 걱정하는 걸로 보이긴 하더군. 찔리는 게 있거나 티르시 양이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었다면 내게 편지를 건네주지도 않았을 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작은 노트를 꺼냈다.

“거주지는 아십니까?”

“……공범이 되기는 싫소만.”

“흐흐. 제가 그렇게 단락적으로 행동할 듯이 보입니까?”

나도 우선은 이 루크레겐스에서 조사할 생각이다. 몽고메리인지 몽골리아인지 하는 아줌마를 찾아가는 건 진짜 손도 발도 안 나올 만큼 진도가 막혔을 때의 궁여지책이다.

그리고 당연히 찾아가게 돼도 고문이나 심문을 할 생각은 없었다.

“로마니아 집행관과 저희 의뢰주를 동시에 적으로 돌리는 선택입니다. 보수도 못 받을 짓을 왜 하겠습니까?

“그렇군. 내 너무 생각이 짧았소이다.”

탐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서류 가방 같은 것에서 종이 뭉텅이를 꺼냈다.

“어디 보자…… 여기 있군. 자유제국도시 퀼레이어, 5번가 13번지 2동 3호. 거기의 집을 가진 중년 부부요.”

나는 그 주소를 노트에 적었고, 탐정 아재는 내 거랑 비슷하게 생긴 노트를 꺼냈다.

“다행히 글은 잘 아시는 모양이오? 잘 됐군. 여기, 내가 조사했던 것들을 브리타니아 말로 적어갖고 왔소. 질문할 게 있다면 여기서 읽고 해 주면 감사하겠소.”

“당신께서는 조사에서 손 떼십니까?”

보고서를 읽으면서 묻자 통성명도 안 한 탐정은 어깨를 으쓱했다.

“백방으로 돌아다녀 봤소만, 이 도시에서는 아무런 정보도 얻어낼 수가 없더군. 더 이상은 수지타산이 안 맞소.”

아무런 정보도 못 얻었다고?

나는 감탄이 나올 만큼 자세한 보고서를 읽던 중에 들려온 말에 인상을 쓰고 말았다. 이렇게 조사를 잘 하는 탐정이 이 도시에서는 정보를 전혀 구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수지타산이라.’

안 좋은 예감이 드는 표현이다. 보고서를 읽다 말고 탐정을 쳐다보는 나.

“누군가가 그녀의 족적을 지웠군요. 양지의 권력자입니까? 아니면 음지의?”

“……이거 머리 회전이 상당하시군. 모험가보단 흥신소를 차리시는 게 어울리시겠소.”

탐정은 배를 얻어맞은 것처럼 신음하다가 대답했다.

“뭐, 정확하게 보셨소. 이상할 정도로 흔적이 없더군. 루크레겐스에 찾아온 것은 확실한데 어디에서도 정보를 구할 수 없었다오. 여관 주인들도 그런 손님을 본 적이 없다고 하니 말 다 했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까?”

“……실행한 게 음지의 인간인 건 틀림없소.”

중년 탐정은 자기 매직 아이템조차 믿을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단지, 겉면의 권력을 가진 귀족님이라도 사람을 부릴 때는 음지의 인간을 썼을 것이오. 피를 흘리진 않은 듯 하나 발품을 팔아도 소식을 아는 자가 없다는 건, 티르시 양을 본 사람들이 협박을 받았다는 거요.”

“이름만 들어도 쫄아서 협력할 정도로 유명하다?”

그러면 귀족이나 음지의 악랄한 범죄집단일 것이다.

탐정 아재가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할 만 했다. 헨네시스 영애도 의뢰비를 책정하면서 목숨값이라곤 생각 않지 않았겠는가.

의뢰를 완수 못 하고 받는 돈이 조금 줄겠지만, 손을 뗄 타이밍을 놓치면 푼돈 때문에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수가 있었다.

나는 보고서를 대충 읽어보고 챙겼다.

“질문드릴 건 1~2개 정도군요.”

“예상 가는 상대가 누구인지 말해달라는 것이오?”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시다면.”

탐정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귀족에 대해서는 감히 내 입으로 말할 수 없소. 귀족 모독죄가 무서워서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겉면에서 움직인 게 아니니까 말이오.”

“실행집단은요?”

“루크레겐스에는 3종류의 <암회(Clientem Tenebris)>…… 뭐, 속된 말로 패밀리가 있소.”

시발, 패밀리라니. 무슨 이세계 마피아야?

내가 어안이 벙벙해지는 걸 보면서도 계속 설명하는 탐정 아재.

“<암회>의 특징은 후원자를 가진 범죄집단이라는 거요. 그 3종류의 암회 및으로 여러 분파의 소규모 패밀리와, 손에 꼽을 가치가 없는 나약한 독립집단 정도가 있지.”

“그것도 조사하셨습니까?”

“내가 미쳤다고 그랬겠소? 나는 아침에 베개맡에 꽂힌 나이프를 보고 싶지는 않소. 이건 상식이오, 상식.”

종교 국가에서 귀족의 후원을 받는 마피아가 존재하는 게 상식인가. 이세계는 이렇게 늘 어썸하게 나를 놀래켜주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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