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5화 (315/1,009)

“루크레겐스는 최근 몇 개월 사이에 분쟁이 잦아졌소. 외부에서 새로이 찾아온 패밀리 탓에 기존 세력 분쟁도에 변화가 생겼을 뿐더러, 그나마 시민과 친화적이던 패밀리도 정책을 바꾸었소.”

그렇게 탐정 아재는 나와 헤어지기 전에 경고의 뜻을 담은 말을 남겼다.

“조사할 생각이라면 내 말을 반드시 기억하고, 유념하시오. 보복해오지 않을 만큼 확실하게 처리하던가…… 그들에게 당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아야 할 거요.”

나는 탐정 아재를 보내고 잠깐 남은 술을 마시다 술집에서 나왔다.

‘여관에 돌아가기 전에 따로 활동을 좀 해야겠는데.’

미행하는 사람이 붙지는 않았지만 만에 하나를 위해서다.

또 기왕 나왔으니까 탐정 아재가 말할 세력 분포도가 현재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도 알아야 했다. 보고서에 그런 내용은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외지인인 탐정 아재로서는 시민들에게 ‘요즘 여기 마피아들 어때용?’ 하고 물어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시민들 중에 누구 1명이라도 마피아에게 밀고를 때리면? 그는 지하실로 끌려가서 코로 잠발라야를 마시게 되겠지.

‘최근에 마피아들끼리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면…….’

죽은 사람도 나왔을 것이다. 나는 근처 골목으로 들어가서 나를 보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거인 가죽 갑옷에 룬을 새겼다.

변신 마법의 룬이 만다라를 띄웠다.

그러자 내 복장이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했다. 눈에 존나 띄는 무협식 도포였다.

일부러 눈에 띄게 한 것이다. 확실한 인상을 남겨주면 그 미친 띵호와 외국인이랑 사르가디스 실딱이 창쟁이를 연관지어서 생각하긴 힘들 것이니까.

‘기왕이면 아즈테카처럼 키타이랑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나라 사람으로 위장하고 싶었지만…… 별 수 없지.’

종교 국가에서 식인종 이교도로 분장하는 건 위험이 너무 컸다.

스스스스─.

나는 피부색에도 변화를 일으켜서 마치 태닝한 것처럼 갈색으로 불들였다. 머리카락은 금발로 하려다가, 키타이 놈들의 머리색이 어떤지 몰라서 장발로 만들어서 묶었다.

얼굴이나 몸이라면 모를까, 머리 길이나 피부처럼 마법이 없어도 바꿀 수 있는 변화는 나라도 변신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손거울을 보자 까무잡잡한 피부의 덥수룩한 외국인 노동자가 나타났다.

존나 대협으로 불릴 것 같이 생겼네. 나는 픽 웃고서 가면까지 썼다. 이제 무협지에서 주인공을 족치려고 나왔다가 ‘분근착골’ 당해서 정보를 불고 뒤질 것처럼 보이는 꼴이 됐다.

“최고의 만족을 그대에게.”

나는 내 변장 실력에 셀프 찬사를 보내고 골목을 박찼다.

─통, 통, 통, 통!

벽을 지그재그로 박차면서 높은 곳으로 점프. 그런 다음에 룬과 마나를 병용해서 피냄새가 풍기는 곳을 찾아다녔다.

분쟁이 심해졌다는 얘기는 사실이었다.

탐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나는 피냄새가 남은 골목에 내려설 수 있었던 것이다.

─착! 골목길에 내려온 나는 마피아들이 닦다 말고 도망친 듯한 핏자국을 검사했다. 검붉지만 그렇게 오래 되진 않았다.

‘하루인가 이틀 쯤 전에 튄 피로군.’

대단한 놈들은 아니다. <정화(Clean)> 마법도 못 썼다는 건 수준 낮은 병신들이라는 뜻이니까.

‘지금은 그게 차라리 낫지.’

나는 룬의 마나를 끌어올리며 발로 룬을 새겼다.

자주 하는 생각인데, 역시 이 룬 마법은 진짜 성능을 끌어낼 수만 있다면 만능 맥가이버 급으로 편리하다.

내가 심문에 애용하는, 영혼과 접신하는 룬이다.

물론 이 룬은 영혼이 남아있지 않은 장소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하지만 뒤진지 이틀만에 성불할 만큼 삶에 미련이 없는 새끼가 마피아를 할까?

─시, 시발? 뭐야? 여기 어디야?!

답은 NO였다.

멍청한 얼굴을 하고 나를 발견한 쫄따구. 딱 봐도 예 제가 사람 좀 죽일 줄 압니다 하는 생김새다.

이 새끼는 어디 가서 얼굴 좆 같이 생겼다고 체포당해도 억울할지언정 할 말은 없을 것 같다.

─거기 네놈! 후요 패밀리에서 나왔으어어어…….

“쉿. 심문은 조용히.”

나는 ᚦ(Thurisaz)의 룬을 세밀하게 조정했다. 여러 개의 룬 만다라가 거듭 떠오르면서 마피아 쫄따구의 의식을 아슬아슬한 선까지 잠재웠다.

‘예전에 오우거를 심문할 때는 실력이 모자라서 미처 이런 조절은 못 했지.’

하지만 이제는 가능하다. 오딘의 눈으로 마나의 운용이나 룬의 사용법에서 보완점을 찾아내고, 개선한 ᚦ(Thurisaz)다. 이런 쫄따구 정도는 커버 가능하다.

“이름.”

─……죠셉. 삽대가리 죠셉.

“별명 존나 병신 같네.”

그래도 대답을 잘 하는 걸 보면 자백제는 잘 먹힌 모양.

영혼의 의식을 잠재워서 질문에 대답하는 정보 ATM으로 만드는 것!

상대가 죽거나 잠들어 있을 필요가 있지만, 빡센 고문이나 심문을 거치지 않아도 듣고 싶은 내용을 캐낼 수 있는 고-급 심문법이다.

─덜컹.

쓰레기통을 <정화>로 깨끗하게 만들고 거기 앉았다.

주변에 인기척은 없다. 접근하면 영혼을 지우고 튀면 되고 말이다. 나는 가면 아래에서 즐거운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야. 심심한데 재밌는 얘기 없냐?”

말하면 입만 아픈 얘기지만, 현지의 얘기는 당사자들한테 듣는 게 제일이니까 말이다.

허접하게 뒤져 있던 것에 비해 그는 생각보다 거물이었다.

그렇다고 3대 패밀리 소속은 아니고, 그 밑의 적당히 덩치 좀 있는 패밀리의 중간 보스랜다.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지.’

일반인들도 알 만큼 분쟁이 격해지고 있다면 중간 보스도 어디선가 뒤져 나가긴 했겠지. 그걸 첫 빠따로 고른 건 행운이지만 찾으려면 찾을 수 있는 상대다.

‘시간 낭비가 줄어든 건 이득이긴 해.’

매지컬☆리리컬 자백제를 꽂아서 캐낸 정보는 나름 알찼다.

나는 도시의 3대 패밀리의 이름과 보스에 대한 얘기부터 온갖 시답잖은 얘기까지 전부 들을 수 있었다. 패밀리의 이름은 메모해놓긴 했지만 굳이 기억하긴 귀찮았다.

그래도 특색이 있어서 분류하긴 쉽다.

다 비슷한 새끼들이었으면 외워야 했겠지만 말이다.

‘40년 전에 고르갈리아에서 온 놈들, 루크레겐스 토박이들, 그리고 키타이에서 온 놈들.’

이렇게 3종류다.

‘존나 인종 대화합의 장이로군.’

전세계 범죄자들끼리 종교 국가에서 잘도 논다. 내가 심문한 남자의 영혼은 루크레겐스 토박이 패밀리의 따까리였는지, 지들의 전통성을 따지는 꼴이 은근 웃겼다.

“범죄집단이 유서 깊은 게 자랑이냐, 씹놈아.”

─으게겍.

남자의 영혼을 성불시킨 나는 옷을 노르드 모드로 바꾸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키타이에서 온 마피아라.’

잘 됐다. 이제 내가 대놓고 깽판을 쳐도 처음 며칠 정도는 그 새끼들이 보낸 닌자라고 생각하겠지.

마피아들이 싸우다가 말고 오해를 풀 자리를 만들 것 같진 않으니까, 나한테는 좋은 일이었다. 그 키타이 마피아들도 지들을 쫓아온 놈인가 하면서 적당히 오해해 줄 테고.

‘복수하려고 바다를 건너온 고수? 아, 무협지 국룰이지.’

이 정파 영웅 모드로 활동하는 건 나쁘지 않을 듯 했다.

조금 더 설정에 손을 보고, 우리 파티원들과 협력해서 은밀하게 활동하는 것도 괜찮다.

‘이름은 예수게이 정도로 할까.’

나는 그리 생각하면서 길을 걸었다.

‘마피아들은 대부분 도시의 유흥가에 있다.’

루크레겐스의 우측 반절은 향락을 추구하는 거리다.

초입이야 서커스나 관광지 느낌이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거나, 골목의 미로를 빠져나가거나, 밤이 깊어지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창녀촌, 도박장, 그밖의 불법 시설도 빼곡하댔나.’

마피아들의 주 자금원은 이쪽이다.

건실한 순례자들을 낚아서 도박이나 창녀로 돈을 쪽 빨아먹고서, 억지로 고리대금을 맡기고 부려먹는 놈들도 있댄다. 다 한통속인 것이다.

그들에게서 티르시의 정보를 캐낼까? 족치기만 하면 방금 했던 것처럼 얘기를 듣는 건 쉬운 일이다.

‘단독행동은 안 좋다.’

사태 파악은 됐으니까 내 조사에 협력해 줄 파티원을 고를 차례다. 나 혼자서 나대다가 소식이 끊기면 좆 된다.

위험한 지역에서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만큼, 위험할 때 빠져나갈 수단은 몇 개 생각해 뒀다.

특히 베로니카의 <공간이동>이 비장의 패가 돼 줄 것이다.

<공간이동>으로 도망가는 키타이 무림 고수라니,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물론 나 같은 정파 영웅이 사용하면 사술도 신비로운 도술이 되는 법이긴 하지만 말이다.

‘같이 움직여줄 후보는 이미 정했다.’

우리 파티가 묵는 여관이 가까워졌다. 나는 거기 있던 파티원에게 말을 걸었다.

“늦어요, 선배~. 더 늦었으면 걱정할 뻔 했다구요~?”

기다리는 게 심심한 듯 입구의 벤치에서 다리를 까딱거리던 핑크 머리의 자칭 후배님께서는, 그리 말하며 즐거운 것처럼 미소지었다.

라리루라를 고른 건 솔직히 소거법적인 선택이었다.

프랑은 연기를 못하고 변신 마법 적성이 나 이상으로 없다.

다나는 우리 파티에서 가장 신분이 확실하니까 양지 쪽에서 조사해 주는 게 더 도움이 된다.

베로니카는 용사를 소환하는 이세계물 여신처럼 여차할 때〈공간이동〉으로다가 긴급탈출을 도와줘야 한다.

그러니만큼 라리루라에게 같이 와달라고 부탁한 건 당연한 거였지만, 당연히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우리 아내들한테 여유가 있었어도, 가장 연기를 잘 하고 임기응변이 뛰어난 파티원이 라리루라인 것도 사실이니까.’

게다가 현지인이기까지 하니까 더할 나위가 없다.

무엇보다 평소 입는 광대 옷에 어울리게 변신 마법 적성도 나보다 높았다. 아델라이데의 목걸이를 주자마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랑 라리루라가 음지 탐사팀이다.

“선배가 전임 조사원이랑 얘기하러 가신 동안 서커스단에 가 봤는데요~. 며칠 더 있어야 투어에서 돌아오신데요~.”

“그럼 우리랑 헤어지고 지금까지 쭉 유람 중인 거야?”

“아마도요? 보통 1년 정도를 주기로 잡거든요. 서커스단 몇 개가 협조해서 세워놓은…… 숙소? 별장? 같은 게 세계 여기저기에 있는데, 플랑궁클라 서커스단은 이곳 루크레겐스가 본거지랍니다~♡”

라리루라는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말했다.

몇 달이나 전에 세계원정을 나갔던 라리루라네 서커스단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내가 카르미네 대학에서 뛰쳐나온 뒤로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단 게 실감이 되었다. 나는 텔레파시로 중얼거렸다.

“잘 됐네. 일이 끝나면 뵈러 가도 되겠어.”

“아핫♡ 정말요? 저, 의욕이 펑펑 나와 버리네요~!”

라리루라는 텔레파시로는 상큼하게 말해놓고서 도도한 걸음걸이를 유지했다.

우리는 루크레켄스의 유흥가를 거닐고 있었다. 사실 이미 상당히 안쪽까지 왔기에 유흥가라는 말보단 환락가 쪽이 더 어울릴 것 같긴 하다.

근처에서 남창인지 씹게이 삐끼인지 모를 놈들이 라리루라에게 손짓을 했지만, 라리루라는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갔다.

“창녀촌에서 두 블럭 왼쪽. 기억하지?”

“네~.”

마피아 중간보스에게서 캐낸 정보대로 이동하는 우리.

‘영업 종료’ 팻말이 걸린 낡은 술집이다. 팻말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겉으로 보이는 낡은 모습에서는 절대 연상 못 할 깔끔한 바(Bar)가 나왔다.

손님은 많다. 10명 정도인가?

대충 기감으로 훑어보자 평균 이상의 실력자들이다.

─샤칵샤칵. 샤칵샤칵.

칵테일이라도 만들던 건지, 주점의 점주는 텀블러 같은 걸 대충 흔들다가 이쪽을 보면서 사납게 인상을 썼다.

〈이보셔, 아가씨. 영업 종료 팻말 못 봤어?〉

〈문 닫은 것 치고는 남은 손님이 많은데.〉

대답한 건 라리루라였다. 평소 말투와 일변한 허스키하고 무뚝뚝한 말투다.

프랑에게 목소리로는 아무도 못 알아보겠다며 합격 사인이 나온 연기다웠다. 변신 마법을 성대에 적용한다는 발상은 내 머리에는 없었다.

잔머리 천재 후배 같으니.

〈내가 일 하기 싫다고 단골을 쫓아낼 거면 요식업을 왜 해? 물론 아가씨는 나랑 오늘 처음 보는 듯 하니 단골이라곤 못 하지. 나가주겠어?〉

〈술 1잔만 마시고.〉

라리루라는 카운터석 우측 3번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삐딱하게 굴던 점주는 혀를 차며 칵테일 쉐이커를 내려놓았다.

〈마시고 꺼져준다면야. 뭘로 드릴까?〉

〈블러드 메리. 파랗게.〉

〈파란 토마토는 귀한 건데.〉

〈세상에는 돈보다 중요한 게 많지. 이래봬도 실력에는 자신 있어.〉

─차라락. 카운터 석에 금색 목걸이가 놓였다.

점주는 그 모험가 플레이트를 집어들고서 히죽거렸다.

〈크하하! 이름 부분의 손상이 굉장한데? 불로 지졌나 봐?〉

〈사정 없이 뒷세계 용병 일을 하는 놈도 있나? 브로커가 정보상 노릇을 하는 건 탐탁치 못한데.〉

〈이크. 나쁘게 받아들이진 마, 예쁜 아가씨. 그래도 며칠 전에 바꾼 암호까지 다 꿰찬 걸 보면 기본은 돼 있군.〉

점주는 낄낄대면서 새 칵테일 셰이커에 술을 부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는 안 묻겠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중요하지 않다는 것 치고는 절차가 귀찮던걸.〉

〈말했잖아? 기본이라고. 머리가 남들보다 잘 굴러가든, 힘 싸움이나 돈으로 다른 손님을 줘패든, 내가 얼굴을 기억할 때까지만 찾아오면 돼. 이 바닥 일처리가 다 그런 식이지.〉

〈그거 참 훌륭하시네.〉

〈우린 손님이나 용병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거든.〉

후드 아래에서 입술을 비릿하게 비트는 라리루라. 거의 뭐 메소드 연기에 들어갔는데 그래.

〈물론 그러다 보면 문제도 생기지. 예를 들어서 ‘실력을 증명할 수단을 꺼내라’는 절차에서 주워온 플레이트를 내밀고 제 몸값을 불리려는 멍청이라든지.〉

점주는 골드 클래스 모험가 플레이트─당연히 내가 변신 마법으로 만든 가짜다─를 라리루라에게 돌려주었다.

정확하게 눈치챘지만 라리루라는 내색 없이 그 플레이트를 낚아챘다. 그리고서 텔레파시로 말했다.

“선배 죄송해요!! 초창부터 망했어요!!”

“미리 알려준대로 읊어.”

저 정도 발언은 예상 범위 안이다. 뭣보다 제대로 들킨 건 아니다. 떠 보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라리루라는 표정 변화도 없이 스위치를 켜는 것처럼 연기에 들어갔다.

〈실력은 물건이 아니라 결과로 증명하지. 마침 소식 듣기로는 일거리가 넘쳐나는 모양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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