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0화 (320/1,009)

라리루라가 멈춰섰다. 아니, 발을 제지당한 것이다.

테무르진의 시체를 조종하는 마법이 라라루리의 회피를 1초 지연시켰다. 말이 1초지, 생사를 가르는 순간에 공격을 맞출 시간으로는 충분했다.

‘하지만── 기회다!’

두꺼운 주먹이 라리루라의 얼굴을 노렸을 때,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주둥이에서부터 냉동빔을 뿜어냈다.

〈뭐?!〉

난입자는 빙의하기 전에 내가 마법을 쓴 것을 못 보았다. 전투 중에 나를 경계하는 기척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라리루라가 목에 감고 있던 뱀이 냉동빔을 배운 미뇽이라는 사실에 경악했고, 압축분사된 냉증기가 놈의 와꾸를 얼려버렸다.

뿜어내고 남은 안개로 놈의 시야까지 가렸다. 철저하게 그 시력을 말살시킨 것이다.

‘지금!’

나는 변신 마법을 해제하고 놈에게 달라붙었다.

난입자도 시력을 제외한 오감으로 나를 파악하고 주먹질을 갈겼지만, 눈 먼 공격에 맞아줄 내가 아니다.

슬쩍 고개를 돌려서 회피하고, 예수게이 모드로 태권도 곰손 지르기 쌍장(双掌)을 놈의 옆구리에 때려박았다.

갈스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습득한 테크닉으로 상대의 체내에서 혈수마공의 마나를 퍼트렸다.

약도 지나치면 독이 되고, 사람을 살리는 기술로는 사람을 효율적으로 죽이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그 지식을 살려서 작렬하는 마나로 테무르진의 몸을 폭발사산시켰다.

혈수마공(血手魔功)

캘러미티 혼(Calamity Horn)

시체를 조종하는 마법은 방어력을 높이지는 못하는 건지, 그 유약한 비곗살 덩어리는 끓는 피보라가 되어서 월향 패밀리의 은신처에 물폭탄처럼 뿜어졌다.

당연히, 내 옷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다.

“……상체가 날아가면 빙의 상태를 유지해봤자 아무 것도 못 하겠지.”

어깨를 털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눈코입에 귀까지 싹 날아간 저 시체로는 내 얼굴이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었다. 저 새끼 입장에서는 미뇽한테 잠깐 맞았을 뿐인데 갑자기 랜뽑을 당한 느낌이겠지.

일단 지방이 타는 역겨운 냄새를 쫓아내고 증기를 뿜었다. ─덜커덩덜컹!! 창문이 압력에 흔들리면서 악취를 몰아냈다.

나는 시체를 주시하면서 라리루라에게 포션을 던져줬다.

“미안. 더 일찍 나오려고 했는데 틈이 안 나왔어.”

“아야야……. 으, 괜찮아요. 몇 대 안 맞았어요.”

배를 쓰다듬으면서 대답하는 라리루라였다. 자존심이 상했는지 입술을 내미는 게, 얼굴이 달라져도 라리루라의 모습이 있긴 하다.

아무래도 변신 마법도 한계는 있는가 보다. 제 버릇 남 못 준다지 않는가.

“……많이 아프냐?”

“……아핫♡! 걱정해 주시는 거에요~? 별 일이시네요♡! 저, 왠지 기뻐서 아픈 게 싹 날아갔어요!”

“흐. 거짓말은.”

나는 역방향의 ᚲ(Kenaz)의 룬으로 마취를 해 줄까 하다가 생각을 바꿔먹었다.

고통은 냅두면 뒤진다는 몸의 신호다. 아픈 걸 모르다가 탈 나는 게 더 문제다.

‘빨랑 돌아가서 다나한테 치료받게 해야겠네.’

그래도 그 전에 확인할 게 있다. 나는 구둣발을 움직였다.

휘리릭─!

일단 기대하지 않고 ᚨ(Ansuz)를 새겨봤지만, 테무르진은 언데드가 되면서 영혼도 좆창났는지 보이질 않았다.

라리루라가 회복하는 걸 기다리면서 다른 변발 형제들을 심문했는데, 좆도 무의미한 짓이었다.

“쓰벌, 간부란 것들이 어떻게 아는 게 없냐. 싹 꺼져.”

나는 나머지 변발 4형제도 지옥으로 보내줬다.

난입자 새끼는 누가 봐도 흑마법사 아닌가. 영혼을 남겨뒀다가 괜한 정보가 흘러나갈지도 모르니까 성불시켜둬야 했다.

“우리도 얼른 돌아가자. 고생 많이 했어. 이 정도면 첫 날 치고는 훌륭한 성과야.”

위로를 해 줄 생각으로 진심 반 가식 반으로 어깨를 두드려줬는데, 라리루라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 서랍이나 선반장을 가리켰다.

“앗, 전리품 챙기셔야죠! 돈이든 정보든 뭐라도 가져가요!”

“아니 임마. 너 잘못하면 배에 구멍 날 뻔 했거든? 치료받으러 안 갈 거야? 왤케 목소리가 밝냐.”

“어? 그랬나요? 아핫♡! 음침한 뒷골목이니까 마음이라도 포지티브하게 가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존나 긍정적인 것도 정도가 있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혀를 내둘렀지만, 라리루라의 의견도 틀리진 않았다. 보스만 아는 정보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고개를 끄덕이고 피보라가 튄 방에서 멀쩡한 서류 등을 다 챙겼다.

금고도 때려부숴서 화폐를 꺼냈다. 추적이 가능해지는 마법이 없는지 ‘오딘의 눈’으로 확인해서 안전하다는 걸 확신하고 주머니에 넣었다.

“자, 이걸로 진짜 끝. 걸을 수 있겠어? 안고 가 줄까?”

“걷는 것 정도라면 문제 없…… 아뇨, 힘들겠네요! 뛰려고 하면 뒤쳐지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없는 것도 아니려나요~?”

“안어, 말어. 어느 쪽이야.”

라리루라는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중얼거렸다.

“……앞으로 안아달라고 하면, 해 주실 거에요?”

“그쯤이야 어려울 거 없지.”

─번쩍! 나는 라리루라를 공주님처럼 끌어안았다.

“꺄아♡”

품에 안겨서 오버하는 라리루라. 한 대 때려주려다가 아픈 애를 괴롭히는 것 같아서 참았다.

건물을 벗어나자 몸에 밴 피냄새는 겨울바람에 쓸려서 사라졌다.

우리 후배님은 남의 목에다 손을 감고 안겼고, 나는 뺨을 에는 바람에 건물 옥상을 달리는 속도를 약간 늦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 머리는 다른 생각으로 가득했다.

‘……아까 그 놈, 본체끼리 붙으면 위험할까?’

좀 전의 난입자와 전력을 다해서 싸우게 된다다면, 1대 1 승부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승산은 어느 정도일까.

나는 주판을 두들긴 끝에 눈을 반개했다.

‘아니, 나도 정체를 숨기는 걸 포기하면 이길 순 있다.’

전투 중에도 킬각은 자주 보였다.

적의 기술이 더 예리해지거나 신체 스펙이 올라도 승산은 충분하다.

그 새끼가 사용하지 안 한 비장의 수가 말도 안 되게 강력한 게 아니라면, 싸우기도 전에 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아까 전의 놈이 어느 패밀리의 보스나 돌격대장이라면, 문제가 꽤 커.’

그 새끼보다 더 쎈 놈이 있을지도 몰라서?

아니, 그런 거야 아무래도 좋다. 우리 파티의 목표는 음지 세력의 괴멸이 아니지 않은가.

문제는 남은 2개의 패밀리에도 그 새끼가 소속한 패밀리를 상대로 항쟁이 가능한 전력이 있을 경우다. 저만한 새끼가 3~4명 있으면 티르시의 족적을 쫓는 것도 난항을 겪겠지.

‘……과연 강대국의 암흑가 세력. 만만치 않군.’

조금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것인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조급해 하지 말자. 아직 첫 날이다.

알아낸 것도 있다.

티르시가 실종된 건 암회가 개입한 게 확실하다는 거랑, 그 납치가 명령체계를 통해서 하달되었을 정도로 계획적이었다는 것이다.

이젠 그 납치의 뒤에 귀족 가문이 있느냐가 중요한 분기가 되겠지.

나로서는 차라리 그랬기를 바랐다. 사실 양쪽 모두 위험한 건 똑같겠지만, 귀족 가문이 시켜서 한 일이라면 단순 납치를 당한 것보다는 안전할 듯 했기 때문이다.

그 점은 현역 귀족의 생각을 듣는 게 확실하겠지.

‘……영애에게 보고를 해야겠군.’

전서구는 너무 늦다. 편지를 주고 받으면 2주는 지나버릴 것이다.

나는 달리면서 품 안의 옥새에 마나를 충전시켰다.

우리는 이미 <공간이동(Teleport)> 마법을 손에 넣었다.

브리타니아와 로마니아 사이의 거리는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갱스 오브 로마

평소처럼 여관 방에 방음 결계를 깔고, 회의 타임이다.

“오늘 얘기는 짧게 끝내자. 우린 큰 수확 없었어.”

프랑이랑 같이 샤워하고 온 다나가 말했다.

외국에서 2인 1조로 움직여야 하는 건 목욕할 때여도 마찬가지다.

아니, 목욕할 때는 사람이 가장 무방비해지는 순간 중 하나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

군대에서 하던 전우조 생각이 나서 약간 좆 같기는 한데, 화장실에서 암살을 당한 과거의 권력자들을 생각하면 방심할 순 없으니까.

“마법사 길드나 고고학 지부에 얼굴을 비췄는데, 최근 도시에서 막장 행태가 자주 벌어져서 화제를 먼저 꺼내주더라고. 냉큼 말꼬리를 물고 이것저것 물어봤지.”

“내가 캐낸 얘기랑 중복되는 내용도 많겠네.”

왜애애앵─! 나는 다나의 머리를 스팀 드라이로 말려주며 대답했다.

그러자 얼굴에 스킨 같은 걸 바르던 프랑이 말했다.

“일반인 시점에서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두 중요하니까. 그, 뭐랬지? 3대 패밀리? 라는 사람들이 대낮에도 항쟁을 벌여서 사람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더라구.”

“맞아. 키타이에서 왔다던 놈들이 분쟁의 도화선이래.”

다나는 내 손길에 눈을 감고 어깨를 으쓱했다.

“다른 2대 패밀리끼리 있을 때는 품격 같은 걸 따지면서, 뭐 사실 상 상대의 나와바리를 건드리지 않고 싸우는 수준이었대나? 단결을 위한 ‘외부의 적’ 정도의 대우였을 걸.”

“맞아요~? 저만 해도 루크레겐스의 〈암회〉 사람들은 그냥 건들거리면서 걷기나 하는 얌전한 깡패들이라는 인상이 컸는걸요~.”

스팀으로 머리를 말리는 다나를 부럽게 쳐다보면서 라리루라가 중얼거렸다.

나는 쉽게 상상이 가는 모습에 비웃음을 흘렸다.

“지들 딴에는 적정선이란 걸 지킨 거겠지. 반대편에 종교 교단이 있는데 어쩌겠어? 뇌물을 받고 눈 감아주는 부패한 종교쟁이들도 능력에 한계가 있을 텐데.”

“그래. 하지만 키타이에서 왔다는 패밀리…… 아눌루스인가 하는 반반 대머리 새끼들이 지들 나와바리를 건드니까 성질이 뻗쳤나 보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건드렸군. 쉽지 않았을 텐데.”

뿌리 깊게 도시의 그늘에 유착해 왔던 마피아들이다. 제 3자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존 세력에게 밟히지 않을 자금력이나 무력.

깡패들의 나와바리 싸움에서, 후발주자는 그런 게 있어야 두각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반반 대머리들은 다른 2대 패밀리가 상대도 안 해주던 하류 인생들을 부하로 모으고 있다나 봐.”

보라색 개털머리를 빗질해 주는 내 귀에 다나의 낭랑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양아치나 수준 낮은 모험가들을 안전성 있는 월급으로 꾀서 부려먹는다, 이건가.”

“겨울이잖아? 일거리 없는 깡패들이 술값을 벌려고 잠깐 위탁했다가 어어 하는 사이에 패밀리 따까리 되는 거야.”

“종교 교단의 집행관이랑 데스 마피아 게임이 하기 싫으면 조직 밑에 기어들어가야 한다는 거군.”

전직 마피아라는 빨간줄이 그이면 너 이단 소리 들으면서 경비병과 이단심문관의 실적이 되는 거다.

저는 여러분 상사한테 뇌물을 주는 어디어디 패밀리의 따까리입니다! 하고 말을 못 하는 새끼들은 종교 집단의 집행관이 낼름 잡아가 버리겠지.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 교단에서도 자기들이 암회를 축출하고 있다는 거짓 선전도 가능해지겠군. 거 철저하구만.”

“어. 그만큼 철저하니까 기존의 깡패들도 이 악물고 폭력을 써가면서 메세지를 보내는가 보지.”

키타이 마피아들은 그렇게 돈[email protected]로 종교 단체를 억누르고 루크레겐스에 자리 잡기를 시도 중인 것 같았다.

‘이만한 대도시다. 알만 박으면 황금알 낳는 거위를 얻는 셈이야.’

아마 그 SSR등급 거위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뒤져나갈 노멀 거위들─깡패들─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었다.

거위들을 닭장에 넣고자 뿌린 사료도 빚이나 족쇄를 채우는 걸로 회수하지 않을까.

개쩌네 시발. K-게임사들도 본받아야 할 훌륭한 호구잡이 어부로다.

‘존나 무슨 다단계도 아니고.’

지구에서도 그랬지만 범죄자 새끼들의 악랄한 방식은 가만 보면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 삼파전은 음지의 돈을 두고 다투는 패밀리 간의 탐욕 때문이란 얘기가 되겠네.”

비슷한 일로 가족을 잃었던 프랑의 그런 말이, 이야기의 한 문단을 끝내는 슬레이트가 되었다.

나는 다나의 머리를 다 말려주고 다음으로 프랑의 긴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슬픔은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적응하는 거라고 하던가.

우리 아내님이 슬퍼하지 않도록 케어해 주는 것도 남편의 일이다. 나는 그러면서 오늘 있던 얘기를 해 줬다.

“흐음……. 그 놈은 십중팔구 흑마법사겠군.”

테무르굴의 몸으로 원거리 격투 대전을 걸어왔던 새끼의 얘기를 끝내자, 베로니카는 그렇게 말했다.

“그 놈이야말로 키타이 암회의 인간 아니겠느냐?”

“당연한 질문을 하는구나. 분신을 갖고 우리 주인님을 긴장시킬 정도의 실력자가 2대 패밀리의 인간이라면, 유상무상의 범재들을 배제 못 할 리가 없으니.”

낮게 잡아도 골드 최상위나 플래티넘 급의 전력이 키타이 마피아 같은 3류를 못 잡을 리 없단 건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섣불리 판단하긴 일러. 아직 첫째 날이잖냐.”

급하게 결론을 내렸다가 킬각을 잘못 잡으면 큰일이다.

‘가장 최악의 사태는 나랑 맞다이로 비슷하거나 더 윗선에 있는 새끼들이 여럿 있는 거다.’

물론, 그래도 우리는 별 상관 없다.

뒷사회의 총 전력 따윈 중요하지 않다. 우리야 티르시의 행방만 알아내면 되니 말이다.

‘……이 세력도의 빈틈을 파고들어야겠는걸.’

그만한 강자들이라면 서로 견제하기 바빠서 사사롭게는 못 움직일 것이었다.

냉전시대를 생각해 보면 된다.

쫄리면 뒤지시든가 씹놈아 하고 공갈을 내지르지만, 등 뒤로는 어 시발? 이러다 진짜 같이 뒤지려 들면 어쩌냐? 하고 식은땀을 흘려대는 대치상태다.

그러니까 이 분쟁 사태는 우리의 의뢰 수행에 좋은 기회가 돼 줄 것이었다.

게임에서도 보스몹을 잡을 때는 방치해도 되는 잡몹 쯤은 내버려 두지 않던가.

나는 그런 결론을 내리면서 입을 열었다.

“다들 오늘 하루 수고했어. 오늘밤엔 밥 먹고 푹 자자.”

“음! 그러자꾸나 로마니아의 미식이 기대되는구나!”

베로니카는 퇴근한 회사원이 맥주캔을 딸 때처럼 기뻐했다.

솔직히 얘가 제일 꿀빨았던 것 같은데, 방에 혼자 남아서 긴급탈출 타이밍을 계속 기다렸다고 생각하면 편하지만은 않았겠지.

아내한테 오대기를 시키는 남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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