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1화 (321/1,009)

왠지 갑자기 자신이 한심해지는 느낌이다.

여행 중에는 식사 수준이 낮았으니까, 오늘 하루는 우리집 엥겔 지수가 급상승해도 넘어가 줘야겠다.

그날밤, 새벽 3시.

“구구륵 구구뽀꾸르─! (고기 마시써─!)”

─푸드드덕!

루크레겐스에 서식하는 새들은 닭고기를 배 터지게 쳐먹고 날아올랐다. 나는 손에 묻은 고기의 기름기를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떨어지는 깃털을 피했다.

“로두르님 충성충성.”

오늘도 파파고님 만만세다. 나는 픽 웃었다.

파티원들에게 얘기를 하고 밤에 여관을 빠져나온 나는, 이 도시의 생체 드론들과 협력을 맺고 도시의 강자들을 찾아보게 시킨 것이다.

아니, 찾아보게 시켰다는 건 표현이 좀 틀렸나.

저 새들에게는 이미 몇 곳인가 ‘근처에 있으면 무서워지는 건물’에 대해서 들은 참이었다. 나는 지도에 받아적은 장소를 암기했다.

‘이 도시에 사는 달인들의 거주지라면 대략 파악이 된다고 봐도 무방하겠군.’

나도 어느 정도 높은 경지에 오르고서야 안 건데, 마나를 수족처럼 다루는 달인은 동물에게 경계를 받는다. 사르가디스 길냥이들이 우리집 집냥이인 테레사를 따르는 이유다.

대충 플래티넘 정도 되면 싸울 때가 아니어도 위압감이란 게 흘러나오는 모양.

의식해서 힘을 숨긴 찐따처럼 굴지 않으면 들킨다.

달인의 서식처는 동물들이 눈치채고 피해가게 되는 것이다.

‘분쟁 중이라면 패밀리에 소속된 강자들은 신경이 예민한 상태겠지. 위험분자 탐색은 쉽겠어.’

자기 작업장에 난입한 씹놈들이 이것도 다 내꺼다 해! 거리면서 지들 연봉을 깎아먹고 데샤아앗 중이라지 않는가.

이런 상황에서 24시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으면 그게 인간이냐? 사이버맨이지.

빡쳐서 골프채로 부하들을 줘팰 때마다 흘러나오는 살기에, 새들도 앗 여기인갑다 하고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숨어봤자 다 들킨다 이 말씀.

“서울 사이버 대학을 다니고~ 나의 성공신화 시작됐다~.”

그렇게 야밤에 노래를 흥얼거리는 퇴근길의 한중간이었다.

나는 문득 눈에 걸리는 이상한 위화감에 인상을 썼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코끼리코를 20바퀴 돌다가 멈추면 가만히 있어도 세상이 도는 것처럼, 감각의 변화에 인지능력이 따라오지 못할 때가 말이다.

─일렁일렁.

“……허, 참.”

나한테는 지금이 딱 그랬다.

대로변에 떡 하니 우람하게 서 있는 물류창고가,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시계 그림처럼 이상하게 꾸물거리는 듯 보였다.

존나 이세계에도 초현실주의 르네상스가 열렸나? 내가 이 세상 미술계엔 관심이 없어서 몰랐네.

“열려라, 벡안.”

나는 고민하지 않고 오딘의 눈을 켰다.

한순간의 위화감이었지만, 그것은 오딘의 눈을 쓰던 내 안구가 마나의 위화감을 간파한 것일 게 분명했으니까.

─휘청.

물류창고의 위화감은 신안(神眼)의 힘을 당해내지 못했다.

나는 왜곡된 마나의 정체를 간파하고 혀를 찼다.

‘칫, 결계인가.’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해야 하나.

혼자서 트러블에 휘말리지 않도록 일부러 넓은 길로만 돌아다녔기에 간신히 발견한 창고였다.

혹시 내가 음지의 세력을 찾아다니려고 했다면 이런 평범한 창고는 후보에조차 넣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오딘의 눈이 아니었다면 절대 눈치 못 챘겠지.

‘결계 자체는 해제됐어. 이건 풀리고 나서 남은 마나다.’

루미놀 반응이나 개미의 페로몬 같은 것이다. 보통이라면 눈치 챌 수도 없다.

내가 오딘의 눈으로 봤더라도 몇 시간 쯤 지나면 흩어져서 사라졌을 게 분명한, 아주 희미한 잔향이었다.

누군가가 여기서 결계를 펼치고서 뭔가를 하다가 떠났다는 증거다.

“……맥도날드 형수님이 말하는 생선?”

나는 이상한 소리를 내뱉는 입을 다물고 고민했다.

이건 파고들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때를 기다리고 오늘은 물러나야 할 것인가.

고민은 찰나였다.

‘확인만이라도 해 두자.’

이 장소가 자주 애용되는 위치가 아니라면, 다음에는 여길 찾아도 아무 것도 못 건질지도 몰랐다. 지금은 위험을 감수할 때다.

나는 오감을 확장해서 나를 엿보는 자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 가면을 썼다.

‘변신. 뱀 선인 모드.’

무독성 블랙 맘바로 변신한 나는 쥐꼬리만한 몸으로 물류 창고의 창문을 넘었다.

─철컥, 철컥.

거기에 있던 건 동네 아저씨나 청년들처럼 평범하게 옷을 차려입은 남자들이었다.

수상한 느낌은 전혀 없다. 나도 결계의 존재를 몰랐다면 저들을 등산회나 조기축구회처럼 일반인들의 동호회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거래가 빨리 끝나서 다행이군. 30분이나 지각해서 조금 걱정했는데 말이지.〉

〈전 아직도 보스가 그 놈한테 양보해 주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안 씻으면 만날 때마다 냄새가 나서 토할 것 같다구요.〉

하지만 의심스럽다.

대화 내용이? 아니, 그들이 챙기는 돈가방이 말이다. 더플백처럼 커다란 가방에 현찰로 바꿔먹을 수 있는 물건들을 차곡차곡 쌓고 있는데, 이걸 의심 안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게 일반인들의 동호회라면 아마 그 단체명은 밀수 동호회 쯤 될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일단 살초는 피할 생각으로 예수게이 모드로 체인지했다.

〈누구냐!!〉

쌓여 있는 짐의 산을 무너트리면서 등장한 나에게 그들은 순식간에 무기를 겨눴다. 가방에서 무기를 꺼내드는 폼이 딱 범죄자들 스멜이 났다.

나는 코웃음을 치고 혈수마공의 기수식을 갖추었다.

〈찐빵 또짠씌 신촌 신촌 쫜.〉

〈뭐?〉

〈췐궈 쭈이 따더!! 메이뉘 루오리아오 지에 다이 쫑씬!! 샹씨엔 라!!〉

대충 떠오르는 말을 입에 주워섬긴 거였는데, 이세계인들에게는 해석 불가능한 이상한 말로 들릴 것이다. 내 번역 능력으로도 해석이 안 될 정도니까 말할 필요도 없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마피아들은 얼굴을 사납게 일그러트렸다.

〈이, 이 새끼!! 키타이 인이다!!〉

〈키타이라고? 너, 아즈테카 말도 할 줄 알았냐?!〉

〈아니, 사실은 거의 해석하지 못했어!〉

〈……그런데 아즈테카 말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는데?〉

〈그야 금방 알 수 있잖아? 왜냐하면 나는 우리 보스를 믿으니까! 보스가 저딴 이상한 억양으로 말하는 놈은 키타이에서 우리 나와바리를 노리고 온 새끼로 여겨도 된댔다고!〉

그들은 지들끼리 뭐라뭐라 상의하다가 흩어졌다. 몇 명은 물건을 챙겨서 튀고, 다른 몇 명이 나를 제압할 생각이었다.

‘밀거래 책임자들인가. 별 것 없군.’

결계의 수준이 높아서 걱정했는데, 장비를 안 챙겨온 지금이라도 문제 없을 듯 했다.

‘이 놈들이 결계를 깐 게 아니라면, 거래 상대가 설치한 거겠지.’

그렇다면 때려잡아서 뭐 하는 새끼인지 캐낸다.

나는 주먹을 움켜쥐면서 번개처럼 킥을 날렸다.

〈니취팔로마──!!〉

내 예상대로 거래 담당 마피아들은 좆밥이었다.

〈크윽!!〉

나는 도망을 치던 새끼들까지 전부 제압해서 기절시키고, 대표로 보이던 놈을 자빠트렸다.

─와르르.

더플백을 뒤집어보자 대충 봐도 몇 골드는 해 보였다.

이만한 금액이 오가는 거래인데도 힘 좀 쓴다는 어깨들이 없다니, 안전 불감증인가? 나였으면 수억 원이 걸린 거래에 이런 한심한 부하들을 붙여놓진 않았을 것이었다.

‘……패밀리의 실력자들은 얼굴이 알려져 있을 테니, 현장을 들켰을 때 발뺌을 못 할 것 같았나?’

그리 생각한 나는 넘어트린 마피아의 가슴을 짓밟았다.

〈커흑!〉

〈여기서 누구랑 거래를 했지? 시치미 뗄 생각 말고 대답해라. 너희들이 나누던 얘기는 중간부터 들었다.〉

〈흐, 흐흐흐. 무슨 얘기인지 도통…….〉

갈비뼈가 부러졌는데도 마피아는 오리발을 내밀었다. 이런 증거물을 두고도 강짜를 부리는 용기는 훌륭하지만, 하찮은 궁여지책에 불과했다.

〈그래, 알았다. 시체 치우기는 귀찮으니 너 하나만 죽이고 끝내자.〉

나는 발바닥에 마나를 모아서 뿜어냈다.

월향 패밀리를 쳐부술 때랑은 다르다. 죽여놓고 그냥 가버려도 되는 장소가 아니잖은가. 마피아들의 거래 장소로 쓰이긴 했어도, 여기는 무고한 상단의 물류 창고로 보였으니까.

심폐정지술을 맞은 마피아는 침을 토하고 절명했다.

이제는 새삼스럽게 설명하는 것도 귀찮은 과정을 통해서, 나는 그의 영혼에게 거짓 없는 대답을 들어낼 수 있었다.

〈……마법사?〉

〈예. 저희들에게 상전처럼 구는 빌어먹을 자식입니다. 저희 패밀리에서는 놈한테 마약을 사고, 그 놈에게 마법 시약을 팝니다.〉

자기가 이그니스 패밀리 소속이라고 자백한 마피아는 그리 말했다.

이그니스 패밀리.

3대 마피아에서 2번째로 역사가 긴 씹새들이다.

〈어떤 시약이지? 위법 약재인가?〉

〈아니오. 마법사 길드에서도 살 수 있는 물건입니다.〉

질문에 대답하는 마피아의 영혼. 다른 새끼들은 전부 기절-수면 가스 테크로 혼절 상태다.

그러니까 나 혼자 떠드는 것처럼 보이거나, 강령술사로 여겨질 걱정은 없었다.

〈……너희 보스는 거래에 대해서 뭐라든?〉

〈자금 세탁이나, 구매 이력을 지우려는 목적으로 그런다 하셨습니다.〉

〈동감이다. 느그 오야붕도 머가리가 좀 돌아가는군.〉

눈이 풀린 채로 대답하는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추리의 퍼즐을 딱딱 채워갔다.

〈마법사의 인상착의는?〉

〈로브를 쓰고 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남자입니다. 거래할 때마다 비에 젖은 노숙자 저리 가라 할 악취가 났습니다. 또 향수 냄새도 말입니다.〉

〈시체 썩는 냄새 같지는 않았나?〉

〈어… 아……? 어, 맞습니다.〉

마피아는 멍청해진 머리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나는 눈을 반개했다.

‘그 새끼군.’

라리루라에게 주먹질을 해댔던 시팔럼 말이다.

그때 그 새끼가 언데드로 만든 시체를 조종해서, 이그니스 패밀리와 마법 시약을 거래하고 갔던 모양이다.

‘흑마법사는 돈이 있어도 마법사 길드의 물건을 못 사니까.’

이세계의 흑마법사는 말하자면 테러리스트다.

돈이 있어도 필요한 재료를 못 사는 놈들이니, 이렇게 마피아들과 거래하던 거겠지.

이그니스 패밀리는 말하자면 구매 대행을 해 준 것이다.

‘……소거법으로 생각하면, 흑마법사는 코르보나 패밀리다.’

이그니스 패밀리일 가능성은 0%다. 같은 패밀리 소속끼리 이렇게 번거롭게 거래하는 건 병신 짓이니까.

키타이 마피아인 아눌루스 소속일 가능성도 낮다. 3대 마피아 패밀리의 일원이라면 남은 가능성은 코르보나 패밀리밖에 없다.

마침 월향 패밀리에 티르시 납치를 의뢰한 것도 코르보나 패밀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프리랜서 흑마법사일 가능성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창고에 깔린 결계는 그놈이 쳤나? 너희는 어떻게 그 결계에 들어오고, 나가지?〉

〈제가 가진 명패가 있으면 결계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씹놈이. 그런 게 있으면 빨리 말해야지. 안 물어봤으면 못 챙길 뻔 했잖아.〉

─바스락.

나는 그 놈의 시체를 뒤져서 나무패를 찾아냈다.

오딘의 눈으로 봐도 마법이 가미된 매직 아이템은 아니다.

‘이걸 갖고 있으면 통과 가능한 결계를 설치하는 거겠지.’

처녀와 동정만 통과할 수 있던 유니콘 흑마법사의 결계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일단 이건 마법이 안 걸려 있으니까, 추적당할 걱정 없이 챙겨가도 될 것 같았다.

나는 나무패를 주머니에 넣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거 아무래도…… 〈임모르탈리스〉 같지?’

흑마법사=그 새끼들이라는 인식은 너무 비약이다.

하지만 이렇게 치밀한 결계와 자금력을 보면 절대로 보통 흑마법사 같진 않았다. 흑마법의 숙련도도 위협적이었으니 말 다 했다.

1. 〈임모르탈리스〉의 일원이 마피아 분쟁에 개입했다.

2. 흑마법사 마피아가 〈임모르탈리스〉에 가입했다.

아마 이 둘 중 하나겠지만, 내 입장에선 거기서 거기다.

‘최악의 사태엔…… 골렘 토벌대 때처럼 도시 하나를 전복시킬 사건이 일어날지도 몰라.’

나는 팔짱을 끼고 신음을 흘렸다.

〈임모르탈리스〉는 유독 내가 만나온 씹새들이랑 집단의 모색이 다른 단체였다.

미치광이 환경보호단체인 헤니르와 친구들.

로마니아 홍위병인 〈편찬대대〉.

이 둘은 지들끼리 끈끈한 유대와 상하관계 비슷한 게 있는 범죄조직이었다.

그런데 〈임모르탈리스〉는 별개다.

‘이 새끼들은 무슨 조직이라기보단 그냥 흑마법사 친목회 같은 느낌이야.’

생각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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