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2화 (322/1,009)

유니콘 흑마법사 새끼는 네페르티티를 사냥하고 사르가디스를 갈아마셔 버리려는 일대 계획을 세웠는데도, 계획을 실행하는 내내 혼자였지 않은가.

게다가 그 새끼는 예르나랑 개인적인 교류까지 있었다.

그것이 〈임모르탈리스〉 단원들의 개인주의 기질을 드러낸다.

이 새끼들은 간부와 따까리로 나뉘긴 했지만, 전원 자신의 영달에밖에 관심이 없는 놈들인 것이다.

하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흑마법사는 지 몸이 어둠과 음의 마나에 좆창나도 마법만 갈고 닦을 수 있다면 상관 없다는 사고관의 범죄자들이니까.

‘……티르시를 납치한 건 월향 패밀리의 뒷배였지.’

그리고 패밀리의 보스인 테무르굴은 사실상 흑마법사의 노예나 다름이 없었다.

흑마법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를 언데드 격투 게임 캐릭터로 바꿔버릴 수 있었으니까.

‘……그 새끼를 순식간에 언데드로 바꿔버렸던 건 예전에 마법 시술을 해 뒀기 때문일 거고.’

테무르굴은 라리루라를 보고 욕망을 드러내던 속물 새끼다.

자처해서 시술을 받았을 가능성은 적다.

속여넘겼든 억지로 시술했든, 그 흑마법사는 테무르굴이 지 몸을 개조당해도 찍 소리 못 낼 만큼 절대적인 갑(甲)이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왜 티르시를 노렸냐 하는 거야.’

아니, 사실 ‘왜’ 노렸는가 하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어쩌면 그 계획적인 납치가 〈임모르탈리스〉 단원이 보낸 사주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시발, 좆 같은 생각 하지 마.”

나는 불길함이 다시 피어오르는 기분에 자기 머리를 퍽퍽 두들겼다.

일부러라도 잊으려고 했던 가능성이 내 뉴런을 헤집었다. 낙관적으로 생각하던 머리에 찬물을 끼얹어진 기분에, 자칫하면 주머니 속에서 만지고 있던 나무패를 부숴버릴 뻔 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리 중얼거리면서도, 떠오르는 건 유니콘 흑마법사의 연구실이다.

나무통에서 썩어가던 사람의 머리.

그건 영혼을 봉인한 두개골을 나무통에 채운 흙에 파묻고 썩혀서, 그 영혼의 자의식을 훼손시키는 사악한 주술이었다. 유니콘 흑마법사는 그렇게 부하로 쓸 골렘을 양산했다.

만약 티르시를 납치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면?

애초부터 그녀에게 언데드화 시술을 걸어서, 무언가 커다란 계획의 단초(端初)로 삼으려던 거였다면?

꽈아악…!

나는 이를 갈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당연히 이건 증거라곤 없는 억측이다.

그래도 티르시가 루크레겐스에서 실종된 지가 벌써 몇 십일째다. 만에 하나, 억에 하나라도 이 억측이 들어맞았을 때는 가망이 있다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 흑마법사를 찾아야 해.’

코르보나 패밀리의 본거지를 헤집던가, 새들이 찾은 도시 안의 강자들을 전부 체크해지 않으면 안 됐다.

영애에게도 보고를 때리고 지원을 받자.

새로 변신한 베로니카라면 〈공간이동〉을 써서 편지를 배달해도, 의심받을 일 없이 무지막지 빠른 전서구로 위장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었다.

흑마법사 새끼가 납치범이면 티르시의 행방을 알 수 있다.

만약 그 놈도 중간 하청이라면, 더 윗선을 캐내면 된다.

내가 거기까지 생각하며 이를 뿌득거렸을 때였다. 나는 내 어깨를 노리고 짓쳐드는 투사체를 감지하고 급하게 몸을 비틀었다.

─피융!!

마비독을 바른 듯 번들거리는 은화살이 사선(射線)에 있던 마피아의 영혼을 증발시켰다.

‘내가 공격당할 때까지 눈치를 못 챘다?’

정신이 딴데 팔려 있었단 건 둘째치더라도, 또 만만치 않은 적의 등장이었다. 나는 혀를 차면서 몸을 돌렸다.

나를 노린 건가, 아니면 마피아의 영혼을 노린 건가.

어느 쪽인지에 따라서 적의 정체나 제압한 다음의 처우도 바뀔 것이다.

가면을 쓴 얼굴로 사납게 이를 갈았던 나는 반격할 유예도 주지 않으려는 듯 날아드는 돌격창을 목격했다. 이 놈도 바로 코앞까지 와서야 간신히 기척을 감지했을 정도였다.

쐐애애액─!

날아드는 짧은 돌격창. 나는 기술을 펼쳤다.

파이어 토네이도(Fire Tornado)

트리플 액셀을 시전하면서 혈수마공의 푸른 불꽃으로 쥐불놀이의 태극을 그렸다.

습격자는 뿌려지는 불꽃에 감히 접근할 엄두를 못 냈다.

나는 그 틈에 거리를 벌리면서 적의 모습을 파악했다.

근접전을 걸어온 상대는 기마병처럼 돌격창과 방패를 장비한 습격자다. 로브를 쓰고는 있지만 내 눈썰미는 그 아래에 입은 갑옷을 간파했다.

‘전신 갑옷을 입고 내 바로 앞까지 접근해 왔다고?’

그렇다면 저 갑옷부터가 매직 아이템이군.

이세계에서 장비의 수준은 착용자의 실력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척도였다. 나는 기사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화살이 날아온 장소도 체크했다.

‘화살은 위쪽 45도 각도로 내려꽂혔다. ──창문인가?’

가면에 가려진 눈알을 굴렸다.

물류창고의 정문 위쪽에 난 창틀에 궁수가 서 있었다.

달을 등진 여자다.

로브와 가면으로 정체를 숨겼지만 그 서 있는 자세에서는 귀족의 품격이 엿보였다. 각궁도 비싸 보이게 생겨먹은 게, 딱 봐도 매직 아이템이다.

그녀는 화살을 시위에 걸면서 말했다.

〈계획 재수정. 플랜 B는 파기, 플랜 D2로 전환.〉

〈네, 마담.〉

대답하는 기사의 목소리도 가냘프다. 둘 다 여자다.

나는 불꽃을 감은 주먹을 수도(手刀)로 바꾸며 인상을 썼다.

‘……이 인간들, 마피아가 아닌가?’

암호를 주고 받는 걸 보면 계획적인 습격이다.

하지만 이 거래현장을 고작 둘이서 습격할 이유가 있나?

일단 3대 패밀리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여자들은 하는 짓이나 꼬라지가 마피아도, 경비병도, 이단심문관도 아니라는 건데…….

‘……아니, 솔직히 아무래도 상관 없어.’

공격해 온 부위가 어깨나 팔다리였으니까 다짜고짜 죽이려 든 건 아니겠지만, 나도 정당방위로 반격할 권리가 있었다.

사람이 기분 더러울 때 선빵을 갈겨온 것 아닌가.

지들도 쳐맞을 각오 쯤은 했겠지.

나는 오해일지도 모를 싸움을 말로 해소할 생각을 버렸다. 뭐하는 인간들인지는 몇 대 줘패주고 물어봐도 된다.

부우웅─!!

기사가 창을 내질렀다. 나는 수도를 세우고 창을 무식하게 튕겨냈다.

그녀는 내 혈수마공의 권강(拳罡)에 놀란 듯 하면서도 딴 손으로 든 방패를 밀어붙였다. 그곳에 마나가 모여드는 것을 나는 영감으로 감지해냈다.

방패를 쥔 기사가 속삭였다.

〈임팩트.〉

피닉스 윙(Phoenix Wing)

공격 기술일 거라고 예측한 나는 태권도의 장법으로 방패에 올려치기를 먹였다.

─터엉!! 갈고리 같은 손에 가격당한 방패의 면이 하늘을 향했다. 거기에서 공업용 배터리를 연결한 스턴건처럼 전류가 뿜어졌다.

‘제압용 기술인가?’

공방일체의 방패가 방해됐다. 나는 눈을 부라렸다.

‘방패부터 치운다.’

나는 기사의 헛점을 겨누고 캘러미티 혼을 날리고자 했다. 방어해도 마나가 체내로 뚫고 들어가서 팔을 부수면 방패를 들 수 없게 될 것이니까.

당연히 궁수는 그것을 좌시하지 않았다.

귀신처럼 빠르게 날아온 화살이 내 팔에 부딪혀서 움직임을 저지했던 것이다.

하지만 궁수는 공격에 성공하고도 경악했다. 그녀의 화살은 거인 가죽 갑옷과 야수회귀 이너 아머 모드의 방어력을 뚫지 못하고 튕겨나갔기 때문이다.

〈쯧.〉

공격을 버틴 나도 혀를 찼다. 내 방어력을 믿고서 대처를 안 했던 건데, 생각보다 화살의 위력이 쎘다.

어깨빵을 당한 것처럼 오른쪽 어깨가 약간 밀려서 킬각을 놓쳤다. 기사는 궁수의 보조에 전념할 생각인지 거리를 뒤로 벌렸다.

‘안 놓친다.’

거리를 둔다면 고마울 뿐이다. 나는 마나를 변화시켰다.

나는 혈수마공을 운용할 때에는 계속 ᛒ(Berkanan)의 룬을 펼치고 있다.

거기다가 오딘의 눈으로 분석한 기존 마법들의 술식을 조합하면 새로운 마법을 만드는 건 간단하다.

〈화살〉 시리즈 마법의 ‘마나를 쏘아내는’ 술식을 엮으며, 변신 마법의 룬으로 불꽃의 마나를 ‘날아가는 날개’로 변화시켰다.

“삐에에에에엑──!!”

내 팔뚝에 앉은 마나는 새된 포효를 울리며 불꽃의 날개를 펼쳤다.

나는 그걸 【게르튀르】의 초식으로 투척했다.

카이저 피닉스(Kaiser Phoenix)

내 힘에 〈화살〉의 속도, 날개짓의 가속이 더해지자 푸른 주작은 적 궁수의 화살보다 3배는 빠른 속도를 얻었다.

우아하게 비상한 주작이 기사의 방패 위로 폭발했다.

〈크흡!〉

─콰과과과곽!

기사는 뒤로 밀려났지만 폭발을 견뎠다. 쏜살같이 날아가는 속도와 고열의 불꽃이 효과적인 기술이긴 한데, 폭발력은 딱히 크지는 않다.

‘물론 그거야 기술을 연습했을 때부터 알고 있던 일이지.’

나는 대쉬하면서 추가로 마나를 조작했다.

─슈르르르! 불꽃이 회전하면서 기사의 방패에 달라붙었다.그것은 마치 어미새가 알을 보듬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그 열기는 겉보기처럼 온화하지 못했다.

〈아니?!〉

〈몸에서 떨어트린 마나를 다시 조작했다고요?!〉

기사의 경악과 궁수의 비명이 겹쳤다. 기사는 방패에 붙는 열기에 움직임이 굳었고, 궁수가 날린 화살은 재빠르고 은밀했지만 피해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퓨융!

3점사를 피하고 받아치면서 궁수에게 접근했다. 싸우는데 계속 짤짤이를 날려대면 귀찮다.

딱 보기에 방어력은 낮아 보이니까 제압하면 대화의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치잇!〉

기사의 결심은 빨랐다. 푸른 불꽃이 눌러붙는 방패를 뜯어냈던 것이다.

불꽃에 뒤덮인 방패를 들고 있다가 갑옷 안에서 쪄죽기는 싫었던 모양. 방패를 버리게 하려는 속셈이긴 했는데 이렇게 빨리 대처하는 건 예상 밖이었다.

그래봤자 속도로 나를 쫓아올 수는 없었다.

갑옷의 무게를 신경 쓸 만큼 허접한 실력은 아닌 듯 했지만, 발 자체가 나보다 느렸기 때문이다.

‘자. 어떻게 나오지?’

투창이냐? 또 다른 매직 아이템이냐?

화살을 튕겨내면서 나는 기사가 궁수를 노리는 나를 어떤 방법으로 요격할지를 예상했다.

그리고 기사가 고른 선택은 완전히 내 허를 찔렀다. 그녀는 돌격창을 옆구리에 붙이고 발을 낮춘 것이다.

─츠파앗!

기사는 거의 무음으로 원래의 몇 배나 되는 스피드를 발휘했다.

직선의 질주였지만 그 대쉬만은 나보다도 현격히 빨랐다. 뭔가 독특한 무술을 쓰는 모양이었다.

‘……이건 위험하겠는데?’

돌격창은 마상창(馬上槍)이라고도 한다. 말의 스피드에 저 무게와 튼튼한 창이 합쳐져서 나오는 위력은 이세계에서도 얕볼 게 못 됐다.

나는 말 없이 말보다 존나 빠르게 달려드는 창기사를 회피했다.

‘존나 CP9인가. 체를 쓰네.’

죽여도 되는 적이었다면 트럭끼리의 추돌사고처럼 정면에서 부딪혀 봤겠지만, 만약 그랬다간 나나 그녀 중에 한쪽은 큰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돌격창이 예수게이 모드의 털망토를 스쳤다.

정확하게는 맞추긴 했어도 뚫진 못했다. 이것도 거인 가죽 갑옷이거든. 그래도 정통으로 맞았으면 혹시 몰랐다.

‘씨발. 요즘 왜 이렇게 강한 녀석들이 자주 보이냐?’

흑마피아 법사 새끼도 그렇고, 게임도 아닌데 내가 강해질 때마다 적들의 강함도 올라가는 것 같았다.

쯧, 투덜대봤자 소용없겠지. 나는 자신의 불평을 이성적으로 반론했다.

촌구석인 사르가디스에서도 강자는 많았다.

내가 만나본 사람만 해도 각 길드 지부장 셋에 유니콘 흑마법사를 상대로 시간을 벌었던 모험가 팀까지, 한 손으로는 못 셀 정도로 있다.

브딱이 시절이었다면 방금 제압한 마피아들을 상대로 영혼까지 짜내서 싸우다가, 이들에게는 입을 털든가 해서 어떻게 극복해야 했겠지.

그렇게 치면 내가 강해졌을 뿐, 세상의 강자 비율은 별로 바뀌지 않은 것이다.

사르가디스보다 몇 배는 커다란 도시라면 솜씨에 자신이 있는 놈들도 몇 배 더 많을 법 하니까.

〈그래도 달인이라고 할 수준은 아니군.〉

듣고 빡치라고 의식해서 입 밖으로 냈다.

공격을 피하면서 방패를 잃은 어깨를 걷어찼다. 기사가 풀 장비였을 때는 양쪽 모두 방비가 철저했겠지만, 방패를 버려버린 지금은 아니다.

내 킥에 맞은 기사는 주체 못할 가속 중에 균형을 잃고서 바닥을 굴렀는데, 그러고도 벌떡 일어서서 나를 쫓아왔다. 놀라운 터프함이다.

참고로 ‘쫓아왔다’는 뜻은 또 그 초가속을 썼다는 소리다.

오토바이 사고처럼 바닥을 크게 구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상태는 일류 전사다웠다.

나를 상대로는 악수(惡手)였지만 말이다.

오딘의 눈이 마나의 움직임을 간파했다.

내가 처음으로 만났던 진짜 달인급 전사는 네페르티티다.

그녀는 나에게 기술의 요령을 알려주면서 말했다. 자고로 달인이라면 자신만의 기술을 갈고닦게 되고, 그것을 반복연습으로 숙달해야 하는 것이라고.

─마법의 술식처럼 체계적인 공격을 만들어. 네 마나가 가장 움직이기 편하고 익숙한 길을, 몸 안에 틀면 돼.

‘그렇게 만든 기술이 가장 강하고 빠르다.’

저 기사도 그럴 것이다. 군마 없이 마상공격을 해내는 그 초가속 대쉬의 기술은 훈련을 반복해서 마법의 술식처럼 만들어낸 그녀만의 기술이겠지.

하지만, 그 체계적인 구조 때문에 오딘의 눈에 보인다.

스프링처럼 회전하고 압축되면서 다리에 탄성을 가해주는 마나가 눈에 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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