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7화 (327/1,009)

그러자 여도적이 나를 보며 눈쌀을 찌푸렸다.

〈뭐?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내가 그대들 입장이었다면 보스들이 한 곳에 모인 것은 오히려 호사라고 여겼을 것이오. 교단에 돈을 찔러주고 몇 마디만 하면, 저 건물에 압류 수색을 요청하는 건 간단한 일이니까.〉

〈교, 교단?〉

여도적은 말귀가 어두웠지만, 마법사와 프리모르는 안색이 바뀌었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데.

〈뇌물을 받아먹는 자들이 3대 패밀리와 척을 지지는 않겠지만, 이만큼 큰 도시라면 암회를 혐오하는 청렴결백한 성직자도 있지 않겠소? 무엇보다 명분은 우리에게 있소.〉

〈도시의 암흑가 세력이 한 곳에 모여서 불온한 움직임을 보인다. 그렇군요. 뇌물을 받은 성직자들도 입을 싹 닦고 ‘이렇게 소란을 피워댔으니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라면서 우리의 청탁을 받아줄 수 있겠어요!〉

마법사가 손뼉을 쳤다가 여도적에게 혼났다. 숨어 있는 중이라는 걸 망각했냐는 핀잔이었다.

화살통을 매만지던 프리모르가 중얼거렸다.

〈……3대 패밀리의 동향은 시민들도 눈치채고,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교단에도 핑계는 많겠군요. 적당한 돈과 제 신분만 내세우면 가능한 일이에요.〉

〈맞소이다. 그렇게 저들의 움직임을 저지하면 그대들은 이 도시에서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을 거요. 영주의 병사들도 눈에 불을 켜고 그대를 찾겠지만, 그대들에게 손해는 없지.〉

3대 패밀리의 보스들이 싸그리 교단에 억류당하면?

프리모르와 부하들이 경비망을 피해서 다시 도시를 빠져나가기 쉬워진다. 암회는 눈을 훤히 뜨고 타겟을 놓쳐버리는 것이다.

말수가 적은 성기사 헨리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한 곳에 모여 있지는 않을 거라는 뜻인가.〉

〈나는 그렇게 보고 있소. 아마 중간 보스나 대리인이 코르보나 저 건물에서 합의를 보고 있겠지. 다른 보스들은 저 건물에 교단의 집행관들이 들이닥치면 그때 행동하려고 자기들 본거지에 숨어 있겠지.〉

〈하지만 교단에 협력을 요청하면 그들에게 마님의 신분이 들켜버립니다.〉

어젯밤 나한테 쳐맞았던 여기사가 말했다.

이 사람은 저번부터 마님 일만 되면 흥분하는 게, 충성심은 호위들 중에서 제일인 듯 했다.

아마 그래서 어젯밤에도 마님의 독단행동에 따라나선 걸까.

‘그리고 그 섣부른 행동거지 때문에 다른 호위들은 마님을 탐탁치 않게 보는 건가?’

개판이구만.

나는 협력자라고 구한 놈들이 콩가루 파티라는 것에 속이 쓰려졌지만, 티 내지 않고 말했다.

〈주인이 직접 갈 필요는 없소. 그대들 중 일부가 대신 가기만 해도 되는 일이오. 그리고 나는 실제로 교단에 연락하라곤 하지 않았소. 중요한 건 저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여도적은 그리 중얼거리고서 가방에서 시약을 꺼냈다.

그걸 바닥에 뿌리고 뭐라뭐라 중얼거리는 그녀. 나르메르-나일의 말이었는데, 그 주문에 근처의 쥐구멍에서 벌레가 몇 마리 빠져나왔다.

“힉.”

라리루라는 질겁하면서 내 팔에 매달렸는데, 같은 여자면서 여도적은 시큰둥하게 그 벌레들을 손에 올렸다.

〈……쯧. 겨울이라서 거의 하자 있는 놈들밖에 없군요.〉

〈원래는 뭘 할 셈이었소?〉

〈그녀는 벌레를 통해서 정찰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좀 시기가 나빴습니다만…….〉

대신 변명해 주는 프리모르. 그녀도 나름 좋은 주군이다. 이 호위들이 충성을 바친 게 그녀의 남편이 아니었다면 혹시 더 좋은 파티가 되었을까.

〈……정찰이라. 그 벌레들로는 불가능하오?〉

〈이 계절에는 높이 못 날아. 정면으로 날아갔다간 의심을 살 거고.〉

〈그거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겠군.〉

그리 말한 나는 눈을 굴렸다. 근처의 빨랫줄에 앉아 있던 새가 보였다.

〈옴·마케이 시발라마 소와카. 도막사라무──.〉

〈……지금 뭐 하는 거냐?〉

뭐 하기는 병신아.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메소드 연기하는 중이잖냐. 집중하는데 아가리 합시다.

〈옴 마니 반메 훔!〉

나는 치도리의 인을 맺으면서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육포를 투척.

“구구륵─! (고기─!)”

─푸드덕!

품에서 육포를 꺼내서 던져주자 금방 낚여서 내 앞으로 내려왔다. 딱 좋다. 이 새끼, 반응이 빠른 걸 보니까 어젯밤에 내가 먹이를 줬던 놈인가 보다.

나는 그 놈에게 다시 육포를 주면서 그 배에다가 은밀하게 ᚨ(Ansuz)의 룬을 새겼다.

프리모르가 듣는데 대놓고 국구르국구 할 수는 없으니까, 룬 마법으로 일방통행 텔레파시를 날리는 것이다.

“야. 너 등에 벌레 태우고 저 건물 정찰 좀 하고 와라.”

새대가리야…… 들리니……? 지금 네 손톱만 한 뇌에 말을 걸고 있단다…….

“구구륵 푸르륵? (고기 줄 거야?)”

고개를 고로 꼬며 묻는 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성공하면. 그러니까 등에 태운 벌레 쪼아먹거나 하지 마라.”

“국구! (내!)”

그 놈과 쇼부를 본 나는 여도적을 설득해서 그 새끼의 등에 벌레를 태우고 정찰을 시켰다.

여도적은 벌레와 시야를 공유하는 마법을 쓰는지, 정찰이 끝나자 밝은 얼굴로 웃었다.

〈정말인데? 마테이 로시를 빼면 보스급은 없고, 따까리들이랑 대리인밖에 안 보여.〉

〈확실하냐?〉

〈너 나 못 믿냐? 내가 척후병 경력만 10년이야. 패밀리의 인적사항 조사도 제대로 못 했을까 봐?〉

〈아니, 그건 믿지. ……좋아. 그 정도라면 나랑 헨리 씨가 힘 좀 쓰면 어떻게든 되겠군.〉

나는 주먹을 부딪히며 그렇게 말하는 한스의 당당함에 헛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고개를 젓고 프리모르에게 물었다.

〈작전대로 돌입하지. 옆건물로 올라가시오.〉

〈예. 무운을 빕니다.〉

─타닷.

프리모르와 따까리들은 조용하게 이동했다. 저들은 이제 옆건물에서 창문에 밧줄을 쏴서 연결하고, 공수부대처럼 그걸 타고 보스가 있는 방에 쳐들어갈 것이다.

“저희는 이제 소란을 피우면서 올라가야 하나요? 진이 빠지겠는데요.”

“그럴 필요 없어. 몇 놈 족치고 베로니카한테 부탁해서 저 인간들 바로 밑의 층으로 <공간이동>할 거야.”

라리루라는 내 말에 눈을 깜빡거리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핫♡! 선배~? 아까 저 사람 손바닥 뭉개버릴 때 룬 마법 몰래 부여하셨죠?”

“흐흐. 아프면 눈치가 무뎌지는 법이지. 10층을 전부 뚫고 올라갈 수는 없잖아?”

그렇게 말한 나는 라리루라에게 몇 개인가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깜짝 놀라던 라리루라는 내 말을 진지하게 귀 담아 듣고서 싸울 준비를 했다. 나는 베로니카와 연락을 때렸다.

준비 끝. 그럼 돌격이다.

〈멈춰라!〉

나랑 라리루라가 당당하게 다가가자 입구를 지키던 마피아 새끼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누군지 이름을 밝혀라! 무슨 일로 이 건물에 왔느냐!〉

〈성인용품 배달.〉

나는 변신 마법으로 만든 상자를 내밀었다.

입구를 지키던 마피아들은 허를 찔려서 넋이 나가버렸다.

〈서, 성인용품? 누구의?〉

〈마테이 로스 님 귀하라고 돼 있군. 받아보쇼.〉

─휙. 내가 던진 택배를 받는 마피아. 누가 봐도 수상한 내 꼴을 보고도 그냥 택배를 받는 게, 이세계는 폭탄 테러라는 개념이 없단 게 느껴진다.

〈……마, 마법사 길드 특주 남성용 딜도라고 돼 있는데?〉

〈이 씨발! 너희 보스 게이였냐? 우욱. 어째 보스 씩이나 되는 양반이 우리 패밀리가 새로 개업한 창관에 얼굴 한 번을 안 비추더니…….〉

〈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뭔 개소리야 씨발롬아!!〉

코르보나 패밀리로 보이는 남자는 성을 내고서 내용물을 열려다가, 진짜 보스의 엉덩이에 깔맞춤한 딜도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차마 열지 못했다.

대신 나한테 화풀이를 하려는 듯 외쳤다.

〈이, 이건 내가 책임지고 맡겠다! 이제 꺼져!〉

〈수취 사인을 받아야 하는데.〉

〈시발, 꺼지라고! 통행증이라도 갖고 왔냐?〉

〈그런 건 없다.〉

나는 오른팔에 피닉스를 소환했다. 혈수마공의 푸른 불꽃이 쇳소리 같은 포효를 울렸다.

〈끼에에에엥에에에에엑──!!〉

〈으끼야아아아악!!〉

습격자 치고는 너무 개성적인 어프로치에 방심하던 그들은 폭발에 휘말려서 날아갔다. 나랑 라리루라는 그 틈에 잽싸게 안으로 파고들었다.

〈기습이다!! 반격해!!〉

입구에 진을 치고 있던 마법사들이 마법을 쏴댔다.

─푸부부북!!

하지만 나보다 앞서서 달려나갔던 것은 내 안개 분신이다. 벌집이 되어도 계속 움직이는 분신이 수면 가스를 리펄서 건처럼 회전하면서 흩뿌렸다.

“스모크 인 더 홀.”

그 안개를 돔 형태로 퍼트리면서 우리는 계단을 향했다.

마피아들은 습격을 예상했던 만큼 대비도 나름 철저했다.

각 층마다 인원을 배치하고 계단에도 함정을 깔았다. 마법 함정부터 기관장치까지, 인간의 악랄한 기술 발전의 박람회나 다름없는 함정 퍼레이드였다.

〈카이저 피닉스 500배.〉

〈으아아아아악!!〉

그런데 내가 거기에 어울려 줄 필요가 있나?

나는 적당히 어그로나 끌러 온 거지, 고전 RPG 게임의 용사처럼 1층부터 치고 올라갈 생각은 없었다.

콰아아아앙─!!

〈시, 시발! 이 새끼 마법사잖아!!〉

〈내려가!! 밑에서 공격해 온다!!〉

위에서 소란을 피우는 마피아들. 그러면서 우당탕탕 거리며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도 들리지만, 그들 또한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수면 가스의 먹잇감이었다.

돌입 전에 내가 라리루라한테 알려준 작전은 이러했다.

‘1층을 뚫고 들어가서 수면 가스로 대기인원을 재우고, 그 밑에서 윗층 바닥을 부수고 또 수면 가스를 뿌린다.’

수면 가스로 시작해서 수면 가스로 끝나는 싸움이다.

K-RPG 게임의 스킬 하나만 쓰는 설계 미스 캐릭터도 이것보다는 다양한 기술을 쓰지 않을까.

‘아무튼 효과가 있으니 됐지 뭐.’

진형이고 뭐고 상대가 눈앞에 있어야 소용이 있는 것이다.

갑자기 서 있던 곳 옆이 폭발하더니 마시면 꿈나라로 가는 가스가 쏟아지자 마피아들은 어쩌지도 못하고 쓸려나갔다.

〈읏차.〉

나는 2층 바닥에 낸 구멍으로 위로 올라왔다. 라리루라도 내가 내려준 밧줄을 타고 따라왔고, 우리는 적당히 4층까지 같은 패턴으로 뚫다가 비품실 같은 방에 숨었다.

라리루라는 피 냄새를 털어내고 물었다.

“선배. 더 소란 피워야 하지 않아요?”

“쟤들도 병신이 아니면 제자리를 지켜봤자 의미가 없단 걸 알 걸. 몇 명은 보고하러 가고, 이 근처 층 녀석들은 밑으로 내려오겠지.”

어차피 우리가 모든 잡졸을 끌어모을 수는 없다. 70% 쯤은 우릴 잡으러 오고, 나머지 30%는 보스 주변을 지킬 것이다.

‘물론 그거야 프리모르와 친구들이 처리할 일이지.’

사람 수가 우리의 2배인데 그 정도도 못 하겠는가.

걱정되는 건 있지만, 내 생각이 맞다면 그렇게 빨리 위험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 방에 숨어서 수면 가스를 대충 조작했다.

내 위치를 모르는 마피아들은 내려와서 숨을 참고 나를 찾다가 하나씩 기절해댔다. 직접 본 건 아니고 소리로 들은 거지만 말이다.

“아. 왔군.”

한스에게 새긴 룬이 탐지 범위에 들어왔다.

굳이 4층까지 올라온 건 이것 때문이다. 10층에 있다는 보스의 방을 급습할 한스의 위치를 확인하는 건 이 위치가 제격이었던 것이다.

“슬슬 보스 방 밑으로 이동할까. 늦지 않으려면──”

─타타타탓!!

그렇게 라리루라에게 이동하자는 얘기를 꺼냈을 때였다.

─투퍽!! 수면 가스를 뚫고 들어온 새끼가 방문을 박살내고 우리를 습격했다. 예리한 눈빛의 남자였다.

그는 참았던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히죽거렸다.

〈왜 숨어 있지? 도둑질이나 하려고 쳐들어왔나?〉

〈돈이 될 만한 게 있으면 챙겨갈 생각은 있다.〉

과연, 죄다 병신은 아니라 이거지. 나는 픽 웃었다.

남자는 내 대답을 듣고 웃음을 터트리다가 눈을 치켜뜨며 할버드를 내려쳤다. 혈수마공의 불꽃을 검처럼 길게 뽑아서 막자 불똥이 튀었다.

〈실내에서 그런 긴 무기를 잘도 쓰는군.〉

〈쓰다 보면 익숙해진다!〉

〈그건 맞지.〉

창쟁이로서 공감이 가는군. 나는 장병기 사용자만이 아는 거리감각을 적의 리치에 맞춰서 재단하면서 몸을 피했다.

〈리사-쑤!〉

〈흡!!〉

─채앵!! 또 불꽃이 튀면서 시야가 가려졌다. 그 순간을 노린 것처럼 남자의 뒤에서 얼음 송곳이 쏟아졌다. 노려진 건 라리루라였다.

라리루라는 근처의 선반을 걷어차서 적의 시야를 막고 옆으로 뛰었다.

꼭두각시도 내 버프도 못 쓰는 우리 후배님이지만 걱정은 안 들었다. 내가 따로 무기를 챙겨줬으니까.

팔찌를 미스릴 창으로 바꾼 라리루라는 그걸 자기 힘과 〈꼭두극(Puppetry)〉으로 던져버렸다.

〈창?!〉

〈어딜 봐?〉

할버드를 든 마피아는 저지하려 했지만, 내가 있는데 가능할 리가 없었다. 창을 막으려던 할버드의 창대는 허겁지겁 내 공격을 막으러 돌아왔다.

적 마법사는 실드를 펼친 모양이었는데, 별 소용은 없었다.

예전에 이계의 대장 벌레에게도 통했던 투창이다. 뱀처럼 휜 미스릴 창은 연기에 몸을 숨겼던 마법사를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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