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무술의 문어발 연결이지.’
마테이 로시의 육체로부터 추출한 기술을 흑마법사가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걸 다른 언데드의 몸으로 펼친다.
그렇게 남들이 10년 20년을 단련한 기술을 수십 개씩 빼앗아서, 자신이나 남의 몸으로 사용하는 흑마법!
그게 저 남자가 쓰는 마법의 정체였다.
내가 보기에는 그마저도 어설펐지만 말이다.
흑마법사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그건 자기가 평생 연구한 기술이나 가설, 논문 따위를 쓰레기통에 쳐박지 못한 연구자의 흔한 발악이었다.
〈웃기지 마! 웃기지 마라! 그따위 정신론으로는 내 마법의 단점을 논할 수 없어! 내 마법의 재현률은 완벽하다! 의지의 결여 같은 이유로 납득할쏘냐!〉
〈정신론? 아니, 현실론이오. 뭣하면 하나하나 짚어주지.〉
나는 차분하게 도발기를 연타했다. 팩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말의 폭력으로 깨닫게 해 주는 수밖에 없으니까.
〈마법으로 공중을 날아다녔으니 진각을 못 밟아서 참격이 느려터졌던 거고, 팔의 근육이 박살났으니 근육을 강화해도 힘이 부쳤지.〉
〈……뭐?〉
〈거리가 있는데 폭발하는 마나 투창을 쏴대니 간단히 요격당했고, 확인사살할 타이밍이 아닌데 빈틈이 큰 발기술을 연발하니 내 공격에 맞았던 거요. 빼어난 기술을 그 몸에 익혔놓고 사용법이 틀려먹었단 얘기외다.〉
나는 병신을 보듯 말했다.
그의 허접한 근접전 능력은 무술의 신묘함을 깎아내렸다. 포커에서 밑장 빼기로 파이브 카드를 가져온 사기꾼이 게임의 룰을 몰라서 투 페어만 내고 있는 거랑 오십보 백보인 멍청함이었다.
〈무술에 집착하는 이유는 알겠소. 흑마법의 부작용이 몸을 좀먹는 게 무서웠겠지. 강인한 몸이라면 부작용도 더 견디기 쉬울 거라는 발상은 단락적이지만 핵심을 찔렀소.〉
내 말이 계속될수록 흑마법사의 안색은 창백해졌다가, 살의로 물들어갔다. 자기 연구를 겉핥기로 보고 전부 파헤치는 내 분석에 빡쳐가고 있는 것이다.
그럴 만 했다. 맛집에서 주방장을 앉혀놓고 레시피를 죄다 까발리면서 요리 존나 못하네~ 하고 있는 거랑 마찬가지 아닌가.
시발, 나여도 처음 보는 새끼한테 논문 발로 썼냐고 욕 먹으면 빡치겠다.
〈처음에는 그저 부작용을 억누르려던 게 본말전도가 돼 버렸겠지. 마음은 이해하오. 제 몸 다루기도 벅차던 멸치 주문쟁이가 팔다리에 힘이 넘쳐나니, 시험해 보고 싶었겠지.〉
〈……너. 어디서 나온 놈이냐.〉
〈화산파(火山派)의 예수게이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ᚨ(Ansuz)의 룬으로 텔레파시를 켜서 나르메르-나일 어로 속삭였다.
《그리고 너희 〈임모르탈리스〉의 마스코트였던 뿔 고자 유니콘을 죽인 모험가이기도 하고.》
《……………….》
《니들, 콩가루 집단이라서 동료가 죽어도 따로 복수는 안 한다며? 그러니까 너도 여기서 깔끔하게 죽자? 어차피 봐줄 생각 없어, 새꺄.》
반응이 있다.
이 새끼, 역시 〈임모르탈리스〉의 흑마법사였던 것이다.
《……과연. 그런가. 처음부터 함정이었다, 이거군?》
흑마법사는 넋이 나간 듯 서 있다가 큭큭거리면서 어깨를 떨었다. 나는 그 자의식 과잉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 지랄 노. 너 한 마리 족치겠다고 이 지랄 했을까 봐? 내가 그렇게 한가해 보여? 나도 할 일 있어서 온 거니까. 다 뒤지고 나서 양심껏 불자? 응?》
《……하. 그래, 내가 대접이 모자랐어. 이것도 흑마법사의 안 좋은 버릇이지.》
그는 이빨을 드러내면서 검붉은 안광을 더 짙게 흩뿌렸다.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승리보다 그 뒤의 부작용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는 것 말이다!!》
─촤촤촤촤촤아아악!!
9층 플로어를 더럽히던 피보라가 그의 몸으로 빨려갔다. 그 모습은 마치 피와 화약을 채운 보따리가 만들어지는 싸구려 스플래터 영화 같았다.
라리루라가 바닥에 버려졌던 장비를 주우면서 외쳤다. 딴 좀비들도 다 뒤진 모양인지, 프리모르와 호위들도 진이 다 빠진 듯 굴면서도 내 주변에 진형을 갖췄다.
여도적은 피로 고치를 짜는 흑마법사를 보며 질색했다.
〈제길. 이봐, 뭐라고 했길래 저 놈 저렇게 빡쳤어? 그냥 곧바로 죽여버리지!〉
〈미안하오. 나도 내공이 무한하진 않아서.〉
〈……염병. 관둬. 당장 나부터가 다 끝나고 나서 댁한테 사과해야 하는 일이 한두 개가 아닌데.〉
한스는 자연스럽게 죽을 복선을 깔아버렸다.
어, 음. 빡치는 새끼긴 한데 뒤지면 좀 미안할 것 같았다.
‘솔직히 킬각은 몇 번 보였는데, 일부러 놓쳐줬어. 쏘리.’
호위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이 과정은 나한테 필수였다.
진짜로 확 죽여버리고 끝나면 티르시의 정보를 알아낼 수 없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흑마법사 씩이나 되면 뒤진 다음의 영혼도 곱게 복종시킬 순 없을 거니까.’
나 엿 먹으라고 영혼이 자살해 버리든가, 남은 마나로 망령처럼 저항할지도 몰랐다.
살아있는 동안에 확실하게 힘을 빼 놓지 않으면 티르시의 행방을 알 방법이 없다.
적의 2페이즈를 보게 되는 건 나도 원하던 바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우리는 긴장하면서 피의 고치를 쳐다봤다. 고치에서 음험한 중얼거림이 새어나왔다.
〈네가 알려준 단점은 차차 극복해 가마. 말마따나,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건 200년 동안 거의 처음이어서, 즐거웠던 건 사실이거든.〉
〈……200살이라고? 흑마법사가? 그거 끔찍하군.〉
마법사가 중얼거리자 섬뜩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마법사 나부랭이답게 눈치는 있구나. 그래. 도박 빚과 고리대금, 젊음과 생명력은 쓰레기들에게서 갈취하는 것이지.〉
─푸확.
풍선이 터진 것처럼 맥없이 무너진 고치에서, 흑마법사는 새빨간 갑옷을 입고 걸어나왔다.
〈사실을 말해줄까? 코르보나 패밀리를 세운 건 나다. 이 전통을 이어온 2대째 이후의 보스는 내게 젊음과 돈을 가져다주는 좀비일 뿐이지.〉
피의 갑옷이 혈관과 일체화된 것처럼 흑마법사의 얼굴에도 뻗어나갔다. 나는 여차하면 정체를 까서라도 맞설 생각으로 주먹을 쥐었다.
〈그거 추잡한 얘기군. 근데 누가 물어봤소?〉
〈네 이름을 들었으니, 나도 내 소개를 해야 할까 싶어서 말이다. 골 백년을 넘게 이어온 내 사조직이 오늘부로 무너질 듯 하고, 이렇게 자칭하는 것도 이게 마지막 아니겠나.〉
흑마법사는 버프를 떡칠하고 자신감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자기 말마따나 생명력을 흡수해서 젊은 날의 치기까지 되살아난 것이던가.
진실이 어찌됐든, 그는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코르보나 패밀리의 초대 보스, 크뤤투스=코르보나다.〉
나는 그 새끼의 움직임를 예의주시하면서 가슴에 손을 가져갔다.
옥새에서 룬의 마나를 흡수해서 기존에 쓰던 룬 하나를 강화했다. 재기 넘치는 학자가 넘치는 물에서 물리법칙을 깨닫듯, 뉴런의 바다에 룬 문자의 참된 뜻이 솟아났다.
내가 그 마법을 바로 발동하고 있자, 흑마법사 크뤤투스가 물었다.
〈너도 나도 준비는 끝난 듯 하군. 그럼 시작할까.〉
〈나 말고도 다른 동료들도 있소만?〉
〈범과 사자가 싸우는데 여우를 머릿수로 세면 쓰나. 헌데 그 멍청한 말투는 언제까지 쓸 거지?〉
〈당신이 죽을 때까지.〉
크뤤투스는 내 말에 즐거운 것처럼 쪼개고서 팔을 저었다. 보라색 마나가 피보라로 해일을 일으켰고, 나는 후방에 있는 사람들을 신경쓰면서 불꽃으로 맞대응했다.
─콰르르르르!!
100% 파워로 쏜 불의 벽이 유적의 함정처럼 전진하면서 피의 해일과 부딪혔다.
혈액이 증발하며 피안개를 만들었고, 그 안개를 뚫으면서 십자 모양 참격이 날아왔다.
〈나의 주군을 위하여!!〉
한스가 같은 기술로 참격을 상쇄했다. 마법사도 실전에 익숙한 건지 주문을 외우지도 않고 손바닥에 전류를 피워냈다.
〈이 싸움! 방해만 될 수는 없다!〉
─쿠르르르릉!!
아마 〈연쇄하는 번개(Chain Lightning)〉인 듯한 마법이 크뤤투스에게 부딪혔다. 그 놈은 갑옷 빨로 공격을 버텨내며 프리모르가 쏜 화살을 팔로 휘감고 흘려보냈다.
하지만 빛의 마나가 깃든 은화살은 흑마법의 갑옷을 긁으며 스크래치를 냈다. 크뤤투스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성유물이 성당 밖에 흐르다니, 말세로군.〉
〈당신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악마완들 협력 못 할까요!〉
협력자 예수게이 씨 악마설. 나는 쓴웃음을 지었지만 독기 오른 프리모르의 화살 세례는 계속 빨라기기까지 했다.
흑마법사는 처음처럼 화살을 잡아채서 막으려다가, 앞에서 내가 페인트를 섞어가면서 견제하자 갑옷의 데미지를 감수하기로 결정한 듯 했다.
나한테 쳐맞는 것보단 갑옷이 깎여나가는 편이 낫다는 생각일까. 긁혀나간 갑옷이 재생하는 걸 보면 옳은 판단이다.
〈협력? 로비를 잘못 말한 거겠지, 어리석은 계집아.〉
〈하! 그 어리석은 계집에게 반지를 선물한 게 어디 사는 누구더라?〉
그렇게 비아냥댄 여도적은 아이스픽처럼 생긴 송곳으로 마법사가 펼치는 마법을 보조했다. 전류가 약해지지 않고 결계 안에 갖힌 듯 크뤤투스의 몸을 지졌다.
전기에 지져지며 크뤤투스는 투구의 바이저를 내렸다.
〈그래. 그것도 건방진 짓이지. 일부러 친구에게 부탁해서 만들어줬건만, 손가락을 잘라서 저주로부터 벗어나?〉
─철컥! 피의 갑옷을 입은 크뤤투스가 빠따질을 하는 폭력배처럼 검을 등 뒤로 당겼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막대한 마나가 그곳에 응축되었다.
〈네년이 사랑하는 남편은 정원 텃밭의 거름으로 써 줬다! 지아비의 시체에서 핀 과일은 감미롭더냐!〉
나는 검에 맺히는 마나를 간파하고 혀를 찼다.
크뤤투스는 근접전은 좆밥이어도 기술의 숙련도는 상당히 높은, 기형적인 전사였다. 사기 캐릭터를 들로 렉 걸린 것처럼 버벅대는 좆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버벅거림이나 구린 컨트롤도 한 방의 위력에만 치중하면 단점이 안 된다.
갑옷으로 강화된 힘이 뿜어내는 공격! 이건 혈수마공으론 못 막는다!
〈사마외도 놈. 지랄을 하는군.〉
그래서 나는 야수회귀의 마나를 최대치로 땡겼다.
피부의 아래에만 넣어뒀던 마나를 몸 밖으로 뽑고, 거기에 푸른 불을 붙여서 인간 양초로 변신한 것이었다.
뽑아낸 불꽃을 장대처럼 길게 짜내고 힘껏 휘둘렀다.
〈저 하늘의 별이 되어라!!〉
─까앙!!
3미터를 넘는 불방망이가 검을 쳐내자 뿜어지기 직전이었던 참격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손아귀가 얼얼했다. 오딘의 눈이 마법의 분석을 마쳤다. 부작용 때문에 전투 중에는 되도록 안 쓰려고 했는데, 이만한 마법을 상대로는 장점이 단점보다 컸다.
분석해보자 피의 갑옷은 야수회귀와도 맥락이 같았다.
‘저 갑옷은 단순 방어구가 아니야. 신체의 강화다.’
아마 흑마법의 페널티를 완화하려고 개발한 마법이겠지. 저 마법을 무기로 마피아 짓을 하다가 〈임모르탈리스〉에까지 가입한 걸로 보였다.
‘하지만 흑마법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저것만으로는 육체를 좀먹는 페널티를 막아내지 못하게 됐을 거야.’
그래서 남의 무술을 빼앗아가며 기초 육체까지 강화해대기 시작한 거겠지. 나는 그렇게 분석하면서 눈을 반개했다.
‘……프리모르를 치료했다는 치료 능력에 갑옷, 공격력까지 합치면 공방일체의 마법이군. 크기는 작지만 힘만이라면 거대 골렘에도 지지 않겠어.’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총평을 내렸다.
‘문제없다.’
장대를 채찍으로 만들어서 서로의 팔뚝을 연결했다. 흑마법사는 그걸 뜯거나 역이용하는 대신에 주무기인 갑옷의 스펙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부우웅!! 슈슈슈슈!!
나는 한결 빨라진 몸과 강해진 힘으로 그것을 막고, 피하고, 쳐냈다.
유니콘 흑마법사는 강했다. 하지만 그건 상대가 긴 시간을 거쳐서 네페르티티를 저격하는 함정을 팠기 때문이다.
나라는 변수 하나에 좆망해버리긴 했어도, 대비를 했느냐 아니냐는 마법사의 승패에 큰 영향을 준다.
〈이렇게나 진심으로 치고 박게 될 거라곤 생각 못 했는가 보오? 하기야 본거지에 좀비 인형을 두기는 무서웠겠지! 언제 고개를 들이밀지 모를 교단이 코 닿을 곳에 있으니!〉
이 새끼가 테무르굴을 조종할 때를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죽였다는 달인의 시체를 2~3구 모아서 다구리를 까는 게 주 전법이 아니었을까.
놈은 지금 그 전법을 봉인당했다. 유니콘 흑마법사 새끼가 결계를 못 쓰는 거랑 다를 게 없는, 약해진 상태라는 것이다.
─휘익! 척!
나는 주먹을 손등으로 미끄러트리면서 그 팔뜍을 채찍처럼 휘감았다. 스치듯 미끄러진 불꽃과 피의 갑옷은 압착기에 걸린 것처럼 단단하게 엉켰다.
야수회귀의 손톱을 세웠다. 내 다섯 손가락이 짐승의 턱처럼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나는 팔을 잡아당기며 갑옷을 긁어젖혔다.
─촤아아악!!
〈이익!!〉
계속 날아서 꽂히던 은화살에 약해졌던 오른팔은 걸레짝이 되어서 갈려나갔다.
코뤤투스는 회오리 감자가 돼 버린 팔 대신에 투구로 박치기를 날렸다.
하지만 나는 그 무릎을 밟고 이마에다가 니킥을 먹여줬다. 흑마법사의 고개가 튕기듯 넘어갔다.
그대로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키면서, 360도 섬머솔트킥.
발 뒤꿈치에 자라난 불꽃의 칼날이 놈의 어깨죽지를 길게 찢어냈다.
〈크, 헉──! 너, 이 기술은!〉
〈사용법을 좀 알겠소? 견본을 보여주지.〉
주먹을 들어올리면서 위빙을 하다가 빈틈이 보이는 족족 주먹을 꽂아줬다. 급소만 노려대던 마테이 로시의 권법이었다.
─퍼걱! 투콱!
날아드는 펀치에 섞어서 발기술로 다리를 작살냈다. 무릎 꿇은 크뤤투스가 팔꿈치를 대포처럼 휘둘렀다.
나는 완전히 똑같은 기술로 받아쳤고, 반동을 죽이며 회전해서 발뒤꿈치의 칼을 갈비뼈 사이에 쑤셔박았다.
〈크아아아악!!〉
코뤤투스는 바이저 사이로 안광을 터트렸다. 그의 안광이 나와 그를 잇는 불꽃의 채찍을 쳐다봤다.
〈오. 벌써 들켰소?〉
〈이 빌어먹을 도둑놈이!!〉
─찌지지직! 촤악!!
어떻게든 불타는 채찍을 찢어낸 코뤤투스는 나를 죽일 듯 노려봤다. 꼬라봐지는 나는 우스울 뿐이었지만 말이다.
〈기술을 보고 베낀 게 아니었군! 너, 내 마법을 흉내냈다 이거냐?!〉
〈빙의나 신내림 비슷한 마법이잖소. 조잡한 마법이라 베끼기도 쉽더군.〉
나는 ᚲ(Kenaz)의 룬을 기동시키면서 웃었다.
코뤤투스의 마법은 육체에서 기술을 추출해내는 것이다. 난 그 기술의 골조를 오딘의 눈으로 분석하고, 흑마법을 빼냈다.
그리고 베로니카가 텔레파시를 연결할 때처럼 ᚲ(Kenaz)의 룬으로 나와 저 새끼를 연결했다.
불꽃의 채찍은 데이터 누수를 막는 USB 코드였으며, 나는 채찍을 감고 나서부터 계속, 그의 육체에서부터 기술을 복사해서 내 몸에 붙여넣기한 것이다.
──적의 마법을 해체하고 내가 가진 마법으로 재현한다.
오딘의 눈으로 남의 마법을 분석한다는 건, 그런 뜻이었다.
《남의 것을 빼앗았으면 적어도 멀쩡하게 재현하기라도 할 것이지. 저만한 무예를 쌓은 전사들이 자기 기술로 나 같은 아마추어에게 좆털리는 걸 보면 얼마나 어이가 없겠냐.》
나는 심념으로 텔레파시를 쏘면서, 흑마법사에게서 빼앗은── 아니, ‘되찾은’ 무술의 초식을 하나씩 선보였다.
권법의 궤적은 선을 제압하고 발기술은 원을 그렸다.
잠깐 사이에 얻은 기술은 권각술 1~2개에 불과했다. 물론 그 이해도는 그냥 빼앗아서 쓰기만 했던 흑마법사로는 도저히 흉내내지 못하는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