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4화 (344/1,009)

〈그, 저희를 잡겠다는 놈들이 가게에 진을 치고 있을 것 같아서요.〉

〈흠. 부품을 살 때라고 뭐 달라지나? 나였으면 뒷사회의 가게란 가게에 니들 현상금 포스터를 걸었을 텐데.〉

나는 별 생각 없이 말했는데 쌍둥이는 내 눈치를 봤다.

‘얼씨구?’

그 꼴이 내 직감을 세게 자극했다. 나는 사악하게 웃었다.

〈흐흐. 너희들, 일부 부품은 진짜 신분으로 구매했구만?〉

그녀들은 말을 흐렸지만, 침묵이 곧 대답이었다.

〈‘괴도’가 구매하러 갔다간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으니까, 양지의 가게에서 원래 신분으로 구매한 거야. 그렇지?〉

〈……네.〉

생각치 못하게 약점을 잡았다.

만약 이 녀석들을 놓쳐도 얘네들=괴도라고 주장할 수 있는 증거가 생긴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혀를 찼다.

〈근데 그럼 또 문제군. 저 귀쟁이 놈은 너희가 괴도라는 걸 모르고 온 눈치던데…… 그건 너희의 ‘양지에서의 신분’을 쫓아왔다는 뜻 아냐? 니들 진짜 신분으로는 또 뭔 짓 했냐?〉

내가 질문했는데도 쌍둥이는 대답을 망설였다.

그래서 나도 망설였다.

‘……눈 딱 감고 심폐정지술 갈겼다가 되살려 볼까?’

일단 족쳐놓고 영혼에게 심문하기.

FBI도 울부짖으면서 나한테 꿀팁을 전수해 달라고 구걸할 희대의 심문술이다.

‘근데 얘네가 또, 그렇게 무자비하게 심문할 만큼 천하의 개썅년들인 건 아니란 말이지.’

목적이나 말투는 불순해도, 악독한 놈들만 털어서 부의 재분배를 실현하는 실현하는 이세계 프롤레타리아 아닌가.

우리한테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나 혼자 뿔나서 정의를 집행하겠다고 뚝배기를 깨버리는 것도 좀 그랬다.

게다가 분노조절잘해가 되라는 오딘의 조언도 걸린다.

예전처럼 분노의 리비도에 몸을 맡기는 것도 좋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 문명인은 고달픈 것이다. 눈이 돌아가면 다 제껴놓고 패버리던 시절이 그립구만요.

물론 진짜로 그렇게 했었다면, 다나를 음흉하게 쳐다보던 상인을 줘패버리고 캐러밴에서 쫓겨났겠지. 그럼 여기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보통 꼴마초들도 결혼하고 가정이 생기면 성격이 좀 죽는 법이긴 하지…….’

아무튼 평소 같은 심문은 포기하는 게 낫겠다.

그렇게 내가 며느리도 감탄할 심문 방법을 떠올려 보고자 했을 때였다.

뜬금없이 천장에서 독수리가 내려왔다. 그 녀석은 전서구 훈련을 받은 건지 익숙하게 착지했다가, 지가 들어가야 할 새집이 암반에 깔려 있자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 녀석의 등장에 괴도 자매는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쉬, 쉬익!! 쉬이이익!!〉

언니 괴도가 손을 털며 쉭쉭거렸다. 뭐지 시발? 오크 흉내인가?

‘아, 들키기 전에 꺼지라는 거구나.’

그럼 놓칠 수 없지. 나는 육포를 꺼내면서 말했다.

〈우쭈쭈쭈. 삐에엑 끼삐에에엑(이거 먹을래)?〉

일부러 동물 말이 무의미한 추임새로 들리도록 위장했다.

하지만 당연히 삐에엑 거리는 동족의 말을 해석한 독수리는 육포에 낚여서 내 팔에 앉았다.

〈끼아아아악─!! (고기─!!)〉

나는 그 녀석한테 육포를 물려주고 등에서 편지를 꺼냈다.

훈련을 잘 받은 건지 내가 편지를 넣은 가방에 손을 대자 날개를 푸드덕댔지만, 살기를 좀 뿜어주니까 얌전해졌다. 팍 씨. 공중전화기 주제에 까불어.

─팔락.

나는 무늬 없는 인장이 찍힌 편지를 꺼내서 읽었다.

여기 왔다는 건 저 괴도 자매한테 온 편지라는 뜻이다.

중요한 건 이게 괴도한테 온 건지, 아닌지다. 난 심문할 것 없이 정보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히히 쪼개면서 편지를 읽었다가, 첫 문단부터 얼굴이 굳었다.

〈……허미 씹?〉

나는 편지를 읽다 말고 죽상을 하고 있는 괴도 자매를 쳐다봤다.

하지만 이리보고 저리봐도 둘리는 둘리고, 편지의 내용에는 변함이 없었다.

푸우…….

담배 연기를 뱉듯 입김을 분 나는 그녀들에게 물었다.

〈……니들, 이름이 그웬이랑 스테이시랬나?〉

〈네, 넵!〉

가명인 거 뻔히 아니까 각 잡고 대답하지 마 새꺄.

〈읽어 봐.〉

나는 다 읽은 편지를 던졌다.

그웬은 머뭇거리면서 편지를 집어들고 내용을 읽었다.

정갈한 로마니아 어로 써진 의뢰서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해결사 사무소 ‘틱톡’의 오드리 헤스왈드 님께.

─저는 브리타니아의 귀족, 마리아 폰 헨네시스입니다.

타국의 시민이 대상이라곤 해도 귀족 치고는 매우 정중한 화법이었다.

마침 글씨체도 매우 눈에 익숙하군 그래.

〈……브, 브리타니아 귀족?〉

〈우리 의뢰주님이셔. 세상 참 좁지?〉

나는 빙룡의 여파 때문에 더 추워진 겨울날씨에 한숨으로 입김을 만들었다.

우리 고용주님이 고른 ‘현지의 협력자’란 게, 하필이면 이 녀석들인 모양이었다.

‘어디…… 그러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나는 빼앗아든 편지의 내용을 프랑한테도 건네주며 머리를 굴렸다. 오랜만에 뇌가 굴러가니까 모가지가 뜨뜻미지근 하구만요.

헨네시스 영애가 괴도라는 년들한테 접촉했을 가능성?

‘0%는 아니지. 하지만 상식적으로 좀 그렇지?’

자기 실명으로 범죄자에게 컨택을 넣는 건 그 사람답지가 않았다.

일단 그녀는 귀족이고, 권력만큼이나 제한도 많다.

게다가 편지를 보내놓은 대상은 ‘오드리 헤스왈드’다. 뉘겨.

〈오드리가 누구냐?〉

〈저, 저에요…….〉

거수한 건 언니 괴도다.

참고로 내가 구분하는 방법은 마빡이 빨간가 아닌가다. 딱 보기 좋은 곳에 표시가 새겨져서 분간하기 편하네.

〈동생은? 구라 까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간다.〉

〈……캐, 캐서린이요.〉

아까 엿들은 내용에서 자매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자매끼리 누구누구 동생~ 하고 부르진 않으니까 말이다.

난 독수리랑 같이 육포를 뜯으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 독수리를 놓아주고서 말했다.

〈이 매직 아이템. 만든 건 언니 쪽이지?〉

언니 괴도는 어버버 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검지 옆쪽 굳은살. 손목 굵기. 그리고 굳이 말하자면 눈 크기랑 목 위치?〉

내가 21세기 지구에서 습득했던 야매 과학 상식에 따르면, 인간의 외모는 거의 다 선천적인 유전자로 결정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두 쌍둥이는 빼다 박은 듯 닮았다. 저 둘의 다른 점이라곤 내가 짚은 것들처럼 생활 습관으로 형성되는 부분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쏙 빼닮았기 때문에 그 차이점이 더 두드러졌다.

〈너, 어두운 방의 탁자에서 눈 찌푸리면서 일하지? 손가락 굳은살은 조각칼 때문이겠군. 거북목 정도는 아닌데 어깨가 꽤 뭉쳤구만. 가끔은 동생한테 안마나 해달라 그래라.〉

동물을 진단하는 기분으로 몇 마디 던져주자 고개만 끄덕거리는 오드리.

나는 그녀들 앞에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

〈이 편지랑 그밖의 단서를 대충 맞춰보니까 알겠더라고. 너희들의 양지에서의 신분, 정보 상인 겸 탐정 같은 거지?〉

잘 훈련받은 전서구랑 헨네시스 영애가 편지를 보냈다는 걸 고려하면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머리 좀 썼구만. 정보 상인으로 시내의 정보를 모아서, 그 정보를 기준으로 타겟을 정했겠지. 실행일자나 호위의 수준을 알아내는 건 물론이고, 사업도구를 구하러 다녀도 의심받지 않았을 거야.〉

정보 상인 겸 탐정.

말이 좋아서 탐정이지, 실제로는 럭키 모험가다.

매직 아이템을 만들거나 구매해도 의심받지 않는 신분이란 뜻이다. 내가 저번에 만난 탐정 아재처럼 일할 때 쓰는 연장이라고 말하면 나였어도 그럭구나 할 것이다.

〈그런데, 설마 너희가 정보 상인 일을 같이 했을까?〉

나는 테이블에서 가져온 조각칼을 던졌다가 받았다.

〈아니지. 우리 고용주님은 편지로 ‘오드리 헤스왈드’라는 녀석만 지명했어. 레나폴리스의 사무소에는 공식적으로 ‘너’ 한 사람밖에 없다는 소리야.〉

언니인 오드리에게 검지를 들이밀었다. 그녀는 칼에 찔린 것처럼 몸을 떨었다.

그야 그렇다. 상대가 쌍둥이라면 1명만 언급하는 건 실례 아닌가.

헨네시스 영애가 그런 실례를 저지르진 않겠지. 글만 봐도 저렇게 정중한데.

〈당연하겠지. 쌍둥이 정보상? 너무 눈에 띄어. 괴도와 정보 상인이라. 분명 다른 직종이지만, ‘쌍둥이’라는 공통점이라면 수사망이 뻗어올 걸? 그래서 너희는 또 머리를 쓴 거고.〉

─푹! 무릎 꿇은 쌍둥이 사이에 내가 던진 조각칼이 꽂혔다.

〈너희는 쌍둥이지만 쌍둥이가 아니야. 정확하게는, 레나폴리스에서 일하는 정보 상인 ‘오드리 헤스왈드’에게 쌍둥이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는 거지.〉

〈……딸꾹.〉

여동생, 캐서린이 딸꾹질을 했다. 나는 프랑한테서 부서진 부품을 받았다.

〈언니는 여기나 다른 은신처에서 도구를 만들고, 동생은 정보 상인 일을 하면서 타겟을 찾는다. 그렇게만 하면 정보 상인인 ‘오드리 헤스왈드’가 ‘쌍둥이’ 괴도라고 생각할 놈은 어디에도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 위를 보자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좀 있으면 캐러밴 출발 시간이다. 빨리 할 일 끝내고 가야 쓰겄다.

〈가끔씩 둘이 교대하면서 하루 종일 사무소에 박혀 있으면 의심도 덜고 좋았겠네?〉

자잘한 차이점 정도는 분장이나 옷으로 속이면 될 일이다. 나는 픽 웃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괴도짓을 하면서 그렇게 쌍둥이라고 티를 내던 것도 일종의 속임수였구만.〉

혼자서 하루에 18시간씩 일하는 정보 상인이 그날 새벽에 귀족 저택을 털어간 쌍둥이 괴도라고?

누가 그딴 소릴 믿겠는가. 시발 의심도 안 하겠네.

아, 물론 누군가가 생각해냈을 가능성도 있다.

‘쌍둥이 괴도가 돌아가면서 일을 한 거면 이중신분 씹가능 아님?’ 하고 의심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치만 그건 내가 프랑한테 쌍둥이 동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거랑 비슷한 수준의 개소리로 들리는걸?’

대충 앞뒤를 끼워맞춰서 음모론을 꺼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억측을 진지하게 파고들지는 않을 것이다. 잠깐만 생각해 봐도 가능성이 희박한 개소리니까.

─프랑한테는 쌍둥이인 프레데리카 에이트리넨이 있어서, 가끔씩 나 몰래 교대해가며 한 사람의 ‘프란체스카’로 위장해 왔던 거야!

남들한테는 저거 비슷하게 들릴 텐데, 저딴 헛소리를 진지하게 하는 놈이 있으면 그게 미친 놈이지 뭐겠어.

내가 저런 소리를 지껄이는 날에는 우리 아내들이 기어코 날 신전에 끌고 가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 남편놈 뇌에 마구니가 낀 것 같다고 하소연을 할 것이었다.

〈……그럼 저 하프 엘프는 오드리를 찾아온 거겠네?〉

프랑이 그렇게 질문하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추적 마법을 건 아이템을 팔아서 위치를 파악하고, 틈을 봐서 잡으러 온 거지. 그런데 와 보니까 정보 상인이 그 유명한 괴도 자매였네? 그러면 왜 저 놈은 보수가 2배로 뛰겠다고 좋아했을까?〉

막간 퀴즈쑈다. 프랑은 빅-찌찌를 팔짱으로 받치며 생각하다가, 금방 대답했다.

〈저 엘프의 고용주가 괴도한테도 현상금을 걸었으니까?〉

〈그렇겠지. 그리고 저런 쓰레기 놈을 고용하고 얘네들의 타겟이 됐었다는 건, 그 고용주는 돈은 많아도 하는 짓은 쓰레기란 거겠지? 정보 상인을 노린다는 얘기는 뭔가 찾는 게 있다는 뜻이겠고.〉

게다가 어머나 시발? 그 방법이 다짜고짜 납치하기네?

하는 짓이 어째 좀 많이 익숙한걸? 프랑도 그걸 눈치챘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그 생각이 맞다.

거의 99% 확률로, 저 물법 좆프를 고용한 새낀 티르시를 납치한 그 귀족 가문일 것이었다.

심증 뿐이지만 이만큼 모이면 의심하지 않는 게 바보였다. 나는 한숨을 쉬고 쌍둥이에게 말했다.

〈오드리 헤스왈드. 캐서린 헤스왈드.〉

〈네? 네, 네!〉

〈왜, 왜요?〉

멍청하게 대답하는 쌍둥이들.

심각하게 넋이 나간 듯 보이는 게, 아무래도 지들이 지금 뭐라고 대답하는지도 모르고 말하는 듯한 얼굴이다.

내가 딴 생각 하는 틈에 프랑이 자백제라도 꽂았나. 애들이 왜 저렇게 맹해졌지.

나는 고개를 모로 꼬다가, 별 상관 없을 것 같아서 그대로 말했다.

〈내 이름은 노르드다. 키타이에서 태어났지만, 지금 신분은 브리타니아 사람이고.〉

〈네, 넵?〉

여전히 바보 같은 대답을 하는 그녀들이었다.

─슥. 나는 쪼그려 앉아서 그녀들의 아이 마스크를 벗겼다.

당연히 별로 좋은 반응은 하지 않았지만, 본명이랑 약점을 들켜놓고 얼굴만 감추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들도 피하진 않았다.

빼앗은 가면을 던져버리고, 나는 사람 좋게 웃어주었다.

〈자. 그럼 이제 우리, 피차 얼굴도 알고 본명도 아네?〉

〈……히엑.〉

괴도단 그웬&스테이시── 그러니까 헤스왈드 자매는 내 말에 안색이 시체처럼 변했다.

우리 사이의 갑을 관계가 명확하게 정립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나쁜 놈들을 협박하는 건 싫어하지 않지만, 내 기준으로 봐도 니들은 최소한의 선은 지킨 것 같거든? 의도는 어쨌든 남을 죽이고 시체의 지갑을 털어가던 것도 아니니까.〉

나는 헨네시스 영애의 편지를 흔들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뭐, 사실 내 눈밖에 났다고 해봤자 내가 어쩌겠는가.

악즉참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줘패버리고 끝내? 그럼 저기 암반 밑에 깔려서 개박살난 보석 찌꺼기밖에 얻을 게 없는데? 고작 보석 가루 얻겠다고 이 고생을 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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