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3화 (343/1,009)

그 왜, 사랑하는 사람한테 괜스레 몰카 같은 장난을 치고 싶어질 때가 있지 않은가. 유치한 생각이긴 하지만 평소에 내 어리광을 다 받아주는 만큼 질색하는 프랑도 색달라서 보기 좋았다.

─꽉!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가방 안의 석판에서 꺼낸 밧줄로 기절한 괴도를 묶었다.

〈체포 끝.〉

〈자, 잠깐만! 협상하자! 협상!〉

내가 자기 언니를 굴비처럼 묶어놓자 주먹에 잡힌 여동생 괴도가 몸을 비틀어댔다. 손아귀 조임이 좀 쎘는지 얼굴이 시뻘갰다.

〈언제는 괴도는 협상 안 한다며?〉

〈꼴이 이런데 자존심이 문제야?!〉

〈고건 고렇지.〉

나는 솔직한 대답에 공감하면서 포박시킨 괴도에게 마나의 실을 뻗어보았다.

흑마법사 크뤤투스가 내게 유품으로 남겨준 흡성대법이다.

여동생한테는 내 등으로 가려져서 안 보일 것이었다. 찐퉁 흡성대법처럼 마나통을 쪽쪽 빨진 못해도, 이 녀석들이 사용하는 재빠른 경공은 쓸모가 많을 것 같았다.

흡성대법(吸星大法)

스킬 캡쳐(Skill Capture)

─슈슈슈슈슈!

내 육체에 새겨지는 기술의 진수(眞髓)!

나는 가만히 그 경공을 분석하다가 인상을 썼다.

‘……확실히 무술마다 특색의 편차가 크긴 하네.’

언젠가 들은대로, 이세계의 무술은 개인의 적성과 체질에 맞게 개조해야 했다.

그건 역으로 말해서, 마법과 같이 전혀 적성에 맞지 않는 무술은 습득부터가 곤란하단 뜻이기도 했고 말이다.

‘반격을 아예 포기하고, 거리를 벌리는데 특화된 경공인가.’

싸움을 피하고 물건만 훔쳐가는 이 쌍둥이의 신념!

그게 녹아든 듯한 기술이었다. 나는 아마 배우기도 힘들고, 배워도 못 쓰겠지.

적성 문제도 있다. 누가 시비를 걸면 좆 같아서라도 참고 마음 속 장부에 달아두든가,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 하는 마초이즘과는 이념부터가 맞지 않는 기술인 것이다.

‘요령만 배워서 프랑한테 알려줘 볼까.’

투척술을 쓰기 전에 거리를 벌릴 때라든가 하면 프랑도 잘 쓸 수 있을 것이다.

─뚝!

기술의 골조는 어렵지 않았기에 대충 읽어내고 흡성대법을 끊었다.

너무 몰입했다가 내 몸에 이상한 버릇이 남아도 큰일이다. 크뤤투스처럼 어설픈 기술만 연발하는 병신 전사가 되는 건 에바니까.

〈응?! 응?! 나쁘지 않은 제안이지? 그렇지?!〉

내가 그러고 있거나 말거나 프랑에게 적극적인 어필을 시도하는 중인 여동생 괴도였다.

〈──읏?!〉

프랑은 그 열의에 조금 곤란한 듯 어색하게 웃다가, 갑자기 안색이 바뀌었다.

〈꺄악?!〉

골렘의 손아귀에서 던져지는 괴도. 프랑도 그 자리를 물러났고, 1초 정도 늦게 깨달은 나도 포박한 그웬인지 뭔지 하는 여성을 집어들고 뛰었다.

─우지직!

─우지끈! 쿵!

〈SyuoooooaaaaAAAA──!!〉

한 마리의 수룡(水龍)이 우리가 있던 곳의 천장을 부수며 나타났다. 누군가가 동굴의 위쪽에서 천장을 부수면서 습격해 온 것이었다.

은신처와 보석 상자가 암반에 깔리는 걸 보면서 여동생 괴도는 울상을 지었다.

〈이, 이 거짓말쟁이들! 너희들 뿐이라며!〉

〈우리 뿐인 거 맞아. 아마 너희 손님 아닐까?〉

〈어? 우, 우리?〉

프랑의 말이 내 생각을 대신 말해 주었다.

나는 상대가 마법사라는 걸 눈치채자마자 오딘의 눈을 켜버렸기에 뭐라고 말해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언어가 좆창나면 개소리밖에 안 나오니까.

수룡이 하늘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새벽의 햇살을 받으며 용의 등에 올라탄 엘프가 있었다.

〈오? 뭐야, 다 살았네? 1명 정도는 죽어도 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용의 등에 꼿꼿이 서서 우리를 굽어보는 엘프.

그는 순혈 드워프보다 키가 작은 듯 했다. 예르나나 호툴루실보다 귀가 짧은 걸 보면 혼혈 같았는데, 아직 나이가 어린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동양의 용처럼 생긴 물덩이에 올라타서 그 수룡을 사람 머리통 위에 떨궈놓고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그건 즉, 저 꼬맹이는 손에 피를 묻히는 것에 익숙한 씹새끼라는 뜻이었다.

〈이야, 역시 난 운이 좋다니까.〉

꼬맹이는 낄낄대면서 우리가 제압한 쌍둥이를 번갈아봤다.

〈일하러 왔다가 괴도의 정체까지 알아버렸지, 심지어 그 잽싼 놈들이 벌써 제압당해서 잡혀 있지. 보수가 2배로 튀게 생겼네?〉

〈……뭐하는 사람?〉

프랑이 나이프를 든 손을 늘어트리면서 물었다.

우리 프랑은 착하게도 다짜고짜 싸움을 벌이는 건 피하려는 생각이었겠지만, 좆프 꼬맹이는 종특을 발휘해서 독선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알아서 뭐 하려고? 내 정체는 신경 쓰고, 거기 쌍둥이만 내놓으면 너희들은 넘아가 줄게.〉

〈너, 넘겨주지 마!〉

대충 하는 것만 봐도 우리보다 씹새끼인 걸 눈치챘는지, 아직 의식이 있는 여동생은 우리에게 목숨 구걸을 했다.

나는 엘프를 쳐다보며 언니 괴도가 귀에 찬 매직 아이템을 벗겨서 박살냈다.

부부는 이심전심이라고 했던가. 프랑도 내가 하는 걸 보고 그대로 따라했다. 수룡을 탄 엘프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어쭈? 그게 추적 마법이 걸린 아이템이란 건 또 어떻게 알았대?〉

비싼 아이템이 박살나자 무슨 짓이냐고 항의하려던 여동생 괴도가 입을 다물었다. 잘 하네. 시끄러우니까 잠깐 그렇게 합죽이 상태로 있었으면 좋겠다.

〈흐음? 흐으으음……?〉

파란 머리의 꼬맹이 엘프는 뭔가 생각하는 듯 턱을 쓰다듬다가 히죽 웃었다.

〈좋아. 너희도 데려가지 뭐. 보수는 못 받겠지만, 어쩐지 거기 노란 놈도 적당히 고문하면 뭔가 재밌는 얘기가 나올 것 같──〉

말을 끊고 날아든 나이프가 하프 엘프 꼬맹이를 습격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에 도달한 나이프에 꼬맹이 엘프는 경악했다가, 자신이 발동해둔 실드 마법의 빛에 은근히 안심하는 기색을 보였다.

콰창─!!

〈끄아아악?!〉

하지만 그 안도도 잠시였다. 나이프에 실린 여력은 실드에 궤도가 그만 틀어졌지만, 두꺼운 방어 마법을 관철하고도 그 안에 있는 엘프의 어깨를 뚫어버릴 위력이 있었던 것이다.

─휘리릭. 척.

어안이 벙벙해진 여동생 괴도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프랑은 손 안의 나이프를 돌리다가 차갑게 말했다.

〈……누구를 고문한다고?〉

〈끄으으으……! 이 망할 잡종 두더지 년이!!〉

어깨에 빵꾸가 난 하프엘프는 피를 철철 흘리며 빼액댔다.

두더지라는 건 드워프의 멸칭인가? 개성적인 표현이로군.

〈……그러는 지도 하프면서.〉

여동생 괴도는 팩트만 말했지만 꼬맹이 엘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원래 인종차별이나 족보 따지는 건 못 배우고 열등감 많은 놈들의 특기 분야다. 감정 싸움에 로지컬한 논리의 영역은 끼어들 구석이 없는 것이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익사시켜 주마!〉

그가 스태프를 휘젓자 수룡이 또 1마리 나타나서 프랑을 공격했다.

햇빛을 난반사하던 수룡의 번뜩임이 은신처 안으로 날아들어오면서 어둡게 변색됐다. 광원을 잃고 순식간에 시꺼매진 수룡에는 모종의 카리스마가 있었다.

나는 각력만 갖고 점프하면서 손바닥을 펼쳤다.

‘빙백신장(氷白神掌).’

쩌엉─!! 장타를 맞추며 심폐정지술을 발동했다.

수룡 안에 퍼져나간 냉기가 물로 만들어진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려버렸다.

원래 고기도 안팎으로 열을 가하면 빨리 익지 않는가. 급속냉동도 대충 비슷하지 않을까?

‘띠링! 명작 빙룡 조각상이다!’

〈큭! 얼음 마법사였나!〉

엘프는 수룡, 아니 이제는 빙룡이 된 마법의 조작권을 되찾으려고 애썼다.

빙룡 안에 묵직하게 내려앉은 내 마나를 떨쳐내고자 그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하지만 나는 그 꼬라지에 픽 웃었다. 지금 니가 나랑 마나량 싸움을 할 여유가 있진 않을 텐데.

〈──크헉?!〉

엘프가 내 말없는 비웃음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때, 코어 나이프는 그가 탄 수룡의 전신에 꽂혀 있었다.

프랑이 주문을 외우자 뱀을 박제라도 하는 것처럼 균등한 간격으로 꽂힌 나이프가 팽창했다. 수룡 안에서 흙을 발생시키면서 골렘의 머리가 생성된 것이었다.

〈GO! go! Go! gO!〉

퍼엉─!

수룡은 압력을 못 견디고 폭발했다.

투명한 물을 터트리며 골렘의 둥그런 대가리가 튀어나오는 건 꽤 유머러스했지만, 공중에서 발판을 잃은 꼬맹이 엘프는 심장이 철렁했을 것이다.

〈이 시발!!〉

기어코 입에서 걸쭉하게 육두문자를 방출하는 엘프.

그는 자기를 받쳐줄 수룡을 만들면서 그걸 타고 우리에게 돌진해 왔다. 마법사치고는 패기 있는 시도다.

아니, 이 새끼도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걸까? 달인에게 마법사니 전사니 하는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하니까.

‘하지만 니만 맞다이에 자신 있는 건 아니거든.’

나는 부작용이 머리를 둔하게 만들기 전에 오딘의 눈을 해제하며, 빙룡을 붙잡았다.

대충 어떻게 움직이는 건지는 봤다. 혈수마공의 요령과 큰 차이는 없었다. 말하자면 이건 카이저 피닉스의 얼음 타입 버전이었다.

〈조각품에 생명 부여!!〉

─슈와아아악!!

안에서 용트림을 일으키는 야수회귀의 마나를 조작했다.

얼어붙은 용이 서리를 튀겨대며 고개를 들었다.

〈빙룡출수(氷龍出袖)!!〉

빙룡과 수룡의 아구창이 부딪혔다. 드래곤 딥 키스다.

이세계에서 살다 보니까 별 못 볼 꼴을 다 보는군. 혀를 찬 나는 빙룡에게 스핀을 넣었다.

악어의 데스 롤링처럼 720도 회전하는 빙룡과, 그에 맞춰서 몸을 비트는 수룡!

─촤촤촤촤촤!!

당연히 선택받은 아이들이 아닌 엘프는 회전하는 디지몬의 위에 올라타서 버틸 수 없었다. 그는 나랑 마찬가지로 혀를 차며 수룡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너 이 새끼! 내가 지상에 내려오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 생각이 얼마나 얄팍한지──〉

나는 그의 말을 끊고 하늘을 가리켰다.

꼬맹이 하프엘프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실소를 띄웠다.

〈멍청한 인간놈. 그딴 얄팍한 잔꾀에 속을 것 가학?!〉

위에서 골렘 대가리를 망치에 꿰찬 프랑이 엘프의 대갈통을 못 박듯이 후려깠다. 충격파가 먼지를 일으키면서 그의 몸이 무릎까지 땅에 박혔다.

〈그러게 조심하랄 때 조심할 것이지.〉

〈끄헉…….〉

그는 외마디 신음을 흘리며 기절했다.

─짝짝짝! 나는 박수를 치면서 혀를 내둘렀다.

〈캬. 그보다 저거에 맞고 안 죽네. 개쩐다.〉

프랑의 손재주가 힘 조절에도 영향을 주는 건가? 프랑은 망치의 흙을 털면서 웃었다.

〈나이프를 맞춰보면 얼마나 튼튼한지도 대충 감이 와.〉

〈하긴 금도 깨물어 봐야 알긴 하지. 우리 프랑 장하다.〉

일단 기절시킨 그 놈도 밧줄로 묶고 수면 가스를 대량으로 뿌려놓았다. 목에 창을 들이밀어도 안 깨는 걸 보면 잠든 거 맞다.

이 새낄 심문하는 건 나중에 하자. 나는 작업을 하면서 등 뒤의 인기척에게 말했다.

〈거기 스톱.〉

〈힉.〉

언니를 들춰업고 튀려던 여동생 괴도가 목을 움츠렸다.

〈어디 가게? 도망치면 한 발짝마다 10대씩 맞는다?〉

〈도도, 도망─?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는 그냥 그, 싸움에 방해가 되실까 봐 언니를 데리고 물러났던 거에요!〉

─메다닥! 날쌔게 돌아온 그녀는 언니를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사태파악 능력이 줄충한 게 마음에 드는군.

〈니 언니 깨워.〉

〈넵!! 언니, 일어나! 우리 인생 조지게 생겼어!!〉

─챱챱! 언니의 뺨을 찰지게 때리는 여동생.

〈끄으응……?〉

내가 언니 괴도가 일어나는 걸 지켜보고 있자, 프랑은 수룡출두에 박살난 테이블의 잔해에서 만들다가 만 매직 아이템을 주워서 관찰했다.

〈노르. 이거 뭐 같아?〉

〈쟤네들이 의적질 할 때 쓰는 도구 같은데? 이런 건 대체 어디서 판대냐.〉

〈수제 아닐까? 홈 깎는 버릇을 보면 2개 다 같은 사람이 만든 거야. 그런데 마감이 좀 어설프다. 아마추어였나 봐.〉

깨어나마자다 들려온 평가에 잠깐 얼굴에 불만이 드러나는 언니 괴도. 나는 그녀에게 눈을 향했다.

〈이거, 니가 만든 거냐?〉

〈앗, 넵!〉

이 녀석도 군기가 바짝 들었군. 보기 좋구만.

나는 내가 부쉈던 매직 아이템의 부품을 집었다. 〈정적(Silence)〉 마법이 걸린 매직 아이템이었는데, 그걸 구성하는 부품의 일부에 추적 마법이 숨겨져 있었다.

이것 때문에 쌍둥이의 위치가 탄로난 것이었다.

아마 저 하프엘프 꼬맹이는 그녀들이 도시를 벗어나는 걸 깨닫고 여기까지 쫓아온 거겠지. 씨발 이 새끼들 눈치 까고 튀는 거 아냐? 하고 말이다.

〈우리 아내님 눈에는 안 차는 모양이지만, 솜씨는 나쁘지 않네. 근데 왜 기성품을 안 사고 직접 만들었냐? 괴도로서의 고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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