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2화 (342/1,009)

〈흐억?! 쏴, 쏴라!!〉

활에 시위를 매긴 이들이 순식간에 화살을 쐈지만, 동생이 발동한 바람의 방패가 그것들을 튕겨냈다.

그녀들이 귓바퀴를 감싼 매직 아이템을 건드렸다. 나는 수많은 실전에서 깨달은 직감으로, 그 동작만 보고도 뭘 하려는 건지 눈치챘다.

─파앗! 마나에 검게 색을 입히고 실드 마법처럼 구형으로 둘렀다. 아내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완드에서 뿜어진 마력이 실드를 진동시키면서 뿜어졌다.

키이이이잉─!!

좀 예상 밖이었던 건 그 뒤로 작렬한 소음이었다.

공격 마법이나 우리의 조준능력을 작살낼 섬광탄 비슷한 마법이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작렬한 소음까진 생각 못했다. 나랑 아내들은 귀를 누르면서 인상을 썼다.

〈아아아악!! 내 눈!! 귀, 귀도 안들려!!〉

〈끄악!! 누, 누구야! 나랑 부딪힌 거 누구냐고!!〉

그나마 우리는 실드를 둘러서 그 정도였다. 마나가 사라지자마자 실드를 해제했는데, 섬광탄을 바로 쳐맞은 바깥 사람들은 바닥을 구르거나 지들끼리 부딪히거나 난리도 아니었다.

“……놓쳤군.”

나는 난장판이 된 야영지와, 그 위로 쏟아지는 밝은 햇살의 대비에 고개를 저었다.

괴도가 도망치고 3분 뒤.

어느 정도 소란이 수습된 뒤에, 나는 질문했다.

〈그래서, 이건 뭔 일이야?〉

〈거래에 쓸 물건을 도둑맞았다는 모양이더군.〉

다나에게 귀를 치료받던 베로니카의 말이었다.

〈아니 나도 그건 보면 알걸랑?〉

괴도란 것들이 와서 자기들 이름만 PR하고 가진 않았겠지. 뭔가 훔쳐가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도둑 맞았다니, 별로 듣기 좋은 얘기는 아니었다.

〈눈나. 거래처 착취하고 장물 유통하는 인간이라네?〉

다른 사람들도 ‘그럼 그렇지 하는’ 분위기인 걸 보면 아마 의심받을 만한 정황은 있긴 한 모양이다. 드레이크도 어버버 거리면서 눈치를 살피고 있다.

다나는 슬그머니 내 눈을 피했다.

〈……미안. 뭐시기 대학의 전(前) 고고학 조교수라는 놈이 강력하게 추천하길래.〉

〈아이고.〉

하여튼 조교수고 교수고 간에, 그쪽 인간들은 내 인생사에 도움이 안 되는군.

다나랑 하이로메인 아줌마 같은 예외가 더 드문 게 업계의 실상이긴 하지.

아무튼 우리한테 직접적으로 피해가 오는 게 아니니까 받은 것 자체는 상황이 없는데, 혹시 일이 귀찮아지면 어쩌지.

아니나 다를까 내 기우가 맞았는지, 드레이크는 우리한테 달려왔다.

〈이, 이보십시오! 그 괴도 년들이 내 보석 궤짝을 훔쳐서 도망쳤습니다! 쫓아가 주실 수 없습니까!〉

〈……저희가요?〉

프랑이 눈을 끔뻑거리며 묻자 드레이크도 말을 잃었다.

우리가 정식으로 고용된 건 아니잖어? 다나를 통해서 잠깐 가는 길에 같이 가자고 쌰바쌰바 좀 한 거지.

게다가 평소 행실 때문인지 다른 곳에는 의지 못하고 우리한테 오는 걸 보면 따로 도와줘야 할 만한 인간인 것도 아닌 모양이고 말이다. 자업자득이지 뭐.

“……응?”

자업자득이라. 나는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짜릿한 돈 내음에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표정 관리, 표정 관리.’

입가를 눌러서 엄숙한 표정을 만들고 드레이크한테로 갔다.

〈실례합니다. 도둑맞은 게 보석입니까?〉

〈예? 아, 그, 그렇습니다! 관세나 운송에 요긴해서 현찰을 보석으로 바꿨죠!〉

내가 도와주러 온 걸 알아차렸는지, 자기 부하들더러 괜한 추격 지시를 내리던 드레이크는 안색이 밝아졌다.

〈되찾아 오면 보답을 좀 바랄 수 있겠습니까?〉

〈무, 물론입죠!〉

〈알겠습니다. 잡지도 않은 사냥감의 값을 세는 것도 좋지 않은 일이니, 이따가 다시 뵙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짐짓 헛기침을 하며 그렇게 말해놓고 아내들 겨틍로 돌아왔다.

우리 후배님께서는 다 알겠다는 듯 피식거리고 있더라.

“선배도 참 못됐다니까요♡”

“어허. 노력해도 못 잡을지 모르고, 잡더라도 장물은 찾지 못할 수도 있는 법 아니냐?”

“그래. 보석류는 제조규격이 정해져 있고, 원래 주인을 알아보기도 어려우니까 화폐로 처분하기도 쉽겠네.”

내 딴엔 의뭉을 떨었지만 다들 키득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나도 참다 못하고 낄낄댔다.

‘원래 판타지에서 도적은 아이템 드랍하는 몬스터자너?’

쫓아가서 처분 못 한 물건을 챙겨오기만 해도 개꿀이다.

뭣하면 장물의 일부는 주인한테 돌려줘도 되지만, 그 와중에 우리 드레이크 씨의 자산만 행방이 오리무중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

‘안 그래도 티르시를 찾는데 돈이 들어갈지도 모르니까.’

현지 협력자가 헨네시스 영애의 의뢰를 거절하면 우리끼리 조사해야 하니 말이다.

“나의 그대여. 이게 필요하겠지?”

베로니카도 가방에서 석판을 꺼내서 내밀었다.

예전에 망령도시에서 예르나를 족치고 주워왔던 그거다. 인벤토리처럼 안에 물건을 넣을 수 있는 석판 말이다. 내가 받아들어서 챙기자 프랑이 쿡쿡거리며 말했다.

“놓치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겠네.”

“그래. 드레이크가 징징대서 추격 시간 정도는 벌겠지만, 이 행렬 전체가 몇 시간씩 기다려 줄 리도 없으니까.”

내 근처로 왔으면 뭐 마킹이라도 해 봤을 텐데, 사라져버린 걸 보면 근처의 절벽으로 날아올라서 튄 거겠지.

‘습격해 올 때도 저기서 점프했나.’

소리를 줄여주는 매직 아이템을 켜고 하강해 왔다면 내가 눈치 못 챈 것도 이해가 갔다. 나는 석판을 작은 가방에 넣어 등에 매고 말했다.

“빠르게 움직이려면 발 빠르고 추적을 잘 하는 사람끼리만 가는 게 편하겠어.”

“……그럼 나밖에 없네?”

프랑은 웃으며 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도망치기 전에 정보가 어쩌니 했었지.’

이렇게 당당하게 정면에서 도적질을 하려면 그만큼 자신의 실력에 자신을 갖고,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확실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뒷받침해주는 정보 제보자나 인맥이 있다면, 티르시 탐색에 그 선을 캐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했다.

주먹구구로 도시를 쏘다니는 것보다는 그 편이 빠르고 확실할 테니까 말이다.

〈해냈네, 언니!〉

캐러밴의 추격을 완전히 떨쳐냈다는 확신을 얻은 후, 캐서린은 웃으며 말햇다. 오드리 헤스왈드도 포션을 바르며 히죽거렸다.

〈그래. 이번에도 제대로 월척이었어.〉

〈이만하면 또 몇 달은 돈 궁할 일 없겠지?〉

〈어디 생활비만 문제겠어? 새 매직 아이템을 살 수도 있을 걸?〉

그렇게 말한 오드리는 상처의 통증에 혀를 가볍게 빼물고 말았다. 캐서린은 모자를 벗으며 훔쳐온 보석 상자를 내려놓았다.

〈이번엔 추락 방지 아이템으로 사자. 언니 그러다가 다음에 또 다치면 어떡해.〉

〈흐응. 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한걸?〉

〈그게 아니라. 보석 상자 2개에 언니까지 들고 날았더니 나 어깨 빠질 것 같애. 언니 요즘 살 찐 거 맞다니까?〉

〈와, 얘 말하는 것 봐!〉

평범한 자매처럼 땍땍거리던 그녀들은 곧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이번에도 40%나 루크레겐스에 뿌릴 거야? 어차피 다음부턴 작업장 옮길 거잖아. 그냥 낼름 삼키면 안 돼?〉

〈욕심 내면 못 써. 어차피 밑바닥 근성 놈들이라 믿을 건 못 되지만, 적어도 우리 조사를 나온 놈들한테 모른다고 잡아뗄 정도의 의리는 보여줘야지.〉

암회끼리의 분쟁으로 치안이 흐트러진 루크레겐스는 그녀들 헤스왈드 자매── 아니, ‘그웬&스테이시’가 괴도업을 벌이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패밀리 간의 분쟁이 격전으로 바뀐 끝에 종식되고, 뿔이 난 영주는 시내에 경비병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중생활을 하는 괴도 자매도 이제 작업장을 옮길 때가 온 것이었다.

캐서린은 보석 상자를 건드리며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기껏 훔친 걸 나눠줘 봤자 거지 새끼들은 만족할 줄 모르던데? 징징대고 뒷담 까는 꼴 보기 싫어.〉

〈걔들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닌 거 알면서. 뒷사회의 의리 놀이를 저버리면 장물 처리하기도 힘들어. 그리고, 걔네들도 지들 주머니에 귀족님들 재산이 좀 들어와야 쫄려서라도 입이 무거워지지.〉

일부러 소문이 안 좋은 부자들을 터는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다.

켕기는 게 있는 사람은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배신하기 힘들다. 그건 쌍둥이가 체득한 삶의 진리 중 하나였다.

〈쳇.〉

이제는 과정 중 하나가 돼 버린 투덜거림을 끝마치고, 오드리와 캐서린은 보석 값어치를 감정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두 사람이 보물을 숨겨놓는 은신처다.

이제 장물아비를 찾아서 괴도로써 물품을 처리하면, 루크레겐스를 떠나 그들의 ‘양지의 신분’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당분간은 그들의 이중생활도 휴업인 것이다.

그저, 그녀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한 가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 은신처까지 쫓아올 추격자의 존재였다.

〈실례합니다, 괴도님들. 지금 영업 하세요?〉

〈──힉?!〉

외안경을 끼고 보석을 감정하던 캐서린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언니 뒤로 숨었다. 오드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활짝 열린 은신처의 입구를 노려봤다.

닮은 점이라곤 검은 머리카락밖에 없는 두 남녀였다.

창과 단검으로 무장한 그들은 무기의 길이 만큼이나 키도 큰 차이가 났다.

하프 드워프인 듯 한 여성은 옷가게라도 둘러보는 눈빛으로 은신처의 비밀 통로를 찾아내고 있었으며, 남자는 상황에 맞지 않게 하품을 했다.

〈잠 좀 안 자도 피곤하진 않은데, 졸린 건 마찬가지네.〉

입을 쩍쩍 벌리던 그는 앞머리를 넘기며 그녀들의 은신처를 둘러보고서, 픽 웃었다.

〈왜 좀도둑들은 하나같이 이런 동굴에 숨어 사나 몰라.〉

〈좀도둑이 아니라 괴도거든?〉

도끼눈을 뜨며 말하는 자칭 괴도의 말에 나는 할 말이 궁해졌다.

〈그게 그거 아닌가?〉

〈완전 달라, 멍청아.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우릴 쫓아온 거야?〉

〈지나가는 토끼한테 물어서.〉

〈남아 있는 흔적을 쫓아서.〉

우리 부부가 솔직하게 대답해 줬는데도 믿는 눈초리가 아니었다.

쓰펄, 은근 쫀심 상하네. 겨울잠 쳐자는 동물들 사이에서 겨울에 쌩쌩하게 돌아댕기는 포유류 찾기가 어디 쉬운 줄 알어?

우연히 만난 눈토끼 님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쫓아오진 못 했겠지. 존나 겨울철에 디버프를 먹는 건 티르시 같은 냉법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괴도 자매.

그녀들은 은신처에서도 철저하게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이미 그녀들의 대략적인 몽타주는 오딘의 눈으로 파악하고 내 뇌에 저장해 뒀다.

놓친다고 해도 찾기 어려울 건 없었다. 나는 창을 돌리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없어. 우리 뿐이야.〉

〈……그래?〉

저기요, 눈깔 굴러가는 소리 들려요.

〈……스테이시! 튀어!〉

〈응, 언니!〉

─팟! 쥐덫이 작동하는 걸 코앞에서 본 날다람쥐처럼 재빠르게 튀는 두 여성들.

머리통 속의 주판을 두들겨서 닷지 각을 잡은 걸까. 쌍둥이 괴도는 손으로 뭔가 사인을 주고받고서 둘로 흩어졌다.

그 날렵한 도주에 나는 좀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협박이나 공격을 하진 않는 건가.’

강도와 살인범이 동음이의어인 이세계다. 사람에게 신체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 도둑이라면, 분명 일반 좀도둑 새끼들이랑은 다르게 취급받고 싶을 만 했다.

싸움에 자신이 없는 것이든, 폭력을 꺼리는 것이든, 그것만 봐도 나름의 호감을 가지기엔 충분했다.

물론, 범죄자라는 사실을 눈감아 준다는 전제에 말이다.

〈내가 왼쪽 맡을게.〉

프랑은 그렇게 말하고 달려나갔다. 나도 발에 힘을 주면서 마법을 발동했다.

〈뭉게뭉게-체!〉

─투확! 증기 폭발의 가속으로 언니 괴도를 앞질렀다.

천장에 착지하며 창을 휘둘렀다. 멈추지 못한 그녀는 창의 뭉툭한 부분에 마빡을 얻어맞았다.

〈아팟!!〉

짧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진 그녀는 가벼운 뇌진탕을 일으킨 듯 기절했다. .

나는 떨어지는 모자를 낚아채서 머리에 썼다. 좀 작네.

〈어, 언니! 이익! 저리 비켜, 이 젖만 큰 여자야!〉

〈저, 젖만 큰?〉

다른쪽 탈출로로 도망치던 괴도가 프랑에게 성을 냈다. 그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은신처의 비밀출구를 파악하고 거길 선점한 프랑에게 막혀버린 것이었다.

대충 보기에 발은 괴도가 프랑보다 빠른 것 같았지만, 탈출로가 막혀서야 오도 가도 못 하겠지.

─확!

그녀는 가방에서 뭔가 아이템을 꺼내려고 하다가 프랑이 던진 나이프를 피했다. 느려터진 야구공을 본 타자처럼 미소짓기까지 하는 괴도.

〈GOGOGO!〉

〈고헥!!〉

하지만 동굴 벽에 꽂힌 골렘 코어 나이프에서 흙의 주먹이 튀어나올 거라곤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괴도는 골렘의 원펀치에 얻어맞고 자기 몸만한 손에 구속돼 버렸다. 여성미는 쥐뿔도 없는 비명을 질러버린 그녀에게 애도를.

프랑은 그녀가 떨어트린 구슬을 주우려다가 냄새를 맡고 기침을 했다.

〈윽! 매, 매워…. 뭐야 이거?〉

〈그건가 보네. 도망칠 때 뿌렸던 캡사이신 폭탄.〉

〈흐으으……. 싫다 진짜…….〉

프랑이 이렇게 싫어하는 거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었기에 난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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