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386화 (386/1,009)

〈훈련병!!! 목소리가 작습니다!!! 연무장 한 바퀴 더 뛰고 싶습니까!!!〉

〈아닙니다아아아악──!!!!!〉

검을 든 노르드가 팔굽혀펴기를 하는 하급 기사 한 사람의 등에 앉아서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영광스러운 아르마알스 가문의 비검 기사단이 중량을 조금 늘린 팔굽혀펴기 정도로 비명을 지르진 않는다.가이우스는 그 하급 기사의 옷에 흙먼지가 가득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마나를 최대한 사용시키고 체력단련을?’

어떤 의미로는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신체가 강해질수록 마나의 강화 효과도 강해진다. 몬스터가 유다른 기술이나 전법 없이도 강력한 위협이 되는 이유였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사람도 마나를 탕진하고 육체운동을 한다면 상대적으로 간편하게 몸을 단련할 순 있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하면 기사단에 들어올 정도의 인재가 팔굽혀펴기를 하면서 후들거릴 정도로 마나를 사용시킨다는 말인가? 그것도 세 명이나?

잠시 영문을 알 수 없던 가이우스는 호미에 찍힌 감자처럼 엉망이 된 그들의 얼굴을 보고 방법을 깨달았다.

두들겨 맞았군. 말 그대로 개패듯이.

〈아, 기사단장님 오셨습니까.〉

그때 노르드가 그를 발견하고 일어섰다.

그가 깔아뭉개고 앉아 있던 하급 기사…… 가이우스가 기억하기로는 아마 포에트라는 이름이었던 기사는 얼굴이 확 펴졌다가, 바로 직후에 싹 굳어버렸다.

〈추운 날에 운동할 때는 체온 유지가 중요합니다. 되도록 같은 온도를 유지하는 게 요령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한 노르드가 그의 등에 커다란 얼음 덩어리를 만들어서 올려버렸던 것이다.

즉석으로 펼친 술식 결합이었다. <얼어붙는 손길(Freezing Hand)>과 <물 생성(Water Creation)>의 조합이 덩치 큰 남자보다 묵직하게 포에트의 등을 짓눌렀다.

〈고맙죠? 그쵸? 땀 나는데 시원해서 좋지 않습니까?〉

〈예!!!!! 감사합니다아악!!!!!〉

아니, 말이야 맞지만 이럴 날엔 따듯하게 유지해야 하는 게 아닌가? 가이우스는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남의 훈련법에 참견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가르침을 받는 게 그의 부하이긴 했지만 말이다.

〈저, 저 친구들은 어쩌다 저러고 있습니까?〉

〈아. 고맙게도 제가 훈련하는 걸 보다가 대련 상대가 돼 주었습니다. 감사의 표시로 강해지는 요령을 전해주고 있던 참입니다만, 혹시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 그렇군요. 문제랄 건 없지요. 그래서 그, 훈련은 잘 되십니까?〉

노르드의 얼굴에 한 순간 그걸 니가 묻는 거냐 하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가이우스가 의문으로 삼기도 전에 그는 웃는 낯을 만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보여주신 검술을 대충 습득해 보고, 저들과 훈련하면서 몇 가지 기술도 흉내내 봤습니다.〉

〈……예?〉

설마 하루아침에 가문의 검술을 체득했다는 말인가? 가이우스는 한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가 연무장에서 훈련을 시작한지 반나절도 되지 않았다. 가이우스라도 처음 보는 무술─그것도 원래 무기랑은 다른 기술─을 그만한 시간에 습득할 자신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해하는 것과 체득하는 것은 완전하게 다른 분야니까.

‘자세를 흉내내는 것만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반신반의하는 가이우스의 기분을 아는 것인지, 노르드는 척 소리가 나도록 등 뒤에 손을 뻗었다.

〈칼.〉

〈옙!!!!! 여기 있습니다악!!!!!〉

척 하면 척이었다. 가이우스는 벌떡 일어나서 가검을 가져다주는 자신의 부하를 미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외부인이 가문의 가사를 종자처럼 부리는 것에 주의를 주어야 할까?

‘음. 아니지, 저만한 달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면 저절로 넘쳐나는 존경심을 억누르지 못하는 것도 있을 수 있어.’

가이우스는 그렇게 납득하기로 했다.

노르드는 그가 그러든지 말든지 하는 투로 검을 쥐고서는 가이우스가 펼쳤던 것처럼, 혹은 그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검술을 펼쳤다. 일곱 개의 자세가 쾌속하게 펼쳐졌다.

가이우스의 눈이 확 뜨였다. 이유는 몰라도 몸에 마나까지 두르며 엄청난 속도로 전개하긴 했으나, 명예귀족의 이름도 짊어진 그의 동체시력이 쫓지 못할 것은 없었다.

‘정말로 습득하셨다……!’

일곱 개의 자세, 그 모두가 완벽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좀 건성으로 습득한 듯한 기척도 있다.

하지만 가이우스는 그 점을 이상하게 여기진 않았다. 대저 그가 가문의 검술에 매진해서 얻을 게 무엇이겠는가?

가이우스에겐 자존심의 하나인 아르마알스의 비검이지만, 노르드에겐 그저 지나가며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한 사소한 훈련에 불과하다. 필사적으로 배울 이유가 없다.

그에게 이 반나절은 다른 가문의 검술에서 자신의 경지를 상승시킬 힌트를 얻기 위한 시도, 딱 그 정도의 위치밖에 없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기술의 분석에 열중한다면 몰라도 습득에 열을 올린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런데 그걸, 부하들을 단련시키면서 저만큼 익혔다고? 단 몇 시간 만에?’

대체 얼마만큼의 천재성이 그런 위업을 가능하게 하는가?

그야말로 신체를 손가락 말단까지 조율하는 꼭두각시조차 저런 일이 가능할지 의심스러운 수준이었다.

몸통 일으키기 머신이 돼 버렸던 하급 기사들도 경악을 채 숨기지 못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노르드의 검술은 자신들의 장점만을 쏙쏙 빼가서 재현한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가이우스는 목이 마르는 듯한 기분에 침을 삼켰다. 어쩌면 그가 중급 기사의 검술을 가르친다면, 노르드는 ‘비검(飛劍)’이나 ‘비약(飛躍)’과 기술조차 쉬이 펼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만약 가능하다면, 저 천부적인 천재성으로 가이우스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가문의 검술에 대한 의견을 피력해주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만 된다면──

〈기사단장님?〉

〈예? 아, 음, 예! 죄송합니다.〉

정신을 차린 가이우스는 헛기침을 했다. 노르드는 그렇게 허둥거리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지금이다 하는 생각이 든 순간 타이밍을 노려서 말을 꺼냈다.

〈가능하다면 내일부터는 제게 직접 가르침을 주실 수 없으실까요?〉

〈노르드 님께…… 가르침을요?〉

이만한 천재를 가르치라고? 그게 자신 정도의 재능으로 가능한 일일까? 가이우스는 회의적으로 신음을 흘렸다.

물론 가이우스가 통달한 비검에는 훨씬 깊고 복잡한 무리(武理)가 숨어있지만, 그 깊이는 어디까지나 중/상급 이상의 검술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걸 가르칠 수 없다면 하급 수준의 검술에선 노르드보다 뛰어난 이해를 갖고 있다고 자부하기 어려웠다. 몇 시간만에 밑천이 드러나 버리는 것은 아닐까?

노르드는 그가 마뜩찮게 구는 것에 웃음을 더 짙게 지으며 말했다.

〈물론 어렵다면 상관 없습니다. 하지만 무척이나 뛰어난 검술이었기에, 저는 기사단장님과 그 심오함에 대해서 토론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움찔.

가이우스는 속내를 들킨 것처럼 어깨를 굳혀버렸고, 그러자 노르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씨익 웃었다.

‘무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들켰나…….’

가이우스는 부끄러움과 면목없음에 쓴웃음을 지었다.

마치 남의 마음을 다 들여다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가이우스가 아는 바로는, 저만큼 남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사람은 그가 주군으로 섬기는 로마니아의 원로 정도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가르쳐드릴 수는 없지만, 제가 검에 가진 생각을 나누는 정도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견디고 나자 가이우스는 이 이심전심을 기쁘게 느꼈다.

같은 레벨의 벽에 가로막힌 자들끼리의 동질감일까. 노르드와 그는 누가 먼저 다음 경지에 도달하는지를 경쟁하는 사이였지만, 이렇게 뜻을 함께한다면 그 싸움은 선의의 경쟁이 될 것이었다.

〈가주님께 허락을 구해 보겠습니다. 저희 함께 마스터 클래스를 노려보죠.〉

─움찔.

가이우스가 웃으며 건넨 악수에 이번에는 노르드가 눈알을 사방으로 굴렸다.

마치 술에 만취한 다음에야 이곳이 술집이 아니라 흑마법사들의 접선지라는 걸 눈치챈 종교인 같은 얼굴이었는데, 이번에도 가이우스는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는지 몰랐다.

〈그, 랬지요……. 마스터 클래스, 음, 먼 목표네요.〉

〈노르드 님과 같은 천재라면 조금의 영감만 있어도 금방 도달하실 것입니다.〉

〈앗, 아아……. 네, 넵…….〉

그렇게 두 명의 미스릴 클래스급 전사는 악수를 나누었다. 그런 달인들의 악수를 녹초가 된 하급 기사들이 선망과 부러움을 담아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몰랐다.

노르드가 떠나는 날까지, 자신들이 그의 훈련에 어울리게 될 것이라는 미래를 말이다.

〈히데붑.〉

─쿵!!

고개를 깊이 떨구고 있던 포에트만이, 무겁디 무거운 얼음 덩어리에 짜부되며 자신의 입방정을 후회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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