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리터 베인은 기사도의 모범이 되는 사내였다.
본인은 겸손하게 사양하는 칭찬이지만, 가문 사람들이 자기 얼굴에 금칠을 하고자 내린 평가는 아니었다.
그는 강해질 수록 오만하거나 자기중심적이 되기 쉬운 기사들 사이에서도, 특히 품행이 단정하고 건실한 남자였다. 실력 면에서도 나무랄 곳 없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었다.
주군을 찾아 헤매던 방랑 기사가, 섬길 가치가 있는 원로와 만나 그의 가문의 기사단장에까지 오른 일대 활극. 로마니아에서도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다.
그렇게 여타 기사들의 우상이자 가문 제일의 검사인 그가, 가주에게도 인정받은 이국의 달인과 정식으로 대련을 한다?
자못 전사라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매치였다. 훈련에 매진하던 기사들이 검도 내팽개치고 달려온 것도 정상참작을 해야 할 일이겠지. 고수들의 결투는 그들 자신의 성장에도 다대한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달인의 결투를 기대하며 달려온 기사들은, 지금 감탄과는 별개의 이유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검?〉
노르드가 창을 검으로 변화시켰을 때, 그와 단장의 대련을 관전하고자 모여든 기사들의 얼굴에도 의문이 피어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쉽게 보기 힘든 특이한 마법이 무척 신비롭기는 했지만, 하필이면 검이라니?
물론 최근 연무장에 나오는 기사들은 그가 느닷없이 가문의 하급 기사들을 단련시키며 가문의 검술을 습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도 눈 뜬 장님은 아니었으니까.
─척.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그가 검을 잡는 자세는 아르마알스 가문의 비검이었다.
하지만 그 자세에서 느껴지는 숙련도는 중급 기사가 될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
달인다운 풍채로 체간(體幹)이 곧게 서 있기는 했지만, 빈틈이 없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기사단장과 같은 가문 제일의 검사를 상대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기사들의 얼굴에 조금씩 노기가 서렸다.
그들은 그가 자신들의 대장을 얕보고 있다고 여긴 것이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만한 상황이었다.
동일한 기술로 겨룬다면 더 뛰어난 쪽이 이긴다. 세 살배기 아이라도 알 만한 사실이다.
그런데 검으로 달인의 경지에 도달한 기사에게 손에 익지도 않은 검술로 도전하다니?
무슨 의미인지 입 아프게 논할 가치도 없다. 그를 얕보고 있다는 뜻밖에 되지 않는다.
〈……기대하게 만들어 주시는군요.〉
하지만 정작 그 미숙한 자세와 대치한 가이우스는 입가에 웃음을 띄웠다.
〈……설마?〉
실력을 불문하고, 눈치가 빠른 기사들은 분노도 잊고 집중력을 되찾았다.
초일류의 전사는 서 있는 모습만 봐도 적의 강함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관람객처럼 대련장을 둘러싼 기사들은 말하자면 이 결투의 부외자일 뿐이다. 직접 저 자리에 선 가이우스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방인인 노르드가 자신들의 우상을 얕잡아 보았다고 여겼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노르드가 어설픈 검술을 펼쳐서가면서까지 보여주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선수는 양보하겠습니다.〉
가이우스는 모욕감 같은 걸 느낄 이유가 없다는 듯 말했고, 노르드는 말없이 턱만 까딱했다.
그렇게 기사단장의 기대에 찬 웃음에, 많고 적은 기사들이 고개를 모로 꼬았을 때였다.
……채앵!!
아무런 전조도 없이, 두 전사는 검을 나누고 위치를 뒤바꾸었다.
〈어?〉
〈어, 어느 틈에?〉
직전까지 대련상대가 서 있던 자리에서 공격한 자세 그대로 서 있는 달인들의 자세에, 초수(初手)를 놓친 중하급의 기사들은 영문을 모르고 웅성거렸다.
분노에 사로잡혀서 만금보다 값진 기회를 놓치긴 했지만, 그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었다. 빠르게 이 대련의 가치를 눈치채고 눈을 부라리던 이들조차 절반 이상은 잔상밖에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의 진상은 간략했다. 두 전사가 완벽하게 같은 타이밍에 적을 향해 달렸고, 노르드는 찌르기로, 가이우스는 횡베기로 빛처럼 빠른 공방을 나누었던 것이다.
가이우스는 검을 털며 돌아섰다.
〈저희 가문의 돌진기가 섞여 있었군요. 혹시 스스로 깨달으셨습니까?〉
〈……아뇨. 얼마 전에 볼 기회가 있어서.〉
어느샌가 몸에 마나를 두른 노르드가 대답했다. 어째선지 대꾸가 조금 늦었지만, 가이우스는 대충 이해했다.
프리모르의 무모한 복수행에 함께한 이들은 대부분이 중급 기사나 가문의 고용인이었다. 성기사이자 상급 기사였던 이는 목숨을 잃었지만 다른 기사들의 기술을 볼 수 있었겠지.
그가 아는 노르드의 천재성이라면 재현하는 건 누워서 떡 먹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보다 조금 더 빨랐다.’
가이우스는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웃었다.
마나를 응축했다가 터트리며 뿜어져나가듯 달리는 가문의 보법에 낯선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새총에 묶인 돌처럼 직선으로 날아가는 그의 돌진과 상반되게, 마치 수면을 튀는 물수제비 같았다.
아마 그것이 바로 저 천재가 자신에게 보여주고자 창조한 기술일 것이다.
‘조금 더! 조금만 더 보고 싶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검을 쥐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가이우스는 질주하며 검으로 반원을 그렸다.
촤좌좌좌좌좍─!!
가이우스의 검은 결계처럼 그의 주변을 거듭 베며 검술의 결계를 구성했고, 그렇게 펼쳐진 모든 공격에서 끝없이 원거리 참격이 뿜어져나왔다. 마치 그를 중심으로 참격이 폭발해 터져 나오는 듯 했다.
중급 이하의 검사들은 온 힘을 다해서 휘둘러야만 사용할 수 있는 원거리 참격을 무수하게 뿜어내는 절기. 가이우스의 독자적인 기술이었다.
스스스스스…….
날을 시퍼렇게 세운 검의 꽃이 노르드를 덮쳐들었다. 노르드는 돌격해 올 때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보법으로 온갖 방향에서 쏟아지는 참격을 피하고 받아쳤다.
그는 가이우스가 검을 휘두르고 있을 땐 이미 회피와 반격의 동작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 덕에 다소 느린 검속으로도 물 흐르는 듯한 회피를 보여주었다.
〈하하하! 명불허전이십니다!〉
가이우스는 기쁘게 외치며 2가지 반성점을 살렸다.
무심코 검에 힘이 들어가서 생각보다 강한 기술을 써버린 것 쯤이야 문제 없다고 치자. 상대도 자신과 동격인, 미스릴 클래스의 대전사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 기술은 저번에 가주가 오해로 말미암아 노르드를 공격할 때 펼쳤던 기술이다.
그때는 노르드의 분신을 싸그리 베어제꼈지만, 저 천재라면 눈 감고도 파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오의와 접합하긴 했어도 기초는 비슷하니까.
두 번째 반성점은 그가 먼저 공격을 가하지 말아야겠다는 점이었다.
가이우스가 진심으로 공격하면 노르드도 피하고 받아치기 위해서 숙련도가 낮은 비검(飛劍)보다는 자신의 무술을 사용하게 된다. 그래서는 노르드가 펼치는 기술에서 영감을 받을 기회를 잃고 만다.
〈책략가시군요.〉
자신의 갈망을 이용해서 전투에서 우위에 서다니?
진심으로 노르드의 책략에 감탄하면서 가이우스는 공격을 멈추고 수세(守勢)로 돌았다. 그러자 노르드는 왜인지 죽을 뻔 한 사람처럼 목덜미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돌격하려는 것처럼 검을 움직였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가이우스의 화려한 절기에 눈이 팔려서 감탄하고 있었지만, 직전에 노르드의 움직임을 놓쳤던 재능 있는 이들은 핏발을 세워가며 안력을 돋궜다.
‘첫 수에 펼쳤던 돌진기가 온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관찰하고 만다!’
자신의 재능이나 실력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그들이었기에 노르드의 첫 수를 놓친 것에 굴욕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렇게 눈을 부라린 기사들은 자신이라면 노르드의 공격을 어떻게 피하고 반격할지 이미지했다.
하지만 1초 후의 그들은, 몸에 바람 구멍을 내며 절명하는 자신의 모습을 환시(幻視)해야 했다.
100% 확실하게 돌진해 오리라고 여겼던 노르드가 자리에 멈춰서서 소나기처럼 찌르기를 방출했기 때문이었다.
─퓨퓨퓨퓨퓽!!
검끝에 피어난 마나가 바람의 화살처럼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