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396화 (396/1,009)

〈수고하십셔.〉

〈그러시게.〉

모텔 주인장과 남자다운 인사를 주고받고 밖으로 나왔다.

베로니카가 어딘지 모르게 피부가 반질거릴 만큼 몸보신을 한 듯한 얼굴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사실 방음이 잘 안 되는 방이었던가. 주인장이 은근히 감탄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서 마초이즘의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기분이었다.

“밥은 어쩔래?”

“되었다. 이미 충분히 배부르니.”

베로니카는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녀의 배와 위장은 육안으로 보일 만큼 살짝 부풀어올라 있어서, 임산부 석에 새초롬한 얼굴로 앉아있으면 지나가던 꼰대 할매들도 몇 개월이냐고 물을 것이었다.

‘근데 왜 밥 먹을 거냐고 물어봤을 분인데 사람을 이렇게 꼴리게 만드는 것이지?’

먹는 걸 좋아하는 베로니카가 아침 점심도 거르고 쥬지만 빨다가 돌아가다니?

이건 사실상 ‘산해진미 따위보다 주인님 자지가 더 마시써요오옷!’ 같은 소리가 나온 것 아닌가? 내 쥬지가 빤스 속에서 팝핀을 추는군. 걷기 힘들게.

“조금 안타깝긴 하구나. 이 도시의 식사에도 나름 흥미가 있었다만.”

“그러게 누가 그걸 다 마시래?”

“……시끄럽구나. 무아지경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아, 발정났었면 킹쩔 수 없지.”

“발…?! 조, 조금 더 말본새에 신경을 써라! 멍청한 것!”

─짝! 목소리를 낮추며 빨간 얼굴로 등짝 스매싱.

이게 마누라님의 손맛인가? 말로만 듣던 유부남의 일상을 몸소 겪자 감개가 무량해진다.

“흐으……. 아무튼 오늘은 그대가 나쁘다. 유혹에 넘어가버렸던 내 잘못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도 피부가 예민하구나.”

입 보지로 봉사하면서 가버리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한지, 베로니카는 팔뚝을 쓸어내리며 위화감에 몸서리를 쳤다. 난 실실 거리며 웃다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손가락을 튕겼다.

─딱!

“햐앗…♡?!”

척추반사로 몸을 떨며 아랫배를 감싸쥐는 베로니카. 하지만 당연히 저장된 쾌락은 남아 있지 않았다. 애초에 마법도 전부 해제해서 아랫배에 문신 비슷한 것도 안 남아 있는걸.

“……큿!!”

부들부들…!!

삽시간에 울상이 된 베로니카는 분노에 떨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베로니카가 이렇게 날 째려보는 건 한 손에 꼽을 만큼 드문 일이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실컷 헤실거리면서 좋아해 놓고 빼기는.”

─꾹, 꾹♡

“우큭…♡”

마침 딱 인기척도 적은 골목길이었기에, 나는 베로니카의 허리에 손을 감으면서 은근히 자궁이 있는 아랫배를 누르며 터치했다. 그렇게만 했는데도 베로니카의 입에서는 변태 같은 소리가 나왔다.

─움찔, 움찔♡

눈물이 고인 베로니카는 안짱다리가 되서는 걷지도 못했다.

3시간 논스톱 무한절정 끝에 충분히 쉬고 왔는데도 이 꼴이었다. 나는 아랫배에 손가락을 비벼대며 말했다.

“내 취향에 맞춰주고 싶다며? 나중에 또 해 줄게. 우리 둘 다 즐겁고 윈윈이네 뭐.”

“……마음대로 하거라.”

베로니카는 차갑게 내뱉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자궁을 눌러줄 때마다 온몸을 벌벌 떨어대는 반응이 제깍제깍 나와서일까. 그런 새침 떠는 말본새도 무척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런 그녀의 어깨에 손을 감고 다정하게 복귀했다.

***

데이트 날로부터 다시 또 이틀이 지났다.

그 동안 나는 기사단장에게 야부리를 털어서 정기 호출을 건 하급 기사들을 줘패면서 기술을 연습하거나, 연무장에서 기사단장과 무예에 대한 토론을 나누기도 했다.

토론 쪽은 나도 기사단장도 서로 감추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인지, 진도가 상당히 더뎠다.

주로 내 평가에 기사단장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내가 알지 못하던 지식을 그에게서 듣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지진부진한 날도 언제까지 계속되지는 않는다.

충분한 환대도 받았고, 장기적인 스폰서도 얻었다. 그러니 더 이상 우리 가족이 아르마알스 가문의 본가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졌던 것이다.

내가 가주 어르신에게 〈편찬대대〉의 이야기를 하려면 좀 더 확고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당분간은 브리타니아로 돌아가서 활동을 재개할 생각이었다.

〈떠, 떠나신단 말입니까?〉

연무장에 가서 그런 얘기를 하자, 기사단장은 체통도 잊고 당혹스러워 했다.

그럴 만도 했다. 같이 절차탁마하자고 말한지 얼마나 됐답시고, 그나 나나 아직 얻은 것도 없는데 휙 떠난다니?

‘여기가 승부처다.’

나는 일부러 정말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예. 하지만 제가 긴밀하게 알고 지내는 브리타니아의 모 귀족님께서 티르시의 안전을 확인하신 모양입니다. 한시바삐 돌아와 달라는 요구가 있어서, 정말 아쉽지만 작별하게 될 듯 하군요.〉

〈그, 그러셨습니다.〉

귀족 핑계를 대자 기사단장도 말문이 막혔다.

하급 기사들에게 묻자 기사단장도 귀족가 출신의 인물이긴 한 모양인데, 빈곤한 가문 출신이어서 귀족을 상대하는 평민들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나 뭐라나.

‘그러니까 더 이상 들킬 위험을 줄이고, 조바심을 내게 만들어야 해.’

나는 애석한 척을 하며 눈을 빛냈다.

그와의 회담에서 내가 얻은 것은 거의 없었다. 오늘은 좀 준비를 해 오긴 했는데, 솔직히 어제까지만 해도 내 실력이 탄로나지 않도록 주의하기도 바빴다.

오죽 하면 랩실에 출근하던 시절의 마음으로 연무장에 왔을 정도였다.

딸랑 이틀 정도로 결실을 바라는 것도 도둑놈 심보라는 건 알지만 말이다.

‘내가 보기엔 저 사람도 성장에 굶주려 있어. 그럼 이렇게 아쉬워 하게 만들면 뭔가 액션을 취하려고 하겠지.’

기사가 한가할 때는 곧 그가 지킬 대상이 평화로울 때다.

물론 좋은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전사가 온 힘을 다해서 맞설 수 있는 대련 상대나 숙적도 없이, 그냥 평화롭게 경호 업무만 하면서 성장한다? 그런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위대한 가문의 기사단장이 지나가던 달인을 붙잡고 ‘니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르신이 후원할 만한 전사들도 있겠지만, 그들도 시간이 자주 나지는 않을 것이다.

‘또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저쪽에서 먼저 제안을 꺼낼 가능성이 커.’

물론 헨네시스 영애가 편지를 보낸 것은 사실이다. 편지에 티르시가 몇 줄 쓰게 했던 탓일까. 너무 기뻐하는 모습이 필체에서부터 선해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노르드 님.〉

그렇게 내가 영애의 편지를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기사단장은 심사숙고를 거친 끝에 입을 열었고, 나는 그가 미끼를 물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송구스럽습니다만, 혹시 떠나시기 전에 저와 한 수 겨뤄 주시겠습니까?〉

걸렸다! 나는 숨을 죽이고 몰래 웃었다.

이틀 동안 대련의 ‘대’ 자도 꺼내지 않던 그가 먼저 얘기를 꺼낸 것이다. 그의 검술을 내 눈으로 보는 게 내 원래 목적이었던 만큼, 이 정도면 목적은 달성했다고 해도 좋았다.

〈물론이죠. 바로 시작할까요?〉

나는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승낙했다.

내 실력이 미스릴급 경지가 못 된다는 걸 들킬 수도 있었지만, 그 점은 몇 가지 핑계를 대고 싸울 때 주의하면 해결될 문제였다. 오히려 이런 기회를 놓치는 게 더 아깝다.

〈감사합니다! 리갈! 훈련용 창과 검을 갖고 오게!〉

〈예!〉

내가 바로 대답하자 기사단장도 기쁘게 다른 하급 기사를 시켜서 무기를 갖고 오게 시켰다.

나는 그 하급 기사를 눈으로 쫓으면서 보험으로 쓸 밑밥을 깔아뒀다.

〈단장님. 사전에 몇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예. 대련의 조건 등을 정해야죠. 급소는 피하고, 오러는 없이. 친선 대련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얘기가 빨라서 좋군. 나는 입술에 검지를 세웠다.

〈거기에 몹시 죄송합니다만, 제가 집중하면 말수가 적어지거나 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제 로마니아 어가 완벽하지 못해서 가끔 헛소리가 나올 수도 있구요.〉

만약 여기에 내가 평소 싸우는 꼬락서니를 본 놈이 있으면 그게 뭔 개소리냐며 입을 딱 벌리겠지. 내가 언제 주둥이를 가만히 두고 싸운 적이 있었던가?

심리전과 도발도 싸움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나다. 나보다 쎈 적을 상대로 자체적으로 페널티를 거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오딘의 눈을 쓰려면 반드시 깔아둬야 하는 밑밥이지.’

기사단장이 뭐라고 물어봤는데 정면에서 씹어버리거나, 내 혓바닥이 느그 마누라 타임세일 같은 폭탄 발언을 하면 큰일 아닌가? 이번만큼은 아예 닥치고 싸울 생각이었다.

게다가 친목을 다져야 하는 상대한테 도발을 갈겨댈 수도 없고 말이다.

〈아, 물론 상관없습니다. 너무 유창하셔서 가끔 노르드 님께서 외국인이라는 걸 잊어버리는군요.〉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기에 그는 흔쾌하게 승낙했다.

─척!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기사단장이 심부름을 시킨 기사가 훈련 무기를 들고 달려왔다.

우리는 대련장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기수식을 지었다. 하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쓴웃음도 지어야 했다. 아까 심부름을 시킨 하급 기사는 무기만이 아니라 방청객까지 데려왔기 때문이다.

〈……………….〉

대련장을 포위한 것처럼 둘러싼 기사들이 흥미진진하게 이 대련을 관람하고 있었다.

익숙한 낯짝도 둘 있다. 프리모르의 호위는 어쩌고 여기에 계시나. 가출을 도운 걸로 호위에서 짤렸나? 그렇다면 삼가 유감을 표합니다.

〈저들이 방해되신다면 물릴까요?〉

기사단장이 물었다. 당연한 요구였다. 이렇게 많은 전사들 앞에서 내 창술의 장단점을 피력한다니? 딱히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아니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 말에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 검술의 연원은 여러분께 있으니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이 대련에서 오늘 그에게 보여주고자 준비해 온 기술을 피력할 마음을 먹었다. 내 전투 기술에서 허점이 보여도 ‘넘어가 줄 만 하다’고 생각하도록, 나름대로 천재성을 어필해 볼 생각이었다.

검지를 세워 나무창에 룬을 새긴다.

─휘리리릭!

ᛒ(Berkanan)의 룬 문자가 훈련용 창을 한 자루의 목검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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