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입자아아앙!!!”
“데고륵?! (뎃?!)”
─쾅!!
나는 나무열매의 맛을 즐기던 고블린의 머리통에 원 펀치를 내려쳤다.
중력가속도의 인챈트를 받은 주먹은 저녁을 처먹던 고블린 1마리를 깔쌈하게 골로 보냈다. 시팔 무릎 존나 시리네.
“착지를 제대로 안 하니까 그렇지.”
“큭, 중력을 너무 얕봤군. 몇 번 싸워보고 이겼던 놈이라서 방심했어.”
마나만 제대로 둘렀으면 이깟 높이에서는 아무렇지 않았을 것이었다.
고블린을 상대하면서 방심하다니, 교수 슬레이어의 이름이 울겠군.
“크캭!! (위험해!!) 크캭!! (위험해!!)”
“캬륵!! 캬륵!! 캬륵!!”
친구 1마리가 순식간에 먼저 가버리자, 고블린들은 혹한기 훈련 중에 초소에서 간식을 까먹다 중대장한테 걸린 이등병 짬찌들처럼 대경실색을 했다.
먹던 음식도 던져버리고 허둥지둥 지들끼리 뭉쳐 모이더니 당황하는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마! 드루와, 드루와!!”
나는 고블린들을 재촉하듯이 니가와를 시전했다.
쉽게 말하면 위풍당당하게 가만히 서서 쟤들이 덤벼 오는 것을 기다렸단 소리다.
“기껏 기습에 성공했는데 계속 공격 않고 뭘 하느냐?”
“무릎이 시려서 움직이기 싫어졌어!”
“가지가지 하는구나.”
우리 여신님이 차갑다. 벌써 갱년기인가?
아무튼 10미터 높이에서 노빠꾸로 떨어진 대가는 참혹했다. 역시 영화는 영화일 뿐, 히어로 랜딩은 미친 짓이다. 새나라 이세계의 착한 아이들은 따라하지 말 것.
“캬륵! 캬륵!”
“……크캬! 캬캭!! (너! 쥬긴다!!)”
당황하던 고블린들은 이내 친구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서 투지를 불사르며 내 도전을 받아들였다.
“히얼 이즈 뉴 챌린저!”
나는 천지마투의 태세로 그들을 맞이했다.
1마리는 뒤쪽에서 활을 겨누고, 앞의 둘이 돌도끼를 들고 덤벼들…… 돌도끼가 아니라 철도끼네?
“아니 이 씨팔! 너 이 새끼들, 그 도끼는 또 어디서 났어! 산신령이 보내드냐!”
“고르르악-! (이얍-!)”
놀란 내가 창을 휘두르자, 제일 앞에 있던 녀석은 도끼로 그걸 가드하려고 했다. 고블린 치곤 잽싼 반응이었다.
‘어쭈?’
조금 놀랐지만 고블린이 털 나봐야 고블린이지.
나는 도끼에 창날을 스치지도 않고 그 새끼의 머리를 석류처럼 좌우로 쩍벌 시켜주고, 빈틈을 노리고 덤벼드는 다른 한 마리도 싸커킥으로 파란 하늘 높이 발사해줬다.
─투쾅!! 폴더폰처럼 접혀서 솟아오르는 고블린.
회전하는 녹색 곱추 잼민이 뒤에서 화살이 1방 날아왔다.
활쟁이 고블린의 기습이다. 얘도 꽤 좋은 활을 쓰고 있었다. 만들었을 리는 없고, 훔친 거겠지.
“느리구나. 활을 쏘는 것조차.”
하지만 고블린이 쏜 화살이야 해 봤자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내 동체시력은 빠르게 날아오는 화살의 궤도를 쉽사리 간파했다. 오른손이 잔상을 그리면서 빛으로 변했다.
─타악!!
날아오는 화살을 붙잡았다. 후까시를 잡은 건 아니고, 진짜 눈에 확 띌 만큼 느려서 한 번 잡아본 것이었다.
“캬륵?!”
황망해진 고블린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머리통에 칼이 박힌 고블린 친구에게 화살을 푹 꽂아줬다.
“이제 네 이름은 한니발이란다!”
와! 네임드 몬스터! 출세 했구나!
“캬아아, 쿠르르륵…….”
“……니발아? 한니발? 일어나!! 지금 자면 죽어!!”
하지만 청주 한씨 니발이는 기껏 네임드 몬스터가 되고도 영광을 맛보지도 못한 채, 그렇게 명을 다하고 말았다. 아마 이 또한 전쟁의 비극이리라.
나는 눈물을 훔치며 한니발을 집어들어 활쟁이 고블린에게 내던졌다.
“신병 받아라!!”
“캬륵?!”
힘 조절한 시체 맞고 활쟁이 고블린이 뒤로 자빠졌다. 감격적인 이산가족 상봉이다.
─쿠웅!! 한 마리의 고블린이 하늘을 날자 그 동안 하늘을 날아댕기던 싸커킥 고블린은 바닥에 떨어졌다.
플라잉 고블린 보존의 법칙인가.
만유인력의 새로운 패러다임이군.
“케… 에엑!!”
고블린 1마리가 몸을 버둥거렸지만, 명치에 싸커킥을 맞고 지옥과 천국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는 친구를 억지로 일으켜서야 쓰겠는가. 어차피 그의 죽음은 시간 문제였다.
고도로 발달된 타박상은 불치병과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자비 깊은 부처의 마음으로 고블린의 목을 꿰뚫어줬다.
“──니미애비따블. 굿럭왕생 하거라.”
“끄르르륵……!”
오딘의 사제답게 기도를 올리고 고블린의 발목을 잡아서 픽업(Pick up).
그대로 고블린의 발목을 잡고 자이언트 스윙을 했다.
─붕붕붕붕붕붕!!
그대로 한 5바퀴 회전한 다음, 마침 좋은 두께의 나무가 있길래 거기다가 고블린의 몸통을 후려쳤다.
“페이탈리티!!”
─쾅!!
머리부터 나무에 꽂혔지만 고통은 없었으리라 믿는다.
쟤네들도 고블린 국제법으로 보호받는다면 모를까, 제네바 협박도 없는 이세계에선 포로를 잡을 필요는 없었다.
“크, 손맛 오지네. 이래서 다들 격투기를 배우는군.”
“그대 같은 사이코패스나 그렇겠지.”
에벱베벱 안들려 안들려.
것보다 너희 남편한테 싸이코라고 해 봤자 누워서 침 뱉기 아니냐?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는 내가 언젠가 노가리 까면서 설명해 줬던 것 같긴 한데.
“캬륵…… 캬, 캬륵?”
싸늘해진 친구를 밀쳐내고 일어난 활쟁이 고블린은 자기 혼자만 남았음을 깨닫고 분위기가 싸해졌다.
녹색 피부가 세탁 잘못한 옷 마냥 물 빠진 연두색으로 변색됐다. 쟤들도 얼굴이 허얘지긴 하네.
“캬륵! 캬륵!”
캬륵캬륵 고블린 군은 전력 차이를 깨닫고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기로 결정한 것이다. 저저저 시발놈 튀는 것 보게. 어디가 야발놈아.
“히히 못가!”
나는 재빨리 쫓아가서 놈의 앞을 가로막았다. 숨을 폐부에 들이쉬고, 코볼트의 울음소리를 재현했다.
“끼에에에에엑!!!”
“캬르아아악?!!”
활쟁이 고블린은 저항의 의지가 완전히 꺾인 듯, 팔다리를 랜덤으로 움직이며 도망치는 속도를 높였다.
“친구의 복수를 즉시 포기하는 결단력. 아주 훌륭하다.”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늦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군.
똑똑한 녀석이었다. 어째 해석도 안 되는 캬륵캬륵 소리만 내던데, 언어의 덧없음을 이해한 현자여서 그랬나 보다.
“울음소리를 본따서 캬룩이라는 애칭을 붙여주마.”
보고 계십니까, 만언신 님? 당신의 후계자가 여기 있습니다…….
“진짜 광인 같으니까 그만 좀 하거라.”
“뭐 어때. 일할 때 즐기는 게 장수의 요령이야.”
“오래 살기 싫어지는 리빙 포인트로군.”
나더러 싸이코라니? 모함도 그런 모함이 없다.
새삼 말할 것도 없이, 나는 양식 있는 21세기 코리아의 민주시민이다. 아무리 이세계가 내 머리에 독을 풀었대도 이런 잔인한 짓을 크헤헤헤헤 거리며 즐기지는 않는단 말이다.
일부러 이렇게 또라이 티를 내며 난리를 피운 것도 다 그럴 만 한 이유가 있어서 벌인 일이었다.
“이쯤 했으니 어디 안 가고 바로 지 둥지로 튀겠지.”
유리병을 하나 꺼내 캬룩에게 투척.
─와장창! 머리에 적중한 병은 박살나며 내용물을 쏟아내 캬륵의 몸을 흠뻑 적셨다.
“캬륵?!”
깜짝 놀랐는지 캬룩은 발이 꼬였지만 어떻게 넘어지지 않고 잘 도망쳤다.
우쭈쭈, 장하다 우리 씹새끼. 둥지를 멸망시켜 버리렴.
“이걸로 밑준비는 끝.”
방금 던진 것은 포션 병이지만 회복템은 아니다.
당연하지 않은가. 자기가 패 놓고 힐까지 해 준다니? 이열~ 또라이나 할 법한 발상~.
지극히 정상인인 나는 그딴 만행은 벌이지 않는다.
저 병에는 돼지 피를 가득 담아 놨다. 마을에서 저렴하게 산 물건이었다.
이제 협곡의 늑대들이 아주 좋아 죽으며 캬룩을 쫓아다닐 것이다. 나는 그걸 쫓아가기만 하면 내 존재를 들키지 않고 둥지 중 하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었다.
‘우리더러 동물 드론도 없이 이 넓은 협곡을 조사하라고?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신조차 모독하는 사상 최대의 천재 노르녹스는 그런 비효율적인 노동은 하지 않는다.
나는 사무직 방향의 인텔리 마초다. 늑대와 고블린이 투닥댄다는 이 협곡에서 적당히 어부지리만 취할 생각이었다.
이미 그걸 위한 준비물은 충분히 챙겨 왔다. 군자금이 있었기에 준비는 어렵지 않았다.
“이제 거리를 두고 쫓아가기만 되겠다.”
“참 별난 작전을 다 짜는구나.”
“어차피 상대는 몬스터인데 뭘. 효율적이면 됐지.”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캬룩은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것처럼 열심히 도망쳤다. 피차 고생하는 입장으로써 형성된 공감대 덕분일까. 어쩐지 친밀감마저 느껴졌다.
나는 도망치는 캬룩에게 만감을 담아 중얼거렸다.
“가라. 다음에 만날 땐 적(敵)이다.”
“지금도 적이다만.”
그른가?
그럼 얼른 쫓아가자.
“아, 깜빡할 뻔 했다. 드랍템은 챙겨 가야지.”
무심코 잊고 갈 뻔 했던 고블린 두 마리를 루팅했다.
잡템을 줍겠다고 밍기적대기엔 내가 너무 멀리 왔지만, 몬스터의 시체를 방치하는 건 모험가의 의무에 맞지 않았다.
21세기 지구에서도 사냥꾼은 사냥감까지 치워주는 게 매너였다고.
─바스락!
그렇게 대충 시체에서 철 도끼만 챙기고 있는데, 갑자기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인기척이 나타났다. 나는 누군가 싶어서 시체를 걷어차서 치워버리고 기다렸다.
그러자 얼마 안 가서 모험가 나부랭이로 보이는 아딱이가 3명 나타났다.
‘넝마옷에, 돼지에, 대머리?’
존나 시발 서유기 메타인가?
생긴 와꾸대로 노는 거라면 도적, 전사, 법사일까. 내츄럴 본 지구인인 나도 얌전하게 살고 있건만 이 놈들은 이세계인 주제에 날아라 슈퍼 보드를 찍고 앉았군.
딜탱힐은 잘 갖춰놓은 게 묘하게 꼴받는다.
“밤중에 왜 이리 시끄럽다 했더니…… 쓰읍. 댁은 뭐 하는 양반이셔?”
“모험간데요. 아저씨들 동업자 아녜요?”
첫 인상부터 좋지 않았지만, 관상은 유사 과학에 불과했다. 선빵을 갈길 근거자료로는 모자란 것이다.
그래서 모험가 플레이트를 꺼내면서 해치지 않아요 어필을 한 거였는데, 그들은 아이 컨택을 나누고서 말했다.
“그러면 좀 꺼져 주지? 여긴 우리 자리거든.”
“……자리요?”
“우리가 먼저 왔으니까. 이런 건 선착순 아니겠어? 야생의 룰을 좀 본받아 보자고.”
아니 씨발, 신서유기인 줄 알았더니 1박 2일이네.
역시 컨셉충 치고 멀쩡한 새끼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