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18화 (418/1,009)

일단 연금술 학파에 티르시는 없었다.

“Hu~? 음, 티르시 친구?”

티르시는 없었지만, 대신에 예~ 전에 내가 만난 적 있었던 티르시의 친구가 나왔다.

그 뭐냐, 내 쥬지를 (MRI)로 검사해줬던 마법사다.

이름이 뭐더라? 쥬시? 루미?

“루시 애버라인이야~.”

까비. 거의 맞았는데.

나는 사람 좋게 웃으면서─발성을 아서 웨인과 다르게 내는 건 당연했다─ 말했다.

“아르마슈나스 양은 혹시 어디 계신지 아시나요?”

“내 부업을 도와주러 갔어. 휴가가 길어서 걔 몫까지 내가 일했거든. 휴가도 반납하면서~.”

생긴 거랑 다르게 성실한 사람일세. 나는 그녀에게 얘기를 들어서 그 부업이라는 가게가 어디인지 알아냈다.

“그나저나 당신, 야성적인 게 꽤 괜찮네. 혹시 많이 바빠?”

“물론이죠. 외간 집의 미녀에게 권유받으면 무슨 얘기이든 일단 바빠질 예정입니다. 유부남이라서.”

“으응~ 안타까워라. 말하는 것도 맘에 들었는데.”

꼬우면 3년 전의 카르미네 대학으로 시간이동하렴.

거기라면 예르나 년이 다리를 벌려도 좋다고 섹스할 병신 아다가 있을 테니. 존나 노르드라고 쌉호구노예 새끼 있음.

─저벅, 저벅.

나는 눈이 내리는 길을 뚫고 티르시가 알바를 하고 있다는 골목으로 갔다.

내가 생각하는 그녀의 이미지랑은 좀 안 맞는 거리였다. 딱 슬럼가랑 마피아 나와바리를 반반 섞어서 폰 허브 야외노출 세계관을 버무린 듯한 분위기다.

루시의 부업이라더니만 딱 거기 어울리는 장소였다. 나는 은근 흥미를 느끼며 길을 구경하다가 깜짝 놀랐다.

“이 쓰벌?”

핑크색 간판에 빨갛게 적힌 글자, ‘성인용품점’.

허미 씹, 사르가디스에 성인용품점이 있었다니! 나는 눈을 맞는 것도 잊고 몸이 달아올랐다.

‘이건 들어가 보지 않을 수 없지.’

티르시는 조금 늦게 만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연구하러 오려면 어차피 그 알바란 게 끝나야 할 것이니까.

띠링─.

문에 달린 방울을 울리며 입점.

‘웜맴매, 야시꾸리한 거.’

나는 핑크빛 기류가 충만한 점내에 감격했다.

지구에 살 적에는 바나나 몰에조차 가지 못했던 강북호는 들어오자마자 즉시 문 워크를 밟았을 듯한 장소였다. 허름한 다방 가게 위에 붙어 있는 성인 용품 전문점 같은 이미지다.

최면 어플 같은 최첨단 도구가 아니라 돼지 발정제나 몰래 카메라 같은 걸 팔 것 같군.

‘아니면 서큐버스 소환서 같은 거.’

노루표 무협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틀딱 야설의 메카로다.

나는 흥미진진해 하면서 가게를 둘러보려다가, 이 미개한 이세계에서는 일단 점주 얼굴부터 보는 게 예의라는 생각에 현대인 강북호에서 키타이-몽키 노르드로 돌아왔다.

“실례합니다. 혹시 주인장 계씹니──”

말하면서 걷다가 일시정지하는 나.

흥분해서 혀를 씹었다? 설마. 내가 멍을 때려버린 것은 그 카운터 자리에 음습하게 앉은 하얀 로브의 여인이 낯설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얼굴은 턱선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내 민감한 오감은 낯이 익은 상대의 맨얼굴을 쉽게 랜더링했다.

“……우리 구면이죠?”

─호달달! 하얀 머리의 그녀는 억장이 무너진 것처럼 입을 벌리며 기함했다.

“음. 아니, 실례했습니다. 아는 척 않을게요. 그야 성인이 성인 용품에 관심을 가지는 건 아무런 죄도──”

“오해!!!! 오해에요──!!!!”

티르시 아르마슈나스 씨는 내 말에 울면서 비명을 질렀다.

진짜 여기 있었네, 이 숫처녀 매지션 걸.

***

숨을 딸랑 1초 들이마신 티르시는 10초 넘도록 날숨을 내뱉어가며 내 어깨를 잡고, 항변했다.

“그게요! 여기는친구가부업으로운영하는곳인데 제가휴가를나간동안 관리를하질못해서매출이급감했다고 저더러정말미안면자기를대신해서 며칠만이라도가게나봐달라고하더라고요!”

“알았으니까 진정하고 천천히 말씀하세요.”

하도 가독성이 씹창나갖고 뭔 소리인지 하나도 이해가 안 가니까.

나는 빠르게 사정을 설명하는 티르시를 다시 앉혔다. 우리 말고 다른 손님은 없었기에 편했다.

“아무튼!! 제가 좋아서 이 가게에 있는 건 아니에요!!”

“그렇군요. 그럴 것 같았습니다. 분명 연금술이 성인 용품 제작에도 쓰인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그런 말이 있다. 생크림은 한때 러브젤을 대신해서 쓰였던 적이 있다고 말이다.

매번 그렇듯 지구산 야매 지식이기에 팩트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런 썰이 그럴싸하게 들릴 만큼 우리 인류는 24시간 365일을 ‘좀 더 기깔나게 섹스하는 방법’을 찾아 헤매는 종족이었다.

인류의 기술은 전쟁과 섹스에 가장 먼저 투자된다는 말도 있다.

신기한 만능 과학인 연금술이 성인 용품에 쓰인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건 아니겠지. 당장 기초 연금술만 있어도 오나홀이나 러브젤 같은 건 쉽게 만들 수 있겠구만 뭘.

“으흐으으으…… 왜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티르시는 로브를 눌러쓰며 죽으려고 했다. 나는 픽 웃었다.

“루시 양이 여기로 가면 된다고 알려줬거든요.”

“……돌아가면 죽여버릴까?”

작게 중얼거려도 들려요.

“암튼 뭐, 일 끝나고 돌아왔으니까 시간 나실 때마다 연구하러 오시라고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정말이에요. 루시가 기강을 다져 놔서 그런지 불쾌한 농담이나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지만, 정신적으로 지쳐요.”

그야 그렇겠지. 섹슈얼 토이를 판매하는 처녀라니. 남들이 들으면 야설 히로인인 줄 알겠네.

나도 올리브 영 알바생이 되서 씹인사 클럽걸들에게 보습제와 미스트의 차이를 설명해야 한다면 그냥 혀를 깨물어버릴 것이었다. 티르시도 심로가 깊어 보이는군.

‘……근데 그건 그거고, 이거랑은 좀 다른 얘기지.’

─꼴깍. 가게를 둘러본 나는 다시 침을 삼켰다.

티르시의 기분은 이해하지만, 자고로 꼴마초의 좆침반이란 이성에 기반해서 움직이는 게 아니다.

‘성욕에 초탈한 남자는 자지를 컨트롤하는 게 아니고, 섹스 외에 다른 것에 발기하는 거니까.’

나만의 가설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예를 들면 권력 맛을 본 정치인은 끝내주는 미녀보단 당선이라는 단어에 무발기 사정을 하는 법이지만, 나는 그런 개씹노답 변태 새끼와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건전한 마초인 나는 이세계식 어른이의 장난감에는 흥미가 솟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티르시. 상품 좀 봐도 되죠?”

“……네?”

종로에서 승룡권을 맞은 수능 1등 같은 얼굴이다. 멍하니 나의 말을 곱씹던 티르시는 말을 어물거렸다.

“구, 구경하신다니…… 뭘요?”

“그건 봐야 알 것 같네요. 정하면 카운터로 갖고 올게요.”

나는 손을 딱 내밀며 가이드는 사양했다.

티르시가 구경하는 나를 쫄래쫄래 따라와서 ‘이 오나홀은 구멍속 돌기가 쌉에져서 남바완 매출 상품이에요’ 같은 소리를 하면 나까지 정신적인 데미지를 받고 말 것이었다.

우리 같은 마초는 옷가게에서 점원이 나를 보고 일어서면 야생동물을 경계하듯 시선을 맞추고 백 스텝을 밟는 생물이 아닌가! 후회도 쾌락도 오롯이 내 선택에 의한 것이여야 안타까울 일이 없다.

“해피~ 해피해피~ 해피 월드~.”

황망해진 티르시를 두고서 흥겨운 콧노래를 부르며 가게를 종횡무진했다.

수컷을 위한 성처리도구는 패스다. 사실 결혼한 유부남도 딸은 친다지만 아직은 내 좆이 너무 바빴다.

매일밤 쓸쓸해 하는 아내가 4명인데 저까짓 포터블 안드로이드 뷰지에 유전자 USB를 연결할 수야 있겠는가?

그러니까 내가 고르는 상품은 부부 생활의 윤활유로 쓸 만한 것들이다.

마나를 흘려넣으면 지반분쇄기처럼 초진동하는 후장식 동물 꼬리나, 정갈한 수녀가 입어도 대굴빡 위로 천벌이나 제우스가 떨어져내릴 것 같은 교미특화 천쪼가리 같은 것들 말이다.

“………………53쿠퍼입니다.”

“잠만요. 동전으로 되려나?”

지갑을 뒤져봤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산 것 같지도 않은데 존나 바가지 같은 느낌이다.

‘아니, 모조리 장인의 손길이 깃든 주문제작이니까 어쩔 수 없나.’

이세계의 장난감은 아직 모두 가내수공업이었다. 비쌀 만 한 것이다.

하여간 대량생산 메타 하나 안 타고 뭘 하는 건지. 창으로 탱크랑 싸우는 문명 게임의 야만인 전사들 같으니.

─바스락.

말마따나 피곤한 걸까. 죽은 눈으로 변한 티르시는 정성껏 까만 종이 봉투에 어른의 장난감을 소포장해 주었다.

진짜 억지로 하는 알바 맞나? 움직이는 게 거의 뭐 개도국 공장 아줌마들 같은 느낌인데. 아주 그냥 거장의 솜씨다.

존나 이세계 생활의 달인으로 방송 타고 되겠다. 뿌슝빠슝! 딜도 30개를 10초만에 포장하는 마법사가 있다?!

‘그나저나 이세계에서도 이런 건 안 보이게 포장하는군.’

아아─ 이것은 「불문율」이라는 것이다. 어기면 좆 되지.

사회적 말살이다. 덱에서 존엄성을 최대 3장까지 인생에서 제외하는 카드다. 금지/제한이 시급하군.

“감사합니다. 또 올게요.”

“………………또요? 왜요?”

내가 검은 봉투를 푸짐하게 안아들고 말하자, 티르시는 이 세상의 모든 부패를 확인한 데스노트의 소유자 같은 어조로 대답했다. 이 살함이 구세계의 신한테 씌이더니 사이비 교주 테크를 타기 시작했나.

“왜긴요. 장사가 잘 되면 친구 분의 화도 빨리 풀리지 않겠어요? 그럼 저는 이만!”

그럼 굿바이, 아듀, 사요나라다. 나는 티르시가 덜 쪽팔리게 후딱 집으로 돌아갔다.

거칠게 부는 눈보라는 아직 불고 있었지만, 가벼워진 내 발걸음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마초이즘.

그 정신병과 신념 사이 어딘가에 있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자신을 단련해 온 나를 멈추는 건, 나를 꼴마초 모험석사 노르드에서 순둥이 강북호로 만들 수 있는 존재 뿐이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없는 이세계에서, 날 그렇게 만들어주는 건 오직 우리 아내들 뿐이었다.

─뚜벅.

집 근처로 온 눈바람도 개의치 않고 우체통 앞에 서 있는 우리 눈나를 발견하고 눈을 끔뻑거렸다.

“다나, 뭐해?”

“눈이 오길래 빨래 걷으려고 나왔는데, 편지도 젖을까 봐 확인하려고 했지.”

다나는 무탈하게 돌아보면서 편지에 튄 눈을 털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까 내 앞으로도 한 통 와 있네.”

“……장모님이셔?”

─끄덕.

고개를 끄덕인 다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의 어깨가 축 쳐졌다. 마치 짜증이 너무 지나쳐서 허탈함마저 느끼고 있다는 듯 말이다.

“후우우…… 남편? 말을 번복해서 미안한데, 잠깐 괜찮냐?”

“미안하긴. 네가 나한테 미안해 할 건 애교가 부족하다는 점 뿐이야.”

철없이 장난감을 한아름 사온 남편의 스윗한 농담에, 우리 다나도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래, 고마워서 울 뻔 했다. 아무튼 이것 좀 봐.”

눈발을 맞아가며 편지를 내미는 그녀. 나는 편지의 항간을 읽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나는 혀를 차고 싶다는 듯 중얼거렸다.

“우리, 내 고향 북부에 가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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