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17화 (417/1,009)

날이 틀 때까지 한숨 자고, 단숨에 길피 길드로 갔다.

“버, 벌써 끝내셨어요?”

“예. 소인원으로 가서 열심히 달렸습니다.”

어안이 벙벙해진 에들린에게 핑계를 대면서 나무 우리를 열었다.

“─컹컹!”

고블린제 밧줄이 풀린 황금 늑대가 으르렁 거리면서 뛰쳐나왔다. 사회화도 덜 됐는지 이 녀석의 울음소리는 내 귀에도 해석이 안 됐다. 그 뭐냐, 언어의 사회성인가 하는 그거다.

“……작네요?”

“발견한 게 이 녀석 뿐이었습니다. 새끼인 모양인데, 버릴 수도 없고 데리고 있자니 일이 복잡해질 것 같아서요.”

“잘 하셨어요. 데리고 있다가 도난맞는 것보단 낫죠.”

에들린이 손을 내밀자 황금 늑대 새끼는 거칠게 손가락을 물어버렸다.

하지만 당연히 방어 마법을 켜놓은 에들린은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난폭하군요. 늑대는 늑대라는 걸까요.”

“그렇겠죠. 제 고향에서는 그런 말도 있었습니다. ‘개는 정신에 병이 걸린 늑대다’라고요.”

내 고향 얘기가 늘 그렇지만, 이건 지구에 있던 시절 대학 수업에서 들었던 얘기다.

‘수업 중에 집중이 산만해지니까 말해줬었지.’

물론 그때의 교수는 개빠였던 여학우의 언플로 수업 평가를 조지고 나서부터는 다시는 그런 잡담을 꺼내지 않았었는데, 나한테는 꽤 충격적인 내용이라서 기억하고 있다.

‘뭐랬더라? 늑대 중에서 인간에게 친밀함을 느끼는 놈들을 수만 년 동안 교배시켜서 원시적인 유전자 조작을 벌인 게, 지금의 개들의 조상이랬나?’

즉, 개들은 모두들 자기가 인간의 칭구인 줄 아는 정신병자라는 얘기였다.

처음 들었을 때는 충격적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

결국 병과 병이 아닌 것을 분간하는 기준은 그 증세가 극복해야 할 문제인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가슴털이나 쥬지가 맨들맨들해도 그건 탈모가 아니다. 그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니까.

하지만 머리가 빠지면 탈모다.

인류의 99%가 대머리가 되지 않는다면 탈모는 질병 중의 질병으로 여겨지겠지.

개가 정신병 걸린 늑대라는 가설도 그 경우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남들이랑은 조금 다르더라도, 받아들이고 소화한다면 병이 아니지.’

우리 프랑은 진성 마조히스트지만 그런 성 취향이 질병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늑대가 인간의 손을 타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건 마법을 쓰지 않을 때의 얘기니까.’

─톡. 에들린이 황금 늑대의 이마를 치자 그 놈은 눈이 싹 풀려서 잠들었다.

“가죽을 벗기시려는 건 아니죠?”

“제가 미쳤다고 그러겠어요? 기왕 생포한 거, 애완동물로 기를 생각이에요. 황금 늑대를 생포해서 기른 마법사는 없으니까요. 어쩌면 저도 지금보다 더 유명해질지도 모르죠?”

“그 점은 동의합니다.”

나는 맞장구를 치면서 깍지를 꼈다.

“그러니까, 추가 보수 얘기를 해 보실까요?”

“……어머, 녹록치 않으시네요?”

“그 놈은 어미인지 아비인지 밑에서 황금색 털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혹시 압니까? 저 놈의 새끼도 그럴지.”

그렇게 되면 황금알을 낳는 오리.

아니, 황금털을 낳는 늑대다. 모피 1장 값에 팔기에는 좀 많이 아깝다.

‘그렇다고 내가 손 대는 것도 좀 그렇고.’

나도 엘릭서 사업과 원한관계 청산로 번잡하다.

기약 없는 미래의 황금이 확실한 연금과 현재의 안전보다 값어치 있지는 않다.

‘사업을 망치는 지름길은 기반이 다져지기 전부터 문어발을 뻗는 거랬지. 적당히 처분하는 게 나아.’

나는 그리 말하면서 계약서를 꺼냈다.

이번에도 로얄티 계약서였다.

“제가 로마니아의 헤르마이온 길드와 사업을 하나 진행 중입니다만, 그때 그 분들과 맺은 계약이 꽤 괜찮더군요.”

마치 내가 제안을 받은 쪽이라는 듯 야부리를 털었다.

내가 한 발상보다는 일류 대기업의 계약법이라고 말하는 게 더 듣기 좋을 것이었다.

“나중에 이윤을 창출하시게 된다면 저도 한 몫 껴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니, 아마 100% 도전해 보실 것 같네요.”

“황금 늑대의 교배 성공 사례는 없으니까요. 사로잡자 자결했다는 기록까지 있죠.”

“흐흐. 만약 지부장님이 그런 난제를 뚫고 교배에 성공하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묘한 제안이네요. 그것도 거절하기 싫은.”

40대 정도로 보이는 나이인데도 에들린은 여전히 출세와 성장에 야욕을 드러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실력이 되는데도 나이가 먹어 보인다는 건, 저 나이가 된 뒤에도 계속 성장해서 지금의 위치에 올라왔다는 뜻이었다. 재능만 믿고 사는 좆밥보다 이런 쪽이 더 위험했다.

무림에서는 늙은이와 여자, 아이를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모피도 그렇고, 귀족의 사냥견으로도 애용받겠죠. 거절은 않겠어요.”

에들린은 쿨하게 합의를 약간 보고 싸인했다.

내가 늑대를 들고 날라봤자 정식 의뢰도 아닌 에들린은 날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리고 굳이 길피 길드가 협력하지 않아도 내가 살기 곤란해질 일은 없을 것이고 말이다.

쿨한 계약 성립은 당연한 결과였다.

“당면의 과제는 이 아이를 사역마로 삼고 건강하게 기르는 거겠군요.”

“응원하겠습니다.”

아직 작은 새끼 늑대에 불과하다. 크기만 놓고 말하자면 육개장 사발면 6개들이 상자 정도밖에 안 된다. 이게 늑대라면 쏘우는 휴머니즘 감동 실화일 것이었다.

교배를 시키는 하든 뭘 하든 키우는 게 먼저다.

“전문가를 부르기에도 보안이 걱정되네요. 뭐, 제가 고생해야겠죠.”

에들린은 새끼 늑대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녀에게 자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없다면 지부장이란 자리와 출산의 부담을 견줘보고 자식을 보는 걸 최대한 늦춘 거겠지. 내 생각이 맞으면 그녀가 울프맘이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 그러고 보면 제가 조금 우려되는 단체를 발견했는데 말입니다.”

나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마기마기에 대한 설명을 했다. 에들린은 설명이 끝나자 대뜸 말했다.

“따로 신경 쓰실 건 없겠죠. 늘 있는 놈들이고, 마법사 길드에서도 용인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들도 술식을 손보거나 하면서 변명하고 시간을 끌겠지만요.”

“그렇습니까?”

“네. 완전히 색다른 마법을 상품으로 내걸지 않으면 재판에서는 못 이길 겁니다. 그리고 마법사 길드의 마법에서 벗어난, 100% 별개의 마법 체계를 만든 사람은 세상의 역사를 전부 통틀어도 1번도 나오지 않았어요.”

─휘리릭. 말채찍 같은 지팡이를 손에서 회전시키면서 에들린은 설명했다.

“엘프와 드워프조차 인간에게 마법을 배우는 시대에요. 그 자들이 정말로 새로운 마법 계통을 만든다면, 그건 그것대로 저희가 역사의 한 순간에 참여하는 거잖아요? 저는 냅둬 두고 싶네요. 마법사 길드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죠.”

“이해했습니다.”

룬 마법에서 파생된 현대 이세계 마법과 아예 다른 마법?

마법의 신인 오딘이 만든 게 룬이다. 거기에 필적하는 뭘 만들려면 분명 산업혁명 수준으로 역사의 터닝 포인트가 되야 할 거고, 그런 건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척. 에들린은 말채찍으로 책자를 가져와서 내게 주었다.

“여기요, 원래 보수. 찾으시던 〈동물 회화〉 마법이에요.”

“……벌써 발주가 왔습니까?”

“헤이스벤트에 가 있던 직원에세 제 명의로 그쪽 지부를 좀 돌아보라고 했죠. 마침 있길래 사 오게 했어요. 제가 보여드렸다는 건 비밀로 해 주셔야 되요?”

“아무렴요.”

저작권에 마법사 길드가 민감하다는 걸 아는데 뻘짓은 안 하지.

남한테는 보여줄 거지만 말이다.

***

나는 마도서를 보여줄 ‘남’의 집으로 갔다.

“야. 캐서린. 자, 여기 니 연장.”

“뭔데요, 이거?”

“내가 시내에 깔아둔 동물들한테 정보를 전해받을 수 있는 마법.”

“진짜요?! 감사합니다!!!”

─휘익!! 나는 낯빛이 돌변해서 책을 낚아채려는 캐서린을 피했다.

“기다려. 내 얘기가 먼저야. 업무 내용은 영애한테 들었지? 동물들은 내가 키타이의 비술로 조련해 놨으니까, 너는 이 마법의 효과가 허락하는 한에서 수상한 자의 정보를 모아서 취합하면 돼.”

“맡겨만 주세요!”

대답은 우렁차군. 하긴, 집 근처 CCTV를 전부 훔쳐볼 수 있게 됐다면 포스트 셜록 홈즈가 싫어할 리가 없지.

그나저나 남한테 전부 던져버리고 꿀만 빠니까 존나 편해 죽겠다.

그냥 싸움도 남들한테 맡겨버리고 싶다. 나는 왜 정령사나 그런 꿀 빠는 직업이 아닌 거지.

“내가 부탁한 조사도 병행하면서 틈틈이 습득해. 난 간다.”

“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좋댄다. 자기의 업무 파트너가 테레사라는 걸 알고도 저럴 수 있을까?

있을 것 같아서 무섭군. 나는 웃으며 사무소를 나왔다.

휘이이잉─!

하늘에서 눈이 쳐 내렸다. 혀를 차며 옷깃을 여몄다.

겨울에 눈이 온다고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좆 같게도 돌아다닌지 10분만에 내 승모근은 선녀님들이 뿌리는 똥가루로 치르르 뿌링클이다. 엄마! 여기 냉동치킨이 걸어다녀요!

나는 눈이 싫다. 존나 공중화장실 칸막이 비아그라 광고문 같은 새끼들. 시발 아주 잊을 만 하면 튀어나와.

‘아, 그래. 티르시한테도 돌아왔다는 얘기를 해야지.’

〈강림〉 연구를 진행하려면 말해둬야 했다.

나는 장식에 가까우니까 빠져도 되는데, 그녀가 없어서는 얘기가 안 됐다. 베로니카 혼자서 하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를 대의식이다. 협조는 필수불가결이었다.

잠깐 하늘을 쳐다본 나는 뒤꿈치를 돌려서 마법사 길드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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