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에 걸린 삼장 법사를 심문해서 알아낸 사실은 상당히 쓸모가 있었다.
“이 녀석의 고용주가 견적을 잡았다는데? 대충 어디 쯤에 있을지도 예상이 나왔대. 무작정 덮쳐들면 황금 늑대가 눈치 채고 내뺄까 봐 내일까지 기다리고 있다나 봐.”
“나도 옆에서 들었으니까 안다. 하지만 방향은 이 녀석들도 모른다잖느냐.”
“따까리에게 알려주진 않았겠지.”
”결국 원위치로군. 차라리 하룻밤 기다리겠느냐?”
베로니카는 이제 완전히 어두워진 숲을 보며 말했다.
마법으로 빛을 만들면 이동은 어려울 것 없지만, 아예 낯선 타지에서 숨겨진 둥지를 찾는 건 분명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니, 문제없어. 도망친 고블린을 쫓아가면 되니까.”
나는 이마에 감각을 강화하는 룬을 새겼다.
원래는 종족 버프를 받는 프랑에게 맡기는 일이지만, 우리 좆간도 똥꼬쇼를 하면 탐지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뜨개질을 하는 것처럼 빡집중을 해야 하는 데다가, 프랑과 비교하면 탐지 효율도 안 좋아서 역할을 분담했던 거지만.
“그 고블린의 둥지에 황금 늑대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왜?”
“고블린은 영역 의식이 강한 편이야. 이 근처를 통제하게 냅뒀다면 둥지가 여기 주변일 거고, 캬룩이 도망친 방향도 저쪽이잖아. 따라가 볼 가치는 충분하지 않겠어?”
“황금 늑대가 그대의 기척을 감지하고 도망치는 건 어떻게 막을 생각이더냐?”
“그것도 가 보면 알 거야. 내 생각이 맞다면 은신 가면만 써도 충분할 걸.”
나랑 베로니카는 고블린을 룬을 새긴 가면을 쓰고 캬룩의 돼지 생피 냄새를 쫓아서 달렸다.
고블린의 둥지는 협곡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진을 친 고블린 무리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많군. 바로 안 덮쳐들어간 이유를 알겠어.”
대충 봐도 10마리가 넘었다. 경비 치고는 상당히 많았다.
저것들을 해치우고 입구를 뚫으려면 아무리 빨라도 반드시 소란이 날 것이다.
‘마법 같은 걸로 일소해도 소음까지는 못 막겠지.’
여기를 발견했다는 놈들도, 그렇게 되면 황금 늑대가 도망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일단 후퇴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푸쉬이이이익─!
위에서 아래로 내리깔듯 수면 가스를 뿌렸다. 협곡 밑으로 가라앉은 마나는 안개가 낀 것처럼 고블린들을 감쌌다.
…풀썩!
수면 가스가 퍼지자 고블린은 한 마리씩 잠들었다. 생화학 병기가 이렇게 위대합니다.
“황금 늑대가 돌연변이라면 마나를 눈치챌지도 모르겠군. 바로 진입하는 게 어떻느냐?”
“응. 그럴라고.”
눈치를 까고 튄다면 그건 어쩔 수 없었다. 협곡이 얼마나 넓은데 거기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개구멍을 전부 찾아서 막는다는 건 암만 우리라도 현실적이지 못했다.
‘덫을 까는 게 제일 낫겠지만, 아마추어의 덫에 걸릴 만큼 멍청하지는 않다고 했으니까.’
에들린은 지혜를 발휘해서 잡아야 한댔는데,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듯 몸이 나쁘면 머리가 고생하는 것이다.
‘피지컬이 되는데 뭐하러 머리를 씀?’
나한테 뒤져나갔던 놈들도 이런 마인드였던 걸까.
긴장은 풀지 말고 가자.
─푸욱!
둥지로 들어가기 전에 잠든 고블린들의 멱을 따 놓았다.
저항도 없는 놈들을 도살하려니까 양심이 찔렸지만, 이만한 고블린 무리를 내버려뒀다간 인명 피해가 나올 것이었다.
나는 동물을 치료하는 의사가 꿈이었던 마초지만, 그래도 ‘사람 > 동물’이라는 대전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식인 호랑이를 치료해준 수의사는 감옥에 갇혀도 할 말이 없지 않겠는가. 하물며 얘네는 몬스터다.
“니미애비따블. 다음에는 니들도 인간이나 드워프로 다시 태어나렴.”
여러분의 환생 가챠 대박을 기원합니다.
엘프만 아니면 된다, 엘프만 아니면.
─사박.
바깥의 고블린을 퇴치하고 바로 둥지로 돌입했다. 잡담도 엄금하며 무음보를 전개해서 안쪽으로 쭉쭉쭉 나아가는 우리.
“키야아아아악!!”
“게이야아아악!!”
하지만 우리는 금방 조심히 걸을 필요가 없다는 걸 눈치깠는데, 이 저능아 고블린들이 해가 진지 한참이 되도록 잠을 안 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애끼들이 불도 꺼 놓고 잠은 왜 안 자? 니들이 어둠의 자식들이냐?”
나는 이 좁은 곳에서 창을 휘두르기 귀찮아서 그냥 맨주먹에다가 마나를 코팅하고 휘둘러댔다. 스치기만 해도 고블린 정도는 몸통이 터져나가니까 발을 멈추지 않아도 됐다.
─투콰콰콰쾅!!
마치 쪼렙 던전에 쩔해주러 온 고인물 같은 모양새였다.
까놓고 말하면 틀린 표현도 아니다. 나도 최소 골딱이 급은 될 거라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실버 클래스만 찍어도 보통 고블린한테는 관심을 끌 것이다.
실딱이 모험가가 고블린이나 잡는다고? 어휴, 그런 괴짜가 있을 리 있나.
투콰아앙─!!
“갸하아아아악!! (아프다아아앗!!)”
길을 막는 고블린을 빗자루질 하듯 치워버리면서, 나는 잘 따라오고 있는 베로니카에게 말했다.
“베로니카! 들어가면 바로 황금 늑대한테로 〈공간 이동〉해! 그 놈만 잡고 내 뒤로 돌아오고!”
“시킨다면 하겠다만, 힘 쓰는 일에는 자신이 없구나!”
“힘 쓸 일은 없을 거야! 방어 마법만 몇 개 써 둬!”
체력에 비해서 힘은 부족한 베로니카였지만, 나는 걱정하는 일 없이 둥지의 깊은 곳으로 달려들어갔다.
“마~ 리오!”
베로니카를 입구 쪽에 두고, 어그로를 끌고자 점프했다.
노린대로 고블린들의 화살은 나한테로만 날아왔다. 나는 손날을 세워서 팔을 휘둘렀다.
혈수마공(血手魔功)
피닉스 윙(Phoenix Wing)
화살을 쳐내고 착지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고블린이 벙 찐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블린의 표정이 이렇게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건 또 처음이었다.
“킹인가? 아니면 홉? 흠. 둘 다 아니군.”
고블린 킹이라기엔 작고, 홉 고블린처럼 생긴 것도 아니다.
홉 고블린과 고블린은 사실 다른 생물이다. 보노보와 고릴라보다 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아마 저번에 네페르티티가 족쳤다는 킹의 새끼일까. 설마 그 괴물 같던 달인이 잔당을 놓쳤을 것 같진 않으니까, 옛날 옛적에 분가해서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던 놈인가 보다.
“……갸우각! 캬루각! (……인간! 강하군!)”
고블린 프린스(가칭)께서 따까리를 시켜서 검을 가져왔다. 새끼가 생긴 것만 보면 대장군 급이군.
하지만 내 눈길은 그 놈이 아니라, 근처의 조잡한 우리에 갇혀 있는 황금색 털뭉치에게 못 박혔다.
─파앗!
털결이 심각하게 곱창난 그 늑대 앞에 베로니카가 갑자기 나타났다. 고블린의 우두머리는 입구에서 사라진 그녀를 눈치챈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것을 발견한 듯 고함쳤다.
“캬아아아아악!!!”
“쯧. 요란스럽구나.”
베로니카는 밧줄로 꽁꽁 묶인 황금 늑대를 통째로 들고서 다시 〈공간 이동〉을 했다. 나한테로 돌아온 베로니카는 팔 안에 시츄 정도로 작은 새끼 늑대를 안고 있었다.
“……우리가 찾는 늑대가 덜 자란 새끼였더냐? 왜 말해주지 않았지?”
“나도 몰랐걸랑. 아니, 아마 아무도 몰랐을 걸?”
목격 정보에 새끼 늑대였다는 정보가 있었다면 에들린도 설명을 해 줬을 것이다.
이 늑대는 발견 보고에 있던 녀석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목격됐다는 황금 늑대의 새끼겠지. 돌연변이의 유전형질을 계승한 건가.’
아마도 요 녀석의 어미나 아비가 황금 늑대였고, 그 놈이 우연히 사람에게 발견된 거겠지.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살아 있을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었다. 누군가에게 옛적에 사냥됐든, 자연히 죽었든, 보스였던 황금 늑대는 죽고 그 놈의 무리만 남아 있던 게 아닐까.
그래서 보스의 새끼가 고블린에게 잡혀가자 늑대와 고블린 사이에서 사생결단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늑대는 영역의식이 강해. 그런 늑대 무리가 고블린의 나와바리를 침범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으면 어색하지.’
그래서 나는 늑대 무리의 보스나 그 보스의 아내가 황금 늑대이고, 고블린에게 억지로 잡혀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까 죽은 황금 늑대의 새끼가 고블린 킹의 자식에게 잡혀왔던 모양이다. 아주 늑대고 고블린이고 자식 교육 한 번 잘들 해 놨구만.
“갸크야아아악!! (내놔라!!)”
─쾅쾅쾅쾅!! 고블린 프린스는 내가 펼친 혈수마공의 벽을 두들겨댔다.
하지만 짝퉁 토르의 전기 프라이어 빔도 버텼던 방어력을 전개한 실드다. 이 정도로 뚫리는 게 말이나 되겠는가?
─딱!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실드에 속성을 부여했다.
“무영창화한 <용뢰(Dragon Lighting)>.”
영창을 생략해도 기술명은 읊어주는 게 예의였다. 파란색 마나가 사납게 스파크를 튀겼다.
바오오오오오─!!
번개의 마나는 일변하며 동양의 용 모양이 되었다. 저번에 족쳤던 꼬맹이 엘프한테서 본받은 디자인에, 삼장법사가 쓰던 충격파의 술식을 믹스한 신기술이다.
콰르르르르릉──!!
충격파와 전깃불을 튀겨대면서 번개의 용은 둥지에서 날뛰었다.
스파크가 터져나가면서 뇌룡이 번개 폭풍을 불러 일으키는 모습은 일대 장관이었다. 튀겨지는 몬스터들의 비쥬얼과 탄 냄새만 빼면 영화관에서 상영해도 호평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안전권에 있어서 내린 평가였고, 용린에 스치거나 용이 가까이 오기만 해도 고블린들은 몸에 실줄을 그리며 오스카 트로피처럼 차렷하고 시꺼멓게 타올랐다.
─파사삭!
그나마 버티던 고블린족의 왕자님도 3초를 견디지 못하고 톨 사이즈의 숯이 되었다.
“어후, 징그러.”
나는 손가락을 튕겨서 충격파를 발사했다. ─퍽! 공기포와 비슷한 충격파가 퍼져나가자 숯덩이가 된 고블린 프린스는 밥 위에 뿌리려고 구겨댄 김가루처럼 박살이 났다.
“크, 역시 마법이 잡몹 사냥에는 편하긴 하네.”
범위를 늘린 만큼 위력이나 마나 소모량에 흠이 생겼지만, 이 정도면 광역기로 충분했다.
한 마리씩 칼질해서 잡던 몇 달 전의 노르드는 대체 오데로 간 것이지.
전사는 천민이 맞다. 다들 태릉 선수촌보다는 전기학과를 노리고 매진하도록.
나는 마지막으로 까맣게 그을리고 충격파에 갈아엎어진 동굴을 한 바퀴 점검했다. 안까지 잘 도망쳤던 캬룩(으로 보이는 숯덩이)까지 확인하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베로니카. 남은 마나량 괜찮지?”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나. 이만 돌아가겠느냐?”
“그래. 저녁은 집에서 먹어도 되겠다.”
큰 트러블 없이 빨리 끝나서 좋네.
황금 늑대가 시츄 크기인 건 문제였지만, 그게 내 잘못은 아니잖은가? 에들린이 알아서 키워다가 잡아먹든가 하겠지.
앞으로도 오늘처럼 편한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