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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52화 (452/1,009)

다나 베르베이아는 어둠이 두렵지 않다.

그녀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건 딱히 그녀의 정신력이 초인적이기 때문은 아니다. 단지 직업 상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유적은 보통 내부가 어두운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크고 자란 마을이 밤이 되면 어두워지기 십상이었던 것도 있겠지.

세상 쾌활한 모 핑크 머리의 동생처럼 공연의 빛이나 랜턴으로 어둠을 몰아내지 않아도, 그녀는 빛 한 점 없는 공간을 무섭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둠이’ 두렵지 않다는 뜻이다.

지저의 눅눅한 어둠이 아무렇지 않은 다나라도, 그 어둠에 도사리고 있을 괴물의 존재까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뚝, 뚝….

진작에 익숙해진 〈공간이동〉의 빛이 가라앉았을 때였다.

다나는 건조한 겨울임에도 습기가 차오른 어둠에 적응하려 눈을 깜빡였다. 눈꺼풀에 감각이 없었다면 자신이 눈을 뜨고 있는 건지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한 칠흑이었다.

습기찬 공기에 섞여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쯧.’

다나는 콧잔등을 찌푸리며 억지로 숨을 쉬었다. 유적 탐사에 익숙한 학자다운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남편놈은 ‘그건 악취 분자를 마시는 짓인 레후. 나는 하기 싫은레후’라며 질색하는데, 어차피 맡아야 할 냄새라면 빠르게 마셔서 코를 적응시키는 게 편했다.

당연히 그래도 어둠은 사라지지 않는다.

횃불이라도 켜고 싶다는 충동이 앞섰다. 다나는 손의 땀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혹시 바로 옆에 몽둥이를 치켜든 트롤이 있다면.

그 놈이 몰래 내 머리를 부수려고 들고 있다면.

몬스터가 있는 던전에서 빛을 켤 수 없다는 상황은 그녀의 본능에 기재한 공포감을 거칠게 두들겼다. 유적에서야 전투가 전제돼 있기에 마음 편하게 불을 켜고 다녔지, 여기서는 그럴 수도 없었다. 어둠이 불길한 상상을 초래했다.

옆에 없는 든든한 등이 빨리도 그리워졌지만, 정작 그는 정말로 그런 괴물들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철없는 불평은 할 수 없다. 아니, 오기로라도 하기 싫다.

앞이 보이지 않았기에 믿을 건 다른 감각 뿐이었다. 잠깐 같이 온 사람들이 곁에 없는 건 아닌지 의심했지만, 다행히도 곧바로 숨을 죽이는 인기척이 있었다.

“읏, 정말로 공간이동을…….”

그립지만 낯선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아마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반신반의였던 거겠지. 제대로 설득해도 믿기 힘들 게 뻔한 만큼 어쩔 수 없었다.

중얼거리던 시로나도 말을 멈췄다. 악취를 맡은 것이다.

트롤. 아니면 오우거.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이런 악취가 스며들 만큼 이 공간은 그 괴물들의 서식처로 사용되는 것이다. 인간이랑은 다르게 어두워도 앞을 볼 수 있는 몬스터들의 영역이다. 함부로 입을 열었다간 위험했다.

그렇다고 빛을 밝힌다면 위치를 광고해 버리고 만다.

이곳에 차오른 어둠은 다나와 시로나에게 일방적으로 씌여진 눈가리개인 것이다.

“이쪽으로.”

하지만 그 눈가리개를 씌여지지 않은 사람도 있다.

프랑의 몸에 흐르는 피의 절반은 한때 땅 밑에 나라를 세우고서 살던 종족의 것이었다. 불꽃의 온도까지 파악하는 푸른 눈으로 그녀는 어둠을 꿰뚫고 일행을 이끌었다.

─척.

프랑은 일행을 동반해 어느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멀리 떨어진 벽을 등지는 위치다. 적의 습격 루트를 전방 3면에 한정할 수 있다.

믿음직스럽지 못한 바위를 장애물로 삼으면 잠깐의 시간을 벌고 퇴로를 확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안목에 조금 자부심이 느껴지는 위치 선정이었지만, 그걸 과시해댈 만큼 그녀가 어리지는 않았다.

반지의 힘을 빌어서 오감을 확장했다.

안전한 곳을 조사해 놨던 것일까. 느껴지는 기척은 없었다.

강렬한 체취를 뿜는 그 거체의 몬스터들은 마나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은신에 적합하지 않았다. 본거지를 들켰다곤 생각 못할 테니, 그녀는 부주의한 기척을 먼저 느낄 자신이 있었다.

“감지하는대로 알릴게. 하지만 냄새로 탐지당하면 우리가 숨어 있어봤자 위치를 들킬 거야.”

“그 문제라면 내가 해결하겠다.”

시로나가 팔뚝에 새긴 문신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잠깐의 빛이 다나를 닮은 얼굴을 드러냈다.

얼스터의 주술은 일일이 거창한 이름을 가지지는 않았다. 단지 후각이 예민한 적에게서 냄새를 숨길 수 있기에, [사냥꾼의 은밀] 등으로 구전되는 주술이었다.

프랑은 자신의 강화된 후각에서도 냄새가 사라지는 걸 눈치채고 고개를 끄덕였다가, 어차피 그녀들에겐 보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 웃었다.

혹시나가 역시나다. 다나와 시로나는 엉뚱한 곳을 보면서 굳은 얼굴로 경계하고 있었다.

“프랑. 노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움직일 거지?”

“응. 아마 여긴 트롤 킹에게서 가까운 위치일 테니까.”

바위를 향해서 굳은 얼굴로 말하는 다나에게, 그보다 약간 좌측 하단에 있던 프랑은 쓴웃음을 섞어서 대답했다.

긴장이 역력한 두 사람의 손을 잡았다.

잠깐 놀라던 일행은 자기보다 작은 손에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리고 침묵했다. 프랑은 그게 어쩐지 기뻤다. 남이 자신을 의존해준다는 건 신뢰받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물론 앞이 보이지 않는 그녀들만큼은 아니겠지만, 프랑도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그녀들이 공포와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면 프랑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적을 경계하며 신경줄을 깎아먹고 있었다.

만에 하나 자신이 적의 기척을 놓친다면, 빛을 켜기까지의 한 순간은 일행이 완전한 무방비 상태에 놓이고 만다. 그런 상태에서 당할 공격이 치명적일 것은 당연했다.

달빛조차 없는 어둠은 깊다. 그리고 깊은 만큼 길다.

─쌔액, 쌔액.

다나는 긴장을 참고자 건틀렛을 쥔 손을 쥐었다. 기껏 숨을 죽여도 그녀의 호흡은 언데드처럼 되살아나서 목을 타고 삐져나오려고 했다. 차라리 속 편하게 돌격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꽈악!

프랑이 갑자기 손을 강하게 쥐었다. 반사적인 행동이었고 경고의 사인이었다.

─터억, 척.

─터억, 척.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가자 숨기지도 않는 걸음으로 여길 향하는 기척이 있었다.

다나는 발소리를 듣고 나무 지팡이를 짚은 외발의 거구를 상상했다. 그만큼 어긋난 발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몸을 숨기고자 움직였다가 프랑에게 당겨졌다. 아마 반대 위치로 웅크렸던 모양이다. 괜히 식겁한 심장이 거칠게 뛰며 성질을 부렸다.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길 바랄 뿐이었다.

걷는 소리가 멈추었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에서, 착각이라 생각할 만큼 희미한 마나가 퍼져나갔다.

그래서였을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속이었는데도, 다나는 숨을 삼킨 자신의 어머니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쳐드는 것을 눈치챘다.

“빛을 켜!!”

맞잡은 손을 당기며 프랑이 외쳤다.

거친 손속에 팔이 뽑히는 줄로만 알았지만, 다나는 그걸로 항의하진 않았다. 1초 전까지 그녀가 서 있던 곳에서 돌 조각이 거칠게 튀어서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파아아앗─!!

찰나 간의 혼란에 빠진 다나보다 시로나의 마법 발동이 더 빨랐다.

빛의 구체가 일행의 후방에서 폭산했다. 눈을 아프게 하지 않을 정도의 광량이 인공적으로 깎인 석벽을 비췄다.

그리고 그곳에 착지한 기괴한 크리쳐까지도 말이다.

“히이흐히히히히히하하하아아──!!!”

그는 건실하게 생긴 얼굴을 포함해서, 얼굴의 절반을 녹색 살점으로 뒤덮은 남자였다.

이끼를 살점으로 키운 것 같은 징그러운 근육이 청년의 몸 절반을 덮고 있었다. 몸의 좌우 밸런스는 조금도 맞지 않았다. 저게 자연적으로 태어난 생명이 아니란 건 확실했다.

트롤과 인간을 좌우로 이어붙인 얼굴에서는 인간의 입에는 너무 큰 누런 이가 불규칙적으로 솟아났다. 충혈된 트롤 쪽 눈은 건드리면 뽑힐 듯이 툭 튀어나왔다.

시로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코난드.”

“스으승니이임── 다시 뵐 수우 있어서 기쁩니다아아──”

비틀린 피리를 부는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 트롤 크기까지 벌려진 입이 군침으로 찢어진 로브를 적셨다.

“──습!”

코난드의 역겨운 몰골에 대처를 망설인 건 그의 스승과 다나 뿐이었다.

프랑의 손에서 나이프가 대포처럼 발사됐다 위력만으로는 사람 1명을 뚫고 뒤의 바위에 박히고도 남을 것이었다.

─푸슉!!

하지만 목을 노린 나이프는 두꺼운 트롤의 왼팔에 막혔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이프는 손바닥을 관통했다. 뽑아내고서 바로 재생했기에 별 의미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의 좌반신은 완전히 트롤의 몸이었고, 우반신도 팔이랑 다리는 녹색이었다.

시로나는 제정신을 되찾고 말했다.

“괴물이 되었구나. 그 주술사 놈의 주술이냐?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 뻔 했어.”

“괴무우울요~? 아니입니다아아. 새로운 시대애에, 적응한 것이지요오오.”

그의 몸은 좌우의 크기가 달라서, 마치 성인 남성의 몸에 소년의 반신을 이어붙인 듯 엉거주춤했다. 어설프게 남은 인간의 모습이 더욱 혐오감을 부추겼지만 그는 다리 길이의 차이로 삐뚜름하게 서면서도 행복한 듯 웃었다.

“스스스승니임. 사실으은요. 당신으의 곁을 떠나기기 전부터어어, 궁금하던 게 있스습니다아아.”

─털썩! 인간 쪽의 팔로 땅을 짚으며 코난드는 거대한 오른팔을 치켜들었다.

그 추악한 얼굴이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사교도의 그림처럼 소름끼치게 일그러졌다.

“저랑 스스승님── 어느 쪽이이 더 강할까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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