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찌요요요오오오오오오옥──!!”
나는 마초다운 기합을 지르며 대처 중인 트롤과 맞섰다.
─투콱! 불꽃을 감은 주먹이 급소를 후려팼지만 트롤 놈은 뒤지지 않고 메이스를 내려쳤다. 재생 이전에 데미지가 거의 들어가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혀를 차며 스텝을 밟았다.
[형님! 견장이 까리하오! 존나 부럽소!!]
트롤의 방어력을 높여주는 건 저 견장 형태의 유물이었다.
인간이 쓰라고 만든 거라서 거의 어깨에 삼각 김밥을 올려둔 느낌이었는데, 저 꼬라지로도 작동은 하는갑다. 이세계엔 종족마다 장비 제한도 없나? 아니, 그래도 낄 수 있는 걸까.
[하!! 니까짓 동생 놈 둔 적 없어!!]
[찐따쉑 농담 이해 못하죠? 평생 살인 게임만 해서 사회생활 능력이 딸리죠? 그러고도 나한테 좆발리죠? 병신이죠?]
[크아아악!!! 이 새끼, 죽여버린다!!!]
입 가벼운 것 봐라. 이 새끼들도 성격이 천차만별이다.
아무튼 야부리를 털다 보니까 킬각이 나왔다. 하지만 나는 그걸 파고드는 대신에 혀를 찼다. 하늘에서 꽂히는 번개가 내 정수리를 노렸기 때문이다.
몸을 날려서 피해내자 리루아와 대치 중이었던 오우거 마법전사가 한눈을 팔다가 쳐맞고 있었다.
[크으으윽……!!]
손톱에 썰리면서 어떻게 리루아의 전담 마크에서 몸을 지켜내는 오우거.
그 새끼가 든 검에서는 바람의 마나가 뿜어졌다. 저 씨팔 새끼는 아까 전부터 저 유물로 전장을 빠르게 이동하면서 지 친구들이 좆발릴 때마다 서포트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이 방어+재생의 따따블 극혐 조합 트롤을 잡는데 시간을 무척 소요하고 있었다.
‘창을 쓸까?’
마음이 흔들렸지만 굳게 다잡았다.
이유는 몰라도 창으로 죽이면 이 몹들에게서 마나를 뽑을 수 없게 된 상태였다. 그리고 여기서 마나통을 늘려가지 않았다간 트롤 킹을 잡다가 막힌다. 그래서야 아랫돌 빼고 윗돌 괴는 짓이었다.
‘그럼 내가 무리 좀 하는 수밖에.’
먼저 간 아내들의 상황도 모른다. 조바심에 일을 그르치지 않게 집중하며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위에서 아래로, 배를 노리는 일격이었다. 트롤 새끼는 힘과 경험만 믿고 싸우는 야매 전사답게 올려치기로 받아치려고 했지만, 나는 물 흐르듯 자세를 바꾸며 그 메이스에 올라탔다.
[커헉!!]
─투콱!!
흑마피아 새끼에게서 파쿠리한 발기술이 펼쳐졌다. 신발끝에서 자라난 마나의 칼날이 트롤의 쇄골에 깊이 박힌 것이다. 하지만 트롤은 메이스도 놓고 웃으며 내 다리를 비틀었다.
[멍청한 새끼! 잡았다!]
[잡힌 거란다, 븅신아.]
혈수마공(血手魔功)
캘러미티 혼(Calamity Horn)
─펑!! 심폐정지술의 묘리를 담으며 마나를 터트리자 트롤 새끼는 핏물이 되서 터져나갔다. 나는 떨어지는 견장을 낚아채면서 주머니에 넣고, 하반신만 남은 트롤을 딛고 점프했다.
어쩌다 보니까 양손은 주머니에 넣은 상태로 달을 등지며 발차기를 날리는 자세가 됐다. 중2병 갬성이다.
“최대륜 「람각」.”
달밤에 미친 CP9처럼 태권도 킥.
야수회귀의 마나에 뭉게뭉게-총의 가속도를 더했다.
내 발끝이 송곳니의 길을 그렸다. 윙글링 인들은 무기를 못 들어도 유물을 장비한 사람들은 있었다. 그렇기에 트롤 킹의 친위대는 쉽게 몸을 빼지도, 내 공격을 피하지도 못했다.
─투확!!
윙글링 전사들과 싸우던 트롤과 오우거의 목에 칼날이 박혀들었다. 한 마리의 목은 날아갔지만 다른 놈은 버텼다. 룬의 마법 내성을 가진 놈들이었기에 추가 가공을 자제한 탓이다.
[우우욱……!!]
[방심했군, 오우거!]
그래도 경동맥이 잘려나간 빈틈은 컸다. 사자 수인의 근접 영거리 장풍에 오우거의 배가 터져나갔다.
[열등종!! 잘도 나의 친우들을 죽였구나!!]
추락 중인 나에게 오우거 마법전사가 덤벼왔다.
씹새는 리루아를 무시한 대가로 한쪽 손목이 날아갔지만, 단검 유물의 효과로 존나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전황을 좌우하는 메인 딜러부터 목을 딸 생각인 듯 했다.
[좆 까지 말도록. 내 하위호환이여.]
마법도 무술도 딸리면서 으딜 빈틈을 노려보겠다고 덤빈단 말인가? 자고로 하이그라운드를 선점하면 패배할 수가 없는 게 상식이건만, 호모 남친들이 전멸해서 이성조차 잊은 모양이었다.
나는 위엄 있게 추락하면서 야수회귀의 마나를 창으로 뽑아냈다.
퀸 앙뜨와네트의 조작된 명언에 의거한 발상이었다. 창이 없으면 대용품을 만들면 되는 법 아니겠는가. 나는 지가 먼저 덤벼들어놓고서 가드를 올리는 오우거를 노리며 창을 들었다.
“──무무역역무(武無亦力無).”
──공격기 제 1품새의 연격기.
“성성만금(星成萬禽).”
슈카가가가각─!!
날아오는 오우거의 몸에 마나의 선이 그어졌다. 신속하게 휘두른 창술이 무거운 덩치를 큐브 스테이크로 쪼개버렸다.
─척!!
후두두둑─.
시체와 함께 착지. 야수회귀의 장점 중 하나는 마나 코팅이 튀는 피까지 막아준다는 점이었다. 나는 마나로 뽑은 창을 마지막 남은 트롤 새끼의 뒤통수에 던져서 꽂았다.
─퍽!! 윙글링 전사들에게 다굴 당하던 그는 내 손에 인생의 막타를 먹고 절명했다.
[끝났군.]
나는 뻐근한 주먹을 쥐었다가 펴며 혀를 찼다.
숫자도 얼추 비슷했고 나랑 리루아기 있었기에 생각보다는 간단한 승리였다. 하지만 쉬운 싸움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내 마나통에 남은 마나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슈와아아악─!!
일단 내가 막타를 친 5마리에게서 마나를 흡수할 수는 있었지만, 그건 최대치의 상승이다. 남은 마나를 회복하려면 마나 포션에 의지해야 했다.
─뽕!
인상을 쓰며 포션을 드리킹.
오늘만 대충 4병 째다. 가성비 좋은 포션이라서 이걸로는 모자랐다. 씨팔 쌈박질 직전인데 물배 차겠네.
어떻게 남은 마나는 80% 정도까지 채웠지만, 이제 마나의 추가 회복은 어렵다. 오늘에만 거친 전투를 몇 번 했던가. 내 일일 권장 포션 사용량의 남은 분량은 이제 0였다.
내가 안색이 좋지 않자 리루아는 상처가 난 손을 핥으면서 말을 걸었다.
[다 해치웠어. 우리도 갈 수 있지?]
[……아뇨. 리루아 씨는 여기 남아주십쇼. 본 부대에도 이 새끼들 같은 친위대는 있을 겁니다. 포위에 실패한 걸 알아차리면 일부 부대를 돌려서 여기로 쳐들어올 겁니다.]
[응. 하지만 내가 없어도 돼?]
[여길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알윈에는 아직 장인어른도 계신다. 어느 쪽도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총력전이니만큼 트롤 킹도 거주지에 병력을 거의 남기지는 않았겠지. 안 되겠다 싶으면 튀는 수밖에. 다나나 프랑한테 업혀서 베로니카한테 탈주를 부탁해도 되겠지 뭐.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이 견장은 빌려갈게요.]
[응. 너 가져. 선조들도 이해할 거야.]
[그거 듣던 중 고마운 말씀.]
트롤에게서 루팅한 견장을 장비했다. 마침 색조합도 거인 가죽 갑옷이랑 잘 맞았다. 제복 어깨의 별 달린 견장이랑 좀 비슷했지만 밋밋한 모양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두근!
유물의 효과가 몸에 퍼졌다.
야수회귀처럼 내부에서 뿜어져나오는 힘은 아니었지만, 겉가죽에 활동성 좋은 방어막을 두른 듯한 느낌이었다. 고대 문명 황금 시대급의 씹사기템은 못 돼도 돈으로 바꾸면 은화가 몇십 장은 나올 유물이었다.
‘보수로는 충분하군.’
벤자민 새끼 덕분에 야수회귀의 출력도 올랐다. 마나량도 최대 가용량이 늘었고 말이다.
거기에 템빨로 방어력까지 추가로 올렸다.
이거라면 트롤 킹의 공격을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 새끼의 체력이 오링날 때까지 버텼다가 밀어붙이면 된다. 먼저 간 세 사람을 더해서 4대 1로 싸운다면 충분히 가능한 계획이었다.
나는 리루아에게 알윈을 맡기고, 근처의 그늘에 앉아서 또 셰이드의 꿈에 돌입했다.
***
주술과 마법은 비슷한 듯 하면서도 크게 다르다.
물론 주술(Natural Magic)이라는 분류는 마법사 길드가 제창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분명 현대 마법과 고대 이전의 주술은 분별할 가치는 있었다.
안정성을 중요로 여긴 현대 마법들에 비해, 세계사의 미싱 링크 이전에 개발된 주술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법의 역사는 깊지만 그 시작이 자연을 흉내내던 것에서 출범했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대자연에서 죽음이란 삶과 표리일체다. 어둠과 음의 마나를 절대적으로 피하는 현대와는 설계 사상이 달랐다.
강력한 위력과, 그만한 부작용.
그건 그릇된 주술자에게 흔히 있는 일이다.
어쩌면 길을 잘못든 주술사는 가장 오래 된 흑마법사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명력이 넘치는 트롤 종족의 주술사 텔츠즈가 저토록 메마른 육체를 가지게 된 이유도 그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사제장 급의 주술을 습득한 인물이 자신의 몸을 파괴해가며 마법을 사용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사람이라면 죽고도 남을 반동에도 트롤의 재생력은 견딘다.
어릴 적 고향을 나와서 배웠던 지식을 떠올리면서, 다나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크으하하하하하!! 케하하하하하하하학──!!!”
콰과과광─!!!
손발이 비틀리면서 코난드가 폭소를 터트렸다. 반동에 좀 먹힌 몸은 차근차근 재생력으로 치료되어가고 있었고, 일그러졌던 육체는 회복될 때마다 트롤의 형상으로 치우져가는 상태였다.
“어떻습니까아아!! 제가 얻은 새로운 힘으은!!! 이런 추한 모습으로 사는 값어치를 하지 않습니까아아아아아아!!!!!”
쩡─!! 코난드의 손이 바닥을 두들기자 습기찬 공간이 얼어붙으며 시로나의 발을 멈췄다.
그녀는 혀를 차며 추위를 걷어내는 주술을 발동했지만, 그 틈에 주술을 써서 가속한 코난드가 바로 앞에 돌진해왔다. 한 순간의 선택의 기로에서 시로나는 다리를 버릴 각오를 했다.
촤르르륵─!
그때 프랑이 던진 망치에서 마나의 사슬이 자라났다. 코난드의 인간 쪽 팔에 연결된 사슬을 프랑은 있는 힘껏 멈췄다.
“으크으윽…!!”
주술과 마나를 더하자 육체적으로는 비등한 근력도 프랑이 밀렸다. 그나마도 거인 가죽 외투가 아니었다면 회피하면서 스친 마법의 상처로 맞겨룰 힘조차 남지 않았을 것이다.
뚜둑…!!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에 그녀의 입술에서 피가 흘렀을 때, 사슬에 묶인 코난드의 손바닥에 빛이 서렸다.
“역겨우니까 얌전히 나가 뒤져, 호로 트롤 새끼야!”
─까앙!! 다나가 펼친 두 겹의 실드가 회오리바람을 막고 부숴졌다.
코난드가 자신의 피로 새롭게 새긴 모사 마법은 주술이란 그릇에 억지로 쌓은 고기처럼 엉성했다. 사제로서 교육받은 기억이 거의 없는 다나의 눈으로 봐도 그러했다.
단지, 위력은 절대적이었다.
몬스터다운, 기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폭력적인 공격은 객관적인 평가로서 트롤 킹 호르샤나 텔츠즈에게도 버금가는 것이었다. 마나량만이 아닌, 체계적인 마법 교육을 받았는가 아닌가의 차이였다.
지금은 아직 주술사로서 텔츠즈에게 예속돼 있는 몸이지만,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마법의 기교를 되찾는다면 머지 않아 미스릴 클래스의 몬스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크흐하하하하하!! 캬하하하하하하하!!!”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코난드는 재생을 거듭할수록 점차 안정돼 가는 목소리로 홍소를 터트렸다.
“세상 일이란 건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는 일이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실패를 거듭한 끝에 이런 훌륭한 기회를 붙잡다니, 당신의 남편에게도 감사하고 싶군요!! 다나 베르베이아!!”
“좆 같은 목소리로 내 이름 부르지 마. 토 나오니까.”
─울컥. 강한 척 내뱉은 다나는 올라온 핏물을 삼켰다. 좀 전에 한 무모한 방어가 내상이 완치되지 않은 몸에 외상을 더 남긴 것이었다. 숨기려고 했지만 코난드는 좌우로 갈라진 얼굴로 코를 울렸다.
“아아……. 피 냄새가 향긋하네요. 이건 좋지 않아요. 인간 고기에 맛을 들릴 것 같습니다.”
“아즈테카에 가지 그래? 당신이랑 마음 맞는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 같은데.”
망치를 회수한 프랑이 말했다. 코난드는 싱긋 웃었다.
“빙 돌아가게 되겠군요. 당분간은 트롤 킹의 부하로 지낼 생각인데, 놈은 콰르트고니아 쪽으로 가려는 모양이라서요.”
“왕으로 섬기는 것 치고는 말투가 건방지구나.”
“20년을 길러준 스승도 배신했는데, 말씨를 곱게 한다고 그 놈이 저를 믿어줄까요? 쿠후후. 아니, 처음부터 속일 마음을 갖고 있었으니 배신이라고 하는 것도 우습군요.”
─우두둑. 코난드는 텔츠즈에게 잘려나갔다가 재생한 손의 검지가 트롤처럼 두꺼워진 것을 보며 인상을 썼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만약 놈이 정말로 브리타니아를 일통하고 혼의 고향이라는 곳으로 돌아간다면…… 뭐, 그것도 그것대로 출세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몬스터 주제에 출세는 지랄이. 병신이 멍청해갖고 20년을 꽁으로 날렸구만 정신승리 하는 것 봐.”
대화로 시간을 조금이라도 끌어볼 생각이었지만, 입밖으로 나온 건 모멸의 말이었다. 다나는 말을 멈추려다가 못 참고 이죽거리는 웃음을 띄웠다.
“기껏 세상에 나와서 한다는 게 트롤이야? 그냥 처음부터 트롤 주술사한테 달려가서 괴물로 만들어달라고 빌지 그랬냐? 내가 너였으면 눈 뜨자마자 자살했다. 쪽팔린 줄 알아.”
“……변신하면 그만입니다. 외모를 바꾸는 마법을 얻는다면 이 몸으로도 인간 사회에 돌아갈 수 있겠죠.”
“느그 주인님이 열심히 알랑 떨면 니 목줄 놔 주신대? 잘 됐네, 반반문신충 새꺄. 트롤 나라 법으로는 몇 년을 노예로 굴러야 풀어둔대냐?”
“……흐응. 상황 판단이 잘 안 되십니까?”
코난드는 조용해졌다가 우위를 과시하듯 트롤의 팔을 들어올렸다.
“어떻게 입구의 함정이나 경보를 뚫고 여기까지 오셨는지는 몰라도, 저는 다른 둘을 무시하고 당신을 죽이러 들면 그만인데요. 당신의 잘난 남편도 살점 몇 개만 주워가는 게 고작일 겁니다.”
“그니까 니가 빡대가리라는 거야, 새꺄. 트롤 킹이 기르는 개새끼면 개새끼답게 멍멍 짖다가 주인님한테 도둑이 들어왔다고 알렸어야지. 뭐가 신나서 혼자 놀고 앉았냐?”
다나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생각 없이 시간만 끌어봤자 트롤 킹과 주술사가 하던 것을 멈추고 올라올 수도 있었다.
얼마나 넓을지도 모르는 지하 아닌가. 이 좌표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그녀의 남편과 합류할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아니면 뭐야? 또 통수 치게? 사제장에, 벤자민에, 이번엔 트롤 킹이야? 이야, 출세하고 싶다고 떠드는 것 치고는 평생 누구 밑에서 기다가 배신하고 실패하기만 하네?”
“……좋습니다. 시간을 벌려는 시도였으면 낙제점이지만, 절 도발할 생각이라면 그만 충분합니다.”
─우드득, 촤아악!!
코난드는 자신의 팔을 스스로 긁었다. 손톱의 상처가 회복되면서 녹색일 뿐이던 인간의 팔이 비대해졌다. 전신이 보다 트롤에 가까워지는 과정이었다.
“여기까지 온 방법을 실토할 사람은 1명이면 충분하겠죠. 저를 화나게 하고자 한 노력이 가상하니, 심문할 대상은 당신으로 하겠습니다. 다나 베르베이아.”
“내가 이름 부르지 말랬지. 이거 진짜 금붕어 대가리 아냐.”
의식해서 진심으로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 다나는 건틀릿에 부여된 얼스터의 주문을 확인했다.
‘다행히 옥새는 여기에 있어. 3명의 마나를 합치면 시도해 볼 만 하겠지.’
아니, 하지 않으면 죽을 뿐이다.
치명상을 입혀서 이기기엔 상대방의 힘과 생명력이 말도 안 되게 높았다.
그래도 승산은 있었다.
불안정한 몸에 퍼진 재생능력은 강점이지만 단점이 되기도 할 것이다.
처음으로 사랑하는 남편을 치료해줬던 날. 그때 나누었던 시시콜콜한 잡담과, 그 안에 깃든 지식은 아직 그녀의 머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으니까.
─후우.
작게 숨을 뱉은 다나는 픽 웃으면서 중지를 세웠다.
“개겨 봐, 오르쿠스 자식아. 니가 뒤지면 묘비에 그 액자도 고스란히 달아놔 줄게.”